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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종가기행 ⑩] 壽谷 金柱臣 - 榮華 멀리한 숙종의 장인… 왕들도 격 갖춰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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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 28. 20:51
[종가기행 ⑩] 壽谷 金柱臣 - 榮華 멀리한 숙종의 장인… 왕들도 격 갖춰 추모 | ||||
[주간한국 2006-06-28 15:21] | ||||
경주 김씨 수곡 김주신 1661년 (현종2) -1721년 (경종1) 자 廈卿, 호 壽谷 또는 洗心齋, 시호 孝簡, 봉호는 慶恩府院君. 수곡 김주신은 생원(生員) 일진(一振)의 둘째아들로, 그의 둘째딸이 숙종의 계비 인원왕후(仁元王后)다. 어려서 부친을 잃고 숙부에게 글을 배웠으며, 이어서 당대의 대표적 재야 학자인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36세에 생원시에 합격했고 이듬해 봄 시험관이던 최석정(崔錫鼎)의 추천으로 벼슬에 나가 39세에 사헌부 감찰, 호조좌랑 등을 맡았다. 42세(숙종28, 1702년) 9월 딸이 숙종의 계비가 되고 돈녕부 도정, 돈녕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등을 지냈다. 사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그의 사후에 국왕들의 쉼 없이 이어진 '사제(賜祭)'가 주목된다. 이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에 단행된 왕대비(仁元王后)에 의한 왕세제(王世弟: 왕위를 이를 임금의 아우) 책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왕세제가 후일의 영조이며 조선왕조의 왕통은 그렇게 이어졌다. 왕대비 자신은 슬하에 왕자를 두지 못했지만 영조를 세제로 옹립한 공이 부원군인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세의 완인(一世完人)’이란 관점에서 역대 국왕들이 격을 갖춰 추모하였으니 영조29년(1753) 국왕이 친히 제문을 지어 치제(致祭: 임금이 제물과 제문을 내려 죽은 공신을 제사지냄)한 이래 그것은 영조45· 47년, 정조5·12년 순조11·25년, 고종30년(1893)에 이어졌다. 불천위 중의 불천위에 해당하는 인물인 셈이다. 그런 분이 지금은 불천위 사당조차 없다. 수곡의 집은 원래 순화방(현재 서울시 중구 순화동) 대은암동(大隱巖洞) 연우궁(延祐宮) 곁에 있었다. 그 집의 양정재(養正齋)에서 인원왕후가 태어났다. 본래 있던 집은 누워서 보면 하늘의 별이 보였을 정도로 검소했고 그 규모도 단출했다. 부원군이 된 이후 숙종이 아주 넓은 집을 하사했는데 지금의 서울 종로구 조계사 터라고 한다. 경기도 고양에 있는 묘소는 손향(巽向)으로 모셔져 있다. 부원군의 묘소답게 격조가 있으며 절제된 느낌이다. 묘소는 묘비와 호석(護石: 묘소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두른 돌)과 곡장(曲墻: 묘소를 보호할 목적으로 만든 담)으로 아담하게 꾸며져 있다. 묘비는 최규서(崔奎瑞)가 짓고 서명균(徐命均)이 글씨를 썼다. 폭 65cm, 높이 1m이다. 신도비는 국왕의 명을 받들어 이조판서 박종훈(朴宗熏)이 글을, 이조판서 김이교(金履喬)가 글씨를, 그리고 대제학 김조순(金祖淳)이 전자(篆字)를 써서 순조26년(1826)에 건립했다. 폭 96cm, 높이 2m53cm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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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나의 사랑 한국한문학
글쓴이 : 인간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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