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

[스크랩] 조선의산수화들

회기로 2009. 7. 19. 13:23

김수철(金秀哲).무릉춘색(武陵春色)

19세기 후반/ 재료 : 족자 종이에 담채/ 규격 : 150.5 x 45.6 cm/ 소장 : 간송미술관
해설 :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계(武陵溪)의 선경(仙境)을 굳이 찾지 않더라도. 복숭아나무를 좋은 곳에 골라 심어 놓으면.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이 될수있다는 김수철의 자제시(自題詩)를 달고 있는 이 그림은. 제사(題辭)그대로 김수철이 창조해 낸 풍취있는 선경이다

 

 

장승업(張承業).송풍유수(松風流水) 및 귀거래도(歸去來圖)

19세기/ 재료 : 족자 비단에 담채/ 규격 : 좌 : 137 x 32.2 cm/ 우: 136.7x32.4cm/ 소장 : 간송미술관 
송풍유수(松風流水) : 수백길 벼랑 위에서 입을 열어 팔방으로 부딪치며 꺾어져 내리다가. 마침내 아득히 쏫아져 내리고 마는 거폭(巨瀑)아래. 이에 맞서듯 창연히 솟아올라 검붉은 송린(松鱗)을 자랑하는 장송의 모습은. 임금마져도 묶어 놓을수 없었던 장승업의 호방불기(豪放不羈)한 기질을 말해 주는 듯하다. 소나무 밑 너럭바위에 마주앉아 잠방이 차림에 가슴을 드러낸채. 폭포의 굉음을 들으며 찻물 끓기를 기다리는 선객(仙客)들의 소탈간략한 모습은. 용트림하며 치솟은 소나무와 거폭에 압도당한 눈의 긴장감을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귀거래도(歸去來圖) : 진(晋)의 도연명(陶淵明)은 팽택(彭澤)의 수령이 되었으나. 관리생활에 염증을 느끼자 80여일 만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며 자신의 심정을 읊은 귀거래사의. 첫 대목을 그려낸 것이 바로 이 그림이다. 도연명이 뱃머리에서 바라본 고향집의 소나무는. 늙은 둥치를 사립문 옆에 기대어 서 있고. 황국은 삿자리 울타리 밑에 무더기로 피어있다. 주인없이 닫혀 있던 서재도 활짝 열려 갑(匣) 속의 서책과 초록 비단으로 감싼 현금(弦琴)이 반쯤 드러나 주인을 반기는 향저(鄕邸)의 분위기를 한층 살려내고 있다


 

김양기(金良驥).송하모정도(松下茅亭圖)

19세기/ 재료 : 병풍 종이에 담채/ 규격 : 110 x 44.9 cm/ 소장 : 호암미술관
해설 : 긍원(肯園) 김양기는 김홍도의 아들로, 19세기 중엽에 활약한 화원이다. 그는 아버지의 필법을 이어받은 동시에 여러 화가들의 기법을 익혔다. 그림 하단 전면에는 깊은 골짜기에서 흐르는 시냇물이 있고. 오른쪽 냇가에는 여러 종류의 키큰 나무들이 바위 사이사이에 서있다. 키큰 나무들의 왼쪽으로 냇물위에 있는 소나무 아래에는. 띠지붕의 정자가 총총히 받치고 있는 기둥위에 서 있고. 두선비가 난간에서 자연을 바라보며 담소하고 있다. 화면 상단 우측에는 모난 암산이 솟아 골짜기와. 높은 언덕마다 농담의 원수(遠樹)가 간략한 필선으로 묘사되고 있다.

