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스크랩] 故 박대통령 金烏啄屍 발복은 生家

회기로 2009. 7. 14. 08:03

風水의 현장 <8>...故 박대통령 金烏啄屍 발복은 生家

 


故朴正熙대통령의 군왕지지(君王之地) 발복을 조부 朴永奎의 유택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풍수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이는 터무니없는 무덤風水의 허황된 망령일 뿐이다. 적어도 금오탁시(金烏啄屍)의 발복은 생가(生家)였다는점이 본연재 답사 중 최초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무덤발복 타령을 거들먹거리는 풍수가 있다면 다음과 같은 세부류 중어느 하나에 속할 것이다. 첫째 금오탁시형국을 식별하지 못하는 먹통風水, 둘째 풍수이론의 기초지식도 없는 반風水나 얼風水, 셋째 풍수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현장답사가 결여된 방안風水다.이러한 금오탁시 발복이 생가였다는 점을납득할 수 있게끔 밝혀보겠다. 먼저 금오탁시란 금빛 까마귀가 시신을 쪼는 것이 문자 풀이다. 여기서 시신(屍:무덤이나 집)을 쪼는 것은 까마귀가 알을 부화시킬 때 껍질을 부리로 톡톡 건드려 준다는 풍수발복적 행위인 것이다. 이점탁시(啄屍)의 의미이며, 더불어 금오(金烏)는 제왕과 군왕의 상징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건국신화의 군왕들은 한결같이 하늘의 알에서 유래된다. 김수로왕과고구려 시조 주몽, 신라 시조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모두가 알에서 부화된유래를 잇대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대통령의 휘장이 봉황(鳳凰)이듯 금오탁시로서 알에서 부화한 발복이 대통령에 등극했다는 점이 무척 이채롭다.

금오는 이곳 풍수의 현장인 금오산(金烏山)이란 문패에 걸려 있다. 금빛 까마귀 형국에 있어 발복지점은 알을 쪼는 주둥이 즉 부리에 있다. 이는 전북 전주근교 만성리의 비오탁시형에서도 검증된 정론이다.

사진에서 보듯 금오산을 배경으로 날아오던 까마귀 부리 부분에 바로 故朴正熙대통령의 생가가 있다. 문제의 무덤은 이곳에서 20리나 떨어진 곳에 있기에 허황된 풍수 발복설일 뿐이다. 이럴 경우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풍수발복 현상을상상해볼 수 있다. 이러한 형국의 주둥이에 집만 지으면 무조건 대통령 발복을하느냐고.

그렇지만은 않다. 터를 잡더라도 좌향(坐向:집을 앉히는 방향)이 걸맞아야 발복함이 풍수의 좌향론 조건이 된다.터가 밥상이라면 좌향은 밥그릇과 반찬그릇을 밥상위에 격식에 맞게 차림새가 된다.무덤을 잡고서도 뜬쇠를 놓고 요리저리 틀어보는 행위가 바로 좌향론을 따져보는 것이다.

일례로 이곳 현장의 생가는 금오산의 산줄기가 동쪽으로 뻗어주고 있다. 동쪽은 팔괘오행상 목기(木氣)에 해당된다. 이러한 목기를 장생(長生)발복시켜주는좌향은 북북서쪽에 맞추는 해좌(亥坐)가 된다(풍수이론중 求四勢 擇八龍의터득이있어야한다).

현재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생가는 한치의 어긋남 없이 해좌로 놓여져 있다. 이와같이 풍수의 형국(금오탁시)이 좌향(해좌) 걸맞을 때 마지막으로 산실(産室)이 중요시된다.

삼남의 4대길지(四大吉地) 중의 하나인 경북 안동군 임하면 천전동 의성 김씨종가집. 16세기에 이곳의 특정 산실에서 태어난 여섯명 모두가 대과에 급제하였다 하여 육부자 등과지처(六父子 登科之處)로 널리 알려졌다. 같은 형제라도다른 방에서 태어난 경우 그는 평범한 인생을 보냈다는 점이 화제가 되었다.

이곳 현장의 생가 산실이 육부자 등과지처의 명당 산실과 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 둘 다 뒷방에다 산줄기와 잇대고 있는 바로 그러한 공통점이다. 이 점 밥상의 차림새가 걸맞더라도 이를 먹으려는 사람이 밥그릇 앞에 앉아야 한다는논리와도 같다.

故朴正熙대통령의 선조들이 풍수를 동원하여 모든 것들을 짜맞췄던 것은 절대아니다. 기실 호구지책으로 남의 터에 비집고 들어간 곳이 군왕지지의 삼박자가 완벽히 갖춰진 곳이었을 뿐이다.

風水란 이 땅에 살았던 선조들이 후대의 우리들에게 남겨준 삶의 텃자리 학문이다. 지혜로운 땅의 학문을 꿈풀이 발복과 귀신잡것론으로 혹세무민함은 역사앞에 죄를 짓는 행위이다. 이러한 저해행위가 반風水들의 입놀림으로 오늘날까지 지명 유래에 혼란을 야기시키는 이곳 현장이기도 했다.

구미(龜尾)라는 지명풀이가 그것이다. 지형이 거북이 꼬리를 닮아서 구미라 했다고들 하나 정작 이 지역은 거북이 꼬리는 커녕 쥐꼬리도 안닮고 있다. 그렇다면 구미는 풍수적 지명과는 인연이 없는 단순지명일까.

그건 절대 아니다. 구미는 풍수발복을 원했던 선조들이 풍수 수구(水口)이론으로 작명한 지혜로운 풍수지명이다.

<汕客 장영훈>

 


입력: 1995.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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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하늘이열린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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