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生沒)년 추정방법
남당유고에는 고대인의 생몰년에 관한 기록이 출생과 사망기사로 명확히 나타나 있는 경우와, 사망기사에서 나이가 나타나는 경우, 주변사람의 나이와 비교하여 태어난 해를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갑(甲)과 을(乙)이 동년(同年)이다, 또는 갑(甲)의 나이 ○세에 아들 병(丙)이 태어났다는 식의 기록으로 나이를 계산해 볼 수 있다.
또는 출생과 사망기사가 명확한 인물에서 사망 당시의 나이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 이를 근거로 고대인의 나이 계산방식을 추산하면 태어난 해를 1살로 본다.
과연 고대인의 수명(壽命)은 얼마나 되었을까?
남당유고에 나타나는 최고의 장수자는 장척(羘尺)대모 113세, 그 다음은 보황(宝凰)대모로 110세이며, 남성으로는 고구려 태조왕 궁(宮)의 아버지 재사(再思)가 100세로 추정되며, 태조왕 궁(宮)이 98세, 차대왕이 95세이다.
이를 근거로 생년이 기록되지 않은 인물이 부모 또는 자녀의 생년만을 알 수 있는 경우에 생년을 추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비교적 폭이 좁은 여성들의 출산 가능 나이를 살펴보았다. 이에 관한 자료로 사용이 가능한 것은 어머니와 자녀의 생년을 모두 알 수 있는 경우로써 자료의 제한이 있었다.
남당유고에서 여성들의 첫 출산기록을 살펴보면, 가장 이른 첫 출산기록으로는 옥모(玉帽)가 조분(助賁)을 17세에, 전씨(田氏)가 초고(肖古)를 18세에 낳았으며, 대개는 19세 이후에 첫 출산의 기록이 보인다. 늦은 출산의 기록으로는 미추(味鄒)의 처인 광명(光明)이 57세까지 16녀의 출산 후 2남을 낳았고, 내물(奈勿)의 어머니 휴례(休禮)가 53세에, 지마(祇摩)의 처인 애례(愛禮)가 53세에 출산기록이 있다.
여기서는 개인적인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첫 출산은 21세, 마지막 출산은 51세로 보았으며 이를 근거로 신라 초기의 주요 인물의 생몰년을 계산하였다.
웅선(雄宣)의 어머니 한제(閑帝)는 운제(雲帝)의 계녀(季女, 막내딸)인데, A.D.190년 2월에 89세로 죽었다. 이를 근거로 한제(閑帝)의 생년이 A.D.102년임을 알 수 있으며, 막내딸인 관계로 운제(雲帝)의 생년을 A.D.52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로 인하여 운제부인의 동복(同腹)형제인 알지(閼智)의 생년을 삼국사기 기록대로 A.D.65년으로 볼 수 있다.
운제(雲帝)의 생년을 근거로 신라의 시조왕의 아버지 천신(天神)의 생년도 추론이 가능해 진다. 천신은 운제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천신(天神) - 일광(日光, 혁거세) - 월지(月知) - 운제로 이어지므로 천신은 운제보다 60~80세 연상이다.
남당유고에는 구도와 미추의 나이차이가 74세이고, 고구려 재사(再思, 태조왕의 아버지)와 백고(伯古, 신대왕)의 나이차이는 99세인데, 백고는 궁(宮, 태조왕)의 아들로 여겨지므로, 남성이라도 아버지가 될 수 있는 나이는 팔십이 한계선인 듯하다. 또 신라 6대 지마 ~ 23대 법흥까지의 평균수명이 약 64세이고, 왕으로써 최장수한 분은 일성과 지도로(지증)로 78세이므로 역시 본인이 제시한 팔십의 한도를 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천신(天神)의 생년은 B.C.28 ~ B.C.8년, 신라의 시조인 혁거세는 B.C.8 ~ A.D.12년일 것이다. 다만, 본인의 주장은 통계적인 범위의 것으로 예측할 수 없는 오차범위는 존재할 수 있다.
내물이사금 재위기에 유례(儒禮)의 아들 세기(世己)가 천신소문지설(天神召文之說)을 주장하였는데, 이를 해석하기 위하여 신라의 국호(國號)인 신라(新羅)와 계림(鷄林)의 의미를 살펴보면 천신이 강림한 땅(鷄林新羅之義 天神所降之地)이므로, 한 분(天神)을 말하는지 두 분(삼국사기에 근거하면 박혁거세와 김알지)을 말함인지 알 수 없다.
본인은 혁거세왕의 아버지 천신을 말하는 것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김알지에게는 건국의 공로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기(世己)가 소문(召文)을 천신(天神)이라고 보았다면, 소문(召文)의 재위기간으로 혁거세왕의 생년을 추정할 수 있다. 소문국 왕력에 의하면 소문(召文)의 재위기간은 A.D.3~A.D.10년이다. 소문이 폐위된 원인이 탈탈(脫脫)에게 모반하려다 들통이 났으며, 그로 인하여 죽임을 당했다는 기록은 없으므로, 혁거세왕의 생년의 범위를 줄일 수는 없다.
신라 조분(助賁)이사금부터의 왕위승계 기준인 진골(眞骨)계통은 옥모(玉帽)와 구도(仇道)의 소문국에 근간을 두고 있는 것이라서, 왕권 강화 및 당시 지배층의 정권정당화를 위하여 등장한 설(說)이라고 생각되며, 본래적인 의미의 진골(眞骨)계통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만약에 내물이사금 재위기에 천신(天神)의 출자(出自)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면, 천신소문지설(天神召文之說)과 같은 사사로운 설(說)이 등장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천신(天神)은 혁거세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것이 아니고 혁거세의 손녀인 운제(雲帝)가 태어날 때까지는 살았을 것이다. 곧 혁거세의 아버지는 혁거세가 즉위한 13세 이후로도 27년 정도는 살아있었다고 여겨지므로 신라의 건국당시 30~50대의 청장년의 시기였을 것이다. 그가 스스로 임금이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의 출자가 감추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남당유고에 비록 신라의 시조 혁거세의 생년과 출자에 관한 기록이 비록 없다고 하더라도 신라의 건국이 고구려와 백제보다도 늦다는 것은 증명될 수 있다. 그렇다면 북사열전(北史列傳)에서 말하는 신라 시조왕은 백제인(其王本百濟人 自海逃入新羅 遂王其國)이라는 기록을 신빙성이 있지 않을까?
위에서 추정한 혁거세의 출생 시기를 중심으로 고구려와 백제에서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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