 

 

윤제홍(尹濟弘).은사보월도(隱士步月圖)

18세기 중엽 ~ 19세기 초/ 재료 : 족자 종이에 수묵/ 규격 : 67 x 45.4 cm/ 소장 : 호암미술관
해설 : 이 그림은 봄밤. 달빛 아래를 소요하면서 자신의 감회를 나타낸 것이다. 화면 전경 우측에 초당이 시냇가의 제법 넓은 평지에 있는데. 앞마당에는 오동나무. 집 뒤에는 대숲이 둘러 있고 울타리 밖에는 키 큰 수양버들 두 그루가 시원하게 밤바람에 너울거린다. 대각선으로 흐르는 시냇물을 얕으막한 잔교(棧橋)로 건너면. 바위절벽을 따라 벼랑길이 구불구불하다. 중경 우측에 둥그스름한 산봉우리가 그리 높지않게 솟아 있는데. 가운데쯤에 가느다란 폭포가 밤안개 속으로 절벽을 타고 쏟아진다. 더멀리 원산이 나지막하게 안개 위로 펼쳐지는데. 그 위에 조그마한 달을 아주 연한 담묵으로 홍운탁월법(烘雲托月法)을 써 그렸다

 

 

정수영(鄭遂榮).청룡담(靑龍潭)

18c~19c 초/ 재료 : 화첩 종이에 담채/ 규격 : 33.8 x 30.8 c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청룡담이 속해 있는 해산첩에 함께 게재된 동유기(東遊記)에 의하면. 1797년 가을 벗 여헌적(呂軒適)과 함께 금강산을 여행한뒤 1799년 봄에 제작하였다. 이 화첩은 모두 46면인데 대체로 2면이 한 작품이 되며. 청룡담처럼 1면만으로 한 점이 되는 것들도 있다. 그림이 23점이며. 이중 제일 먼저실린 것은 정수영이 아닌 다른 화가의 작품이고. 묵서만으로 된 것은 3점이다. 그림마다 장소 이름을 적었고. 개중에는 기행문이 적힌것들도 있다. <청룡담>은 이 화첩중에서도 백미로 손꼽힌다.

 

 

최북(崔北).금강산표훈사도(金剛山表訓寺圖)

18c 중엽 ~ 19c 초/ 재료 : 족자 종이에 수묵담채/ 규격 : 38.5 x 57.5 cm/ 소장 : 한국개인
금강산표훈사도(金剛山表訓寺圖)는 금강산의 표훈사와 그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려내듯. 뚜렷하게 넓은 폭으로 전개하여 묘사한 작품이다. 일종의 평원산수법에 의해 내산과 외산을 거의 동일선상에서 묘사하고 있어, 이것은 마치 산으로 들어갈수록 멀리 있는 높은 산들이 오히려 낮게 보이는 시각의 착각 현상을 그대로 나타낸 작품이다.

 

 

김석신(金碩臣).도봉도(道峯圖)

18세기/ 재료 : 화첩 종이에 수묵담채/ 규격 : 36.6 x 25.7cm/ 소장 : 한국개인
김석신은 북한산 풍경을 그린 일련의 작품으로 비교적 날리 알려져 있으며. 이 도봉도는 당대의 명류(名流)인 이재학(李在學). 서용보(徐龍輔)등이 도봉산에서 산책한 기념으로 만든 도봉첩(道峯帖)에 있던 그림인 것을 표제(表題)에 의하여 알수있다.

 

 

김이혁(金履赫).고산구곡담총도(高山九曲潭摠圖)

1803/ 재료 : 병풍 종이에 담채/ 규격 : 60.3 x 35.2 cm/ 소장 : 한국개인

율곡(栗谷)이 해주(海州) 고산(高山)이라는 곳에 은거하던 때 지은. 고산구곡가와 그뒤 서인(西人)계열 성리학자들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고산구곡도는 전부 12폭의 병풍으로, 첫폭에는 고산석담기(高山石潭記)라는 제자(題字)가 위에 써있고, 또 율곡의 영산중즉경시(詠山中即景詩)가 있다. 실경이라기 보다는 상상도이며. 한 선비가 책상에 걸터앉아 있는 초당을, 또다른 선비가 동자를 거느리고 찾아오는 산수간의 경치로, 중경과 원경에 높은 산봉우리들이 솟아있고. 그 사이로 폭포수가 보인다.

 

 

김홍도(金弘道).관암도(冠巖圖) : 고산구곡도(高山九曲歌) 제1곡

18세기 말/ 재료 : 병풍 종이에 담채/ 규격 : 60.3 x 35.2 cm/ 소장 : 한국개인
해설 : 율곡(栗谷)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중의 제1곡인 관암(冠巖)이다. 관암이란 시냇가에 있는 바위가 선비의 관모 같이 생겨 붙인 이름으로. 여기서부터 시냇물의 경치 좋은 아홉 군데 이름지으면서 상류로 거슬러올라가므로. 구곡중 가장 하류에 위치한 곳이다.

