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이 꽃피운 진경산수의 진수 ‘송시열 400주년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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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풍을 극복해낸 조선 고유의 진경산수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독특한 문화예술의 꽃을 피우자면 그에 걸맞은 이념과 사상이라는 뿌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전시회에는 따라서 진경문화의 싹이 보이는 17세기 후반부터 절정을 이룬 18세기 중반까지의 서화 100점이 선보인다. 회화 86점, 글씨가 14점이다. 치열한 이념논쟁과 더불어 화단에서도 중국풍 기존 화법을 지키려는 보수적 화원화가와 조선 고유 색깔을 드러내려는 사대부화가들이 혼재된 상황을 작품들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회화는 진경산수화의 선구자라 할 창강 조속(1595~1668)부터 진경산수를 완성한 겸재 정선(1676~1759)까지 시대별로 선보인다. 당시 최고의 문인화가란 평을 들은 창강은 전국 산천을 철저한 사생정신으로 화폭에 담아내며 진경화법의 씨를 뿌린다. ‘호촌연응’(湖村煙凝·호숫가 마을의 짙은 안개) ‘고매서작’(古梅瑞鵲·묵은 매화나무에 앉은 상서로운 까치)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중국풍이 남아 있는 김명국의 ‘비급전관’(秘급展觀·소중히 보존돼온 책을 펼쳐보다), 이후 진경시대 서막이 열리기 시작하던 때로 양식이 뒤섞인 공재 윤두서의 ‘수탐포어’(手探捕魚·손으로 더듬어 물고기를 잡다) 등의 작품도 나온다. 특히 북송의 유학자 소옹이 어부와 나무꾼의 문답을 통해 성리학의 요체를 드러낸 책 ‘어초문대’(漁樵問對)에서 유래한 ‘어초문답’(漁樵問答)은 동시에 세 작품이 나와 화풍의 변화를 비교할 수 있다. 화원인 이명욱, 사대부화가 홍득구의 ‘어초문답’에선 복장·소품이 중국식이지만, 겸재에 와서는 옷도 조선식인데다 지게가 등장하는 등 조선의 그림으로 태어난다. 이외에 겸재의 그림 스승인 김창업의 ‘추강만박’(秋江晩泊·가을강에 저녁배를 대다) 등 조선 중기 명품들이 선보인다. 전시의 꽃은 겸재의 작품 31점. 진경산수의 절정기로 ‘단발령망금강’ ‘금강내산’ ‘총석정’ 등 내외금강산을 담은 ‘해악전신첩’ 수록 작품과 ‘압구정’ ‘광진’ 등 서울 주변의 풍경을 진경으로 그려낸 ‘경교명승첩’의 작품들이다. 여기에 자신의 서재와 자화상을 그린 ‘독서여가’, 시인 사천 이병연과 시와 그림을 서로 바꿔보는 장면을 담은 ‘시서환상간’ 등도 있다. 글씨로는 신사임당 그림에 대해 우암이 쓴 발문 1점과 정명공주의 ‘華政’(화정), 미수 허목의 ‘道山祠記’(도산사기), 동국진체의 기틀을 잡은 윤순의 ‘詩帖’(시첩) 등이다. |
출처 : 너에게 편지를
글쓴이 : 예뿐천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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