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작>
이 그림은 라파엘로가 그린 유명한 벽화, 아테네 학당입니다. 이 그림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모두들 잘 알겠지만 고대의 학자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프톨레마이오스 같은 사람들이지요.
자, 그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얼굴 말고, 다른 얼굴을 한번 찾아보지요. 가령 이런 얼굴은 어떨까요? 마치 다빈치 코드 삘이 나도록... 여자 얼굴 같은 거...
<하얀 로브를 입은 여인>
위 이미지는 아테네 학당의 좌측 하단에 위치한 하얀 수도복을 입은 여자를 확대한 모습입니다. 확실히 여자처럼 보이지요? 실제로도 여자랍니다. 그림속에 그려진 그녀는 바로 알렉산드리아의 히파티아라는 사람입니다.
라파엘로는 그녀를 무척이나 그림에 집어넣고 싶어했답니다. 그래서 원래 스케치에는 그녀가 한 가운데에 있을 예정이었다더군요. 헌데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어느 날 한 주교가 아테네 학당이 그려지고 있는 걸 보고서 이렇게 물었다는군요.
"왜 여편네가 그림 가운데 있나요?"
"아, 그거요?"
라파엘로는 이렇게 답했죠.
"그녀는 알렉산드리아에 히파티아에요, 아테네 학당의 유명한 학생 중 하나였죠."
헌데 주교는 그녀가 맘에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말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심드렁하게 말했다는군요.
"그녀를 지워버리시오. 신성한 학자들이 나오는 그림에 여자가 뭔가요? 게다가 그녀의 가르침은 우리 종교에 반하는 거라구요. 만약 그렇게만 한다면 이 그림은 합격이요."
"네, 죄송."
우리의 라파엘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대요.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있나요. 하지만 그렇다고 히파티아를 빼기에는 너무도 아까워서, 결국 꽁수를 부리게 되었죠. 바로 당대의 유명한 지휘관이었던 프란체스코 델 라 로베레를 모델로한 철학자 옆에 그녀를 숨겼던 거예요. 그래서 그녀의 존재는 현재까지도 언급이 잘 안 되는 거고요
<이집트 그림에 남아있는 히파티아의 모습. 전형적인 그리스계였던 모양이군요>
자, 그럼 히파티아는 과연 뭐하는 누님이었기에, 라파엘로가 그렇게 지우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걸까요?
히파티아는 대략 기원후 355년 또는 370년 ~ 415년 또는 416년까지 살았던 여자예요.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 이집트의 학문기관 무세이온(여기서 박물관이라는 영어 단어가 유래했어)의 관장 테온이었는데, 나중에 가다보니 그녀의 명성은 아버지를 능가할 정도였대요. 아버지는 그녀에게 수학을 가르쳤고, 아테네와 이탈리아로 유학까지 시켜줬다더군요. 아테네 학당에 나오는 그녀의 모습은 바로 아테네로 유학갔을 때의 모습을 그린 것일 테고요.
그녀는 당대 최고의 여성 수학자로 인정받고 있어요. 미모도 뛰어났고, 강의도 매우 잘 했다는데, 문제는 그녀가 어떤 식으로 강의를 했는지 남아 있는 기록이 없다는 거예요. 뭐 대충 추측하기로는 직위는 없이 아버지가 관장으로 있는 무세이온의 강의실을 빌린 것 같은데, 얼마나 강의를 잘 했는지, 그녀가 강의할 때마다 알렉산드리아의 부호, 명사들이 강의를 듣기 위해 타고 온 마차가 줄을 이었다고 하더군요.
<히파티아의 문제로 알려진... 삼각법 머시기... 뭔 소린지는 직접 알아보세요>
또한 그녀는 뛰어난 수학 문제 해결 능력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당시 수학자들은 몇 달 간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그녀에게 편지로 질문했고, 그녀는 한 번도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하니, 그야말로 대단한 천재였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또한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철학에도 능통했는데 신 플라톤 주의 입장을 취했다고 해요. 이것은 욕망, 물질, 세속 따위를 극도로 낮추어 보는 주의로써, 그녀의 이러한 철학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남아 있대요.
히파티아의 강의를 듣던 학생 중의 하나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만 사랑에 빠진 적이 있대요. 그래서 공공연하게 자신의 심정을 그녀에게 드러냈다는 거죠.
한마디로 우리 선생님 좋아요, 사랑해요 이랬다는 건데...들리는 말에 따르면 히파티아가 그 녀석을 정신 차리게 해주려고 월경으로 인해 더럽혀진 자신의 옷가지를 모아 그 학생에게 보여줬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는 거지요.
"네가 사랑하는 것의 참모습이 바로 이거란다.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지." 그 학생은 자신이 목격한 광경에 너무나도 놀라고 부끄러워진 나머지 심경을 바꿨다는 소리가 전해져오고 있어요.
