비범한 영기(靈氣)가 서린 장소에서 인물이 태어난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수태(受胎)의 순간과,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탯줄을 자르는 그 순간에 지기(地氣)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99칸 규모의 쓸 '용(用)' 자 형태로 지어진 경북 안동의 고성 이씨 종택 임청각(臨淸閣). 임청각의 안채에는 '우물방'이라고 불리는 조그만 방이 하나 있다. 방 앞에 바로 우물이 있어서 우물방이다.
이 우물방에서 조선시대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탄생하였다. 왜정(倭政) 때 조선의 명택(名宅)을 조사한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도 '조선의 풍수'에서 이 우물방의 영험을 특별히 소개하고 있다. 우물방 출생자 가운데 한 명이 약봉(藥峯) 서성(徐��·1558~1631)이다. 이 약봉의 후손들이 영·정조 시대를 거치면서 조선 후기에 출세를 많이 하였다. 그래서 나온 말이 '서지약봉(徐之藥峯)이요 홍지모당(洪之慕堂)'이라는 말이다. "서씨 중에서는 약봉 자손들이 잘되었고, 홍씨 가운데는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의 자손들이 잘되었다"는 뜻이다.
약봉의 후손들은 쟁쟁하다. 북학파의 시조이자 대학자였던 서명응(1716~1787). 그가 도덕경을 주석한 '도덕지귀(道德指歸)'는 필자가 대학원 재학 시절에 교과서로 보던 책이다. 서명응의 아들이 서호수(1736~1799)이다. 문과 장원 급제자인 서호수는 대단한 천문학자였다. 그가 편찬한 '상위고(象緯考)'는 일식·월식·칠정(七政)의 운행을 연구한 책이다. 조선시대 천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저술인 것이다.
서호수의 아들 서유구(1764~1845)는 농업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113권 54책을 저술하였다. 방대한 분량이다. '임원경제지'도 역시 필자의 애독서이다. 이 외에도 약봉 후손 가운데 서종태·서명균·서지수 3대가 정승을 지냈고, 서유신·서영보·서기순이 내리 3대 대제학을 지냈다. 조선후기 가장 화려했던 대구 서씨 집안 후손이자, '만기요람(萬機要覽)'의 저자인 서영보의 직계 후손이 서청원이다.
서청원은 2002년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친박(親朴) 정치자금 문제에 연루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보도이다. 뛰어난 학자들을 조상으로 가진 그가 왜 정치에 뛰어들었는지 안타깝다.
서지약봉 (徐之藥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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