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籍 畵像 其他 國寶
國寶 70호 훈민정음
訓民正音
서울 성북동 간송 미술관
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란 뜻이며
조선 왕조 제4대 임금인 세종이 그때까지 사용되던 한자가 우리말과
구조가 다른 중국어의 표기를 위한 문자체계여서 대다수 백성들이
배워 사용할 수 없는 사실을 안타까워하여 세종 25년(1443)에
우리말의 표기에 적합한 문자체계를 완성하고 "훈민정음"이라 명명하였다.
세종 28년(1446)에 정인지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설명한 한문해설서를
전권 33장 1책으로 발간하였는데 책의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하였다.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현존 본은 1940년경 경북 안동 어느 고가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국내에서 유일한 귀중본이다.
國寶 76호 이충무공 난중일기부 서간첩임진장초
李忠武公 亂中日記附 書簡帖壬辰狀草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현충사
충무공(忠武公)(1545∼1598)께서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진중에서
육필로 집필한 일기로 연도별로 7권으로 나뉜다.
國寶 131호 이태조호적원본
李太祖 戶籍原本
이 호적은 고려 공양왕 2년(1390)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의 본향인 영흥에서 작성한 것이다.
國寶 132호 징비록
懲毖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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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서애 유성룡(1542∼1607)이
임진왜란 칠년간의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
國寶 149호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東萊先生校正北史詳節
이 책은 송나라 여조겸의 교편(校編)이며,
조선 태종 3년(1403)에 주조한 동활자인 계미자를 사용하여
태종년간에 간행한 것이다.
계미자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글자주조술과
조판술의 발달사연구에 귀중한 자료인데 사용했던
기간이 짧아 전해지는 본이 희귀하다.
國寶 150호 송조표전총류
宋朝表牋總類
이 책은 태종(재위 1400∼1418)연간에 간행된 것으로,
펴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고 다만
조선 태종 3년(1403)에 주조한 동활자인 계미자를 사용하였다.
國寶 151호 조선왕조 실록
朝鮮王朝 實錄
이 책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역사적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하는
역사서술의 한 방식)로 기록한 책이다.
총 1,893권 888책으로 되어있는 방대한 역사서이다.
실록을 편찬하는 작업은 다음 왕이 즉위한 후 실록청을 열고
관계된 관리를 배치하여 펴냈으며,
사초는 임금이라 해도 함부로 열어볼 수 없도록 비밀을 보장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일부소실되었지만
20세기 초까지 태백산, 정족산, 적상산, 오대산의
사고에 남아서 전해내려 왔다.
정족산, 태백산 사고의 실록은 1910년 일제가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하였다가, 광복 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國寶 32 호 해인사 대장경판
(海印寺大藏經板)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10 해인사
이 대장경판(大藏經板)은 고려(高麗) 고종(高宗) 때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새긴 목판(木板)이다.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 또는 일체경(一切經)을
말하며 불교경전(佛敎經典)의 총서(叢書)를 가리키는 말이다.
8만 4천 법문(法文)을 수록했다 하여
8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고도 한다.
해인사 대장경판은 현존 최고의 대장경판일 뿐 아니라
가장 완벽하고 정확한 대장경판으로
우리 민족이 남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文化遺産)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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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寶 303호 승정원일기
丞政院日記
인조 1년(1623) 3월부터 1910년 8월까지 왕명을 담당하던 기관인
승정원에서 처리한 여러 가지 사건들과 취급하였던
행정사무, 의례적 사항 등을 매일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의 수량은 총 3,243책 393,578장에 이르며,
종이질은 닥나무종이이다
國寶 152호 비변사 등록부의 정부등록
備邊司 謄錄附議 政砒錄
이 책은 조선 중기이후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최고의결기관인 비변사에서 처리한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승정원일기』, 『일성록』등과 함께 실록보다 앞서는
기본적인 역사자료이다
현존하는 것은
광해군 9년(1617)∼고종 29년(1892) 사이의 273책이다
國寶 153호 일 성 록
日省錄
이 책은 조선 영조 36년(1760) 1월부터 1910년 8월까지
조정과 내외의 신하에 관련된 일기이다.
國寶 110호 익재영정
益齋 影幀
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익재 이제현(1287∼1367)의 초상화이다.
이제현은 원나라의 만권당에서 조맹부 등과 교류하며
고려에 신학문과 사상을 소개하고,
성리학을 전파,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호는 익재·역옹으로, 『국사』, 『역옹패설』 등을 남겼다.
國寶 111호 회헌 영정
晦軒 影幀
고려 중기 문신인 회헌 안향(1243∼1306) 선생의 초상화로
가로 29㎝, 세로 37㎝의 반신상이다.
안향은 고려 원종 1년(1260)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하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라고 할 수 있다.
國寶 239호 송시열 상
宋時烈像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의 초상화이다.
송시열 선생은 조선의 대표적 성리학자로 힘있고
논리적인 문장과 서체에 뛰어났고
평생 주자학연구에 몰두하여 율곡 이이의 학통을 잇는
기호학파의 주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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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寶 135호 혜원풍속도
蕙園風俗圖
조선 후기의 화가인 혜원 신윤복(1758∼?)이 그린 <단오풍정>,
<월하정인> 등 연작 풍속화 30여 점이 들어 있는 화첩으로
가로 28㎝, 세로 35㎝이다.
