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열전]주역으로 탄생한 ‘필결(筆訣)’
‘필결’은 총 24장으로 옥동의 유고집인 ‘홍도선생유고’ 제12권에 수록되어 있다. ‘필결’의 구성은 대체적으로 총론과 각론 그리고 결론으로 되어 있다. 총론은 글씨가 주역의 음양(陰陽) 삼정(三停) 사정(四正) 사우(四隅) 등에 근본을 두고 있음을 그 기본이 되는 점획과 영자팔법(永字八法)으로 밝힌 ‘여인규구(與人規矩)’이다. 각론 역시 주역원리로 붓을 잡거나 움직이는 법, 먹을 가는 법은 물론 점획을 긋고 변화시키는 법, 글자의 짜임과 배치를 논한 작자법(作字法)과 행법(行法), 글씨의 정도와 변통의 중용을 경권(經權)으로 논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그리고 ‘변정법여이단(辨正法與異端)’에서는 서가정통(書家正統)이라는 표제 아래 왕희지를 정통의 기준으로 설정하고 정자(正字)와 행초 필법의 성쇠와 함께 이단의 근원과 해당 작가를 기술하고 있다. ‘범론서법(汎論書法)’에서는 지필묵 등 서예 도구재료의 중요성, 서예가의 자세 등을 논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이 다음에 오는 ‘평론서가(評論書家)’와 ‘논고서(論古書)’이다. 여기서는 김생 탄연 안평대군 성수침 황기로 양사언 한호 등 우리나라 서가를 단독으로 논함은 물론 이들을 종요 왕희지 우세남 안진경 회소 장욱 조맹부 등의 중국작가와 동일한 반열에 두고 각체를 품평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명·청 교체 이후 조선사회 전반에 충만해진 자존의식의 발로에 다름 아닌 것이다. 끝으로 ‘필결’은 ‘필결논요(筆訣論要)’ ‘잡론(雜論)’ ‘총단(總斷)’ ‘요지(要旨)’로 결론을 내고 있다.
요컨대 ‘필결’은 도학자로서 옥동의 역학(易學)이 서예가이자 비평가였던 그의 이론·역사·실기에 동시에 혼융되어 나온 저작이다. 특히 옥동은 만물의 형성과 변화 원리, 즉 천도(天道)를 글씨의 점획 결구 장법 등의 원리와 동일시하여 주역의 음양배합과 유전(流轉)원리로 해명하여 독자적인 서론을 전개했던 것이다.
이러한 ‘필결’은 신채(神彩)보다 외형 모방에만 급급해온 17세기 당시 조선 서예의 말폐적 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서예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예컨대 옥동은 ‘논고서’에서 조맹부와 한호를 극렬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그가 볼 때 조선에 전래된 이래 근 200년이 지난 송설체는 균정미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유약함과 몰개성으로 흘렀고, 석봉체는 판박이 사자관체로 전락했던 것이다. 특히 ‘필결’은 글씨를 천도에 귀속시켜 독자적 이론으로 해명하여 당시까지 글씨를 문예의 말단으로 간주해 온 사대부들의 인식을 뒤집고 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이동국|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학예사〉
그리고 ‘변정법여이단(辨正法與異端)’에서는 서가정통(書家正統)이라는 표제 아래 왕희지를 정통의 기준으로 설정하고 정자(正字)와 행초 필법의 성쇠와 함께 이단의 근원과 해당 작가를 기술하고 있다. ‘범론서법(汎論書法)’에서는 지필묵 등 서예 도구재료의 중요성, 서예가의 자세 등을 논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이 다음에 오는 ‘평론서가(評論書家)’와 ‘논고서(論古書)’이다. 여기서는 김생 탄연 안평대군 성수침 황기로 양사언 한호 등 우리나라 서가를 단독으로 논함은 물론 이들을 종요 왕희지 우세남 안진경 회소 장욱 조맹부 등의 중국작가와 동일한 반열에 두고 각체를 품평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명·청 교체 이후 조선사회 전반에 충만해진 자존의식의 발로에 다름 아닌 것이다. 끝으로 ‘필결’은 ‘필결논요(筆訣論要)’ ‘잡론(雜論)’ ‘총단(總斷)’ ‘요지(要旨)’로 결론을 내고 있다.
요컨대 ‘필결’은 도학자로서 옥동의 역학(易學)이 서예가이자 비평가였던 그의 이론·역사·실기에 동시에 혼융되어 나온 저작이다. 특히 옥동은 만물의 형성과 변화 원리, 즉 천도(天道)를 글씨의 점획 결구 장법 등의 원리와 동일시하여 주역의 음양배합과 유전(流轉)원리로 해명하여 독자적인 서론을 전개했던 것이다.
이러한 ‘필결’은 신채(神彩)보다 외형 모방에만 급급해온 17세기 당시 조선 서예의 말폐적 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서예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예컨대 옥동은 ‘논고서’에서 조맹부와 한호를 극렬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그가 볼 때 조선에 전래된 이래 근 200년이 지난 송설체는 균정미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유약함과 몰개성으로 흘렀고, 석봉체는 판박이 사자관체로 전락했던 것이다. 특히 ‘필결’은 글씨를 천도에 귀속시켜 독자적 이론으로 해명하여 당시까지 글씨를 문예의 말단으로 간주해 온 사대부들의 인식을 뒤집고 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이동국|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학예사〉
출처 : 나의 사랑 한국한문학
글쓴이 : 인간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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