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기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그려지고 있는 미술의 樣式(양식)을 구분 지어 본다면 技法(기법)이나 形態(형태), 材料(재료)와 素材(소재)에 따른 여러 방법이 있겠으나, 크게 東洋的(동양적) 繪畵(회화)와 西洋的(서양적) 회화로 나누어 볼 때 文人畵(문인화)는 동양회화의 한 부분으로 우리에게는 韓國畵(한국화)라 불리는 장르 속에 한 분야라 말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문인화의 정신성을 엄밀히 따져 오늘날 한국화 분야의 작업과 연관 지어볼 때 그 乖離(괴리)가 너무 커져 있음을 느낄 수 있으며, 교육제도 및 여러 구조적 사실 때문에 한국화와 같이 분류되기에는 복잡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昨今(작금)의 현실은 西歐的(서구적) 思考(사고)가 팽배한 가운데 미술에까지 장르의 구분은 無意味(무의미)하다고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으며, 한국화의 西歐化(서구화)가 급속 되고 있는 이때에 문인화는 어떻게 定義(정의)될 수 있으며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 문인화의 개념과 현대적 의미 東洋繪畵(동양회화), 즉 한국화를 기법적으로 분류를 하면 南宗畵(남종화)와 北宗畵 (북종화)로 나눌 수 있으며, 이 두 畵派(화파)의 구분의 유래는 中國(중국)의 禪宗(선종)에서 기인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불교에서 선을 제창한 달마조사의 5대째 後繼者(후계자)인 弘仁(홍인)의 두 제자 중 하나인 慧能(혜능)이 남방에서 頓悟(돈오; 깨달음은 순간에 얻을 수 있다)를 主唱(주창)하는 南宗禪(남종선)을, 神秀(신수)는 북방에서 漸悟(점오; 깨우침이란 오랜 수행과정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오는 것이다)를 주창하는 北宗禪(북종선)을 布敎(포교)하였던 것인데 그 의미를 남종화와 북종화의 정신성에 비유하여 구분한 것이다. 남종화는 寫意的(사의적) 表現(표현) 즉 사물을 그리는데 있어 事實的(사실적) 표현이 아닌, 사물의 뜻(意)을 작가의 心想에 담아 간략히 그리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북종화는 形似的(형사적) 표현 즉 사물의 實體(실체)를 그대로 그리는 사실화로서 彩色畵(채색화)가 주류를 이룬 것이다. 문인화는 남종화에 속하며 사물을 常形(상형) 하는 것이 아니고, 常理(상리) 해야 하는 것으로 一筆揮之(일필휘지)하듯 一回性(일회성)의 표현방법으로 그리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문인화는 주로 많은 士大夫(사대부) 등 선비들이 취미로 각자의 主觀(주관)대로 觀念(관념)의 세계를 양식에 구애됨 없이 그렸던 것이다. 그들이 그림 그리는 목적을 여러 사람에게 보이고 評價(평가)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內面(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한, 精神修養(정신수양)을 위한 것에 두었기 때문에 문인화에서는 사실성보다는 그린 사람의 心性(심성)이 더 중요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북종화와 같이 판에 박힌 그림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듯한 그림은 예전엔 그다지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그 결과로 明代(명대)에 이르러서는 董其昌(동기창, 1555∼1636)의 尙南貶北(상남폄북) 이론이 출현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때의 支配勢力(지배세력)과 知識階層(지식계층)들의 偏狹(편협)된 사고에 基調(기조)한 이론이란 지적도 있다. 이때 동기창을 선두로 莫是龍(막시룡)등은 그들이 展開(전개)한 南北分宗論(남북분종론)에서 唐代(당대)의 王維(왕유, 699~759)를 남종화의 始祖(시조)로, 李思訓(이사훈, 651~716)을 북종화의 시조로 삼아 남, 북종화로 나눈 것이다. 문인화는 唐代(당대)에 吳道子(오도자, 670? ~760?), 왕유에 이르러 水墨畵(수묵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어 山水畵(산수화) 위주로 그려지고, 宋代(송대)에 문인화의 意識(의식)과 회화양식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오도현은 742년에는 현종의 명을 받아 촉(蜀)의 자링강[嘉陵江] 300여 리의 경치를 대동전(大同殿)에다 하루 사이에 그려 “이사훈(李思訓) 수월의 공, 오도자 하루의 필적”이라고 일컬어진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는 또 나무 ·들 ·땅거죽 등의 주름을 그리는 동양화 입체표현의 한 방법인 준법(皴法)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이를 西洋美術史(서양미술사)와 비교하면, 즉 남종화의 常理(상리)와 같이 사실적 표현에서 탈피한 미술사조인 印象派(인상파), 野獸派(야수파), 立體派(입체파) 등 서양미술의 출현은 천여 년 이상의 시간의 격차를 두고 있는 것으로 동양미술의 우월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문인화는 十君子(십군자)를 비롯하여, 여러 花草(화초)와 動物(동물) 그리고 山水(산수) 등 다양하게 그려졌으나, 선비들은 四君子(사군자)를 주로 그렸었다. 사군자는 春秋戰國(춘추전국) 시대에 학문과 덕망이 높았던 孟嘗君(맹상군), 平原君 (평원군), 春申君(춘신군), 信陵君(신능군) 등 네 분의 그 뜻을 기리는데 緣由(연유) 되어 梅(매)·蘭(난)·菊(국)·竹(죽)의 生態(생태), 즉 梅花(매화)의 雪寒(설한) 속에서 孤高(고고) 하게 피는 淸淨無垢(청정무구)한 품격을 高士(고사)나 君子(군자)로 비유하고, 蘭草(난초)는 深山幽谷(심산유곡)에서 피어 은은한 향기를 자랑하지 않아 幽美人(유미인), 王者之香(왕자 지향)이라 불리기도 한다. 