아버지 신한평의 뒤를 이어 한때 도화서의 화원이기도 하였던
신윤복은 참신한 색채가 돋보이는 산수화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지만,
특히 풍속화에서 그만의 독특한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
國寶 139호 군선도병
群仙圖屛
조선 후기 화가인 단원 김홍도(1745∼?)가 그린 도석인물화이다.
도석인물화란 불교나 도교에 관계된 초자연적인 인물상을 표현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원래는 8폭의 연결된 병풍그림이었으나
지금은 8폭이 3개의 족자로 분리되어 있다.
國寶 180호 완당세한도
阮堂歲寒圖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실학자로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금석학을 연구하였으며 뛰어난 예술가로
추사체를 만들었고 문인화의 대가였다.
이 작품은 김정희의 대표작으로 가로 69.2㎝, 세로 23㎝의 크기이다.
이 그림은 그가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그린 것으로 그림의 끝부분에는 자신이 직접 쓴 글이 있다.
國寶 216호 인왕제색도
仁旺 霽色圖
조선 후기 화가인 겸재 정선(1676∼1759)이 비온 뒤의 인왕산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크기는 가로 138.2㎝, 세로 79.2㎝이다.
직접 인왕산을 보고 그렸는데, 비온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상적 순간을 포착하여 그 느낌을 잘 표현하였다. .
조선 영조 27년(1751)에 그려진 이 그림은 이제까지의 산수화가
중국의 것을 모방하여 그린 것에 반하여 직접 경치를 보고 그린
실경산수화일 뿐만 아니라 그 화법에 있어서도 우리나라의 산수를
너무나도 잘 표현하였다. 따라서 그의 400여점의 유작 가운데
가장 크고 그의 화법이 잘 나타난 조선 후기 실경산수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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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寶 217호 금강전도
金剛全圖
조선 후기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강산을 실제로 보고
그리는 실경산수화풍을 연 겸재 정선(1676∼1759)이
영조 10년(1734)에 내금강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國寶 237호 고산 구곡 시화병
高山 九曲 詩畵屛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여러 화가들이 그린 그림과 시(詩)가 있는
12폭짜리 병풍이다.
세로 1.38m, 가로 5.62m로 바탕에 수묵과 엷은 채색을 하였다.
구곡의 명칭은 남송 주희의 무이구곡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 학자들이 그가 거주하던 계곡마다 구곡의 명칭을
붙이는 것은 주자학을 신봉하는 데에 기인한 것이며
이 고산구곡도 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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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寶 248호 조선방역지도
朝鮮方域之圖
조선 전기의 우리나라 지도로 크기는 가로 61㎝, 세로 132㎝이다.
3단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맨 윗부분에는 ‘조선방역지도’라는 제목이 적혀있고
중간 부분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으며 맨 아래부분에는 지도 제작에 관련된
사람들의 관직·성명 등이 기록되어 있다.
지도에는 조선8도의 주현(州縣)과 수영(水營) 및 병영(兵營)이 표시되었는데
이 지도는 명종 13년(1558)경에 제작되었다고 추정되며,
조선 전기 국가에서 제작한 지도로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원본 지도로 이 시기 우리나라 지도의 제작 수준 및 형식을
알 수 있어 더욱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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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寶 46 호 부석사조사당벽화
浮石寺 祖師堂 壁畵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9 부석사
이 벽화는 부석사를 창건하고 우리나라에서 화엄종을 처음 시작한
의상대사를 모시고 있는 부석사조사당(국보 제19호) 안쪽 벽면에
사천왕과 제석천, 범천을 6폭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다.
지금은 벽화가 있는 벽면 전체를 그대로 떼어
유리상자에 담아 무량수전에 보관하고 있다.
각각의 크기는 길이 205㎝, 폭 75㎝ 가량이다.
조사당을 세운 연대가 고려 우왕 3년(1377)임을감안하면
벽화를 그린 연대도 같은 시기일 것으로 보인다
.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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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寶 229호 보루각 자격루
報漏閣 自擊漏
물시계는 물의 증가량 또는 감소량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로서,
삼국시대부터 나라의 표준 시계로 사용하였다.
조선 세종 16년(1434) 장영실에 의해 정해진 시간에
종과 징·북이 저절로 울리도록 한 물시계가 처음 제작되었으나,
오래 사용되지는 못하였고, 중종 31년(1536)에
다시 제작한 자격루의 일부가 현재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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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寶 230호 혼천시계
渾天時計
조선 현종 10년(1669) 천문학 교수였던 송이영이 만든
천문(天文)시계로, 홍문관에 설치하여 시간 측정과
천문학 교습용으로 쓰였던 것이라 한다.
조선시대에 만든 천문시계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유물로,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모델이었던 물레바퀴의 원리를
동력으로 삼은 시계장치와 서양식 기계 시계인
자명종의 원리를 조화시켜 전혀 새로운
천문시계 모델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세계 시계 제작기술의 역사상 독창적인
천문시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