 

 

김홍도(金弘道).사인암도(舍人巖圖)

18세기 말/ 재료 : 화첩 종이에 담채/ 규격 : 26.6 x 31.4 cm/ 소장 : 호암미술관
해설 : 단원의 병진년화첩(丙辰年畵帖) 속에 들어 있는 산수 10폭 중에는 실경산수가 몇폭 있는데. 그중에는 도담삼봉(島潭三峯). 사인암(舍人巖). 옥순봉(玉荀峯) 등 단양(丹陽)의 절경을 그린 것이 있다. 병진년(1796년) 무렵의 단원 산수는 실경에 입각했으면서도. 실경을 넘어서 회화적인 재구성으로 관념산수(觀念山水)의 경지를 전개하였기 때문에, 이 사인암도도 실경과는 사뭇 거리가 있지만, 우람하고 장대한 병풍 같은 절벽바위의 위용을 한껏 강조하고 있다

 

 

김홍도(金弘道).무이귀도(武夷歸圖)

18세기 말/ 재료 : 족자 종이에 담채/ 규격 : 112.5 x 52.6 cm/ 소장 : 간송미술관
무이산(武夷山)은 지금 대만의 대안(對岸)에 해당하는. 복건성건녕부(福建省建寧府)에 있는 길이 120리의 명산이다. 하엽준(荷葉皴)으로 처리된 기암준봉과. 그 사이를 굽이쳐 내려오는 탕탕한 계류를 타고 치닫는 선유(船遊)는 실로 호방장쾌 하여. 무이구곡 전체가 이 한폭에 모두 담겨진 것 같으니. 굳이 어느 굽이의 경치인지를 따질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이인문(李寅文).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18세기 말/ 재료 : 족자 종이에 수묵담채/ 규격 : 98 x 54 c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하경산수도는 그의 산수화중 드물게 보는 대담한 대부벽준법(大斧劈皴法)으로 화면을 압도하듯 호탕한 솜씨를 보여주는 가작(佳作)이다. 암봉 너머로 원산이 담채로 그려졌고 그앞은 한그루의 나목(裸木)이 가로막으면서 공간의 깊이를 더해 준다.

 

 

이인문(李寅文).도봉원장(道峰苑莊)

18세기 말/ 재료 : 화첩 종이에 담채/ 규격 : 26.5 x 33 cm/ 소장 : 한국개인
행유도(行遊圖)와 같은 화첩의 한 폭으로 四季山水畵帖 에서는 봄풍경으로 되어 있다. 원산의 표현으로 보아 만장봉(萬丈峯)과 삼각산(三角山)이 비껴보이는 도봉산 계곡 어디에 있는 원장(苑莊)아니면 서원(書院)을 배경으로 그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왼쪽 산등성이에 있는 성문은 이런 현장감을 강조하는 일종의 에피소드 처리 라고 생각된다.

 

 

이인문(李寅文).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부분

18세기 중엽/ 재료 : 두루마리 비단에 수묵담채/ 규격 : 44.1 x 856 c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이인문은 당시 조선 화단(畵壇)의 총아로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와 함께 쌍벽을 이루었던 화가였다. 강산무진도는 그의 대표작으로, 사계절의 대자연의 경관을 그린. 긴 두루마리 이다. 강산만리의 변화무쌍한 풍경이 세화(細畵)로서 끈기있게 그려졌으며. 수산. 농경. 해운에 이르기까지 평화로운 민생(民生)을 감싼 유교적 산수관이 맥맥히 서려있다. 한국 그림으로는 드물게 보는 정력적인 대작이라 할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수화가 이인문의 관록을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강세황(姜世晃).연강제색도(烟江霽色圖)

