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 대 한국화
*한국화 - 우리나라 사람이 독특한 화법으로 그린 동양화를 중국, 일본의 그것과 구별하여 이르는말
*동양화 - 동양재래의 그림. 주로 먹이나 안료를 쓰며, 산수화 등을 흔히 제재로 함 (반:서양화)
"어떤 시대 어떤 민족의 미술이든지 우수한 기술로써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만든 미술은 한결같이 아름다운 것이니,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은 이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다만 국경이 없는 미술이라 할지라도,
그 민족의 미술이 아름답다는 것은 그 민족다운 특이한 민족성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것이다.
한국미술이 아름답다는 것도 한국 미술이 중국이나 일본의 미술과 흡사하다면
벌써 한국미술로서의 가치를 잃어 버리는 모방의 미술이 되고 마는 것이다."
출처 : 조선미술대요..을유문화사..1949.. 한국근대미술의 한국성...재인용
일본이 조선을 강제지배하에두고 그 문화마져 자신들의 것을 따라가도록 하기위하여,
외국과의 문화 교류를 차단한채로 모방과 답습위주의 주입식 미술교육을 실시했으며,
또 다른 방편으로 기존의 화단세력을 쇠퇴시키기위해 조선의 민간화단(서화협회)을 총독부지휘하의
미술단체(조선미술전람회)로 흡수시키고자 회유하고, 강제 탄압하였다.
이는 일본이 한 나라의 고유한 미의식과 정신성을 무시하고, 그로인해 한나라를 문화적으로
붕괘시키고자했던 문화적 만행이었다.
요즘 흔히 말하는 "가장 한국적인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처럼, 경쟁력의 뿌리라고 할수있는 성질,
본질적인것의 중요성과 가치를 이 말에서 찾아볼수있다.
가장 한국적인것.. 곧 그 나라의 특징인것.. 미술에서도 우리만의 특징은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대표하는 이름을 조선화 또는 (대한제국을 줄여)한화 등으로 하지 않고, 동양화 라고 부른것은
의도적으로 한국성을 인정하지않음. 곧 없애겠다는 의지였다고 보여진다.
"연년히 총독부 미술전람회에서 가장 그것을 느끼게 한다.
'조선적' '향토적' '반도적'이라는 수수께끼를 가지고서 미술의 본질을 말살하는 모혐을 되풀이 하고 있는 연고이다.
이것의 예로서 동 전람회에 출진한 수 많은 공예품에서 제저(題著)히 보이는 것이니
이것은 지나가는 외방인사의 촉각에 부딪치는 '신기' '괴기'에 그칠 따름이고
결코 '조선적'이나 '반도적' 인 것은 아닐 것이다.
본래 향토적 의미는 미술 소재의 지방적 상이와 종족의 풍속적 상이와 각개 사회의 철학의 상이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의연 미술의 본질은 그 구성 요건은 별립(別立)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 미술전람회의 수다한 공예품과 또는 조선적 미감을 가졌다는 우수한 회화는 통틀어서
외방인사의 향토 산물적 내지 '수출품적' 가치 이상의 것이 아니라고 나는 늘 생각되어지고 있다."
출처 : '정축 조선미술계 대관'[김복진 전집]. 청년사. 135쪽.. 한국근대미술의 한국성...재인용
여기서 외방 인사의 '괴기'(취미)일 따름이며 끝내는 외방인사의 향토 산물적
혹은 수출품적 가치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통렬한 비판을 통해 '조선적'이니
'향토적'이니 하는 개념의 위험성을 간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김복진의 비판은 주목할 만 하다. 게다가 이 지적은 오늘날에도 일정부분 유효하다.
따라서 '한국성'이란 개념 역시 일찌기 김복진이 비판하면서 우려했던 측면을 세심하게 헤아려야 할 것이다.
출처 : 한국근대미술의 한국성...가나아트..윤범무편저
한나라의 그림을 반드시 그나라의 이름을 따서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름이라는 것은 사람에게나 사물에게나 태어남..시작의 상징이며, 죽을때까지 불리워지고,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그것만의 특유한 의미가 있는 명칭이다.
한국화가 동양화에 포함되는것은 자연스럽고도 옳은일이나, 동양화를 한국화 (조선화나)로 부르는데 있어
역사적으로 오류를 범했다면 마땅히 그 뜻을 밝히고, 개명하는 것 시 필요한 절차라고 본다.
한사람의 이름도 그 뜻이 나쁘거나, 살아가는데 불편함을 느낀다면 개명하도록 하고있다.
불리워지기 위해 붙여진 이름의 뜻이 동양화라는 두리뭉실한 모습으로 있다고 해서 무디게 생각할것이 아니라,
그 의도를 간파하고 그에 따른 변화를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화 라는 이름 또한 좀더 적극적이고 광범위하게 알려져야 마땅할듯하다.
** 김진우 - (호 : 금강산인) 일본에 저항하다 옥고를 치르고..묵죽을 많이그렸다
일제에 굽히지않는 곧은절개를 담았다.
** 이쾌대 - 일본유학.. 1941년 조선신미술가 협회를 만들어 이중섭과 함께 활동.
인물화를 주로그림..'부인도' '군상'등(60년대 월북)
** 김관호 - 일본유학.. 서양화가..'해질녘'..
평양에 소성회라는 미술단체를 만들어 김찬영과 함께 서양화 보급에 힘씀
서울의 고희동과 평양의 김관호가 쌍벽을 이룸
** 나혜석 - 일본유학.. 서양화가..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작가.. 여성사회운동가..문장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근대에 이르러 일제의 강점과 6.25사변은 미술계에 커다란 혼선과 함께
역사의 흐름을 차단하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월북화가 중에는 당시 사상과 이념이 다르기때문에 공공연하게 논의되지 못한 화가들도 있는것으로 알고있다.
한국화의 이름을 제대로 알고 되찾는 것과 함께, 일제의 탄압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과
후진양성에 힘썼던 사람들의 그림이나 화론이 더 이상 배제되지 않고 함께 논의되고 연구되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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