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 신라의 피 한국 한국인을 만들다 / 저자 이종욱 | 출판사 효형출판
진짜 신라, 진짜 김춘추의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요사이 한국 대중문화는 전에 없이 신라에 대한 이야기로 들끓고 있다. 몇 해 전, 정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미실의 이야기가 소설화되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고, 최근에는 선덕여왕과 미실, 그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TV 드라마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처럼 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중문화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화랑세기』덕분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화랑세기』는 신라인 김대문이 그의 조상을 기리며 풍월주(화랑의 우두머리) 32명의 전기를 정리한 책이다.
저자 이종욱 교수가 주축이 되어 이 책의 필사본을 발굴해 1999년 번역·출간되기에 이르렀다. 근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신라에 대한 이야기들 대부분이 『화랑세기』의 기록에 의지하고 있음을 볼 때, 오늘날 신라 담론의 상당 부분이 그의 연구에서 비롯되었음은 자명하다.
『춘추 : 신라의 피, 한국·한국인을 만들다』는 이종욱 교수의 지난 30여 년에 걸친 신라사 연구의 핵심을 모아 구축한, 새롭고 정확한 신라사 및 김춘추 연구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물론, 『화랑세기』에 기반을 두고, 신라 중흥의 군주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그가 기획한 신라의 삼한통합에 대한 진짜 이야기를 알고자 하는 독자에게 최상의 지식을 선사한다. 가히 현대 신라사의 정전이라 부를 만하다.
신라, 김춘추, 이 몹쓸 것들!
사서를 펼쳐보라. 한국사를 선사시대부터 읽어내려 가다가 고대사회 부분을 지나면서, 이런 대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춘추. 무열왕. 나당연합. 신라의 삼한통합(삼국통일)…….”
이 인물과 사건들에서, 우리는 어떤 기분을 느끼는가? 열에 예닐곱은 왠지 모를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이건 일차적인 반응에 불과하다.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은 물론, “신라, 이 몹쓸 것들!” 하며 비분강개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 지금까지 신라 그리고 김춘추는, 이른바 ‘민족 형성사’로서의 고대사에서 ‘과거사 청산’ 대상 1호였다. 김춘추의 신라, 신라의 김춘추는 삼한통합의 원대한 꿈을 이루어 오늘날 한국인을 있게 한 장본인이다. 그런데도 거대한 외세 당나라에 사대해 동족 백제와 고구려의 자랑찬 역사와 문화를 짓밟은 파렴치하고 패륜적인 세력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 연구자들 중에서도 많은 수는 신라가 수행한 삼한통합(이른바 삼국통일)의 의의는 인정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데 동원된 방법에는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는 게 현실이다.
심하게 말해 ‘공공의 적’으로까지 평가절하 된 춘추와 대신라(통일신라). 이런 평가가 나오기까지, 한국 사학계와 교육 현장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관학파의 민족사학, ‘죽은 권력’ 김춘추와 신라에 테러를 가하다
1945년 이후 해방 공간의 사학계에서, 김춘추와 그가 건설한 대신라는 ‘한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앙양’하기 위한 프로젝트인 ‘민족사’ 구축의 첫 번째 희생 번제가 되었다. 왜 하필 그들이었을까?
저자는 이른바 ‘민족사’라는 한국사학의 계파에 주목한다. ‘관학파’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한국고대사에 도입·적용해, 논의의 핵심을 ‘민족’의 문제로 치환했다. “국민은 민족”이고 “한국사는 민족사”라고 명토 박아, 한국 역사 속의 모든 나라와 그 안에 살았던 모든 사람을 단군의 자손인 한민족이라 규정했다.
학문 권력을 장악한 이들의 표적이 된 게 바로 김춘추와 신라였다. 당나라라는 거대한 외세와 결탁해 ‘동족’ 백제를 치고, 나아가 ‘만주벌판을 말달리던’ 고구려의 ‘웅혼한 민족 기상’까지 거꾸러뜨려 놓고선, 그것을 통일 대업의 완성으로 포장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1974년 이래 국가가 주도해 만든 국정교과서 고등학교 『국사』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신라의 삼한통합은 이른바 ‘불완전한 통일’로 규정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김춘추는 을사오적에 준하는 반민족 행위자의 표상이 되었다.
