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산곡 신기순 블로그에서 옮겨 옴
작가 : 석도(石濤) 아호 : 대척자(大滌子). 청상노인(淸湘老人). 할존자(瞎尊者) 제목 : 산수도(山水圖) 언제 : 1700년 재료 : 화첩 종이에 설채 규격 : 28 x 21.8 cm 소장 :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해설 : 석도의 본명은 주약극(朱若極)또는 주도제(朱道濟). 자는 석도. 호는 대척자(大滌子). 청상노인(淸湘老人). 할존자(瞎尊者). 고과화상(苦瓜和尙)등 이었다. 그는 이가운데 도제. 석도. 대척자. 고과화상 등으로 칭하고 다녔다. 석도가 그린 산수소과화훼책(山水蘇果花卉冊) 가운데 제 7 圖인 이그림은 몰골법을 많이 쓴. 채색이 맑고 화려하면서도 대담한 것이며 글. 그림. 제어(題語)등 어느 한나도 석도의 폐부 속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진지하다. 대척자 라는 호를 쓴 것으로 보아 1697년 전후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이 그림은 무엇보다도 청색이 주조를 이루는 몰골설색법(沒骨設色法)이라 하겠다. “죽광위야색(竹光圍野色). 사영양강류(舍影瀁江流) 석도”. 라고 쓴 제시와 관지는 그림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급히 흐르는 계곡 옆 숲속에 있는 서옥(書屋) 안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는 선비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 그림의 시원한 채색화법은 그가 아니고는 시도해 보기 어려운 화법이라 하겠다.
작가 : 석도(石濤) 제목 : 수정루도(水靜樓圖) 언제 : 1707년 재료 : 화첩 종이에 설채 규격 : 28 x 21.8 cm 소장 :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해설 : 17세기 청초 화단에서 개성파에 속하는 화가는 홍인(弘仁). 팔대산인, 석도. 법약진(法若眞). 소운종(簫雲從), 사사표(査士標) 등이 었다. 석도의 산수소과화훼책 중 제11도인 이그림은 수많은 연꽃이 활짝 핀 연못가에 있는 수정루를 찾아가는 도사(道士)의 모습을 琉?그림이다. 17세기 청초 개성주의 화가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거장이었으며. 가장 위대하고 폭 넓은 상상력과 훌륭한 기교의 소유자였던 석도는 늘 여행을 많이 하고 명승을 많이 보면서 이 세계에 감추어진 힘들을 이해하고자 힘썼다. 또 그는 회화에 대한 자신의 깊은 이해와 생각을 천명함에 있어서 기존의 양식들에 전혀 의존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법(無法)이 곧 법이라 했다. 따라서 그는 다양한 시각적 자극들로 부터 제한되고 질서 잡힌 형태들의 체계를 만들어 냈고. 또 특수한 장소의 경관(景觀)을 그렸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산(一山)이 만산(萬山)이 된다는 자신의 체험을 보편화 하였다. 농담묵과 청홍색을 몰골법으로 알맞게 써 그린 이 그림은 분명히 小景 이지만 大景을 보는 느낌을 갖게 한다
작가 : 이선(李鱓) 아호 : 부당(復堂).오도인(懊道人).의백산인(衣白山人) 제목 : 산수도(山水圖) 언제 : 1762년 재료 : 화첩 종이에 설채 규격 : 23.5 x 29.7 cm 소장 : 일본 개인
해설 : 이선의 자는 종양(宗揚)이고. 호는 부당(復堂). 오도인(懊道人) 또는 의백산인(衣白山人)이라고도 했으며. 흥화(興化) 사람으로 강희(康熙) 50년에 효렴(孝廉)을 지내기도 했다. 이선은 화조화를 잘 그리고 행서와 초서도 잘 썼다. 그는 대자연의 정취를 대담하고 분방하게 묘사했으며. 필법은 예스럽고 기괴했다. 한동안 강희황제의 궁정에서 공봉(供奉)으로서 화원화가 노릇도 하였으나 곧 고향으로 돌아와 시와 그림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림은 처음에 명의 임량(林良)화법을 배워 화훼와 새. 짐승을 그렸는데 공봉으로 있을 때 장정석(䉃廷錫)에게서 정식으로 사생법을 익혔다. 이선의 화조화는 필치가 자유분방하여 격식에 구애되지 않았으며. 자연스러운 정치가 넘친다. 그는 그림만이 아니라 시와 글씨에도 뛰어났는데 글씨는 안진경(顔眞卿)과 소동파(蘇東坡)를 배웠으며. 낙관과 제시도 일취(逸趣)가 있어 그림과 같다는 평을 들었다. 이 산수도는 그의 대담하고 분방한 필치를 볼수 있는 소품인데. 간밤에 내린 비가 청산의 먼지를 말끔히 씻어내렸다는 제시처럼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선은 양주 팔괴중에 속했는데 그의 회화에는 제각기 자기의 독특한 개성을 발휘하여 자유 창작을 하는 양주 팔괴의 분방성(奔放性)이 농후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그의 다른 작품인 고목도는 대자연의 정취를 대담하게 묘사하였고. 필법은 고괴(古怪)한 흔적이 완연하다.
