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

[스크랩] 르누아르(1841~1919)의 그림 세계

회기로 2009. 7. 18. 12:10
르누아르(1841~1919)의 그림 세계

 

 

 

도자기의 고장으로 유명한 프랑스 중부 산악지대 리모주에서 출생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는 4살 때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사한 뒤 열 세살 때부터 도자기와 부채에 그림을 그리는 직인으로 사회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소년시절을 험난하게 보낸 르누아르는 1862년 스물 한 살의 나이로 평소 선망하던 화가에의 길을 가기 위해 파리 국립미술학교 교사였던 샤를 글레르의 아틀리에에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글레르 밑에서 배운 2년 반의 기간은 그의 회화양식 확립에 직접적인 성과는 그리 많이 가져다 주지 못했지만, 거기서 모네, 시슬리, 바지유 등 훗날의 인상파 동료들을 알게 되는 인맥 구축에 나름대로의 기여를 했다. 1864년 살롱전에 입선하면서 본격적인 화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인상파 그룹에서 유일하게 인물화에 전념한 르누아르는 바르비종과 퐁텐블루 지역으로 가서 동료들과 풍경화와 정물화 제작을 하면서도 여성의 아름다움과 아이들의 생기발랄함을 묘사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보였었다.

 

1869년부터 부지발과 아르장퇴유에서 모네와 함께 작은 붓터치를 병렬적으로 연결함으로서 자연광 속에 돌출되는 순간적인 반사광을 묘사하는데 골몰했다. 그리하여 1880년까지 약 10년 간 자연광에 노출된 여인 나체상을 즐겨 그렸고, 밝고 빛나는 다채로운 색채로 당대 대중들의 명랑하고 활기찬 일상적 삶을 원숙하게 캔버스에 옮겼다. 그런데 이 당시 대표작들인 '물랑 드 갈레트'나 '그네'에서 볼 수 있듯이  밝은 태양이 비치는 야외 풍경이라는 인상파 특유의 주제를 다룰 때에도 르누아르는 언제나 인물을 배치하고자 했다. 바로 이 점에서 언젠가는 인상파와 결별해야 할 근본적인 사유가 이미 엿보여졌다.    

 

결국 80년대에 들어와서 인상주의적 표현기법에 매너리즘을 느끼고 후반부 생의 독자적인 풍성한 양식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81년과 82년 사이 알제리와 이태리를 여행하며 지중해의 밝은 태양과 르네상스 고전 작품들을 접한 것이 색채와 데쌍을 종합한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에 수많은 습작을 통해 대작 '목욕하는 여인들'이 완성되었다. 

 

80년대 후반부터 회화선이 더욱 부드러워지며 대로를 활보하는 여인들의 환한 얼굴 표정이 강조되는 일상적 삶의 묘사가 두드러졌다. 드디어 1892년 '피아노 치는 소녀'를 프랑스 정부가 구입해줌으로서 르누아르의 명성은 국제적으로 떨치게 되었다. 하지만 1900년대 초부터 악화된 류마티스로 손을 거의 못쓰게 된 르누아르는 남불 지방으로 요양을 가 거기에서 시대를 거슬러 간 고전주의적 기법을 다시 추구했다. 이리하여 죽기 직전인 1919년에 새로 제작된 '목욕하는 여인'에서 풍만한 여인의 누드와 빛나는 자연을 용해시키려는 노화가는 자신의 마지막 예술적 집념을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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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소녀 Girls at the Piano (1892)

 

르누아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그림 앞에 섰을 때 관객들은 곧 평화롭고 따뜻한 분위기로 끌려 들어간다. 귀를 기울이면 가만가만 두드리는 피아노의 음색은 물론이고, 자매인 듯한 소녀들의 숨결까지 들려올 듯 하다. 이렇게 친근감을 주는 것은 르누아르가 클로즈 업 구도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상 구도를 제외하고 한 두 사람의 인물화를 그릴 경우 르누아르는 거의 언제나 모델의 모습을 상반신 또는 기껏해야 무릎 아래에서 잘라버리는데 이는 아주 암시적이다. 이러한 구도는 화가와 모델을 금방 손이 닿을 듯한 가까움으로 인도하는 효과를 만든다.

소녀들의 드러난 팔뚝, 특히 비스듬히 서있는 언니의 두 손이나 피아노를 치는 동생의 오른 손등은 빛의 반사를 받아 그윽하게 빛난다. 아마도 르누아르는 이 부분을 그리며 도자기 흙을 주무르는 장인의 즐거움을 맛보았을 것임이 틀림없다. 언니의 왼팔 수평선은 동생의 오른손 수평선과 호응하고 비스듬하게 평행을 이루는 동생의 두 손은 그것과 역방향으로 비스듬한 소녀들의 시선과 얽혀 대위법적 효과를 드러낸다. 그 밖에도 배경의 커튼, 방에 걸린 사각 그림, 촛대와 펼쳐진 악보, 피아노의 소용돌이 장식 등 곳곳에서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져 르누아르 특유의 풍요로운 회화적 가락을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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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그레누이 La Grenouille(1869)

 

