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국임을 고증한 박병선 박사
《직지》는 충청북도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고려 우왕 3) 금속활자로 찍은 책으로 《직지》의 정식 책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로 백운 스님이 부처님과 부처의 제자인 인도와 중국 및 한국의 역대 고승高僧이 남긴 말씀 중 선禪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내용을 요약한 책이다.
이 책은 백운화상에 의해 저술되었고, 그의 제자인 석찬과 달잠 그리고 재정적지원자인 비구니 묘덕 등에 의해 두 가지 형태로 책이 만들어졌다. 하나는 앞서 설명한 금속활자로 찍은 책이고, 또 하나는 1378년 백운화상이 입적(入寂 : 사망)한 경기도 여주 취암사에서 목판으로 찍은 책이다. 1378년에 인쇄된 목판본 《직지》는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장서각)에 상·하권이 보존되어 있으며, 1997년 전라남도 영광 불갑사에서 출토되어 총 3종의 목판본이 국내에 현존한다. 이에 반해 금속활자본 《직지》는 하권 1책 만이 프랑스파리국립도서관(동양원서부)에 보존되고 있다.
금속활자본 《직지》는 19세기 말에 초대 주한 프랑스공사로 부임한 꼴랭드 쁠랑시가 수집하여 프랑스로 반출하였다. 그 후 《직지》는 1911년 드루오경매장에서 꼴랭드 쁠랑시 소장 컬렉션 경매 때 앙리 베베르가 구입하여 보존하고 있다가, 1953년 앙리 베베르의 유언에 따라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기증된 것이다. 금속활자본 《직지》에 대한 기록은 꼴랭드 쁠랑시와 조선에서 함께 근무한 모리스 꾸랑이 1901년 지은 《조선서지》에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불어판으로 출간되었지만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한국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 사용했다는 사실을 서구의 학자들은 인정을 하지 않았다. 백인우월주의와 서양의 문물이 동양을 앞지른다는 고정 관념에서 나온 결과였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한국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 사용했음을 고증하여 유럽내 동양학 학자들의 모임인 동양학 학회에서 이 사실을 발표하여 인정받은 분이 박병선 박사이다. 그 후에야 많은 한국의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었다.
6.25후 초기의 프랑스 유학생
박병선박사는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와 큰 오빠는 일제 강점시기 서울에서 사업을 하면서 비밀리에 중국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조달하신 분이다. 그녀는 1950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사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도불을 원했던 그녀는 6.25를 겪었고 프랑스 유학을 결심한 후 마침내 고국을 떠나게 된다.
프랑스 유학을 위해 모교 은사님들에게 인사를 다니던 그녀에게, 이병도 선생은 다음과 같은 당부를 한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이 강화에서 약탈해간 물품의 행방을 찾게” 은사의 이 한마디는 프랑스 유학의 숙명으로 받아들였고, 약탈해간 물품의 소재를 찾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해방 이후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 된 그녀는 프랑스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소르본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면서 프랑스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서 한국에 대하여 알리고자 노력하였다. 프랑스에 유학중인 그녀는 학문에 남다른 열정을 기울였고, 많은 정보를 섭렵하고자 파리국립도서관을 자주 출입하면서 도서관내 많은 서적을 접하였다. 그녀의 잦은 도서관 출입은 도서관 직원들 사이에 회자되었고, 특별연구원으로 채용되는 결과를 낳았다.
파리국립도서관과의 인연과 애증
UNESCO는 1972년을 “세계 도서의 해”로 선포했다. 이에 UNESCO가 소재한 프랑스 파리의 각 급 기관에서는 “세계 도서의 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기획한다.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도 도서관 소재 세계 각 국의 책을 전시하고자 “BOOKS”라는 전시회를 기획하였다. 프랑스국립도서관에는 동·서양을 망라한 많은 책들이 소장되어 있고, 각 언어권 별로 책의 선별과 해제를 담당할 책임자가 정해졌다. 그러나 한자문화권인 동양을 담당할 실무자가 당시 파리국립도서관에는 없었기에 박병선 박사를 영입하여 한국 책의 선별과 해제를 맡겼다.