허나 그녀의 생애는 비극적으로 끝나고 마니...그건 바로 기독교 때문이었죠. 키릴로스라는 인물이 알렉산드리아 기독교회의 주교로 오면서 문제가 붉어지기 시작했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히파티아는 기독교 지도자들로부터 호의적인 대접을 받고 있었거든요. 심지어 히파티아의 강의를 들은 사람 중에서 유명한 기독교인으로 키레네의 시네시오스가 있는데, 시네시오스는 나중에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결정한 중요한 인물이었으니 두 말할 필요가 없겠죠.
그러나 키릴로스는 시기심이 무척 많은 인물이었던 거예요. 히파티아가 거리를 지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존경의 인사를 보냈는데, 주교는 모습을 보고 짜증이 났지요. 겨우 여편네 주제에 나보다도 더 유명하다니 참을 수 없다! 이랬던 거지요.. 게다가 그녀의 가르침은 기독교의 교리에 반하는 이단이었거든요.
결국 키릴로스는 그녀를 죽이라고 지시를 내려요. 베드로라는 이름의 광적인 수도자가 대장이 되어 그 임무를 감행했는데, 평소 마차를 타고 다니며 알렉산드리아 거리를 활보하던 그녀를 길목에서 지키고 있다 납치했어요. 그리고는 개처럼 때리면서 케라레움이라는 교회까지 질질 끌고 갔다는군요.
그리고 거기에서... 히파티아의 옷을 모두 벗기고 날카로운 조가비로 그녀의 살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서는 산채로 불태워버렸다는 거예요. 불쌍하게도..
이것에 대해 묘사한 글이 있죠..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작가인 드니 게디의 소설 <앵무새의 정리>에 나오는 대목이에요
'415년의 어느 날,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교 광신도들이 길을 지나던 그녀의 마차로 달려들어 그녀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발가벗긴 채 성소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칼날처럼 예리하게 깎은 굴껍데기로 그녀를 고문한 뒤 산 채로 불태워버렸다'
<찰스 윌리엄 미첼의 그림, 히파티아. 교회에서 능욕당하기 직전의 모습을 표현-_->
이와 관련하여 약간 다른 설도 있어요. 당시 알렉산드리아를 다스리던 사령관 오레스테스와 키릴로스의 갈등이 원인이라는 설이에요.
이 두사람은 대립적인 관계에 있었고, 심각한 갈등이 날로 증폭되는 상황이었대요. 그런데 히파이타는 바로 오레스테스와 무척 친한 사이였고, 사령관과 주교의 갈등에 대한 책임이 히파티아에게 있다는 소문이 기독교도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던 거지요. 이단인 신플라톤주의를 신봉하는 히파티아가 기독교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오레스테스를 이용한다는 악질적인 소문이었어요.
당시는 기독교와 이교도가 같은 하늘에 있던 시기였고, 기독교는 이교도를 몰아내기 위해 어떠한 성전도 감행할 결심이 되어 있었요. 그래서 신플라톤주의의 대표자였던 히파티아를 제거해서, 자신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했다는 거예요.
뭐,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키릴로스가 연관되어 있었다는 심증은 있어요. 히파티아가 죽고 나서, 오레스테스는 범인들을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기독교도들을 응징할 수는 없었다는군요. 그만큼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 세력은 날로 강대해졌고 심지어는 그가 생명의 위협을 느껴 도망칠 정도였던 거예요. 훗날 키릴로스 주교가 간단히 조사를 끝낸 건 두말할 거도 없구요.
일각에서는 키릴로스와 히파티아의 문제가 당시 기독교와 고대 학문의 대립관계를 나타낸다고 보기도 해요. 왜냐하면 키릴로스는 이단에 대해 매우 강경한 입장을 취하면서 이단적 학문을 배척한 작자였거든요. 그는 431년에 그리스도의 신성보다 인성을 중시한 네스토리우스파의 주장에 반대하여 에페수스 공의회에서 네스토리우스파를 이단으로 공격한 적이 있어요. 네스토리우스파는 과학자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많은 교파였는데, 결국 박해를 피해 시리아나 페르시아 등지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고대 헬레니즘 세계의 학문 전통의 쇠퇴로 이어지게 되죠..
즉 히파티아의 비극적 죽음은 따라서 고대 헬레니즘 세계의 문화, 학문 전통의 쇠락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아쉽게도 그녀에 대해 알려진 것은 이것뿐이에요. 국내에서는 자료도 드물구요. 하지만 소설 한편 멋지게 쓰기에는 참 매력적인 역사적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마지막으로 라파엘로의 히파티아 그림에 대해 덧붙이자면... 히파티아의 모델은 정확하게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고.. 그녀의 복장 묘사는 꽤나 정확한 축이라고 해요. 왜냐하면 히파티아는 전형적인 스콜라철학자처럼, 하얀 로브를 입은 마법사 같은 차림을 하고 다녔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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