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열전]조선후기 시대 서풍 동국眞體는 분명 있다
앞서 본 대로 ‘동국진체’는 허전이 옥동 이서의 ‘행장’에서 “동국진체는 이서로부터 시작되어 그 후의 윤두서 윤순 이광사 등은 모두 그 실마리를 이은 자들이다”라고 한 데에서 유래된다. 그러나 이것이 공식화된 것은 이를 근거로 간송미술관 최완수 실장이 ‘한국서예사강’ 논문에서 ‘동국진체의 맥락’을 사용하고부터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고 임창순 선생은 진체(眞體)라는 서체가 없어 이것은 서예용어상 부적절하고, 옥동과 백하가 사승관계가 아님을 들어 ‘동국진체’를 맥락으로 연결하는 것이 말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하였다. 실제 기호남인으로 퇴계 학통을 골수로 이은 옥동과 성혼과 율곡학통 계열을 이은 소론의 백하가 사승관계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임선생의 지적은 옳다.
그러나 최실장의 ‘동국진체’ 설정 또한 해서·초서 등 특정서체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조선 중화를 자처하며 자의식이 팽배한 조선 후기의 일련의 시대서풍의 특질로 사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 또한 설득력이 확보된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서법은 국초에 촉체 중기에 석봉체 후기에 진체로 바뀌었다”는 당시 조귀명의 말마따나 옥동 백하 원교 모두가 왕희지 서법으로의 직접적인 복귀를 공통점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그렇다. 물론 이점에서 작품에서 다르게 대비되는 작가마다의 개성은 별도로 치더라도 ‘동국진체맥락’은 이서나 윤순, 이광사를 통해 당시 서풍이 주도되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글씨에서 ‘동국진체’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최완수 실장 중심의 간송학파는 겸재 정선 그림을 ‘진경산수’로 명명하고, 동시대를 ‘진경시대’로 확장하면서 학계에서는 제3의 논박이 계속되고 있다.
올 7월 성균관대에서 열린 한국사상사학회의 학술대회가 대표적인 예인데, 반대하는 쪽에서는 ‘사상과 예술실천의 도식화를 경계하면서 겸재그림을 낙론계(洛論系) 성리학 사상과 연결시킬 수 없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반면 긍정하는 쪽에서는 ‘김창흡의 백악사단과 겸재의 논쟁 자체가 낙론계 천기론적(天機論的) 사고를 겸재가 공명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라고 재차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또 ‘18세기는 매우 개별적이고 다양한데 진경시대 하나로 당시를 규명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그렇기 때문에 그 가중치에 해당하는 하나의 개념으로 시대를 보는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응수하고 있다.
요컨대 ‘진경’이다 ‘진체’다 라고 할 때 ‘진(眞)’이라는 것이 내면의 참됨은 물론 형상까지 사실과 부합되어야 하고, 관념은 물론 현실까지 참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시대 글씨나 그림의 이념형이나 실천 또한 진(眞)임을 동의한다면 당시 예술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자명해질 것이다.
그러나 최실장의 ‘동국진체’ 설정 또한 해서·초서 등 특정서체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조선 중화를 자처하며 자의식이 팽배한 조선 후기의 일련의 시대서풍의 특질로 사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 또한 설득력이 확보된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서법은 국초에 촉체 중기에 석봉체 후기에 진체로 바뀌었다”는 당시 조귀명의 말마따나 옥동 백하 원교 모두가 왕희지 서법으로의 직접적인 복귀를 공통점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그렇다. 물론 이점에서 작품에서 다르게 대비되는 작가마다의 개성은 별도로 치더라도 ‘동국진체맥락’은 이서나 윤순, 이광사를 통해 당시 서풍이 주도되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글씨에서 ‘동국진체’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최완수 실장 중심의 간송학파는 겸재 정선 그림을 ‘진경산수’로 명명하고, 동시대를 ‘진경시대’로 확장하면서 학계에서는 제3의 논박이 계속되고 있다.
올 7월 성균관대에서 열린 한국사상사학회의 학술대회가 대표적인 예인데, 반대하는 쪽에서는 ‘사상과 예술실천의 도식화를 경계하면서 겸재그림을 낙론계(洛論系) 성리학 사상과 연결시킬 수 없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반면 긍정하는 쪽에서는 ‘김창흡의 백악사단과 겸재의 논쟁 자체가 낙론계 천기론적(天機論的) 사고를 겸재가 공명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라고 재차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또 ‘18세기는 매우 개별적이고 다양한데 진경시대 하나로 당시를 규명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그렇기 때문에 그 가중치에 해당하는 하나의 개념으로 시대를 보는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응수하고 있다.
요컨대 ‘진경’이다 ‘진체’다 라고 할 때 ‘진(眞)’이라는 것이 내면의 참됨은 물론 형상까지 사실과 부합되어야 하고, 관념은 물론 현실까지 참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시대 글씨나 그림의 이념형이나 실천 또한 진(眞)임을 동의한다면 당시 예술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자명해질 것이다.
출처 : 나의 사랑 한국한문학
글쓴이 : 인간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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