18세기 중엽/ 재료 : 족자 종이에 담채/ 규격 : 36 x 73.7 cm/ 소장 : 도오교 국립박물관
해설 : 화면 전체가 우선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의 넓은 강을 중심하여 대각선으로 분리되고. 전경 왼쪽에 강안(江岸)이 있어. 미법수림(米法樹林) 속에 기와집 누각이 보인다. 강 건너 오른편으로 좀 치우쳐. 여름비가 그친뒤 안개 자욱한 가운데. 발묵(潑墨)으로 묘사된 산봉우리들이 연이어 솟아오르고. 더멀리 원산의 푸른 봉우리와 산등성이가 아득하게 나타난다. 강 건너 안개짙은 숲속에. 담묵으로 처리한 어촌이 흐릿하니 모습을 드러내고. 그 앞에 짙은 먹으로 다리를 하나 걸쳤는데. 수면에 거꾸로 비친다. 널찍한 강심(江心) 에는 고깃배 하나. 애써 삿대질하는 어부가 강을 건넌다. 강 이쪽에 농묵으로 큼직한 미점(米點) 을 찍어 윤기나는 숲으로 가느다란 길이 나있어 누각으로 이어진다. 화면 왼쪽 위 공간에 표암(豹菴) 이라 쓰고. 그 아래 광지(光之) 라고 새긴 주문인(朱文印) 하나가. 고깃배와 대칭을 이루면서 그림에 산뜻한 생기를 북돋게 하고 있다.

 

 

강희언(康熙彦).인왕산(仁王山)

18세기 중엽/ 재료 : 종이에 수묵담채/ 규격 : 24.6 x 42.6 cm/ 소장 : 한국개인
이작품은 당시의 화단에서는 좀처럼 실천하기 어려웠던. 정확한 원근법과 거의 완전한 투시가 이루어진 서구적 기법의 사생풍경을 연상케 해줄 뿐더러.산수 묘사의 전통적인 준법(皴法)을 초월해서 특이한 묵훈(墨暈)의 농담과 작은 점묘(點描)로 이루어진 입체감의 표현이. 매우 참신한 감각을 드러내고 있다. 더구나 인왕산의 산용(山容) 전체를 동북방에서 바라볼수 있는. 도화동(桃花洞) 에서 측면으로 묘사한 화의(畵意)도 새롭고. 또 능선을 타고 꿈틀거리는 서울 성곽을. 분명하게 부각시킨 포치(布置)도 매우 주목할만하다.

 

 

정선(鄭敾).금강전도(金剛全圖)

17세기 후반/ 재료 : 족자 종이에 수묵담채/ 규격 : 130.8 x 94 cm/ 소장 : 호암미술관
정선의 그림이 한국 산천의 정기를 여실히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여느 상념적인 산수화가들과는 달리. 조국과 국토를 사랑하고. 이 땅에 사는 기쁨을 그의 예술의 생명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것이 이른바 진경산수(眞景山水)로 나타나고. 오랜 수련과 모색을 통하여. 난시준(亂柴皴) 이나 수직묵렴준(垂直墨簾皴) 같은 독특한 준법(皴法)을 낳아서. 한국산수화의 한 정형을 이룩해 놓은 것이다. 그의 진경산수에는 금강산이나 동해안을 주제로 한 것이 많은데. 노년기의 작품으로 보이는 이 금강전도는. 한폭의 좁은 공간에 금강산 1만2천봉을 압축해 놓은 것으로. 부감법(俯瞰法)의 그 자연 관조는 매우 새로운 시도로. 후일 많은 추종자를 낳았다

 

 

정선(鄭敾).인곡유거(仁谷幽居)

17세기 후반/ 재료 : 화첩 종이에 담채/ 규격 : 27.2 x 27 cm/ 소장 : 간송미술관
겸재 정선의 자택인 인곡정사(仁谷精舍)를 동쪽에서 바라보고 그린 그림이다. 인왕산(仁旺山) 서북쪽에 복종(伏鐘) 모양으로 솟아오른 암봉이 보이고 있음은. 인왕산을 동쪽에서 바라보는 시각이기 때문이다. 인왕산 주봉은 암봉인데도. <인왕제색>에서 보이던 농묵의 중적(重積)이 아니라. 담묵으로 훈염(暈染)하고 다시 수윤(水潤)하는 기법을 구사하면서. 바탕에 역시 담묵의 미점(米點)을 성글게 찍어나가 풀. 나무를 상징해 줌으로서. 온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위에 산봉우리의 주변 하늘과 대기에도. 담묵 담청의 훈염을 가하게 되니. 유현미(幽玄味)가 더욱 고조된다