파리 내 크루아시섬에 자리잡은 라 그레누이는 프랑스 제2 제정 시기의 이름난 물놀이터였다. 모네와 밀접한 교유를 나누던 무렵 르누아르는 그와 함께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주제로 이 그림을 그렸다. 모네의 그것이 약간 건조한 인상을 주는데 비해 르누아르의 이 강가 정경은 물기로 꽉 차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포플러 나무들이 물푸레처럼 휘늘어져 있고, 햇살 아래 흐르는 강물도 한결 더 출렁이는 듯 하다. 전경에 부각되는 나무의 잎사귀 하나하나도 모네의 그것이 약간 서늘한 느낌을 주는 청록색인데 비해 여기서는 한 여름의 풍성함을 나타내는 촉촉한 초록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아마도 이 무렵부터 악화되기 시작한 통풍성 루머티즘에 시달리던 르누아르의 신체적 고통이 따뜻하고 푸근한 색감을 저절로 선호하게 한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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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는 여인 Woman Reading(1874-76)

 

책읽는 여인은 가끔 르누아르의 모델이 되어준 마고라는 여인이다. 완벽한 미인형은 아니지만 정감어린 용모를 지닌 이 여인은 르누아르의 아틀리에에서 모델이 되어주다 잠깐 쉬는 막간에 독서삼매경에 빠진 듯 하다. 그날 따라 창가에 기댄 채 지식의 샘을 파는 여인의 어깨 위로 화사한 햇빛이 쏟아졌고, 그 모습에 매혹된 르누아르가 한 스냅의 순간을 영원의 이미지로 승화시키려 한 게 이 작품의 모티브이다. 인상파 시절의 그림답게 물감을 듬뿍 발라 화면 질감을 거칠게 보임으로써 전체 분위기를 안온하고 풍성하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책으로 스며드는 여인의 마음과 몰두하는 얼굴 표정의 생생함을 화사한 역광 효과로 잘 드러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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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랑 드 갈레트 Le Moulin de la Galette(1876)

 

인상파 시대의 또 다른 유명작인 이 그림에서도 르누아르는 풍부한 음악적 가락을 들려주는 듯 한다. 대중 무도장인 '물랑 드 갈레트'에서 부드러운 햇빛을 받으며 즐겁게 춤추는 청춘남녀들의 모습을 교묘한 소용돌이 구도 속에 배치시킴으로서 경쾌한 왈츠의 리듬이 화면 곳곳에 울리게 하는 것이다. 평론가인 리비에르도 지적했듯이 이 그림에서는 당시 파리인들의 일상을 담은 귀중한 풍속화의 기능을 하는 사실적 화풍이 한층 도드라져 보인다. 그럼에도 윤곽선에 의존하지 않고 색상을 통해 형체를 만들어내는 점에서 인상파적 작품임이 분명하다. 한편  인상파의 다른 동료 화가들이 야외풍경을 그릴 때 인물들을 배제하는 통상적인 흐름과는 달리 르누아르는 자신의 인상파적 접근이 가장 깊었던 이 시기에도 인물 중심의 야외풍경 묘사를 고수한다. 바로 이 점에서 르누아르가 언젠가는 주류 인상파와 결별하게 되는 회화관의 차이를 우리는 이미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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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 The Swing(1876)

 

이 그림은 젊은 연인들의 다정다감한 일상의 행복감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면 속에 등을 보이는 남자는 르누아르의 친구이자 화가인 게네트이며, 그네를 타는 여인은 여동생이자 게네트의 연인인 잔이다. 갓 사랑에 빠진 젊은 여인은 연인 앞에서 수줍음에 얼굴이 홍조를 띄고 있고, 나무 옆 아이는 두 사람을 호기심 그득하게 쳐다본다. 나무 그늘 사이의 햇살로 화면 분위기는 밝고 경쾌하며, 여인 옷에 붙은 푸른 리본은  나무 그늘의 어두움을 환하게 해주는 효과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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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속의 누드 Nude in the Sunlight,(1876)

 

이 그림을 처음 발표했을 때 누드 여인의 피부 위에 떨어지는 빛의 반점을 이해하지 못한 어느 비평가는 '시반이 생겨난 시체와 같은 몸뚱이'라는 혹평을 했을 정도로 많은 관객들은 낯설어 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반짝이는 누드를 쓰다듬는 달콤한 빛이 감각적인 피부 표현과 제대로 매치된 인상파의 회화정신을 잘 드러낸 걸작으로 평가되니 이 왠 시대적 반전인가?.. 어쩌면 르누아르 그림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통속성조차도 도매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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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1878)

 

