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 보면 2차고당전쟁당시 당나라는 신라에 여러 번 사신을 보내 평양으로의 군량수송을 재촉합니다. 신라는 고심끝에 군량을 운송하고 그 책임을 김유신장군이 맡습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신라군은 육로로 수송작전을 전계합니다. 김유신장군이 직접 옷을 벗어 제치고 병사들과 말을 채찍질 하면서 악전고투를 벌이면서 군량을 운반합니다. 일단 그 평양성까지 당도해서 그 작전은 성공을 거둡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굳이 힘들게 육로로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배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했을까요? 물론 고구려수군도 허수아비는 아니니 수송선을 공격할 가능성도 있고 배로 옮기면 여러가지 리스크도 있습니다. 또한 당시 신라가 당군 수십만이 먹을 식량을 옮길 정도로 배를 갖고 있었느냐도 의문이긴 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당군의 함대가 신라의 당항포로 와서 군량을 수송해 갈 수는 없었을까요? 당군이 전쟁에 동원한 함선이 수천척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함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했으니 수송선이 부족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대함대를 고구려수군이 쉽게 공격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또한 당군은 서해를 건너서 백제를 멸망시켰으니 서해바다가 낯선 곳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굳이 신라에게 가능성이 희박한 군량수송을, 그것도 육로로 수송케 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그리고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당군이 식량사정이 나빠진 건 어떤 이유에서 입니까? 백제침공당시에도 보면 당장 소정방은 신라에게 식량을 재촉합니다. 고구려침공당시에도 보면 신라에게 식량을 수송할 것을 재촉하죠. 수십만대군을 태울 대함대를 이끌고 왔으면
식량도 갖고 오지 않았을까요? 수십만대군이 전적으로 군량을 신라에 의존했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신라가 당군의 식량을 모두 댈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고 봅니다.
2차고당전쟁당시에도 신라가 군량을 수송하는 것도 상당히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특히나 고구려 후방깊숙히까지 전투를 벌이면서 치중대를 이끌고 군량을 수송하는 것은 고대나 지금이나 꺼리는 작전입니다. 실제로 삼국사기에 보면 김유신장군조차도 이 작전을 고심끝에 실행에 옮깁니다. 당군 장수들이 이런 어려움을 몰랐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자신들이 소비할 식량은 부족하나 준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십만이 서해를 건너 평양성을 포위했다면 서해를 통한 군량수송로도 충분히 기능했다고 봐야 합니다. 적어도 고구려수군이 걱정되었다면 이런 대담한 작전을 전계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굳이 신라에게 식량을 재촉한 것을 보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당군은 당시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어째서 당군은 식량부족에 시달렸을까요? 만일 고구려수군이 수송로를 끊었다면 소정방의 부대는 어떻게 나중에 철군을 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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