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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硏
송시열이 쓴 ‘우복시장’ 발굴
조선시대 시호(諡號)의 행정처리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조선시대 시호(諡號)의 행정처리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고문서 원본이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의해 발굴됐다.
지금까지 시호 연구는 법전이나 왕조실록 등 간접자료를
통한 연구가 전부였으며 실제 시호가 내려지는 과정 전체를
알 수 있는 문헌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7일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최근 경북 상주의 진주 정씨
17일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최근 경북 상주의 진주 정씨
우복 종택에서 ‘우복시장(愚伏諡狀)’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우복 정경세(鄭經世)는 류성룡의 수제자로 인조 때
우복 정경세(鄭經世)는 류성룡의 수제자로 인조 때
영남 남인의 영수였다. 그가 죽자 그의 공덕을 기려
우암 송시열이 그의 행적을 정리한 시장(諡狀)을 작성했고,
그 시장이 행정 관청을 거쳐 임금의 재가를 받기까지의
과정이 함께 담긴 문서가 발견된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 시장의 내용을 지은 이가 송시열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 시장의 내용을 지은 이가 송시열
이고 글씨를 쓴 사람은 당대 명필로 유명했던 동춘당 송준길
(우복의 사위)로 추정돼 더욱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발굴된 문헌 중 시장은 27면에 걸쳐 작성됐으며
이번에 발굴된 문헌 중 시장은 27면에 걸쳐 작성됐으며
마지막 면에는 시장의 내용을 지은 송시열의 관직과 이름이
명확하게 표기됐다. 말미에 작성자의 이름을 명기하는 것은
시장 작성의 필수요소였다. 시장 작성자가 누구인지는
내용의 객관성과 신빙성을 가늠하는 일차적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허위나 과장이 있을 때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는 용도로도 활용됐다.
내용이 적힌 종이는 글씨를 쓰기 위해 표시한 것으로
내용이 적힌 종이는 글씨를 쓰기 위해 표시한 것으로
보이는 작은 골이 패어 있었으며 이로 미루어 시장을
작성하는 데 쓴 규격지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작성된 시장을 예조에 제출하면 예조에서는 그것을
작성된 시장을 예조에 제출하면 예조에서는 그것을
검토해 봉상시(奉常寺)로 이관했다. 예조 산하인 봉상시는
국가적으로 중하게 여긴 시호 업무만을 전담한 기관이다.
이후 봉상시와 홍문관의 관원들이 모여 시호 후보 3개를
이후 봉상시와 홍문관의 관원들이 모여 시호 후보 3개를
선정해 예조를 거쳐 이조에 보고하면 이조는 관련 문서를
첨부해 의정부로 이관했다. 마지막으로 의정부에서 왕의
재가를 받아 시호를 확정했다. 현종이 우복 정경세에게
내린 ‘문숙(文肅)’이란 시호는 이런 절차를 거쳐
1663년 1월 25일에 확정됐다.
한편 영남 남인의 영수인 정경세의 시장을 충청도 지역 서인인
송시열이 작성한 점으로 미루어 정경세가 그들과의 교류에 아주
적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김학수 국학자료조사실장은 “조선시대의 행정
절차는 각 행정기관이 자신들의 직분을 매우 꼼꼼히 처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우복시장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http://news.donga.com/fbin/output?n=200908180063
출처 : 풍류하회
글쓴이 : 이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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