저자는 이 점을 분명히 밝히는 데서 시작하고, 또한 끝맺는다. ‘민족’ 개념이 일제 강점 이후 이 땅에 유입되고 사용되기 시작했음을 도외시한 채 관학파는 십수 세기 전의 역사에까지 ‘민족’을 소급 적용해 고대사를 연구하는 촌극을 벌여왔다. ‘단군의 순수 혈통을 물려받은 단일민족’의 이념을 발명해 국민에게 강요한 이들의 역사하기는, 결국 오늘날 한국인의 왜곡된 역사의식에 단초를 제공했다. 김춘추와 대신라, 바로 그 시대의 역사를 올바로 재구성하는 데서, 저자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를 시작한다.
춘추, 그는 누구인가?
진골로서 최초로 왕위에 등극한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은 진지왕의 직계 손자, 진평왕의 외손자, 선덕여왕의 조카, 용수갈문왕과 천명공주의 아들이다. 본디 춘추는 성골로 태어나 당연히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 진지왕의 폐위로 인해 일족이 진골로 강등되면서, 자력으로 거대한 운명을 개척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어린 시절 10년간 왕궁에서 성골 왕족과 함께 생활하며 왕자로서의 기본 자질을 형성했다. 진평왕의 사위로서 왕위를 계승할 지위를 갖고 있다가 선덕공주에게 그 자리를 내주며 출궁하게 된 아버지 용수갈문왕을 따라 출궁하며 새로운 운명을 맞는다.
평생 한 몸과 같이 지낸 김유신의 권유로 화랑도에 들어가 풍월주 활동을 하며 칠성우라는 평생 추종 세력을 거느리고 당대의 국제 정세를 파악함으로써 삼한통합을 개인적·국가적 목표로 세운다. 선덕여왕의 지근거리에서 주요 직위를 맡아 활동하던 그는 유신, 칠성우 세력과 함께 왕위 찬탈을 노린 반란을 진압하며 진덕여왕을 즉위시킴으로써 왕이 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660년, 드디어 신라 제29대 왕 태종무열왕으로 즉위한다. 당나라와의 군사 연합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그는, 삼한통합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눈앞에 둔 채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친다.
신라인 김춘추의 피톨, 한국인의 유전자에 아로새겨지다
저자는 ‘한국·한국인의 근원(origin)’이라는 말로 그의 업적에 대한 위와 같은 구구한 설명을 압축한다. 김춘추, 그리고 신라(혹은 대신라)를 한국·한국인의 기원으로 보는 데에는 분명한 역사적 근거가 있다. 한국인의 대다수가 신라인을 시조 또는 중시조로 하는 김, 이, 박, 정, 최, 손 등을 성으로 하는 씨족에 속해있다는 간단하고도 명쾌한 현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는 자명하다.
한마디로, 춘추-태종무열왕의 존재가 이를 대변한다. 그는 삼한통합이라는 대역사를 기획해 추진했고, 생전에 직접 백제를 평정함으로써 그 길의 과반에 도달했다. 그의 아들 문무왕은 선왕의 유지를 이어받아 고구려를 평정하는 데 성공했고, 통합된 삼한을 병탄하려는 야욕을 드러낸 과거의 우방 당나라를 격퇴함으로써 삼한통합의 대업을 완성했다. 그 후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옛 영토와 백성을 한데 모아 대신라(통일신라)를 운영했다. 그 과정에서 백제와 고구려의 혈통은 도태되어갔고, 문화 등 사회 제분야 역시 신라의 사회 체제에 흡수되었다.
서로 정복하느냐 정복당하느냐라는 절체절명의 운명을 안고 피 튀기게 싸운 삼한의 각 나라는, 동족의식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 자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투쟁했다. 그 결과는 바로 신라의 삼한통합으로 귀착되었다. 고려, 조선을 지나 현재에 이르는 한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결국 신라의 혈맥과 역사적 유산만이 계승되고, 백제와 고구려의 존재는 역사의 저편 어딘가에 조용히 안장된 것이다. 이 모든 역사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수원에 춘추가 당당히 앉아있다.
