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현(金舒玄)은 신라 26대 진평왕때의 장군으로 가락국 시조인 수로왕의 11대손이고, 명장 김무력(金武力)의 아들이며 김유신(興武王)의 아버지이다.
김서현은 진평왕 25년인 서기 564년에 출생하여 진흥왕의 질녀인 만명(萬明)과 중매를 거치지 않고 결혼했다.
서현은 만노군(萬弩郡:충북 진천)의 태수로 임명되어 만명과 함께 살았다.
당시 서현 부부가 살던 집터가 지금 충북 진천읍 상계리 계량 마을에 있는 '담안밭'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 계량마을 부근에 길상산(吉祥山)이 있는데 서현 부부는 32세(서기595년)때 낳은 유신의 태를 이곳에 묻었으므로 이 산을 '태령산'이라고도 한다.
만명부인은 자녀 교육에 매우 엄격하여 장남 유신(庾信)과 차남 흠순(欽純)에게 망령되이 교우하거나 놀지 말라고 훈도했다.
경주로 이사한 후 어느날 유신이 천관(天官)이라 불렀던 여인의 집에 드나들게 되었다.
만명은 유신을 불러 앉히고'나는 이미 늙었다. 밤낮 네가 장성하여 큰 공을 세워 왕과 부모에게 기쁨을 줄수있게 되기를 기대해 왔다. 그런데 너는 술을 마시고 여자나 희롱하고 다니느냐'라고 울면서 타일렀다.
유신은 맹세했다."다시는 그 여자 집에 가지 않겠습니다."
그 후 어느날 유신이 밖에 나갔다가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데 말이 눈에 익은 옛 길로 접어들어 그녀의 집으로 들어섰다.
천관은 발길을 끊었던 유신이 말을 타고 대문앞에 다다르자 기쁘고 원망스런 마음으로 유신을 맞이하려 했다.
이때 유신은 돌연 깨달은 바가 있어 차고있던 칼로 말의 목을 베어버리고그 집을 떠났다.
천관은 원사 한 곡을 지어 속세를 떠났다고 하는데, 지금의 천관사는 곧 천관녀의 집터이다.
서현은 66세때 김용춘(金龍春:金春秋의 아버지)과 함께 고구려 낭비성(충북 청주)을 공격하여 고구려군 5천여명을 참살하고 1천여명을 생포하여 고구려 정벌의 기초를 다졌으며, 김용춘 집안과의 결속을 강화하였다.
그후 서현은 대량주(양산)도독, 삽량주 총관을 역임했으며,2남 2녀를 두었으니 장남은 유신(庾信), 차남은 흠순(欽純), 장녀 보희(寶姬),차녀 문희(文嬉)였다.
문희는 김춘추에게 출가하여 무열왕 비가 되어 문무대왕을 낳았으니,후세인들이 서현과 만명을 엄부자모의 상징으로 추앙했으며 신라 신김씨 가문의 기초를 닦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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