작가 : 이선(李鱓) 아호 : 부당(復堂).오도인(懊道人).의백산인(衣白山人) 제목 : 천선도(天仙圖) 언제 : 1738년 재료 : 화첩 종이에 설채 규격 : 26.7 x 39.7 cm 소장 : 일본 개인
해설 : 이선의 이 천선도는 52세 즉 화가로서 화기(畵氣)가 한창 완숙의 경지에 오르기 시작할 무렵에 그린 작품으로 막힌 데 없이 탁 트인 느낌을 준다, 화훼화첩 가운데에 있었으나 지금은 파첩(破帖)이 되어 낱장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여러 그림이 함께 있는 화첩도. 그림을 갖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으면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여러 쪽으로 파첩되어 흩어지게 되는데. 그것은 또 그나름대로의 의미?있다. 즉. 예술품의 독점을 막는 방법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란 말 그대로 거칠 것 없는 필치로 활달하게 그린 이 그림은 욕심부리지 않고 허허롭게 사는 예술가의 천진스러운 모습을 그린. 즉 사물을 빌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차물사심(借物寫心)의 그림이라 할수 있다.
작가 : 고봉한(高鳳翰) 아호 : 남촌(南村) 제목 : 매화도(梅花圖) 언제 : 1733년 재료 : 화첩 종이에 설채 규격 : 21.6 x 32.4 cm 소장 : 일본 개인
해설 : 고봉한은 자를 서원(西園), 호를 남촌(南村)이라 하였다. 12폭으로 된 산수화훼화책(山水畵卉畫冊) 가운데 한 폭인 이 그림은 50세에 그린것인데. 갖가지 색으로 피어 향기를 다투고 있는 매화의 모습이 새벽을 깨뜨리는 듯하다. 고봉한은 그가 그리고자 하는 모티프를 오岵막?묘사해 내는 탁월한 재주가 있었는데 이 매화도와 함께. 산수도. 천지석벽도(天池石壁圖). 동음노옥도(桐陰老屋圖)등이 그려져 있는 산수화훼화책을 보아도 그의 뛰어난 화기(畫技)를 볼수 있다. 28자의 제시. 6자의 관지. 한(翰). 인(印)의 두 인장 등을 보아도 그의 깔끔한 성격을 엿볼수 잇다. 다만 흠이 있다면 매화 꽃송이가 번잡한 느낌을 주는 것이라 하겠다.
작가 : 고봉한(高鳳翰) 아호 : 남촌(南村) 제목 : 산수도(山水圖) 언제 : 1733년 재료 : 화첩 종이에 설채 규격 : 21.6 x 32.4 cm 소장 : 일본 개인
해설 : 고봉한을 고상(高翔)대신으로 양주팔괴에 넣는 미술사가도 있을 만큼 그는 개성이 강한 그림을 그렸다. 그는 54세 이후 오른손이 마비되어 쓸 수없게 되자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썼다.고봉한 은 화훼. 초서. 예서. 전각. 산수 등에 모두 뛰어난 재주를 보여 주었는데. 특히 산수화는 북송의 웅혼한 신(神)과 원대 화가들의 정일한 기(氣)가 붓끝에 어우러져 비록 화법에는 구애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화법을 벗어나지 않았다. 는 평도 들었다. 지금 남아 있는 그의 그림은 1716년 에서 1748년 사이에 그려진 80여 폭인데 좌수화(左手畫)도 30여 점이나 된다. 고봉한이 50세 때에 그린 산수화훼화책 가운데 있는 이 산수도는 그가 화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산수화를 그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산수도는 홍제일각(弘濟一角)이라고 쓴 것으로 보아 홍제원(洪濟院)의 한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인물은 보이지 않고 빈 배와 빈 집만 있다.
