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옥새 복원 전각장 민홍규씨 |
입력: 2005년 07월 12일 17:38: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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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나라의 상징으로 국기(國旗), 국가(國歌), 국화(國花), 국새(國璽), 나라 문장(紋章) 등 5가지를 꼽는다. 태극기, 애국가, 무궁화는 친숙하다. 무궁화와 태극문양을 조합해 만든 문장도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나라의 인장’으로 불리는 국새는 생소하다. 국새는 외교문서 등 나라의 의전이나 행정업무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국새의 역사는 다른 국가 상징보다 훨씬 길다. 중국에서는 진시황이 만든 ‘수명어천 기수영창’(受命於天 其壽永昌:하늘에서 명을 받았으니 그 수명이 영원히 번창하리라)이라는 인장이 국새의 처음이다. 이 옥새는 이후 한고조에게 전해지면서 ‘전국새(傳國璽)’로 불렸는데, 왕망이 한나라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부터 국새가 사용됐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8대 신대왕 때 ‘중신들이 국새를 올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각각 인부랑, 상서원이라는 관청을 두어 국새를 제작·관장했다.
오랜 역사를 헤아리지만, 국새에 대해서는 그동안 알려진 것이 없다. 옥새의 종류, 제작 기법, 장인 등 어느 하나 밝혀지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만 수십 과의 옥새가 사용됐지만, 전하는 것은 거의 없다. 그래서 옥새는 이미 ‘사라진 문화재’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베일에 싸인 옥새의 비밀을 풀어낸 장인이 있다. 옥새전각장 민홍규씨(52). 10대에 옥새전각에 입문해 40년 가까이 조선시대 옥새 복원에 힘을 쏟고 있는 그가 최근 옥새의 역사와 제작 방법 등을 담은 책 ‘옥새’(인디북)를 펴냈다. 옥새에 관한 국내 유일무이한 책이다.
“옥새는 왕의 신표이며 나라를 대표하는 표상입니다. 사방 3촌(약 10㎝)의 작은 크기이지만, 여기에는 서예, 회화, 조각, 전각, 금속공예 등이 함축돼 있습니다. 다면적 종합예술의 총화라고 할 수 있지요.”
민씨는 옥새를 ‘조선시대 예술의 보고’라고 말한다. 손 안에 잡히는 조그마한 도장에 왕조 고유의 격식과 품격을 담아낸 옥새야말로 ‘방촌(方寸)의 미’의 절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예술 분야와 달리 옥새 전수자는 주로 서사관이나 화원 등 양반 출신들이 맡아왔다고 민씨는 덧붙였다.
“전통적으로 옥새 전각장은 교서관, 서사관들을 임명하고 중인, 상민 등은 배제했습니다. 국새는 임금의 상징물로, 국새를 만드는 일은 임금의 옥체를 만진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전각장이 인본을 만들면, 전문 사서관이 확인하고 옥새와 문자를 관장하며 감독했지요.”
그러나 제작 방식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나라의 인장이 유출되면 국기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헌법인 경국대전은 ‘옥새와 돈은 절대 위조되어서는 안된다’(형전 僞造편)고 명시하고 있다. “옥새 제작은 비공개, 비기록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후기 옥새에 대한 기록을 담은 ‘보인소의궤’가 나올 때까지 어느 문헌에도 옥새 제작에 관한 언급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옥새전각장이 ‘영새부’라는 이름으로 전수자에게 비밀리에 전수한 게 전부였죠.”
민씨가 옥새를 알게 된 것은 석불 정기호 선생(1899~1989)과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석불은 고종 대의 옥새전각장 황소산의 맥을 잇는 근대 최초의 옥새 전각장으로 1948년 대한민국 최초의 국새를 만든 주인공이다.
“서예를 하셨던 할아버지의 소개로 중학교 때부터 석불 선생에게 옥새전각을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도장 공부냐’며 심드렁했는데, 선생님 댁에 청와대 비서관들이 드나들고, 전각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옥새 전각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민씨는 이후 석불 선생이 작고할 때까지 문하에서 전각을 익혔다. 작고하기 1년 전에 석불은 “옥새, 동장(銅章), 전각을 금필하였다”면서 민씨의 옥새 전각 기능을 허여했다. 이후 민씨는 본격적으로 전통 옥새 복원에 나섰다. 1996년에는 경기도박물관에 옥새 가마를 짓고 제작 시연을 보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민씨가 복원한 조선시대 옥새는 ‘조선국왕지인’ ‘명덕지보’ ‘황제지보’ 등 모두 35과(顆). 조선시대 말까지 전해오던 옥새 72과 가운데 절반가량이 복원됐다.
민씨는 이 책에 옥새의 역사, 종류, 전각장의 철학, 옥새의 현대화 작업 등 옥새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냈다. 특히 옥새전각장들 사이에 비전되던 ‘영새부’를 바탕으로 옥새 제작 기법을 상세하게 소개해 옥새 전각 기술 전승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어려서부터 ‘영새부’를 어깨 너머로 보면서 조금씩 메모해 두었지요. 원래 공포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이러다가 옥새 전각의 맥이 끊기겠다 싶어 간행했습니다.”
경기 이천에 작업장이 있는 민씨에게는 아직 전수 후계자가 없다. 조선시대에는 옥새 1개를 만드는 데 서예가, 전각장, 사서관, 매듭장 등 수십명이 동원됐다. 민씨는 “서예, 전각, 가마작업 등을 혼자서 하려니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라면서 “복원작업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복원과 함께 현대화된 국새를 제작, ‘대한민국 국새 천년전’을 열 포부를 갖고 있다. 그러나 민씨가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옥새에 대한 열악한 인식. 그는 “사람들은 인감의 중요성을 잘 알면서 1,000년 역사가 담긴 옥새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면서 “정부에서도 주권국가의 상징인 국새의 전통이 끊이지 않도록 살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