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건판 궁궐사진 8. 덕수궁
덕수궁...
조선의 궁궐 중의 막내 격인 궁궐...
우리나라 근대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곳...
서울의 한 복판에서 우리 민족의 굴욕와 오욕의 역사를 직접 접했던 곳...
우리나라 개화 시기의 여러가지 역사적인 건축물들...
그리고 그 주변의...
그 시대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아라사 (러시아)공사관(아관)...
개화기의 선각자들을 길러냈던 배재, 이화...
그리고 정동교회...
한 때 법조계의 중심이었던 곳...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의 대명사였던 덕수궁 돌담길...
서울 시민의 품으로 돌아간 서울 시청광장...
오늘을 살아가는 서울 시민들에게는 이 곳이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지 모른다.
도심속의 고궁...
덕수궁은 올해도 봄을 맞는다...
그리고 경복궁에 이어 유리건판의 이야기는 덕수궁으로 이어진다...
유리건판에 남은 덕수궁의 사진은 우리에게 많은 화두를 던져준다.
우리의 역사, 곰곰이 되씹어보면서 지금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다.
덕수궁 각 건물의 소개는 덕수궁 공식 홈페이지
http://www.deoksugung.go.kr/ 에서 인용한다.
덕수궁의 정문 : 대한문(大漢門)
규모:29평 연혁:덕수궁(德壽宮)의 정문으로 1904년(광무 8년)에 소실되고 1906년 중건된 목조로
소실전에는 대안문(大安門)이던 것을 1906년 7월 15일 중건시 대한문이라 개칭하였다.
서울시 도시계획에 의한 제2차 도로확장 공사시 담장만을 궁내로 이전하여 도로상의 한복판에 분리 폐쇄되어 있다가
1970년 8월 21일 현 위치로 이설 공사를 착공하여 1971년 1월 2일 준공을 보았다. 2005년에 보수공사를 하였다.
유리건판에서 보는 사진과 현재의 사진은 차이가 없지만 위치는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중화문. (中化門) : 보물 제 819호
규모:25.3평 , 연혁:중화전의 정문으로 1902년 창건된 목조건물이며 (당초에는 앞에 흠명문과 동편에 선춘문이 있었다.)
중화전 : 덕수궁의 정전이다... 보물 제 819호
규모:125평 연혁:1902년 광무(光武) 6년에 창건된 목조 건물로 화재로 손실되었다가 1906년 광무(光武) 10년에 중건됨.
고종황제께서 1897년 광무원년에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이어하신 후부터 재위 기간동안 정전으로 사용.
본래는 증층건물이었으나 광무(光武)8년(1904년) 4월 14일 화재로 소실된 후 현재의 단층건물로 중건됨.
앞뜰에 조회, 기타의식이 있을 때 문무백관의 위치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좌우에 있다. 정문으로 중화문이 있다
유리건판의 사진은 중화전 앞에 나무가 여러 그루 심어져 있는 것을 보여준다.
궁궐 담장 내에 나무를 심으면 곤할 곤(困)이 된다하여 금기시 되었으나
일제 강점기 시기에는 여러 군데에 나무를 심어 놓았다고 한다.
중화전 : 유리건판의 깨진 부분이 선명하다.
광명문(光明門)
규모:10평 연혁:1897년(건양 3년)에 창건 1904년(光武 8년)에 소실되었다가 중건된 목조건물로
당초 함녕전의 정문이었으나 1938년 미술관 개관시 흥천사종과 보루각 자격루를 진열하기 위하여 현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준명당(浚堂)
규모:83.9평(즉조당 포함)
연혁:이 건물은 창건년대는 미상이나 고종(高宗) 광무 원년(1897년)에 중건된 것으로 추측되는 목조건물로
즉조당과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고종황제께서 한때 이 집에서 거처하셨으나 귀빈엄씨가 돌아간 뒤에 고종은 함녕전으로 이어하였다.
정면 6칸, 측면 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며 높은 기단위에 세워졌다.
좌우 툇간에 쪽마루를 두고있다. 1916년 4월에는 덕혜옹주 교육을 위해 이곳에 유치원을 개설하기도 하였다.
즉조당(卽祚堂)
규모:83.9평(준명당 포함) 연혁:준명당(俊堂)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는 이 건물도
15대 광해군(光海君)과 16대 인조대왕이 이곳에 즉위하였으며,
고종 광무 8년(1904년) 화재로 손실된 것을 그해에 다시 석어당, 함녕전과 같이 복원 중건한 것이다.
