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열전](22) 조선 후기-추사 김정희(下) | ||||||||
요즘 서예가들의 글씨는 글 짓는 것과 별개다. 서예가들은 글 짓는 것보다 쓰는 데 더 치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자는 본질적으로 내용과 조형을 동시에 문제 삼고 있다. 여기에 현대서예의 딜레마가 있다. 글씨를 액션페인팅처럼 뿌리고 쳐바르면 재미도 있겠건만 서법에다 시인까지 되어야 한다니 이것 참 죽을 노릇이다. # 구체적인 일로 실질 되게 하고 옳음을 추구한다 - 실사구시 아직 우리에게 추사는 서예가다. 기괴한 조형의 대명사인 추사체를 만든 주인공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어있다. 이것은 다분히 추사를 단편적으로 이해한 결과지만 추사체가 추사의 전부는 아니다. 그 나머지는 학문이다. 추사의 학문은 경학(經學)으로, 당시 경학은 고증학(考證學)이다. 고증학은 송·명대 공리공담에 치우친 성리학에 대한 반성으로 고증을 통한 고대 금석이나 기물을 통해 유교경전 본래 의미나 자구해석에 치중한 학문이다. ‘고고증금’하는 고증학에 대한 인식을 그의 ‘실사구시잠’을 보자.
근대의 추사연구자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에 의하면 ‘실사구시잠’은 추사가 옹방강이 보낸 편지를 읽고 지은 찬사라고 되어 있다. 이보다 앞서 추사는 ‘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을 지었다. 여기에는 학문의 방법뿐 아니라 그 지향점도 함께 제시되어 있다. 추사는 ‘실사구시설’ 첫머리에서 ‘구체적인 일로써 실질 되게 하고 옳음을 추구한다는 것은 학문의 가장 중요한 도이다(實事求是 此語乃學問最要之道)’라고 했다. 여기에서 ‘실사(實事)’는 한학(漢學)의 훈고학적 실증주의를, ‘구시(求是)’는 송학(宋學) 즉 주자학의 의리(義理)적 도덕주의를 지칭한다. 추사는 바로 그의 학문의 지향점인 ‘실사구시’를 통하여, 한학과 송학 즉 훈고학과 의리학의 절충 혹은 조화를 시도한 것이다. # 학문과 예술은 하나다
# 문자반야(文字般若)
그러나 그것에만 얽매여 있어도 안된다. ‘구시’를 해야 하는데 그것은 이념이나 지향처다. 추사가 글씨를 통해 구한 것은 고졸(古拙)의 아름다움이고 그 정신적 경지는, ‘불이선란도’를 빌려 말하자면 ‘성중천(性中天)’이고 ‘불이선(不二禪)’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내가 하늘로 간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 안에 들어온 것이다. 이것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또 다른 말이자 문자반야(文字般若)이기도 한 것이다. ‘반야’는 인간 생명의 근원을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예지(叡智)이다. 그러므로 이기적인 분별심을 초월한다. 예로부터 이를 실상반야(實相般若), 관조반야(觀照般若), 문자반야(文字般若)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실상반야는 진리 그 자체(理經)를 말하고, 관조반야는 사물의 근원자리를 사무쳐 꿰뚫어 보는 지혜를 말한다. 반면 문자반야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經)·율(律)·논(論) 전부를 가리키는데 이는 실상반야와 관조반야를 실어 나르는 도구이다. 요컨대 추사 예술, 즉 서예 또한 문자를 통해 내용과 조형으로 사물의 근원을 꿰뚫어 보는 지혜, 즉 반야의 경지였던 것이다. 그래서 학예일치인 것이다. # 나는 누구인가 그러나 추사의 실사구시와 학예일치의 경지는 경학과 글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말년의 추사는 어느 날 거울을 들고 자기를 대면했다. 파란만장했던 70 평생을 나를 그리며 정리할 심사였다. 소략한 옷 처리에서 영락없는 과천 촌로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봉발(蓬髮)에 가까운 털 올 하나하나를 리얼리티의 극치라 할 필치로 이 잡듯이 헤아리며 담아냈다. 이것은 화원의 도식화된 필치도 아니고, 붓 몇 번으로 그림이 완성되는 세한도(歲寒圖) 유와는 딴판이다. 여전히 부리부리한 봉황눈매며 꽉 다문 입술은 부러질지언정 굽힐 수 없는 추사의 결연한 의지와 고집 그대로다. 하지만 추사는 이러한 눈에 보이는 리얼리티만을 위해 붓을 들지 않았다. ‘이 사람을 나라고 해도 좋고 내가 아니라 해도 좋다/나라고 해도 나이고 내가 아니라고 해도 나이다/나이고 나 아닌 사이에 나라고 할 것이 없다/제주가 주렁주렁한데 누가 큰 마니주 속에서 상(相)을 집착하는가. 하하(謂是我亦可 謂非我亦可 是我亦我 非我亦我 是非之間 無以謂我 帝珠重重 誰能執相於大摩尼中 呵呵)’ 이미 추사의 붓은 자신의 내면 실상(實相)을 더듬으며 세상의 시비는 물론 자신마저도 넘어서고 있었다. 〈이동국|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학예사〉 |
출처 : 나의 사랑 한국한문학
글쓴이 : 인간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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