작가 : 화암(華嵒) 아호 : 신라산인(新羅山人) 제목 : 옥천사도(玉泉寺圖) 언제 : 1750년 재료 : 화첩 종이에 설채 규격 : 23.2 x 31.7 cm 소장 : 일본 개인
해설 : 이 옥천사도는 소품 20폭이 함께 있는 화암의 호림20경화첩(虎林20景畫帖)중의 하나다. 호림은 항주 에서 서남쪽으로 15리쯤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무림문(武林門) 안의 경승(景勝)을 말한다. 이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화암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낙천주의자였던 것 같다. 조금은 세련되고 화려하면서 경쾌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화가 자신이 주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화암은 어떤 장대한 구성을 통해 강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려 한다거나. 세계를 변형시키기라도 할 듯 강한 충동에 사로잡혀 자신의 기질을 표현하려 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조용히 한 발 물러서서 자연과 인간체험의 조그만 면들을 관조하는 데 만족하는 것 같다. 짙푸른 오동나무. 연초록 빛깔의 바위. 유연한 청기와 지붕, 한가롭게 금붕어를 바라보고 있는 선비 등이 하나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을 이루고 있다.
작가 : 고기패(高其佩) 아호 : 저원(沮園) 제목 : 마도(馬圖) 언제 : 1712년 재료 : 화첩 종이에 담채 규격 : 36.2 x 57.8 cm 소장 : 일본 개인
해설 : 고기패는 자를 위지(韋之). 호를 저원(沮園)이라 하였다. 그는 17세기 초 정통파와 쌍벽을 이룬 양주 팔괴(揚州八怪)를 포함한 개성파에 드는 열 두명의 화가 가운데 첫번째로 회화사에 등장한 화가로. 18세기의 지배적인 조류였던 개성주의 화가 사이에서 맨 앞장을 섰던 화가이다. 고기패는 무엇보다도 손가락으로 그리는 지두화(指頭畫)의 명수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화목(花木). 조수(鳥獸). 인물. 산수 등 못 그리는 그림이 없었다. 8세 때 이미 화가가 되었던 그는 궁정 취미에 맞는 산수화도 많이 그렸다. 그는 붓을 가지고 전통적 방식으로 작업하는 외에도 지두화라는 개성이 강한 그림을 발전 시켰다. 이 그림은 지두잡화책(指頭雜畫冊) 안의 12폭중 하나인데 을씨년 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는 말의 진수를 그렸다고 하겠다.
작가 : 사사표(査士標) 아호 : 매학(梅壑) 제목 : 도원도(桃源圖) 부분 언제 : 1698년 재료 : 두루마리 종이에 담채 규격 : 32.6 x 312.3 cm 소장 : 넬슨 갤러리
해설 : 사사표는 자를 이첨(二瞻). 호를 매학(梅壑)이라 하였다. 명나라의 유생으로서. 명나라가 망한 뒤로는 과거를 포기하고 글씨와 그림에만 전념하였다. 집이 원래 부유해서 값비싼 골동품과 송원 화가들의 유명한 그림들을 많이 수장하여 감식에도 정통하였다. 글씨는 동기창에게서 배워 진가(眞假)를 혼동할 정도였고. 그림은 예찬(倪瓚). 오진(吳鎭). 동기창(董其昌) 등의 화법을 배워 산수화를 특히 잘 그렸다. 사사표의 그림은 용필을 많이 하지 않아 먹을 아끼기를 금처럼 했고. 기운이 황량한 것이 일품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손일(孫逸). 왕지서(王之瑞). 홍인(弘仁)과 함께 해양(海陽) 4대가 라는 말을 들었다. 이 도원도는 다른 화가들이 그린 도원도와는 다르다. 즉 맑고 깨끗하고 단순한 점이 우선 다르다. 또 인물이 보이지 않는 점도 다르다. 화법에서도 먹물과 물감을 극도로 아껴 그려서 드맑게 그린 수채화 같은 느낌을 준다. 절제와 극기를 배운 유가적(儒家的) 교육배경을 암시하는 것 같은 그림이다. 물 위에 조용히 떠 있는 작은 배만이 짧은 인생과 인연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작가 : 석도(石濤) 아호 : 대척자(大滌子). 청상노인(淸湘老人). 할존자(瞎尊者) 제목 : 비씨선영도(費氏先塋圖) 언제 : 1702년 재료 : 두루마리 종이에 설채 규격 : 29.1 x 110 cm 소장 : 프랑스 기메 미술관
