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파 프리드리히(1774~1840)의 그림 세계
스페인에 고야, 프랑스에 들라크루아가 있다면, 독일 낭만주의를 개척한 화가는 바로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였다. "세속적인 것에 고결한 의미를, 일상에 신비스러운 외양을,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진기한 특징을, 유한에 무한의 외관을 부여하는 것"이 곧 낭만주의라는 노발리스의 정의를 프리드리히만큼 충실히 따른 미술가는 없다. 그의 작품의 주된 주제는 인간의 고독과 자연의 황량한 아름다움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의 힘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을 관통하는 커다란 지류는 두 가지다. 우선, 그의 작품에는 모든 낭만주의 사조를 관류하는 숭고미가 나타난다. 자연에 대한 숭배와 신에 대한 경외가 결합된 그의 그림은 신비하고 엄숙하고 종교적이다. 거의 항상 뒷모습으로 그려진 그의 인물들은 비현실적인 느낌을 줄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산과 바다, 안개, 성당의 첨탑, 옛 무덤, 달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겨 있다.
프리드리히에게 중요한 것은 자연주의적인 인상이 아니라 정신 안에서 공명하는 공간의 분위기였으며, 그는 그림이 진정한 예술작품이 되려면 "정신적으로 충만한"느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하늘과 바다와 모래언덕의 풍경 한가운데 작은 점처럼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표현한 '바닷가의 수도사'나, 황량하고 적막한 극지의 얼음 덩어리와 좌초한 배를 그린 '빙해'를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바닷가의 월출 Moonrise by the Sea(1822)
프리드리히 그림의 초월적 분위기가 가장 고조된 작품 중 하나이다. 삼라만상의 순환에 대한 관조적 시선으로 관객들을 현실이 아닌, 그 어떤 이해할 수 없는 신비주의적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거의 정확히 중간 높이에서 화폭을 가로지르는 수평선이 두 개의 쌍곡선(구름선과 바위곡선) 사이를 가른다. 이 두 쌍곡선은 프리드리히 특유의 구성 안에서 서로를 반영하는 듯 하다
달빛을 쳐다보는 두 남녀(1824)
프리드리히가 젊은 아내와 달을 응시하는 포즈를 묘사한 이 그림을 카루스는 다음과 같이 평한다:
"산꼭대기로 올라가 길게 이어진 구릉을 보라.. 어떤 감정에 사로 잡히는가?.. 당신은 고요한 신앙심으로 가득 찬 가없는 공간 속에서 자기자신을 잃어버릴 것이다. 평온한 가운데 당신의 全 존재가 깨끗해지고 정화되며 당신의 자아 자체가 사라진다. 당신은 아무 것도 아니며 신이 전부인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뤼겐의 백악 절벽(1818)
1818년 여름 신혼여행 때 북독 뤼겐섬을 방문해 V자형의 백악 슈타벤 캄머 절벽을 그린 이 그림은 프리드리히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의 하나로 꼽힌다. 백악 봉우리들이 만들어내는 기괴한 윤곽과 이를 가로질러 비물질적인 불가해함을 드러내는 수평선 너머의 야릇한 색조는 서로가 비교되면서 각각의 효과를 최고조로 끌어 올린다.
옛 독일 의상차림으로 서있는 인물은 이상화된 젊은 모습의 화가 자신이고, 양서류처럼 기어가는 듯한 초로의 남자가 현실의 프리드리히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들이 나무와 절벽 사이로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는 동안 이들의 산책은 초월적 경험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The Wanderer above a Ses of Mist(1818)
프리드리히 회화의 대표적 브랜드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기구를 타고 위로 올라가며 아래를 내려 볼 때 얼핏 스치는 안개 사이로 보인 한 순간이 포착된 듯 하다.
가파르게 솟은 암반에서 돌출된 어두운 꼭대기에 옛 독일 의상을 입은 한 남자가 지팡이를 꽉 진 채 안개바다 저쪽, 써늘한 대기를 뚫고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낸 바위 기둥들을 지나 멀리 산봉우리들을 황망히 응시하고 있다.
화가의 이 순간 구도는 인간적 소외속에 고독감을 혼자서 삭혀야 하는 20세기 현대인의 고뇌를 그대로 예견한 한 세기 전 선견지명의 발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빙해 The Sea of Ice(1824)
이 그림은 오늘날 화가의 주요 걸작 중 앞 머리에 꼽히는 작품으로 평가받지만 당시에는 구도와 주제의 급진성으로 호응을 얻지 못한 채 1840년 화가의 임종시까지 팔리지 않았다. 1905년 함부르크 Kunsthalle가 구입을 결정한 이후 비로소 제대로 된 세상의 평가를 얻어 왔다.