菊花(국화)는 늦가을 첫 추위와 서리를 무릅쓰고 피어나는 그 姿態(자태)를 傲霜孤節(오상고절)로 표현하고 대나무는 곧고 빈속의 줄기와 四時(사시) 푸르른 잎을 虛心(허심)과 節槪(절개)의 의미를 附與(부여)하여 節槪樹(절개수)라 稱(칭)하기도 한다. 이러한 식물의 특성 때문에 문인화의 기본적 畵題(화제)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각기 獨立的(독립적)으로 그려져 왔으며 繪畵上(회화상) 名稱(명칭)으로 사군자로 쓰여진 것은 명대의 화가인 陳繼儒(진계유)가 지은 梅蘭菊竹(매난국죽) 四譜(사보)에서 처음 나타난다. 사군자에 蓮, 牧丹, 木蓮, 葡萄, 芭蕉, 소나무를 더하여 十君子라 칭한다. 書畵同源(서화동원)이란 말이 있는데, 특히 사군자와 같은 문인화를 그릴 때 난을 그린다, 죽을 그린다 하지 않고 난을 친다, 죽을 친다고 하는 것에서 엿볼 수 있듯 書法(서법)과 畵法(화법)은 相通(상통)한다는 것으로 그 뿌리가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形似(형사)에 치우치지 않는 文字香(문자향), 書卷氣(서권기)를 重視하는 것이며, 또한 좋은 詩(시)를 빌리거나 지어서 題跋(제발)로 씀으로써 글씨(書)를 잘 쓰면 그림이 더욱 돋보이는 것으로, 그리하여 시·서·화 모두를 잘하면 시·서·화 三絶(삼절)이라 칭하였던 것이다. 문인화는 淡白美(담백미), 節制美(절제미), 古拙美(고졸미), 餘白美(여백미)를 중시한다. 동양회화와 서양회화의 구분은 동양화는 線(선)의 예술이며, 비움의 미술이라 할 수 있으며, 이에 반해 서양화는 面(면)의 예술이며, 채움의 미술이라 할 수 있다. 이 또한 동·서양의 哲學(철학)과 思想(사상) 등 그 정신에 基因(기인)한 것이다. 문인화는 오랜 세월을 이어져 오면서 의미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니 그 하나의 예는, 명칭의 문제로서 현대에서의 文人(문인)이라 함은 詩人(시인)이나 小說家(소설가) 등 文學(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指稱(지칭)하는 것인데 현대는 문인이 아니면서도 문인화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살펴보면 古來(고래) 되어온 名稱(명칭)의 眞意(진의)를 모르는 사람들은 오해할 수 있으나 옛 뜻의 문인이라 함은 선비 등 학문 하는 사람을 通稱(통칭)했던 것으로 오늘날에 와서는 學識(학식)과 德望(덕망)을 고루 갖추고 여러 專門(전문) 分野(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으므로 문인화는 시인이나 소설가만이 그리는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그 옛 선비들이 그렸던 것이므로 전문 畵員(화원)이 아닌 아마추어들만이 그린 것으로 보는 편견이 있으나, 이 또한 역사적 문인화가들의 面面(면면)을 살펴보면 誤解(오해) 임을 알 수 있으므로 餘技로만 보는 일부 시각은 수정되어야 하며, 현대에서 專門 畵家들에 의해 그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3. 맺는 말 이제 세계는 理念(이념)의 전쟁은 終熄(종식)되고 바야흐로 文化(문화)의 전쟁시대라 일컫는데, 이는 民族(민족)마다 나라마다 문화 예술의 差別性(차별성)이 각별히 요구되는 때가 到來(도래)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悠久(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조상의 슬기와 숨결이 살아 있는 우리의 문화 예술의 향연은 먼 얘기가 되었거나, 文化財(문화재)가 되어 박물관에 한자리나 차지하고 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 세계화니 지구촌이니 하는 이런 때 일수록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으니, 이는 國際(국제) 競爭力(경쟁력)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세계의 미술 시장에 나아감에 있어 차별성에서 가장 韓國的(한국적)인 것은 곧 문인화라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니, 이는 우리의 미술교육 상황이 너무 서구화 되어있고 그 작품들이 소재, 재료 등 여러 부분에서 서양화와 구분키 어려운 것 들이 많은 오늘의 현실 때문이다. 先祖(선조)들의 얼과 숨결이 담겨있고 서양미술 思潮(사조)보다 훨씬 앞서 있었던 우리 미술의 樣式(양식)을 古典的(고전적)이니 保守的(보수적)이니 하여 외면하고 西歐化(서구화) 만 지향하는 현실에는 지금까지 이뤄진 교육제도와 정치의 구조적 모순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할 것이나, 또 하나 책임의 일단은 세월의 흐름을 뒤쫓지 못하고 踏步(답보) 狀況(상황)에 처해 있는 문인화 작품의 표현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자성을 하며 문인화가들이 많은 고민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사회 일각에서 回歸的(회귀적), 復古的(복고적)인 분위기가 일고 있으나, 교육 과정 및 제도의 벽에 부딪혀서 성과가 미미한 경우가 허다하므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지 않는다면 영원히 우리만의 독창적인 것은 갖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초래할 것이다. 문인화를 빛나는 우리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를 굳히기 위해서는 藝術 本然의 모습인 늘 변화하는 모습과 시대의 흐름을 認識(인식)하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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