몇 안되는 르누아르의 후원자이던 출판업자 샤르팡티에와 그의 부인 마그리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제작한 작품이다. 여기에서 르누아르는 부유하고 교양있는 당대 부르주아 가정의 단란한 한 때를 정감어리게 포착하고 있다. 벽에 걸린 값비싼 동양 발과 테이블의 장식물을 통해 이 가정의 부유함을 쉽게 알 수 있고, 여유로운 부인의 표정 속에 자녀들을 향한 애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두 아이는 똑같이 푸른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데, 작은 아이가 딸인 조르제, 큰아이가 아들인 폴이다. 폴은 당시 부르주아적 유행에 따라 머리를 길게 기른 채 여자 아이의 옷을 입고 있다. 사내 아이를 여자아이처럼 꾸민다는 게 약간 낯설게도 보이지만, 그림은 한결 더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종래의 가족 초상화처럼 가상의 배경 속에 모델을 두고 특정 부분을 돋보이게 하려는 어떠한 장치도 없이 가구들을 있는 그대로 둔채 자연스럽게 대상을 묘사한 것이 이 그림의 명성을 높여준 특출한 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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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 파티의 식사시간 The 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1881)

 

이 그림은 '물랑 드 가레트'와 함께 당대 파리인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드러낸 기념비적 풍속화 작품이다. 실재하는 장소와 인물들을 모델로 삼아 유채화로 그렸는데 그 자태와 표정들이 자연스러워 마치 현 시대의 일상 스냅을 포착한 듯 하다. 작품 속의 장소는 세느강의 중간 지점인 샤투의 시아르섬에 있는 '푸르네즈 레스토랑'의 테라스이다. 르누아르도 이곳을 자주 드나드는 편인데다 식당주인 알퐁스 푸르네즈와 그의 가족 초상화도 몇 점 그려준 터라 더욱 친숙한 곳이다.

오전에 뱃놀이를 하고, 점심을 하며 한 잔 나눈 술에 취기가 어린 채 왁자지끌 떠드는 분위기이다. 시선을 끄는 화면 앞쪽 가운데 새하얀 빛깔의 식탁 위 유리잔에는 마시다 남긴 붉은 포도주가 조금씩 담겨 있고, 넉넉한 양의 술병과 과일 등에서는 풍족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늘을 만든 붉은 줄무늬 차양막의 나풀거림. 병풍처럼 애워싼 숲의 잔잔한 일렁거림. 그리고 투명한 유리잔에 반사된 빛의 진동이 싱그럽다. 그와 더불어 인물들의 옷빛깔 모자 장신구 등을 빌려 구사한 색상 대조의 화면효과는 맑고 투명한 공기를 눈으로 느끼게 한다. 그래서 온통 생기로 충만하여 빛에 잠겨 있는 풍경이다. 외광(外光)에 대한 인상파 화가다운 관심을 회화로 실현하여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앞쪽 노란 밀짚모자를 쓴 두 남자는 노잡이인데,왼쪽 난간을 잡고 서 있는 남자가 식당주인 알퐁스 푸르네즈의 아들이고, 오른쪽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는 화가 카유보트다. 그리고 앞쪽 식탁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노는 여자는 훗날 르누아르의 아내가 될 젊은 양재사 알린 사리고이다. 그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여자는 드가의 그림 '압생트'에 나오는 모델이자 여배우인 엘렌 앙드레 같다. 이처럼 르누아르는 주변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인생의 평화로움과 즐거움을 회화적인 '빛과 색채의 아름다움'으로 변용시킨다. 그래서 그는 낭만주의적 인상파 화가지만 사실주의 회화에도 한 발 걸치고 있다는 평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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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무도회 Dance in the Country(1883)

 

이 작품은 '도시에서의 춤'과 짝을 이루는 작품이자 '부지발(Bougival)의 무도회'(1883)와 함께 시골 무도회의 건강하고 격식을  따지지 않는 즐거운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춤을 추고 있는 남자는 르누아르의 친구였던 폴이고, 여자는 르누아르의 부인인 사리고인 듯 하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단순한 구성과 명확한 형태감은 르누아르가 이탈리아 여행 후 선과 데쌍의 중요성을 재발견했음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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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의 춤 Dance in the City(1883)

 

이 그림은 한 짝인 '시골 무도회'에 비해 인물들을 다소 멀리에서 잡고 있다. 또 '시골 무도회'의 자유로운 분위기와는 달리 두 남녀 모두 턱시도와 드레스, 흰 장갑에 이르기까지 격식을 갖춰 차려입고 있다. 다시 말해 도시생활의 다소 인위적 측면인 격식과 체면 갖춤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기법상으로는 꼼꼼한 데쌍에 기초한 형태와 색채의 단순화가 예전 작품들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르누아르는 이태리 여행 후 라파엘을 비롯한 고전주의 거장들을 재발견하고 데쌍에 대해 새로 자각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선과 데쌍, 형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1887년 작인 '목욕하는 여인들'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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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 위의 두 자매(1881)

 

이 그림 역시 가장 많이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이다. 두 사람은 모녀관계라고도 하지만 자매라는 데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여기에서도 인물의 특징을 뚜렷하게 하기 위해 색상 대조법을 구사하고 있다. 테라스는 푸르네즈 레스토랑의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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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하는 여인들 Bathers (Les baigneu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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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하는 여인들 Bathers(1887)

 

해가 갈수록 르누아르의 여인 누드는 풍만함을 더해갔다. 본능을 뿜어내는 여체들을 통해 건강한 관능미가 대자연 속에 거침없이 어우르지는 분위기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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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lining Nude (1907)

출처 : 사오정의 쉼터
글쓴이 : 사오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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