인적이 끊긴 황량한 극지에서 무리를 이룬 얼음들에 의해 서서히 부서지고 있는 범선은 당시 오스트리아 메테르니히의 치하에서 독일의 민족정신을 옥죄는 정치적 겨울에 대항하는 화가의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듯도 하다.
얼음같이 차가운 색채가 북극의 배경과 어울리는 이 매혹적인 작품은 한편으로 어린시절 화가 자신의 실수로 동생을 빙판에 익사하게 한 비극적 사건을 부분적 모티브로 삼았다는 설명도 들린다.
삐쭉삐쭉 쪼개진 피라밋 형태로 솟아오른 앞쪽의 날카로운 얼음 파편들을 중량감 없어 보이는 투명한 뒤쪽 원경이 엄숙한 고요함으로 포용하며 새로운 순환이 임박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범선에서 On Board A Sailing Ship(1819)
구도가 대담한 이 그림은 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가 황태자 시절 독일 드레스덴을 방문횄을 당시 구입해 상페터스부르크의 에라미타슈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화가 자신과 화가의 이상형 모델이자 아내인 카롤리네로 추측되는 두 남녀가 손을 잡고 교회 첨탑과 건물들이 안개속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전방의 도시를 응시하고 있다. 좁은 배위에서의 감정적 밀착, 전방 목표를 향해 미끄러지듯 고요하게 나가는 범선, 쐐기같은 배의 앞 부분을 원근법으로 그린 대담한 구도 등에 대한 발상은 수십년 뒤 인상주의 작품에서나 만나게 된다.
창가의 여인 Woman at a Window(1822)
열린 덧문을 통해 엘베강을 바라보는 여인은 화가의 아내 카롤리네 봄머이다. 관객들은 기하학적 구도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이 작품은 좁은 실내에서 감지되는 외부세계의 광대함을 동경하는 여인을 통해 '일상적 세속에서 뭔가 있어 보이게 하는' 외관을 부여할 수 있는 화가의 낭만적 야금술을 슬쩍 보여준다.
까마귀들의 나무 The Tree of Crows(1822)
강한 색채 대비에 기초를 한 이 그림의 전체 분위기는 황량함 그 자체이다. 왼쪽 원경에는 섬의 절벽과 멀리 바다로 내달리는 좁은 암초가 보인다. 기괴하게 가지가 비틈리고 잎이 다 떨어진 참나무는 주변 나무들과는 달리 온갖 풍상에도 끈질기게 버텨 서 있다. 까마귀와 함께 재난과 죽음을 예고하는 붉은 그루터기와 나무 파편들이 이 그림의 음산함을 인상적으로 전한다
아침 햇빛 속의 마을 풍경 Village Landscape in Morning Light (1822)
이 그림은 하나의 구체적 시각이 아니라 화가가 1806~10년 사이에 그린 6점 정도의 각기 다른 습작을 인위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아무런 막힘없이 원경으로 확장되는 평지를 펼침으로서 보는 이가 마치 최하단 왼쪽과 오른쪽 모서리에서 시작되는 완만한 언덕 위에 서 있는 듯 하다.
우리의 시선이 거대한 참나무와 마주치는 순간 나무는 갑자기 더 멀어진 듯 하고 더 거대해 보인다. 이 그림의 주역처럼 여겨지는 참나무는 인간 삶 전반에 대한 초월적 상징으로서 위치하고 있다.
바위계곡 Rocky Ravine(1822-23)
원경의 사암층은 엘브잔트슈타인 산맥의 노이라텐 산에 있다. 바위는 실물대보다 크게 묘사되었으며, 가장 높은 산봉우리 밑의 깊은 계곡은 화가가 끼워넣은 것이다.
화가는 "예술은 인간 내면에서 나와야 한다"는 신조 속에 사람의 눈에 감지된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을 결연히 거부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길들지 않은 자연을 제대로 묘사하는데 좀 더 많은 비중을 두어 사실적 접근법을 시도한 흔적이 역력하다
저녁 Evening(1824)
영국의 풍경화가
해변의 암초 Rocky Reef on the Sea Shore(1824)
빙해를 그린 직후 제작된 이 그림 역시 무시무시하게 보여지는 자연 대상을 숭고미 속에 결합시킨 화가의 회화관이 짙게 배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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