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소설 <황진이> 연구 - 박태상 저 , 북한의 문화와예술, 2004
1. '황진이' 고사와 북한에서의 황진이의 평가
한국인에게 황진이는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역사시간에 황진이는 자주 거명되었으며, 국어시간에도 고전시가 중 '시조'를 강의하는 시간에 황진이의 시조는 빠짐없이 제시되었다. 특히 최근에 서구에서 페미니즘이 밀려들어오면서 한국인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역사적 인물 중 여성으로는 유관순,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논개, 나혜석 등이 제시되고 있다.최근 10만원권 고액권의 발행이 한국은행과 재정경제부에서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현재 우리 나라 화폐에서 1만원권에는 세종대왕, 5천원군에서는 이율곡, 1천원권에는 이퇴계가 새겨져 있다 앞으로 고액권이 발행된다면 누가 들어가야 할까? 조선일보 닷컴에서 2004년 1월 15일부터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18일 현재 1만 6천여명의 응답자 가운데 광개토왕이 33.8%으로 1위, 독도가 17,8%인 2천여명의 지지를 받아 2위였다. 이 같은 결과는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일본의 독도 영토주권 주장 파동 등이 주변국과 큰 이슈로 떠오르면서 관련 국민 정사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3위는 김구 선생이었고, 여성으로는 신사임당과 유관순 열사가 화폐 도안의 인기 있는 모델로 꼽혔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이 지난 1월 15일부터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역시 총 12만여명의 응답자 중 약 40%가 광개토대왕을 표지모델로 지지했다. 그밖에는 신사임당과 김구 선생, 유관순 열사가 15~18%ㅇ의 높은 지지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네티즌들 사이에서 여성인물을 고액화폐에 삽입하자는 의견이 점차적으로 힘을 얻어가고 있는 추세인데, 현재 거론된 신사임당과 유관순 이외에 허난설헌과 황진이가 그 다음 순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역사적 인물 중 가장 보편적인 현모양처형 인물로는 신사임당, 강직한 민족적 인물로는 유관순, 지성적인 인물로는 허난설헌, 예술적 재능을 가진 인물로는 황진이가 개별 항목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북한에서 황진이(1516~?)는 어떤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을까? 최근 북한에서 펴낸(조선력사인물사전)(2002)에 황진이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전에서는 황진이를 "리조 전기의 녀류 음악가, 중종때 개성의 이름 난 기생이며 노래명창이다"라고 설명하면서 다른 이름은 황진랑이며 기명은 명월로 소개하고 있다. 황진이의 출생 배경과 인물적 자질에 대해 "봉건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남녀간의 사랑관계 속에서 황진사와 진현금과 인연이 맺어져 세상에 태어난 그는 어릴때부터 얼굴이 곱고 예술적 소양이 남달리 뛰어났다."고 칭찬하고 있다. 기생이 된 배경에 대해서는 "그가 기생으로 된 것은 이웃에 사는 한 청년이 아름다운 그를 한번 보고 나서 마음이 몹시 동하여 부질없이 짝사랑을 하다가 상사병에 걸려 죽은 뒤였다고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생이 된 뒤는 황진이의 활동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서술하면서 그녀가 마흔 살을 전후하여 죽었다고 사망연대를 추정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 25권은 황진이를 총명하고, 시, 서예, 음률에 특출한 재능을 가진 당대의 으뜸가는 예술가, 여류시인으로 평가하고면서 "그는 신분이 천한 탓에 비록 기생살이를 하였으나 권력이나 재물에 유혹되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천대하고 멸시하는 량반사회에 재능으로 도전하면서 도고한 자세로 자신을 지켜 갔다. 자존심이 강하였던 그는 고루하고 위선적인 량반관료들과 사대부들을 경멸하고 조소하였으며 자신을 당대의 이름난 철학가 화담 서경덕(1489~1546), 개성의 명승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로 자부하였다. 고 소개하였다. 그리고 황진이의 작가적 평가에 대해서는 "황진이의 시조들은 당시 량반사회유학자들이 많은 경우 유교적 교리의 직설적인 해설에 치우치고 인간 정서를 솔직하고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그러한 심리묘사의 섬세성과 참신하고 세련된 시형성의 창조자로써 17세기 이후에 대두한 서민문학의 선구자적 작품으로 되었다"고 높은 문학사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2. 북한소설 <황진이>의 독창성
ㄱ. 계급을 초월한 에로스적 사랑-'산 인간'의 창조
홍석중이 지은 북한소설 <황진이>는 여러 가지 점에서 기존의 남한소설들과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다. 우선 <황진이>의 스토리는 하인인 놈이와 상전이었던 기생 진이의 사랑을 주축으로 삼으면서 한편으로 하인 괴똥이와 황진이의 몸종 이금이와 사랑을 부선으로 장치하고 있다. 놈이와 진이의 사랑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기생 황진이에게 접근하는 다른 양반 사대부계층들이 모두 탐욕스럽고 위선적인 인물들로 황진이를 한 인간으로서라기보다는 단순한 섹스 파트너로서의 의미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비해, 놈이의 황진이를 향한 마음은 헌신적이면서도 순수한 연정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놈이와 진이의 사랑을 강조하면 할수록, 조선조의 지방관장을 비롯한 양반 사대부 계층의 위선적 행동이 더욱 강하게 부각된다. 한마디로 진실과 거짓의 대립 갈등 구조를 이 소설은 기본 축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이 작품에서 놈이는 '산 인간'의 전형으로 묘사되고 있다. 북한 이론서들은 인간세계의 위대성을 깊이 탐구하여 산 이간으로 형상하여야 감명 깊은 인정세계가 펼쳐지고 인간학다운 작품이 창작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산 인간이 없으면 형상도 없게 되며 형상이 없으면 문학도 없게 된다고 역설한다.
