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의 명칭은 무엇이 가장 적합할까?
사전적인 의미로 보자면, 기녀(妓女)란 명칭은 크게 나누어 두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첫째는 연회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어 여흥을 돋우는 가기(歌妓) 혹은 무기(舞妓)의 개념으로 쓰인다. 가무기(歌舞妓)는 여기(女妓), 여악(女樂), 예기(藝妓), 성기(聲妓), 해어화(解語花) 등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음악(音樂), 무용(舞踊), 문학(文學) 등 다방면의 교양을 두루 갖춘 예능(藝能) 종사자였다. 둘째는 매음(賣淫)을 업으로 삼는 창기(娼妓)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창기(娼妓)는 창부(娼婦), 창녀(娼女) 등의 명칭으로도 불린다.
기생(妓生)이라는 명칭도 널리 쓰이는데, 이는 중국문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우리식 한자어이다. 기생(妓生)은 창기(娼妓)보다는 가무기(歌舞妓)의 의미가 훨씬 강하게 내포된 개념이다. 구한말에 이르러서는 기녀(妓女)의 수가 폭증하면서 그 등급을 일패(一牌), 이패(二牌), 삼패(三牌)로 구분하였는데, 이 중 일패(一牌)는 기생(妓生)이라 불렸고, 이패(二牌)는 은근자(殷勤者), 삼패(三牌)는 탑앙모리(搭仰謀利)라 불렸다. 은근자(殷勤者)란 남들 몰래 매춘(賣春)을 하는 부류를, 탑앙모리(搭仰謀利)는 매춘 자체만을 업으로 삼는 부류를 일컫는 말이었다. 기녀(妓女)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다양한 가무(歌舞)를 배워 예능인으로 인정받던 기생(妓生)에서 은근자(殷勤者)와 탑앙모리(搭仰謀利)가 분화되어 나왔던 것이다.
기녀(妓女)는 관청에 소속된 관기(官妓)와 창가(娼家)에 소속된 사기(私妓)로 분류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기녀(妓女)란 원칙적으로 관기(官妓)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녀(妓女) 중에는 관기(官妓) 외에 창가(娼家)에 소속된 사기(私妓)도 많았다. 창가(娼家)에서 직접 가무(歌舞)를 가르쳐 기르거나, 또는 관기(官妓)를 거두어들인 경우이다.
기녀(妓女)란 본래 가무(歌舞)의 기예를 배워 익혀 나라에서 필요할 때에 봉사하던 여인을 일컫는 말로 원칙적으로는 관기(官妓)를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제도적으로 관청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신분상으로는 천인에 속했다. 조선시대의 경우 관원(官員)은 관기(官妓)를 간(奸)할 수 없다는 규정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실려 있었으나, 실재로는 관기(官妓)들이 지방의 수령(守令)이나 막료(幕僚)들의 수청(守廳)을 들기도 하였다. 관기(官妓) 제도는 조선조 말까지 존속되었으며, 그 소생의 딸은 수모법(隨母法)에 따라 어머니의 신역(身役)을 계승하도록 되어 있었다. 기녀(妓女)의 활동기간은 15세부터 50세인데 어린 기녀를 동기(童妓), 나이 든 기녀를 노기(老妓), 노기보다 나이가 많아 퇴역한 기녀를 퇴기(退妓)라고 불렀다.
관기(官妓)는 또 경기(京妓)와 지방기(地方妓)로 나뉘어졌으며, 지방기(地方妓) 중에서도 자색이 뛰어나고 재주가 있으면 경기(京妓)로 뽑히곤 하였다. 경기(京妓) 중에는 약방기생(藥房妓生)이니 상방기생(尙房妓生)이니 하는 것도 있다. 조선시대에 관기(官妓)를 둔 목적이 주로 여악(女樂)과 의침(醫針)에 있었으며, 따라서 관기는 의녀(醫女)로서도 활동하여 약방기생(藥房妓生)이라 하였고, 상방(尙房)에서 침구(鍼灸)나 재봉(裁縫)의 역할도 담당하여 상방기생(尙房妓生)이란 이름이 생겼다. 그러나 약방기생(藥房妓生)이나 상방기생(尙房妓生)은 본연의 업무 외에도 각종 연회에서 가무(歌舞)를 맡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기녀(妓女)는 비록 최하층 천민(賤民)의 신세였지만 가무(歌舞)와 시서(詩書)에도 능한 교양인이 많았다. 경기(京妓)의 경우 보통 15세가 되어 기적(妓籍)에 오른 뒤 장악원(掌樂院)에 소속되어 기녀(妓女)로서의 소양을 학습한다. 교육과목은 가무(歌舞), 서화(書?), 대화법, 식사예절 등 타인을 대하거나 즐겁게 할 때 필요한 것이었다. 특히 이들이 상대하는 부류가 왕족(王族)을 포함하여 학문적 수준이 매우 높은 사대부(士大夫)들이었으므로 예의범절은 물론 시문(詩文)에도 능해야 했다. 조선시대의 기녀 중에서는 관기(官妓)뿐만 아니라 일반 창가(娼家)에 속한 사기(私妓) 중에서도 명기(名妓)가 수없이 배출되었다. 송도(松都)의 창기(娼妓) 황진이(黃眞伊)나 부안(扶安)의 창기(娼妓) 계랑(桂娘)이 모두 그러한 예이다.
