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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
영덕군 영해읍 괴시1리(호지마을) 뒷산 중턱에 지난해 6월 준공한 목은이색기념관이 있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목은이색기념관 구역이 시작된다. 기념관 구역 입구를 지나 200여m 올라가면 기념관에 도달한다. 산비탈에 자리한 3천400여평의 부지 잔디밭에 목은이색기념관 건물과 팔각정, 연못, 목은 생가터 등이 있다. 목은 이색이 지은 '관어대소부'를 새긴 기념비석도 세워져 있다. 목은 생가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집터는 표시만 해두고, 건물 복원은 하지 않은 상태다. 이곳에서 목은이색산책로(등산로)가 시작된다. 목은이라는 걸출한 인물 덕분에 최근에 새롭게 단장돼 개통, 주변의 마을 사람들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애용하고 있는 길이다. # 목은이 태어나 유년을 보낸 곳 괴시1리는 성리학의 대가로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고려말 3은(三隱) 중 한 사람인 목은(牧隱) 이색(1328~96)이 태어난 곳이자 외가가 있는 곳이다. 부친인 가정(稼亭) 이곡이 영해의 수안김씨 김택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괴시에 정착, 1328년 목은을 낳았다. 이곳에는 목은의 후손 이경재가 경상감사로 영해부를 순찰할 때 목은을 추모해 세운 목은유허비도 남아 있다. 목은이색산책로는 목은이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이 괴시1리 주변 일대 등산로를 정비, 목은과 관련된 곳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06년말에 개통한 길이다. 괴시 전통마을과 목은이색기념관을 벨트화한 산책코스로 개발, 산책로 이름을 '목은이색산책로'로 정했다. 산 아래에서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는 대소산(봉화산) 정상(해발 278m)에 이르기까지의 등산로를 예주로, 망일로, 매일로, 영산로, 봉수로, 이색로 등으로 명명해 개통한 산책로는 총 9.1㎞에 이른다. 이 중 이색로는 기념관에서 봉수대로 가는 길로, 5㎞가 넘는 소나무숲길이다. 산책로는 옛날부터 주민들이 이용했던 산 속 오솔길이었다. 버스가 다니지 않던 시절 축산면과 영해면 사진리·대진3리 주민들이 영해 5일장을 보기 위해 생선과 건어물을 지게에 지고 머리에 이고 넘어다니던 산길이다. 대부분 소나무숲길이다. 목은 탄생지인 괴시1리는 동해로 흘러드는 마을 앞 송천(松川) 주위에 늪이 많고 마을 북쪽에 호지(濠池)가 있어 호지촌으로 불렸다. 그러나 목은이 중국 원나라에 들어가 사귄 원나라 한림원 학사 구양현(歐陽玄)이 살던 괴시(槐市)라는 마을이 자신의 고향인 호지마을과 흡사하다 하여 괴시라 이름지은 이후 괴시마을로 불렸다 한다. 목은과 구양현간에 있었던 일화가 전한다. 구양현이 목은을 변방사람이라 하여 경솔히 여기고 '짐승의 발자취와 새의 발자취가 어찌 중국에 와서 왕래하느냐(獸蹄鳥迹之道 交於中國)'라는 글을 지어 조롱했다. 목은이 즉석에서 '개 짓고 닭 우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다(犬吠鷄鳴之聲 達于四境)'고 답해 놀라게 했다. 자신을 짐승이나 새로 비유한 것에 대해 "당신네 중국 역시 개나 닭이지 뭐냐"라고 대응한 것이다. 구양현이 다시 '잔을 가지고 바다에 들어가니 바다가 큰 줄 알겠더라'고 하자, 목은이 '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고 하늘을 작다 하는구나'라고 답했다.이에 구양현은 크게 경탄하며 공자의 도덕이 고려에 있다고 칭찬했다 한다. # 목은이 자랑했던 관어대 경관 괴시1리 앞 도로는 괴시2리를 거쳐 대진2리 대진항으로 연결된다. 해안에 있는 괴시2리 뒷산이 상대산이고 이곳에 관어대(觀魚臺)가 있다. '물고기를 바라보는 전망대'라는 뜻의 이 관어대가 목은 유적지로 유명한 곳이다. 동해안 명승절경의 하나로 상대산 정상 서편 절벽 위를 이르는 이 관어대에 목은이 올라 유명한 글 '관어대소부(觀魚臺小賦)'를 남겼다. 괴시2리가 관어대 마을로도 불리는 연유이다. '관어대는 영해부에 있다. 동해를 내려다보고 있어 암벽 아래 노니는 물고기들을 셀 수가 있다 하여 관어대라 이름지은 것이다. 영해부는 나의 외가가 있는 곳이므로 소부를 지어서 중원(中原)에 전해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목은은 600여년 전에 지은 관어대소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신의 외가에서 어릴 적 본 관어대 경관을 그린 작품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한문학의 본고장에서 평가받고 싶다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본문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영해의 동쪽 언덕, 일본의 서쪽 물가엔 큰 파도만 아득할 뿐 그 나머지는 알 수가 없네. 물결이 움직이면 산이 무너지는 듯하고, 물결이 잠잠하면 닦아놓은 거울 같도다. 바람 귀신이 풀무로 삼는 곳이요, 바다 귀신이 집으로 삼은 곳이다. 고래들이 떼지어 놀면 기세가 창공을 뒤흔들고, 사나운 새 외로이 날면 그림자 저녁놀에 잇닿네.…오직 관어대 밑에는 파도가 일지 않아서 고기들을 내려다보면 서로 같고 다른 놈 있어, 느릿한 놈 활발한 놈이 제각기 만족해 하누나.…아! 우리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니 내 형체를 잊고 그 즐거움을 즐기며, 즐거움을 즐기다 죽어서 내 편안하리. 물아(物我)가 한 마음이요 고금(古今)이 한 이치인데 그 누가 구복 채우기에 급급하며 군자의 버림받기를 달게 여기랴.…오직 고기가 뛴다는 짧은 글귀는 바로 중용의 가장 큰 뜻이니 종신토록 그 뜻을 깊이 탐구하면 다행히 자사자(子思子)를 본받을 수 있으리.'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로 영남학파의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1431~1491) 역시 관어대에 가서 '관어대부'를 지었다. 자기도 그 경치를 보며 천지만물의 이치를 깨닫는다 하고, '목은옹에게 술잔을 올리면서 웅대한 사설을 외니 맛 좋은 음식으로 실컷 배를 불리는 것 같다'고 했다. 목은은 외가가 있는 영해를 잊지 못한다고 여러 시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어릴 때 가깝게 지낸 외사촌 형이 영해에서 와 만난 것이 기뻐 지었다는 시에서 "고향마을에서 어려서부터 함께 놀다가 전란을 만나 떠돌아다니면서 흰 머리 휘날리네(鄕里優遊自少年 干戈漂迫在華顚)"라고 노래했다. 고향이라고 표현한 영해는 목은의 정신적 성장에도 큰 영향을 끼쳤음을 관어대소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빼어난 산천이 높은 깨달음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본보기 작품이라 하겠다. 이색의 사상은 정도전, 권근 등에게 영향을 끼쳐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는 원천이 되었다. 영덕군은 괴시2리에 있는 동부초등에서 관어대까지도 등산로를 개설, 목은이색산책로를 확대할 계획이다. |
출처 : 상대회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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