해설 : 청초에 소주(蘇州)를 중심으로 활동한 사왕오운 등의 정통보수파 화가들에 대항하여 팔대산인. 홍인 등과 함께 변혁을 내세우고 활동한 개성파의 대표적인 화가였던 그는 산수. 화과(花果). 난죽 등을 잘그려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이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그림을 그렸으며. 그림마다 한족의 비극적인 감정을 담았다. 또 석도는 힘차고 환상적인 그림을 독창적인 구도로 그렸으며. 개혁적인 설채(設彩)를 하였다. 그가 남긴 유명한 화론(畫論)에 관한 책<고과화상화어록(苦瓜和尙畫語錄). 석도화론(石濤畫論)>은 이해하기 힘든 그의 예술철학이며 중국화론에서 불후의 저작이기도 하다. 석도가 72세 때 그린 이 그림은 사천성 성도 출신인 비밀(費密)의 청탁을 받고 그린 것이다. 그림의 뒤에는 석도가 쓴 긴 제발과 주의(周儀). 장사공(張師孔). 왕당(王棠). 주운(朱澐). 장전(張鈿). 장잠(張潛). 왕문벽(王文璧). 주성제(朱省齊). 장대천(張大千)등 많은 비평가. 수장가. 예술가 등이 쓴 긴 제발이 붙어 있다. 복잡한 구도와 울창한 수풀. 갈필구륵화풍(渴筆鉤勒畫風). 주조(主調)를 이룬 청색 설채(靑色設彩). 거친 붓으로 빠르게 그린 나무 등이 석도의 활달한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작가 : 석도(石濤) 아호 : 대척자(大滌子). 청상노인(淸湘老人). 할존자(瞎尊者) 제목 : 도원도(桃源圖) 언제 : 1705년 재료 : 두루마리 종이에 담채 규격 : 25 x 157.8 cm 소장 : 프리어 갤러리
해설 : 석도의 그림은 화경(畫景)이나 기법에 있어서 완전히 독자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중국 회화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그림세계를 이룬 화가들 중의 하나라고 할수 있다. 그의 그림은 화구(畵具)는 물론 화면(畵面)까지도 완전히 천생자연(天生自然)이라고 할수 있다. 그의 화풍은 계승된 것도. 옛 화가의 화풍을 선택한 것도 아닌. 스스로 창안해 낸 것이다. 이는 화가 자신이 필요해서 만들어낸 것이지만. 그가 추구한 목표는 아니다. 75세 되는 해 비자형(費滋衡)이 읊은 도원시(桃源詩)의 시의(詩意)에 맞춰 그린 이 그림은 석도의 만년작이다. 채색도 노경(老境)에 들어섰고. 서법(書法)도 순후(純厚)한 맛을 풍긴다. 송대에 문학과 회화가 만난 이후 많은 도원도(桃源圖)또는 무릉도원도(武陵桃源圖)가 거의 비슷한 구도와 화법으로 그려진 것을 생각하면 석도의 이 그림은 기절(奇絶)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화재(畵才). 서법의 기초. 독자적인 경지 등 이 세가지가 함께 맞아 떨어진 독특한 회화세계라 하겠다.
작가 : 팔대산인(八大山人) 아호 : 설개(雪個). 개산(个山). 제목 : 연지소금도(蓮池小禽圖) 언제 : 1690년 재료 : 두루마리 조이에 수묵 규격 : 37.5 x 330.2 cm 소장 : 신시내티 미술관
해설 : 팔대산인 특유의 광기(狂氣). 화의(畵意). 선심(禪心) 등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그림은 선가심상(禪家心象)의 최정미(最精微)한 표현이라 하겠다. 추운 겨울 아침 외롭게 앉아있는 새 두마리와 깊이를 알수 없는 심해(深海)속의 물고기 한 마리. 또 안개 낀 여름날 막 피어나려는 연꽃 한 송이. 이들은 우리에게 한없는 고독감을 가져다 준다. 말할것 없이 그런 새. 물고기. 꽃은 고독한 그 자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은 갈수록 단순하면서 직정적(直情的)으로 되어 갔으며. 그림의 성격은 필간형구(筆簡形具)이며 최소한의 표현 방법을 통해 최대한의 표현 효과를 얻었다 하겠다. 즉 가장 추상적이고 단순한 형체는 말로 표현할수 없는 실령과 생명의 율동을 가장 잘 상징한다. 요컨대 팔대산인의 화법은 중국문인화의 변형이며. 이 변형은 형의 단순화와 웅위(雄偉)라고 하겠다. 64세 때 그린 이그림에는 일선. 팔대산인. 여옥실(濾屋室). 가득신선. 황죽정(黃竹亭) 등의 도장과 제시가 있어 그의 화의(畵意)를 충분히 알수 있다.
