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한국의 역사 인물」35.진정한 공직자의 본보기 황희(黃喜) 황희(黃喜)는 고려 말기에 태어나 고려시대에 관직에 오른 인물이면서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주요 관직에 올라 태조(太祖)부터 세종(世宗)에 이르기까지 네명의 임금 밑에서 일하다가 90세의 나이로 사망한, 특이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다. 황희의 강직한 성품은 역대 임금들에게서 모두 인정을 받았.. 역사자료실 2010.01.26
[스크랩] 「한국의 역사 인물」36.과학혁명을 이끈 천민 출신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蔣英實) 세종(世宗)대에 이룬 찬란한 문화적 업적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과학 분야의 발전으로서, 장영실은 그와 같은 발전에 누구보다도 높은 기여를 한 뛰어난 과학자다. 장영실은 천민 출신이었지만, 당대의 엄격한 신분 사회의 벽을 뛰어넘어 자신의 뜻을 이룬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하지.. 역사자료실 2010.01.26
[스크랩] 「한국의 역사 인물」37.이상적인 왕도정치를 구현한 위대한 임금 세종(世宗) 조선왕조 제4대 국왕인 세종(世宗)은 이름이 도(途), 자가 원정(元正)이며 태종(太宗)의 셋째 아들이다. 등극하기 전에는 충녕대군(忠寧大君)으로 불렸다. 어머니는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이며 비(妃)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이다. 1418년 태종(太宗)이 세자인 양녕대군(讓寧大君) 제(堤)를 폐함에 따.. 역사자료실 2010.01.26
[스크랩] 「한국의 역사 인물」38.어린 임금의 왕위를 지키려다 살해된 충신(忠臣) 김종서(金宗瑞) 김종서(金宗瑞)는 흔히 무장(武將)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열여섯살에 문과에 급제한 문관(文官) 출신의 정치인이다. 그가 6진을 개척하여 북방을 경영한 공훈(功勳)이 워낙 커다란 업적이기도 하고, 그의 생애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기 때문에 일종의 선입견이 작용한 셈이다. 조선 초까지는 북.. 역사자료실 2010.01.26
[스크랩] 「한국의 역사 인물」39.충절과 의리의 대명사 성삼문(成三問) 성삼문은 당대의 뛰어난 학자요 촉망받던 관료였지만, 자신의 영화를 뒤로하고 의리와 충절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은 만고의 충신이었다. 한 임금에 대한 그의 충성심과 흔들림 없는 정신은 세조(世祖) 이후 사람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추모되었으며, 결국 충신의 표본으로 인정되었다. 성삼문(成三.. 역사자료실 2010.01.26
[스크랩] 4. 고성삼일포서(홍귀달) 4. 高城三日浦序(홍귀달) 내가 삼일포에 관해 들은지는 오래다. 항상 마음에 품었으나 인연을 얻어 한 번 이르지를 못하였다. 해는 갑진년(1484) 겨울, 성은을 입어 절월(節鉞)1)을 가지고 관동 지방을 순행하며 고성에 이른 것이 두 번이었으나, 또한 놀며 완상할 겨를은 갖지를 못하였다. 이에 내년 가을.. 역사자료실 2010.01.24
[스크랩] 3. 금강산 기행(남효온) 3. 金剛山 紀行(南孝溫)1) 백두산은 여진(女眞)의 경계에서 시작하여 남으로 우리 나라 해변 수천 리에 걸쳐 뻗쳤다. 그중 큰 산으로는 영안도(永安道)의 오도산(五道山), 강원도의 금강산, 경상도의 지리산이 있는데 수석이 가장 아름답기로는 금강산을 첫째로 친다. 금강산은 이름이 여섯 가지다. 그 .. 역사자료실 2010.01.24
[스크랩] [상생의 땅 가야산] (37)한강 정구와 무흘구곡 [상생의 땅 가야산] (37)한강 정구와 무흘구곡 영남 남인의 실학.예학 선도 서애(류성룡).학봉(김성일)과 함께 '퇴계 3걸' 봉우리 모양이 하늘 향해 타오르는 불꽃과 같다고 해서 '석화성(石火星)'으로 일컬어지는 가야산. 불의 기운이 왕성한 가야산을 식혀주는 것은 산을 따라 유유하게 흐르는 계곡과 .. 역사자료실 2010.01.24
[스크랩] 佔畢齋 門人錄 ○金孟性字善源。號止止堂。正統丁巳生。海平人也。曺梅溪序先生詩集曰。家于星山之伽川。好讀書。喜著述。尤嗜於詩。 日以吟諷爲事。不事家人生產作業。性不能飮。而客至。喜置酒。輒醉醺然。不問有無。富貴榮利。泊如也。善源生於閥閱。 故宰相靖肅公安純之外孫。文肅公崇.. 역사자료실 2010.01.24
[스크랩] “징비록, 백성 버린 선조 비판하려 써” “징비록, 백성 버린 선조 비판하려 써” 2009-05-20 24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임진왜란 당시 도체찰사와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1542~1607년)은 정계 은퇴 뒤 고향 안동 하회마을에서 수년간 은거하며 ‘징비록’을 썼다. 임란 한가운데 있었던 류성룡은 ‘내 지난 .. 역사자료실 2010.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