박병선 박사는 《직지》를 1967년경에 처음 접했다. 이 책은 한국 서적 코너 한 귀퉁이에 있었다고 한다. 《직지》의 마지막 장에 쓰여진 간행기록을 본 박병선 박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되었다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꼴랭드 쁠랑시와 모리스 꾸랑도 만약 간행기록이 사실이라면 독일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70여년 앞서 한국이 금속활자를 먼저 사용했음을 의심을 가지고 다루었다. 그러므로 박병선 박사는 이에 한국 금속활자임을 고증하기 위해 인쇄술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한국 금속활자 인쇄술에 대한 연구는 처음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우선 프랑스에 중국과 일본에 대한 인쇄술 관련 책자는 있지만, 한국 인쇄술과 관련된 책자는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에 박병선 박사는 한국에 있는 친구나 친지들에게 한국 인쇄술과 관련된 책을 요청하였지만, 돌아온 것은 관련 자료가 없다는 회신뿐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인쇄술을 연구하는 학문인 ‘서지학’이 막 태동하는 시기였기에 박병선 박사가 만족할 만한 자료를 제공할 수 없었다. 이에 박병선 박사는 프랑스내 간행되어 있는 중국과 일본 인쇄술 관련 자료를 섭렵하고 프랑스내 대장간을 돌며 금속활자 인쇄술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다. 또한 감자와 지우개 등 각종 재료를 사용하여 금속활자와 목판 인쇄술의 차이점을 증명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와중에 3번의 화재를 겪었다. 납활자를 만들기 위해 가스렌지에 납을 녹이면서 다른 연구를 하던 중 화재가 난 것이다.
박병선 박사는 이런 갖은 난관을 극복하며 마침내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되었음을 증명하였다. 이 연구 성과는 1972년 프랑스국립도서관 주최로 개최된 “BOOKS” 전시회와 1972년 개최된 유럽내 ‘동양학 학자대회’에서 발표되어 인정받았다.
조국을 위한 그녀의 또 다른 행보
박병선 박사에 의해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임이 고증되어 한국이 독일보다 70여년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사용했음을 서구에서 인정하자 국내에서는 이 사실을 대서특필하였다. 박병선 박사의 《직지》에 대한 연구는 그 후 국내 서지학 학자들에 의해 계승되어 많은 연구 성과를 낳았고, 궁극적으로 2001년 9월 4일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직지의 고장 청주시에서는 박병선 박사의 노고를 기리기 위해 1999년 4월 청주시명예시민증을 수여하였고,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99년 9월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박병선 박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청주고인쇄박물관내 ‘박병선실’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1972년 《직지》 고증 이후, 박병선 박사는 본격적으로 《외규장각 도서》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박병선 박사가 《외규장각 도서》의 행방을 찾은 것은 1978년이었다.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전에 같이 근무했던 직원과 식사를 하던 중 우연찮게 《외규장각 도서》가 거명되었고, 이 직원의 제보로 프랑스국립도서관 별관 수장고에서 이 책을 찾았다. 《외규장각 도서》의 소재를 찾고자 결심한 지 20여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외규장각 도서》는 베르사이유에 있는 파리 국립도서관 별관에(파손된 서적을 보관하는 건물) 방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직지》를 찾아 고증한 이후 열광했던 프랑스국립도서관은 《외규장각 도서》를 찾은 그녀에게 권고사직이라는 선물을 안겨 주었다. 이렇게 프랑스국립도서관을 떠난 박병선 박사는 현재까지 프랑스에 한국을 알리거나 유럽지역에 보관되어 있는 한국 관련 자료를 수집 연구하고 있으며, 프랑스에 있는 숨어있는 한국 독립운동 자료를 찾아 고증하고 있다.
박병선 박사는 매년 청주시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가 오십 여 년이란 긴 세월을 때때로 수돗물로 허기를 면하고 명예도 사생활도 희생해가며 문화재를 찾는데 헌신 하고 있는 나약한 여성이라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한국인들은 많지 않다. 박병선 박사는 파리에 유학하고 있는 한국학생들에게 “조국이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네가 조국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아서 하라.”는 말씀을 항상 하신다. 이 말은 프랑스 유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어야 하지 않을까?
▶ 글·사진 | 라경준 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실장
▶ 사진·눌와, 경향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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