ㄴ. 황진이의 출생 비밀 폭로와 기생으로 변신
북한소설 <황진이>가 남한소설과 큰 차이를 보이는 또 다른 모티프는 주인공 황진이의 출생비밀과 그것으로 인해 파혼 당한 황진이가 기생이되는 스토리이다.
총 3편으로 구성되고 있는 <황진이>의 1편에서 가장 핵심적인 모티프는 주인공 황진이의 '출생의 비밀'을 갈등구조 속에서 밝히고 있는 대목이다. 작품에서 황진이는 양반계층인 황진사댁의 서출이 낳은 딸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황진사의 적통인 고명딸로 주변에 알려져 있던 황진이의 출생비밀이 알려지게 되는 계기는 황진사댁의 하인인 놈이가 황진이를 짝사랑하던 나머지 질투심에 의해, 황진이의 혼사문제가오고 가고 있던 유승지댁에 황진이에 대한 출생비밀을 누설한 편지를 발송하였기 때문으로 뒤에 밝혀지고 있다. 즉 놈이에 의해 파혼이 되고 자신의 출생비밀이 드러나게 되어 삶의 의미를 잃게 된 황진이는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찬 양반사대부계층에 대한 복수심에서, 송도의 색주가인 청교방의 기생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ㄷ. 황진이의 첫 사랑
남한소설에서는 대개 황진이가 첫 순결을 바친 인물로 개성 유수인 송유수로 묘사하거나 수청방에서의 40세 된 사대부로 그려지거나 북한 작가 홍석중은 황진이의 순수성을 그대로 실리기 위해 하인 놈이에게 상전인 황진이가 스스로 자신의 몸을 가지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원래 야담에서는 황진이 첫 순결을 가져간 남자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부분은 후세의 소설가들이 황진이의 삶을 어떻게 그려나가느냐에 따라 자의적으로 허구화되고 삽입하게 된 것이다.
북한소설에서는 놈이와 황진이의 첫 날밤은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다루어진다. 그 이유는 첫째, 주인공들인 기생 황진이와 하인인 놈이라는 하층민의 삶을 순수하게 묘사해야만 하는 작가적 배려 때문이고 둘째, 북한소설이나 영화에서 노골적인 장면이 <황진이> 이전에 전혀 등장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ㄹ. 괴똥이와 이금이의 순수한 사랑
홍석중의 <황진이>의 스토리 전개에서 중요한 다른 한 가지는 주인공 황진이의 몸종인 이금이가 황진사댁의 하인인 괴똥이를 만나 사라을 나누는 장면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층민끼리의 이러한 사랑이 상전인 황진이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작품 후반부에서 물밑에서 표면위로 드러나는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양상은 북한소설이 계급을 초월한 사랑이나 건강한 의식을 가진 하층민끼리의 사랑을 미화시키는 공산주의적 계급성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황진이는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을 위해 정신적인 후원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산을 털어 신혼집까지 장만하려는 노력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주인공들의 사상적 순결성을 유지하려는 당과 작가의 의도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 <황진이>의 이태준과 홍석중의 비교관찰 - 박태상 저 북한문학의 사적 탐구, 2006
1. 서사구조의 차이점
홍석중의 <황진이>는 표제명은 <황진이>이지만, 사실상 극적인 전개를 끌어가고 있는 것은 여주인공 황진이의 하인인 놈이다. 이히려 황진이가 부차적인 인물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놈이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의 전개가 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스토리는 제시-복잡화-클라이막스-대단원으로 구성되고 있다. '제시'단계에서는 황진이의 모친 현금의 이야기와 놈이의 보살핌 그리고 황진이의 모친 현금의 이야기와 놈이의 보살핌 그리고 황진이의 출생 비밀인지 등이 설정되어 있다. '복잡화'단계에서는 황진이와 윤승지댁과의 혼담 전개와 파혼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놈이의 질투심에 의한 투서, 황진이의 청루 진출 등 긴장으로 치닫는 이야기가 급박하게 전개되어 분규를 지아내게 된다. '클라이막스' 단계에서는 송유수의 비리와 상환반전을 위한 고려 보물 탈취사건, 그에 따른 괴똥이의 억울한 범죄조작과 투옥 등이 긴박하게 전개된다. 대단원에서는 놈이와 괴똥이의 혐의를 풀고 투옥된 괴똥이를 살려내기 위해 황진이가 개성유수를 찾아가 성상납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협상이 이루어지고 결국 황진이의 의도와 달리 반전이 이루어져 놈이의 투옥과 교살로 사건이 종결짓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스토리 전개 과정을 살펴 볼때, 홍석중의 <황진이>는 서구적인 갈등구조를 지녔다고 단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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