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500년 장수한 비결은
입력 : 2011.03.01 10:37
’정조 사후 63년-세도정치기의 국내외 정치 연구’ 출간
조선왕조는 500여 년간 계속됐다. 평균 수명이 200∼300년밖에 안 되는 중국ㆍ일본ㆍ영국 등의 다른 왕조와 비교하면 두 배 정도 오래 유지된 셈이다. 비결이 무엇일까.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리더십연구소 박현모 연구실장은 최근 펴낸 책 ’정조 사후 63년-세도정치기(1800∼1863)의 국내외 정치 연구’에서 기존의 연구 성과와 문헌을 토대로 조선왕조의 장수 비결을 4가지로 요약한다.
첫째는 상유(相維)와 상제(相制) 또는 정당의 쟁의로 표현되는 상호 견제장치를 꼽는다. 큰 벼슬과 작은 벼슬이 서로 얽히고(相維) 견제함으로써 권세를 농간한 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정당이 쟁의(爭議)를 통해 왕권을 제약하고 계급 간 대립을 완화시켜 백성들의 혁명을 막을 수 있었던 것도 왕조 지속에 한몫했다.
둘째로 국왕이 정치를 잘못했을 때 왕조 자체를 바꾸지 않고 왕실 종친의 한 사람으로 대체하는 ’반정의 정치’(反正之政)도 왕조의 수명을 늘린 요인이었다. 중종과 인조의 반정에서 볼 수 있듯이 정통성 시비와 반동의 위험이 뒤따르는 역성혁명이 아니라 성리학적 명분에 입각한 반정을 통해 정권을 교체함으로써 국왕은 바꾸되 왕조는 유지했다는 것이다.
또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조선의 외교능력도 장수 비결로 꼽힌다. 자칫 조선에 치명적일 수 있었던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가 역설적으로 현실에서는 유리하게 작용했다. 조선은 반독립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동아시아의 사대질서에 적응하고, 중국의 세력 변동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실용적이고 탄력적인 외교로 생명을 연장했다. 이런 요소들을 결합시켜 하나의 힘으로 만들어낸 통합의 메커니즘이 왕조를 500여 년 간 지탱한 핵심 요인이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공론(公論)을 중시하는 정치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경국(經國)의 사상을 잘 구현한 정치운영 방식인 공론정치는 특히 세종의 세제개혁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정조(1752∼1800) 이후 이어진 세도정치기는 조선왕조를 지탱해 온 공론정치가 마비되고 탄력적인 대외정책이 단절된 시기였다.
정조의 행정개혁으로 중앙집중적 구조였던 권력이 왕대비 및 외척 세도가에 의해 자의적으로 행사됐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자의적 지배,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 일본과 서양에 대한 폐쇄성으로 사회적 역동성과 변화에 대한 기대가 크게 위축됐다. 특히 조선왕조를 버텨 온 공론정치 메커니즘이 무너지면서 정치 비판과 창의적인 대안 논의가 이뤄지던 어전회의 풍토마저 사라졌다.
저자는 “세도정치기의 잘못된 정치는 개혁이 꼭 필요한 때에 현상유지 정책을 취하거나 권력과 지위를 사사롭게 이용하는 데 급급했던 김조순, 조인영, 정원용 같은 몇몇 권력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며 “역설적으로 이들은 정치 리더십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창비. 364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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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풍류하회
글쓴이 : 류세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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