 

 

정선(鄭敾).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17세기 후반/ 재료 : 족자 비단에 수묵담채/ 규격 : 79.2 x 138.2 cm/ 소장 : 호암미술관
해설 : 비구름이 개어가는 인왕산의 여름 모습을. 멀리 동편쪽 언덕에서 사생한 작품으로. 정선이 75세 때에 그린 작품이다. 거대한 암벽을 속도 있는 독특한. 수직묵렴준(垂直墨簾皴)으로 늠름하게 표현하고. 골짜기에서 피어 오르는 안개와 솔밭 묘사는. 먹 빛깔의 농담(濃淡)을 묘하게 가려 쓰고 있다. 더구나 일부의 용묵(用墨) 에는 먹빛에 연한 녹색이 번져 있고. 골짜기를 덮은 안개의 표현에는. 희미하게 푸른색을 곁들여서 담채의 묘를 넌지시 풍기고 있다.

 

 

조속(趙涑).금궤도(金櫃圖)

1636~1656년/ 재료 : 족자 비단에 채색/ 규격 : 105.5 x 56 c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금궤도는 어제(御製)를 가진 청록산수로 화면 상단의 어제는 “이 신라 경순왕(敬順王) 김부(金傅)의 시조를 금궤안에서 얻어, 인하여 성을 김(金)씨로 하였다. 금궤는 나무위에 걸려 있었고, 그 아래 하얀 닭이 울고 있는고로 보고 취하여 왔다, 금궤 안에는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석(昔)씨 뒤를 이어서 신라의 임금이 되었다. 그의 후손 경순왕이 고려에 들어가자. 그의 내순(內順)을 아름답게 여겨 경순(敬順)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을해 익년봄 삼국사기를 보고 그리라고 명령했다. 이조판서 김익희(金益熙)가 명령을 받아서 쓰고, 장령(掌令) 조속이 명령을 받아 그렸다” 라고 되어있다. 화면은 전경. 중경. 후경의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경물들은 토파나 나무. 구름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녹색조의 같은 톤으로 처리되어. 평면적인 느낌을 주지만. 물의 흐름과 나무들의 크기에 의하여. 원근감이 나타나 있다. 원경의 산들은 점점 나뭇잎이 겹쳐지면서 멀어져 가는. 둥글둥글한 산세로 표현되어 있고. 옹이가 많고 나뭇잎이 일률적인 나무와 인물은. 화보적 경향을 띠고 있다. 흰색으로 묘사된 닭과 빨강색의 금궤끈. 닭벼슬. 부채등은 푸른색조의 그림에 생동감을 부여해 주고 있다.

 

 

이징(李澄).연사모종도(煙寺暮鍾圖)

17세기/ 재료 : 족자 비단에 담채/ 규격 : 103.9 x 55.1 c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석장(錫杖)을 짚고 깊은산속의 절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노승(老僧)을 그린 그림으로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중의 “연사모종”을 묘사한 듯하다. 소나무가 있는 언덕과 스님으로 이루어진 근경. 도현(倒懸)의 산들과 꺼질듯이 주저앉은 오두막집들이 있는 중경. 윤곽뿐인 군봉(群峯)으로 이루어진 원경의 3단구도로 구성되었다.

 

 

이영윤(李英胤).방황공망산수도(倣黃公望山水圖)

16c 후반~17c초/ 재료 : 족자 종이에 수묵/ 규격 : 97 x 28.8 c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화풍은 남종화풍이고. 그림의 우측 상부에 대치초년역유차필(大癡初年亦有此筆) 이라는 글이 쓰여져 있다. 여기에서 대치(大癡)는 원말 사대가(元末四大家)의 한사람인 황공망을 뜻한다. 황공망도 초년에는 이러한 필법이 있었다는 글을 써 넣음으로써 이영윤이 황공망의 필법을 방(倣) 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출처 : 창업 의 길라잡이
글쓴이 : 비어라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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