고종의 후비인 순헌귀비 엄씨께서 1907년부터 1911년 7월 승하할때 때까지 이곳에서 거처하셨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석어당(昔御堂)
규모:46.3평 연혁: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고 1904년 광무(光武) 8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동년에 중건하였음.
덕수궁의 유일한 목조중층 건물로 선조대왕(宣祖大王)께서 임진왜란 중 의주로 몽진하셨다가 환도한 후 이곳에서 거처하셨고
1608년 2월 선조가 승하한 곳으로 추정되기도한다.
인목대비가 광해군에 의해 유폐되었던 곳이기도 하며, 인조반정이 성공한 뒤
광해군(光海君)을 석어당 뜰 아래 꿇어앉히고 인목대비가 죄를 책한 곳 이기도하다.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집"으로 아래층은 정면 8칸, 측면 4칸이며
상층은 정면 6칸, 측면 1칸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구여당(九如堂)
지금은 없어진 2층 건물인 구여당이다.
함녕전 뒷편에 있었다고 하는데 건축양식이 좀 독특하다.
정관헌(靜觀軒)
규모:77.7평 연혁:1900년 (광무 4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서양식 건물은
고종황제께서 다과회를 개최하고 음악을 감상하시던 곳이며 한때 이곳에 태조(太祖)의 어진(御眞)을 봉안하였다.
설계는 사바찐이 하였으며,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5칸으로 내·외진으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내진 공간 위에는 팔작지붕이 덮여있고 외진공간은 차양칸처럼 된 특이한 형태이다.
지붕에는 동판을이었으며, 외진에 두른 철제 난간에는 사슴, 소나무, 당초, 박쥐등 전통문양을 넣었다.
함녕전(咸寧殿)
규모:97평 연혁:1897년 (광무 1년) 창건된 목조건물.
1904년 광무(光武) 8년 화재로 불타버려 화재직후에 중건.
고종황제의 침전으로서 광무(光武) 8년(1904년) 4월 14일 화재로 소실된 것을 동년 12월에 복원 중건하였다.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가 이 침전에서 승하하셨다.
덕홍전(德弘殿)
규모:44평 연혁:함녕전을 침전으로 사용할때 일반 빈객들을 접견하기 위하여 1906년 건립한 후 1911년에 개조하였다.
용도는 주로 외국사신이나, 대신들을 만나던 접견실로 쓰였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4칸이며 겹처마 팔작지붕의 단층 건물이다.
측면에는 좌우 툇간이 있어서 전체의 평면은 정사각형에 가깝다.
이건물 주위에는 행각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행각만이 함녕전 남행각에 연접되어있다.
덕수궁은 중세의 조선과 근대의 조선이 공존하는 마당이다.
전통건축과 근대 서양 건축이 동시에 남아 있는 곳이다.
석조전(石造殿)
규모:1,245.9평 연혁:조선시대 궁중건물 중에서는 최초로 유럽풍의 석조로 건립된 건물이며
영국인 기사 "하딩"의 건물설계와 영국인 "로벨"의 내부 장치로 영국인 "데빗손" 감독하에
1900년 광무(光武) 4년에 기공되어 1909년 융희(隆熙) 3년에 준공되었으며,
특별한 건물명칭은 없이 "석조전"으로만 전해 온다.
제26대 고종(高宗)은 이곳을 고관대신과 외국 사절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1933년 미술품을 진열하기 위하여 건물 내부를 일부 수리하여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기 이전까지 현대미술품을 진열하였으며
1946년~1948년까지 미·소 공동위원회가 사용했고
1948년~1950년 동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유엔한국위원단이 이곳을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시 건물일부가 파괴되어 1955년 육군공병단에 의해 수리되었으며
그후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사용하기도하였다.
1954년 국립박물관으로 처음 사용
미술관
규모:1,037평 연혁:1938년 3월 일인의 손에 의해 건축하여 이왕가 박물관 소장품을 진열하던 곳.
석조 건물로 1936년 8월 21일 기공하여 1938년 6월 5일 준공 됨.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쓰이다가 현재는덕수궁 미술관으로 사용중임.
석조전 앞 분수정원
건극문
용강문
그리고 몇 장의 사진들...
오른 쪽부터 석어당, 즉조당, 통로, 준명당
건물 뒷면 : 왼쪽이 즉조당 오른 쪽이 준명당...
즉조당 뒷면
석어당...
그리고 비운의 왕가...
그리고 이젠 볼 수 없는 덕수궁의 옛 모습들..
유리건판사진과 덕수궁..
다음은 창경궁으로 계속됩니다...
파빌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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