저자는 이러한 춘추의 일대기와 그의 활동으로 성사된 삼한통합의 과정을, 다양하게 수집한 역사 자료의 교집합을 통해 생생하게 재구성해냈다. 신라사의 진면목을 알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가뭄 중 단비와 같은 자료가 될 것이다.
경주에서 보낸 1년 춘추를 다시 만나다
저자는 20세기 한국 사학계를 주도해온 관학파의 민족주의적 연구 관행을 넘어선 올바른 고대사 연구 풍토의 정착을 위해 매진해왔다. 2007년 안식년을 맞아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에 내려가, 자신이 연구해온 신라의 역사에 대해 한 해 동안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속에서 김춘추의 진면에 새롭게 주목하고, 그것을 정리해보겠다고 결심했다. 먼지 쌓인 기록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이 책으로 재구성했다.
저자는 말한다. “평가절하도, 신화화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신라를 직시하자”고. 그리고 덧붙인다. “그럴싸한 이야기에 역사라는 거죽만 씌운 채 오늘 우리에게 제공되고 있는 역사 관련 콘텐츠를 경계하자”고. 민족사학의 역사 왜곡이 자아낸 한국(고대)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아울러 새롭고 정확하고 재미있는 역사 관련 문화 콘텐츠의 보급·양산을 위해, 여기 ‘춘추, 그리고 그가 추진한 신라의 삼한통합 이야기’를 펼쳐냈다.
한국과 한국인을 만든 김춘추 [연합뉴스 | 2009.06.16]
고구려ㆍ백제ㆍ신라의 통합을 기획하고 백제를 평정해 통합의 기틀을 잡은 태종무열왕 김춘추.
우리는 김춘추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의 나라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기에 현재 한국의 영토가 쪼그라들었다는 역사인식이 널리 퍼져 있으며 김춘추를 매국노와 같은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20세기 한국 사학계의 민족주의 경향과 대척점에서 한국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려 해온 이종욱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최근 출간한 '춘추'(효형출판,448쪽. 2만2천원)에서 이 같은 논리를 반박하며 김춘추와 신라에 씌워진 '오명'을 벗긴다.
"죽은 춘추에 대한 일방적인 폭력을 멈춰야한다. 나를 있게 한 아버지(조선), 할아버지(고려), 증조할아버지(신라) 가운데 증조할아버지를 심판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421쪽)
책의 부제인 '신라의 피, 한국ㆍ한국인을 만들다'에서 보듯 현재의 한국과 한국인을 만든 사람은 삼한(고구려ㆍ백제ㆍ신라)통합의 기틀을 닦은 김춘추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통합 후 고구려인과 백제인은 하층 신분으로 편제돼 점차 도태됐기 때문에 한국인 중 다수가 김(金), 박(朴), 이(李), 정(鄭), 최(崔) 등 신라인을 시조로 하는 성과 본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1945년 이후 민족사를 탄생시킨 손진태 등 주류 사학계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현재 국사 교과서 등에 나타난 역사가 잘못됐다고 말한다.
"손진태는 해방 전의 일제와 해방 후 남북한에 진주한 미국과 소련 군대를 보면서 외세를 몰아내고 남북통일을 이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춘추를 외세를 끌어들인 반민족적 행위자의 표상으로 만들었다. 반면 광개토왕 등은 외세를 물리친 위인의 표상으로 만들었다"(415-416쪽)
또 '단군의 자손 한민족'이라는 개념은 현대 한국사학이 발명해낸 이야기로 고구려ㆍ백제ㆍ신라는 다른 사회체제와 역사를 가진 왕국일 뿐이며 따라서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의 나라를 멸망시켰다고 비판해온 민족사는 왜곡된 역사라고 덧붙인다.
김춘추가 당나라의 연호를 사용하고 세 아들을 당나라에 보냈으며 중국식 옷을 도입한 것에 대해서도 사대주의가 아니라 당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당나라 군대의 힘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며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기 위한 것"이라고 옹호한다.
세종대왕, 이순신, 광개토대왕 등 역사 인물을 소재로 한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한 번도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관심 밖인 김춘추. 저자는 김춘추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국사를 바로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사의 구석에 유폐된 춘추에 대한 역사만이라도 제대로 재구성된다면 적어도 민족사의 역사왜곡이 자아낸 한국사의 위기만큼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4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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