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유명한 종가집 家보자!
경주 최씨 종가 및 보본당 사당은 대구 지방에 있는 조선시대 고택 중 가장 오래됐다. 조선 인조 때 학자 대암 최동집이 정착하면서 지은 집. 숙종 20년(1694)에 지은 안채와 광무 9년(1905)에 다시 지은 사랑채가 살림채를 구성하고 있다. 살림채 오른쪽에 있는 보본당은 영조 18년(1742)에 지은 사당으로, 재실로 사용하고 있다. 대구시 동구 둔산동 386. 대구시 문화공보실 (053)662-2191 울산 학성 이씨 근재공 고택은 학성 이씨 시조인 이예의 11대 후손 이의창이 지었다. 고종 때 이의창의 증손인 이장찬이 고쳐 지었고,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다. 석천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 집은 문간채, 사랑채, 곳간채, 별당채, 안채 와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갖추고 있다.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석천리 302. 울주군 문화관광과 (052)229-7631
군포 동래 정씨 동래군파 종택은 동래 정씨 동래군파의 종가. 안채는 조선 정조 7년(1783)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사랑채는 고종 14년(1877)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안채, 사랑채, 작은 사랑채, 문간채, 행랑채가 남아 있다. 경기 군포시 속달동 24-4. 군포시 문화체육과 (031)390-0663 영광 이규헌 가옥은 전주 이씨 양도공파의 종갓집으로, 임진왜란 때 영광 수성도별장을 지낸 이응종의 생가이기도 하다. 건물에 적힌 기록에 따르면 사랑채는 조선 고종 32년(1895)에 지었다고 한다. 안채, 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돼 있는데, 집의 구성과 배치가 조선시대 민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전남 영광군 묘량면 영양리 567-1. 영광군 문화예술계 (061)350-5225 예천 권씨 종가 별당은 조선 중기 문신인 초간 권문해(1534∼1591)의 조부인 권오상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겉모습은 소박하지만, 정교하고 화려한 천장 장식이 조선시대 별당 건축의 멋을 잘 나타내고 있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166. 예천군 문화관광과 (054)650-6391
영천 경주 김씨 지사공 종택은 조선 중종 때 중추부지사를 지낸 김흡의 종가로 원래 김흡이 지었으나 화적떼에 의해 없어진 것을 19세기 초 후손들이 다시 지었다고 한다. 안채, 사랑채, 사당, 대문간을 규모 있게 배치했다. 집 뒤쪽 높은 곳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김연(1552∼1592)의 사당과 신도비가 있다. 경북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 269. 영천시 문화관광공보과 (054)330-6354 묵계서원 및 안동 김씨 묵계종택은 숙종 13년(1687)에 지었다. 고종 6년(1869) 서원 철폐 때 사당이 없어졌으나 최근 복원됐다. 묵계서원은 보백당 김계행(1431∼1517) 선생과 응계 김옥고(1382∼1436) 선생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 묵계 종택은 서원에서 멀지 않은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경북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705, 735-1.안동시 문화관광과 (054)840-5199
퇴계종택은 조선 중기 대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의 종가다. 원래 있던 집은 없어지고, 이 건물은 1926∼29년 퇴계의 13대손 하정공이 새로 지었다. 앞면 6칸·옆면 5칸 규모의 ‘ㅁ’자형 집으로 총 34칸이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468-2. 안동시 문화관광과 (054)840-5199 진양 마진리 이씨 고가는 조선 숙종 40년(1714)에 이덕관이 사랑채인 마호당을 짓기 시작해 숙종 44년(1718)에 안채·중사랑채·사당·솟을대문 등을 완공했다. 13대를 이어온 종가이나 중사랑채와 사당은 허물어져 없어지고 사랑채 대문만 남아 있었다. 1865년 사랑채를 다시 짓고, 1937년에 안채를 고쳐 지었다. 경남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 592. 진주시 문화관광과 (055)749-2054 정재영 기자 3Dsisleyj@segye.com">sisleyj@segye.com 〈자료: 문화재청〉 김장생 종가 주변 볼거리 김장생 종가가 있는 충남 논산은 선비의 고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명문가·종가의 상징인 재실과 서원이 유난히 많다. 재실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제사를 위해 찾은 사람들의 숙식과 제사 음식 장만을 책임지고, 문중의 토지를 받아 부쳐 먹는다. 사설 교육기관으로 볼 수 있는 서원은 이름난 조상을 기리고 인재를 키우는 곳. 사당은 조상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사계 김장생 종가가 있는 연산면 고정리에도 재실이 늘어서 있다. 현재 광산 김씨 일가 18호가 살고 있는 고정리에는 연산 영사재(永思齋), 의정공 김국광 사당, 모선재(摹先齋), 논산 영모재(永慕齋) 등이 있다. 연산 영사재는 김극뉴(1436∼1496)의 처 의령 남씨를 제사지내는 곳으로, 200여년 전 세워졌다. 재실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이뤄져 있고,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 지붕이다.
영사재에서 50여m 떨어진 곳에 의정공 김국광(1415∼1480)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성종 13년(1483)에 지어진 불천위(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 사당이다. 세조 6년(1460)에 오랑캐를 회유해 물러나게 하고, 세조 13년 이시애의 난 때 남이 장군과 함께 난을 평정한 공을 인정받아 불천위 사당으로 지어졌다. 영사재 인근에는 양천 허씨 정려(陽川許氏旌閭)가 있다. 정려는 마을에서 난 충신이나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한 것. 김장생의 7대 할머니인 양천 허씨는 광천 김씨 가문에 출가했다가 17세에 남편을 잃었다. 이를 불쌍히 여긴 부모가 그를 개가시키려고 했으나, 아들을 업고 개성에서 시댁인 연산 고정리로 돌아와 평생을 홀로 지내며 아들을 훌륭히 키웠다고 한다. 1455년 허씨가 죽은 뒤 그 정절이 널리 알려져 1467년 정려가 내려졌다고 한다. 김장생 종가 인근에는 이 양천 허씨의 재실인 논산 영모재가 있다.
모선재는 사계 김장생의 할아버지인 김호와 아버지인 김계휘를 모시기 위한 재실로, 1700년대 자손들이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연산면의 돈암서원(遯巖書院)도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도 보존된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다. 논산 강경읍 황산리에는 사계 김장생이 후학을 양성한 임리정(臨履亭)과 우암 송시열이 학문을 널리 알리던 팔괘정(八掛亭), 김장생 등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들이 세운 죽림서원(竹林書院)이 자리하고 있다. 이 밖에 부적면에는 계백 장군 묘역과 백제 군사박물관, 충곡서원지, 휴정서원 등이 있다. 황산벌에서 장렬히 전사한 계백 장군 묘 인근에 위치한 백제 군사박물관에서는 백제의 군사 활동과 무기류, 선사 이래 논산의 역사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 야외 체험장에서는 모형 말타기, 국궁, 투호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박물관 입장료는 1000원. 이 같은 볼거리 대부분은 탑정호 인근에 늘어서 있다. 논산8경 중 제2경으로 치는 탑정호 인근을 드라이브하며 둘러볼 수 있다. 논산=글·사진 정재영 기자 3Dsisleyj@segye.com">sisleyj@segye.com |
출처 : 여행, 바람처럼 흐르다
글쓴이 : bol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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