작가 : 팔대산인(八大山人) 아호 : 설개(雪個). 개산(个山). 제목 : 서과도(西瓜圖) 언제 : 1659년 재료 : 화첩 종이에 수묵 규격 : 24.5 x 31.5 cm 소장 : 대북 고궁박물원
해설 : 위대한 한족(漢族)이란 뜻도 가진 팔대산인의 현대적인 감각과 간결미 넘치는 그림은 그 대담성에 있어서도 다른 화가와는 다른 특이한 존대다. 본명. 자. 호. 법호 등이 많고 복잡한 것처럼 팔대산인의 생애와 작품도 복잡하고 유별나서 중국회화사상 가장 특이하다고 하겠다. 예술가를 광인(狂人). 예술작품을 광태(狂態)라고 한다면 마땅히 그런 틀에 넣을 수 있는 예술가가 바로 팔대산인 이다. 팔대산인은 언제나 침통한 고뇌와 가시밭길을 걷는 체험을 통해서 창조적 예술가로서의 위치를 다졌으며. 끊임없는 실험과 변신을 통해서 새로운 예술세계를 창조하였다. 그는 수묵화파의 일반적인 범주를 뛰어넘어 새로운 풍모를 창조했으며. 목계(牧谿). 양해(梁楷). 서위(徐渭)등의 분방하고 사의적(寫意的)인 활필수묵화조화(闊筆水墨花鳥畵) 방면에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였다. 활발한 필묵법을 써 서양참외를 그린 이 <서과도>는 대북 고궁박물원에 있는 전계사생책(傳綮寫生冊) 가운데의 제1도(圖)인데. 전계가 팔대산인의 법호(釋名)라는 사실은 근년에 장대천(張大千)이 처음으로 주장한 것이다. 33세 때 사물의 비례를 무시하고 천진난만하게 그린 이 그림은 그가 남긴 작품가운데에서는 최초의 것인데 서양참외. 수선. 초석(蕉石). 배추. 부용. 국화. 석류, 매화. 기석(奇石). 소나무 등이 그려져 있다. 그림마다 도암(刀菴). 석전계인(釋傳綮印). 계지인(綮之印) 등의 도장이 찍혀있고. 비교적 얌전하게 쓴 제발이 있다.
작가 : 오력(吳歷) 아호 : 어산(漁山).묵정도인(墨井道人),도계거사(桃溪居士) 제목 : 운백산청도(雲白山靑圖) 언제 : 明(1668년) 재료 : 두루마리 비단에 농채 규격 : 25.9 x 117.2 cm 소장 : 대북 고궁박물원
해설 : 1668년(36세) 가을에 그린 이 그림은 오력의 대표적인 청록산수화 이다. 금벽(金碧)산수화라고도 하는 이런 그림은 비단 바탕에 화려한 물감을 써서 그리는 것인데, 당대에서 시작된 이후 청대에 까지도 그려져 왔음을 확인할수 있다. 장식성이 강하고 고전적인 이런 청록산수화를 잘 그린 화가로는 당의 왕선(王詵). 명의 석예(石銳). 청의 오력과 원강(袁江)등인데. 이들의 그림은 회화성보다는 장식성에 치중하고 있다고 하겠다. 앞의 <풍강군안도>에서 처럼 이 그림에서도 수많은 기러기를 화면의 왼쪽위에 그렸는데. 가을비가 갠 후 산사 주변이 드맑게 드러나면서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수산(虞山)의 가경(佳景)을 그린 것이다. 그림의 왼쪽 위에 60여 자의 자제와 관서가 쓰여있고, 그림으 여러곳에 원인 등이 16과나 찍혀있다. 이런 도장은 작가. 소장가. 감상가 등이 찍은 것인데. 중국 그림 가운데는 도장이 많이 찍혀 있는 작품으로 60과가 넘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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