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진 서울풍경
서울 성벽에서 남대문을 바라본 풍경
왼쪽 사진은 1904년 조지 로스가 촬영한 사진으로 남산 초입의 성벽에서 남대문을 바라본 풍경이다. 사진의 하단을 보면 어떤 사람이 성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남대문까지 걸어가기가 귀찮아서 성벽을 넘고 있다. 중앙에서 윗 부분을 보면 서양식 건물이 보이는데, 이 건물은 미국 선교사인 호레이스 G.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가 지어 1904년 완공한 건물이라 한다. 이 때의 대부분의 집은 초가로 ㄷ자나 ㄴ자 모양이다.
2004년 11월 28일, 촬영한 사진을 보면 서울 도심의 빌딩이 막혀 인왕산, 북한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보수한 성벽, 옛 성벽이 있던 자리는 콘크리트 옹벽으로 변했고, 로또 광고탑, 주차타워 이 시대의 주요 운송수단인 자동차가 보인다. 사진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11살, 15살 아이들이다. 다만 성벽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만이 옛 흔적을 말해준다.
2. 남대문 풍경
오스트레일리아의 사진가 조지 로스는 근대화의 여명기인 1904년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조지 로스의 남대문 사진을 보면 2층 한옥 건물이 보이고 앞쪽으로 상점주인이 사는 기와집이 보인다. 아래쪽 그늘진 곳에는 행인들에게 물건을 파는 상점이 있다. 당시에는 남대문을 통해 전차가 다녔다.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백립을 쓰고 있는데, 이는 순종비의 국상기간이라 그렇다.
2004년 11월 28일, 이곳의 기와집들은 모두 헐리고, 남산방향으로 이어진 성곽 대신 백범광장과 남산으로 오르는 넓은 도로가 들어섰다. 100년 전 사람들의 의상이 단순한데 비해 지금은 겨울의 초입임에도 짧은 미니스커트와 세련된 의상이 눈길을 끈다. 일상화된 핸드폰, 밤에 도 남대문을 밝혀주는 조명장치, 관광버스, 시내버스, 승용차의 모습, 하늘을 가리는 고층빌딩이 21세기 거대도시 서울을 말해주고 있다.
3. 동대문 풍경
1904년의 사진은 성벽 위에서 찍은 것인데, 뒤쪽 동대문운동장 방향으로 성벽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보인다. 종로를 지나온 전차 선로가 동대문을 지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뒤쪽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는 전차에 사용하는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에서 나오는 것이라 고 한다. 동대문 오른쪽 뒤편으로 서양식 건물이 보이는데, 이는 전차 회사의 부속 건물과 전차 운영을 위한 사무소로 보인다고 로스는 전하고 있다.
2004년 11월 28일, 동대문(흥인지문)은 보수공사중이였다. 아이들이 서 있는 곳은 가정집이라 성벽에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깔끔하게 보수된 성벽은 낙산으로 이어지고, 북한산으로 이어진다. 1904년의 주요 운송수단이 지게, 말, 전차 등인데 비해 지금은 거미줄처럼 엮여있는 지하철, 버스, 승용차, 화물차로 대체되었다. 앞으로 100년 후에는 어떤 운송수단이 주를 이룰까 궁금하다.
4. 서울 탑골공원 풍경
1904년에 촬영한 조지 로스의 사진을 보면 원각사탑 뒤로 남산과 1898년에 세워진 명동성당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의 오른쪽을 보면 탑의 상층부 3층이 바닥에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1946년 2월 17일과 18일 양일간에 걸쳐 당시 한국에 진주해 와 있던 미군(美軍) 공병대에 의하여 기중기로 위로 올려져 원래의 형태를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2004년 11월 28일, 원각사탑은 박제동물처럼 유리관에 싸여있다. 거대 도시의 대기오염이 가져온 산성비, 비둘기의 배설물로 손상이 심해 1999년 통유리관으로 둘러씌웠다. 서울 도심의 빌딩숲에 가려 명동성당은 커녕, 남산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어 갑갑하다. 2004년 사진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15세의 아이들이다.
5. 서울 탑골공원 대원각사비
이 대원각사비는 세조 재위(1471년)시에 원각사 창건 내력을 적은 비석이다. 원각사는 불교배척 정책을 폈던 연산군에 의해 원각사는 1504년에 폐사되었다. 비문의 앞면은 김수온(金守溫)·성임(成責), 뒷면의 추기는 서거정(徐居正)·정난종(鄭蘭宗)이 각각 짓고 썼다고 한다. 비신을 받치고 있는 귀부(거북)는 땅(음)을 상징하고, 비신의 머리 즉 이수(용)는 하늘을 상징한다고 한다.
2004년 11월 28일, 대원각사비는 전각안에 모셔져 있고, 귀부는 땅에서 60cm 정도 아래에 있다. 이는 탑골공원을 정비하면서 지면을 돋우었음을 말해준다. 탑골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은 그대로이나 그 뒤 기와집은 사라지고 콘크리트 건물로 대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원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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