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가야-김해를 보다 1. 구지봉
龜旨歌
龜何龜何 (구하구하)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수기현야)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 (약불현야) 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번작이끽야) 구워서 먹으리.
- <삼국유사> -
(영대왕가비 : 대왕을 맞는 노래비) : 구지봉의 입구에 있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시가중의 하나로 소개되는 구지가.
이는 한 나라의 개국과 - 여섯 나라라고도 할 수 있는-
신화의 시대와 인간의 시대를 구분하는 한 사건을 노래하고 있다.
흔히들 가야연맹체라고 했던 6가야의 왕들은 범상하지 않은 과정을 통하여 출생한다.
하늘로부터 알의 형태로 바로 이곳 구지봉에 탄강(誕降)하는 것이다.
알타이계 민족들의 탄강신화인 천손계 신화, 그리고 난생신화가 결합된
형태의 신화 속에 가야가 개국되는 순간인 것이다.
보리밭 위로 내려다 본 구지봉...
지금은 40년이 되어 버린 고교시절의 고문 시간에 들었던 구지봉은
나의 상상 속에서는 환웅이 강림했다는 백두나 태백은 아니더라도
제법 그럴 듯한 높이의 산이어야 했다.
아무리 가야의 최후는 지리멸렬의 멸망이었다고는 해도 시작은
그럴 듯한 신화로 장식이 될 만큼 화려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개국신화와 연결되는 중요한 모티브를 공유하는,
아니, 모티브를 공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일본 건국 초기의 주인공들이
바로 이 고대 국가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 나로서는
당연히 큰 산위에 성인들이 강림해야 된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언젠가 그 상상 속의 구지봉이 실제로는 시가지 내의 낮은 동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굳이 이 곳을 가볼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해왔었다.
오래 전 김해 예안고분을 지도를 보고 찾으러 왔다가 허탕을 치고 간 후로는
더군다나 다시 올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것이 이 금관 가야의 본거지였다.
그동안 TV를 통해서, 또 다른 경로를 통해서 대성동 고분등의 발굴과 연구 결과 ,
이 곳이 고대 철의 산지, 철기문화의 본 고장으로서 엄청난 교역의 중심지였다는 사실,
기마민족의 뛰어난 군사력을 지닌 집단이 이곳을 근거지로 삼았다는 사실들을 들으면서도
이곳에 오지 않았던 것은 단순히 시간이 없다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관심은 있으되 흥미를 잃었던 것일 게다.
그러나 이곳을 내가 왔다.
구지봉을 직접 대면하고자 이곳에 온 것이다.
김수로왕의 흔적과 허황옥의 유적들을 보고자 이 곳에 온 것이다.
아무리 이 곳엘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해도 어차피 한 번은 와야 될 곳...
이 곳, 김해... 가락국...
왼 쪽의 낮으막한 동산이 구지봉이고 중간의 잔디 구획 부분 바로 오른 쪽의 숲속에
김수로왕의 왕후인 허 황옥의 능이 있다.
구지봉의 입구, 노래비가 있는 곳.-철쭉이 만개해 있다.
구지봉의 정상부... 신화대로라면 이곳이 6 가야의 왕들이 알의 형태로 하늘로부터 내려온 곳이다.
AD42년의 일이니 지금으로부터 1966년 전의 이야기이다.
거북의 머리를 상징한다는 바위.
한석봉이 썼다는 이 글은 내 생각에는 석봉이 의도적으로 자기의 호를
넣은 것 으로 보인다. 순서를 거꾸로 보면...
고인돌 앞의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김해의 일부...
왼쪽 편으로 저층 아파트 왼쪽의 녹지가 김수로왕릉 구역이고
가운데 하얀 건물의 뒤, 아파트 앞의 낮은 구릉이 대성동 고분구역이다.
하늘과 땅을 연결했던 이곳을 내려다보는 곳, 산 꼭대기에 김해천문대가 세워져서
현대의 하늘과 땅의 연결고리가 되어 있는 것 또한 우연한 일이 아니다.
김수로왕릉, 허왕후릉
고분들...
순서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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