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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예가 열전]적극적 이론서… 창암의 ‘서결’

회기로 2011. 3. 1. 00:42
[서예가 열전]적극적 이론서… 창암의 ‘서결’
그림3. 이삼만의 ‘용비’(龍飛), 43×56cm, 개인소장.
서론(書論)은 서예와 관련한 모든 생각과 논의이다. 예술로서 글자는 단순히 의사전달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작가의 성정과 기질을 형상화해 낸다. 글씨에 대한 이러한 예술적 차원의 접근은 한대(漢代) 이래 창작과 품평이 본격화되면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고전 서론은 양적인 면에서 중국과 비교할 때 크게 부족하다. 그러나 문집이나 편지 등에서 단편이지만 괄목할 내용이 있고, 조선 후기에는 논리체계를 갖춘 서론이 본격 저술되었다. 예컨대 옥동 이서 ‘필결’, 원교 이광사 ‘서결’, 배와 김상숙 ‘필결’, 이삼만 ‘서결’, 서석지 ‘필감’ 등이다. 이들 이론서는 중국 역대이론의 전범들을 수용한 것도 사실이지만 수용대상의 선택과 변용에는 우리의 심미의식이 개재되어있다.

창암의 서예이론서인 ‘서결’은 옥동과 원교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서예본질에 대한 그의 인식은 매우 적극적이다. 즉 조선 지식인들이 시문 글씨를 도학(道學)의 여사나 말기(末技)로 인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평생 글씨로 삶을 맞바꾼 원교조차 글씨를 소도(小道)라는 인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창암은 이와 달리 확고한 서예관을 견지하였는데 “서는 자연에서 비롯되어 음과 양이 생겨나고, 형·세·기가 붓에 실려 부드러움, 거침, 기이함 괴상함이 생겨난다(書肇於自然 陰陽生焉 形勢氣載筆 惟軟碍奇怪生焉). 세차고 빠름 느리고 껄끄러움 이 두 가지 오묘함을 터득하면 서법은 끝난다(峻疾遲澁二妙 書法盡矣)”고 단언하였다.

더 나아가서는 글씨에 대한 인식과 실천 또한 매우 적극적인데 “글씨는 소도가 아니다(書非小道). 도의 근본은 인륜을 돕는 것이다(道本助於人倫). 하여 매번 고요한 곳에서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故每於靜處 先正其心) 미리 심획(心劃)을 생각한 뒤에 글씨를 써야 하니(豫想心劃 然後下筆) 마음에 생각함이 있는 자라야 끝내 공력을 얻게 된다(而有心者 竟爲得功)”고 피력하고 있다.

또한 창암은 “서예를 공부하는 자는 마땅히 한(漢)나라 서법에 마음을 두어야 하니 그렇게 하면 체(體)를 얻기가 쉽고 골력(骨力)도 빨리 생겨 진과 당·송의 체 같은데 이르러서는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도달한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창암이 글씨 근원을 근골에서 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창암 서예의 일생에 걸친 체험적 보고서라 할 ‘서결’은 1840년 창암 71세 때 저술되었다.

총론과 영자팔법 결구법(結構法) 집필법(執筆法) 논습자지필(論習字紙筆)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신영자팔법 득필천연론(得筆天然論)이 주목된다. 특히 득필천연은 창암 서예의 최고경지인 통영(通靈)의 다른 말로 “빼어난 소리는 그 흔적이 없고 빼어난 글씨는 천연 그 자체다(逸韻無跡 得筆天然)”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이러한 경지가 작품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창암의 ‘유수체’(그림3)이다.
출처 : 나의 사랑 한국한문학
글쓴이 : 인간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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