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스크랩] 조선4대 양택명지(택리지)-봉화 닭실마을

회기로 2010. 1. 24. 20:17

이충환은 택리지에서 안동 하회마을, 내앞마을 ,봉화 닭실마을, 경주 양동마을을 4대 명지라 했습니다

제가 답사한 바로는 이곳 닭실이 압권인 것 같습니다.

 

봉화에서 울진가는 방향 고개를 넘으면 첫동네입니다.









조용헌살롱] 충재 권벌


▲ 조용헌
‘조선유학자 유묵 특별전’에 전시된 작품 일부가 위작(僞作)이라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그 대상 중의 하나가 권벌(權 木+發:1478-1548)의 글씨이다. 이름자에 나무 목(木)변이 들어간 벌(木+發)이 맞는데, 손 수(手)변이 들어간 발(撥)로 표기되었다는 것이 시비의 핵심이다.

권벌은 어떤 사람인가. 우리나라에서 양반고을이라고 하면 안동이고, 안동에서는 안동권씨가 유명하다. 그 안동의 권씨를 대표하는 집안이 바로 충재 권벌 집안인 것이다. 몇 년 전에 일본학자 미야지마 히로시(宮島博史)가 조선조 양반을 다룬 ‘양반’이라는 책을 냈는데, 제일 앞장에 소개된 집안이 바로 충재 집안이었다.

충재는 기묘사화(己卯士禍)와 을사사화(乙巳士禍)를 모두 겪는 험난한 인생을 살면서도 선비로서의 강직함과 격조를 간직했던 인물이다. 그는 평소 ‘근사록(近思錄)’을 애독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근사록’을 영역하면 'Reflections on things at hand’가 된다. ‘손에 닿는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라는 의미이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심오한 것으로 이르는 사유의 방식이다.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이라고도 표현한다.

중종 때 경회루에서 임금과 대신들이 꽃구경을 하면서 연회를 즐기다가 헤어졌다. 이때 책이 한 권 땅바닥에 떨어져 있어서 하급관리가 주워 펼쳐보니 ‘근사록’이었다. 임금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니까, 중종이 “그것은 틀림없이 권벌이 보던 책일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했었다고 한다. 그만큼 권벌은 ‘근사록’을 품고 다녔다.

조선시대 임백호(林白湖)는 속리산에서 ‘중용(中庸)’을 오천독(五千讀)하며 득력(得力)을 하였고, 율곡은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편을 읽고 득력을 하였지만, 충재는 ‘근사록’을 읽고 득력하였던 것이다.

현재 충재 고택은 경북 봉화의 유곡리(酉谷里)에 있다. ‘닭실’이라고 부른다. 집 뒤의 산세 모양이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세와 같다고 해서 ‘금계포란(金鷄抱卵)’의 명당이라고 알려져 있다. 충재 고택에서 볼만한 것은 마당의 오른쪽에 자리 잡은 청암정(靑巖亭)이라고 하는 정자이다. 커다란 거북이 형태의 바위 위에다가 정자를 지어 놓았는데, 그 경관이 일품이다.


출처 : 한솔공인중개사
글쓴이 : 無住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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