기녀(妓女)와 유사한 어휘에는 기생(妓生), 여기(女妓), 가기(歌妓), 무기(舞妓), 여악(女樂), 예기(藝妓), 성기(聲妓), 해어화(解語花), 창기(娼妓), 창부(娼婦), 창녀(娼女) 등의 수많은 명칭이 있다. 이 중 우리는 ‘기녀(妓女)'라는 명칭을 대표적 어휘로 사용하고자 한다.
기생(妓生)이라는 말은 중국에서는 전혀 쓰이지 않던 우리식 한자어이다. ‘기(妓)'자에 ‘생(生)'이 결합된 말일 터이지만, 그 어원을 고증하기는 어렵다. 다만 남성 세계에 ‘서생(書生)'이 있듯 여성 세계에는 기생(妓生)이 있었던 것이니, 그 의미가 자못 고상하게 들린다. 우리 선조들의 기녀(妓女)에 대한 태도를 엿보게 해주는 말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는 기생(妓生)이라는 어휘의 개념이 그리 고상한 의미로 인식되지는 않는 듯하다. 기생(妓生)이라고 하면 곧잘 한말(韓末) 이후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성황을 이루었던 요정(料亭)에서 기거하던 기녀(妓女)들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여기(女妓)라는 어휘는 기녀(妓女)와 거의 동일한 뜻을 지녔지만,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말이 아니어서 기녀(妓女)라는 어휘의 대표성에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가기(歌妓), 무기(舞妓), 여악(女樂), 예기(藝妓), 성기(聲妓) 등의 어휘는 기녀(妓女)의 전문 예능인으로서의 성격을 웅변하는 개념이다. 노랫소리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면 가기(歌妓) 혹은 성기(聲妓)로 칭송을 받고, 춤사위가 아름다우면 무기(舞妓)로 칭송을 받고, 가무(歌舞)에 두루 능통하면 여악(女樂), 또는 예기(藝妓)로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어휘들은 기녀(妓女)의 기능적 성격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개념이다. 기녀(妓女) 가운데 가기(歌妓)도 있고 성기(聲妓)도 있고 무기(舞妓)도 있고 여악(女樂)도 있고 예기(藝妓)도 있는 것이다. 이 개념들을 통칭하는 어휘로는 기녀(妓女)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해어화(解語花)란 말은 자못 운치가 있다. 해어화(解語花)란 ‘말을 알아듣는 꽃'으로, 후에는 미인(美人)을 뜻하는 의미로도 쓰였다. 따뜻한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고 한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의 태액지(太液池)란 연못의 연꽃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행렬이 연꽃을 감상하기 위해 이 연못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종의 눈에는 그 어느 것도 옆에 앉아 있는 양귀비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주위의 궁녀를 돌아보면서 "여기 있는 연꽃도 해어화(解語花)보다는 아름답지 않구나."라고 하였다고 한다. 원래 해어화(解語花)란 천하절색 양귀비를 두고 한 말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그들의 시와 풍류를 알아듣는다 하여 기녀(妓女)들을 해어화(解語花)라고 하였다. 그러나 선비들과 더불어 시문(詩文)을 수창할 수 있는 문학적 재주를 지녔다고 하더라도, 양귀비와 같은 절색의 기녀(妓女)가 아니라면 해어화(解語花)의 칭송을 들을 수가 없겠다.
창기(娼妓), 창부(娼婦), 창녀(娼女) 등의 어휘에는 예능 종사자로서의 개념이 중심을 이루는 기녀(妓女)란 의미 외에, 몸을 파는 여자라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관기(官妓)란 말은 있어도 ‘관창(官娼)'이란 말은 없는 데서 보듯, 창기(娼妓)는 민간에서 사사로이 운영하는 창가(娼家)에 소속된 사기(私妓)이다. 창가(娼家)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곳인지라, 경우에 따라서는 매춘(賣春)도 성행하였을 것이 당연하였던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창녀(娼女)란 말은 통용되고 있으며, 이 어휘는 기녀(妓女)의 개념이 완전히 거세된 채 오로지 매춘녀(賣春女)란 의미로 고정되고 말았다. 물론 창기(娼妓) 출신 중에서도 황진이(黃眞伊)나 계랑(桂娘) 같은 명기(名妓)가 무수히 배출되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일반적인 창기(娼妓)와는 격을 달리하는 예기(藝妓)들이었다. 그녀들의 전문 예능인으로서의 성격에 훼손이 없으려면, 역시 기녀(妓女)라는 보다 보편적인 명칭을 붙여주는 것이 제격일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기생이란 말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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