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소
나는 고등학교 때 부터 포은 정몽주선생이 이방원의 회유를 받았을 때 읊었던 시, 단심가를 많이 불렀
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 이 노래를 많이 부르셨기 때문에 나도 그 분을 따라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 했다, 어떤 때는 너 댓 번씩 계속 부르며 눈물을 흘리면서 내 결심을 틀켜 쥐곤 하
였다. 나는 이번에 포은 선생님의 묘소를 찾아 가면서도 차 안에서 단심가를 몇 번 불렀다. 옆에 동행
한 친구가 같이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한 번 더 부르려다 그만두었다. 보통사람들은 단심가의 가사는
알아도 곡을 붙여 노래로 부르는 것을 모른다. 그러나 애천, 애인, 애국을 주창하고 조국통일과 평화
세계 건설을 위해 애쓰며 어려운 시련이 닥칠 때마다 이 단심가를 불러온 동지들이 있다.
나는 정씨가 아니다. 그러나 포은 선생은 우리 민족의 스승이자 우리들의 조상이다. 위대한 정신으로
오랜 역사를 통해 우릴 일께워 주고 게신다. 오늘은 언젠가는 꼭 한 번 참배를 해야겠다고 늘 생각해
온 뜻 깊은 날이 되었다.
입구에 서 있는 안내판
용인 능원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안내 간판이 있는 곳으로 부터 400여 미터를 가면 왼쪽으로 포은 정
몽주선생의 묘역이 보인다. 입구 오른쪽에는 안내판이 있고, 그 뒤에는 포은선생의 증손주사위인 저
헌 이석형선생의 신도비와 연안이씨 비석공원이 있다.
안내판 맞은편에 서 있는 비각
묘소 입구 오른 쪽에는 안내판 이 있고, 그 맞은편에 포은 정몽주선생의 신도비와 비각이 있다. 그러
나 안내표지판이 없어서 하마터면 이 귀한 곳을 그냥 지나칠번 했다.
신도비는 송시열이 찬했고, 글씨는 현종 때의 명신 김수증이, 전액은 김수항이 써서 1696년에 건립하
였다. 여기에는 정몽주의 충절과 높은 학식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참고로 부연하면 포은 정몽주선생은 경북 영천 임고면 출신인데, 영천에는 충신이자 성리학 대가인
포은을 배향하기 위해 조선 명종 8년(1553) 향내 유림들이 창건한 사액서원(왕이 현판과 노비, 서적
등을 하사한 서원)인 '임고서원'이 있다.
정몽주 선생 묘역 안내도
홍살문과 묘소 부속 건물들
묘소를 향해 들어가는 길 앞에는 홍살문과 경모사(敬慕舍), 모현당(慕賢堂), 영모재(永慕齋) 등 기와
집 건물이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영모재(永慕齋) 앞 마당
사진상에는 보이지 않으나 왼쪽에 영모재(永慕齋)가 있고, 멀리 앞ㅉ똑에 묘소가 보인다. 넓은 마당
은 주차장 표시가 되어있진 않으나 평소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입구에서 영모재 사이에 현재 밭
으로 있는 지역이 2차 성역화 사업이 이루어 지면 별도의 주차장이 조성될 예정인듯 하다.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시설물 중 가장 왼쪽에 보이는 흰씩은 선죽교를 본따 만든 다리이고, 그 오른쪽
은 단심가 비석, 정몽주선생 어머니가 지은 백로가비(白鷺歌碑), 포은 정몽주 선생 묘소 안내판이다.
나무 하나 사이를 두고 맨 오른쪽에 있는 것은 포은 선생의 증손부(증손주사위)저헌 이석형선생 묘소
안내판이다.
단심가비(丹心歌碑)
정몽주선생 어머니가 지은 백로가비(白鷺歌碑),
두 비석 뒤에 새겨 놓은 건립 내역
묘역으로 들어가는 선죽교 모형의 다리
경기도 지방문화재 제1호
포은 정몽주선생 묘소 표지석
묘소 표지석 쪽에서 촬영한 묘소 전경
가운데 앞쪽에 있는 큰 나무를 기준으로 왼쪽이 포은 정몽주선생의 묘소이고, 오른쪽이 포은선생의
증손부(증손녀 사위)인 저헌 이석형선생의 묘소이다. 작은 골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모셔 놓았다.
포은 정몽주 선생 묘소
근접 촬영한 포은선생 묘소
묘소 앞의 석물들
묘소 앞 우측 석상
건너편 저헌 이석형선생 묘소에 후손들이 와서 제초 작업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묘소 앞 좌측 석상
뒤쪽에 보이는 묘소는 모두 최근 몇년사이에 전국에 흩어져 있는 포은 선생 후손들
중 역사상 출중한 업적을 세운 분들의 묘소를 이장해 와 모셨다고 한다.
포은선생이 묘소 가 있는 문수산(文秀山) 일대에는 10여 기가 넘는 묘소가 잘 조성
되어 있다.
묘소를 에워 싸고 있는 담장 모습
포은선생을 향해 경배하는 듯한 왼편의 소나무들
묘소 뒷쪽에서 건너다 본 전경
포은 선생의 묘소는 앞리 확트이고 'ㄷ'자를 옆으로 뉘어 놓은 형태로 담을 잘 쌓아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건너편 앞산에는 3학사중 한 분인 해주오씨 오달재선생의 묘소가 있다고 한다.
위에서 바라 본 아름다운 자연경관
올라올 때는 우선 묘소 참배부터 해야되겠다고 생각하여 주위를 둘러볼 겨를이 없었는데 묘소에 올
라와 내려 보니 주위경관이 수려하고 아름다운 연못도 눈에 띄였다.
연꽃이 예쁘게 핀 연못
유난히 아름다워 크로즈업한 연꽃
- 부속 건물들 소개-
나는 묘역을 돌아 보고 내려와서 영모재(永慕齋)를 들어가려고 하니 대문은 굳게 닫쳐 있고, 대문 앞
에는 책상위에 다녀간 사람들 이름을 남기는 방명록만 하나 달랑 놓여 있었다. 난 그곳에다 이름 주소
만 쓴 게 아니라 반드시 문화해설사나 안내원이 있어야 한다는 건의문을 써 놓고 왔다.
입장할 때와 반대 순으로 가장 안쪽에 있는 건물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밖에서 본 영모재(永慕齋)
영모재(永慕齋) 편액
측면에서 본 영모재(永慕齋)
포은 정몽주선생 영정
모현당(慕賢堂),
영모재(永慕齋) 옆에 있으며 제를 지낼 때 비가 올 때면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종친 일가들이 오면
이곳에서 자고 가지도 한다고 한다.
모현당(慕賢堂) 편액
경모사(敬慕舍)
경모사(敬慕舍)는 현재 관리사무소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정씨가 아닌 관리인이 기거를 하며 경내를
맡아 관리를 하고 있는 곳이다.
경모사(敬慕舍) 편액
모범 화장실
홍살문을 통과하면 맨 먼저 만나는 것이 왼쪽에 있는 화장실인데 들어가며 보니 "모범 화장실"
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남여 별실 화장실 문은 방문을 들어가듯 문살이 전통적으로 아
름답게 되어 있고 �끗이 관리되고 있어 신선감을 주었다.
[취재후기]
포은 정몽주선생의 묘소는 주위경관이 아름답고 정성스럽게 관리가 되고 있어 좋았다. 이곳을 찾는이들에게 무언 중에도 많은 느낌을 줄 것 같다. 아쉬운 점은 안내원이 한 사람도 없고, 자료하나 구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한산 목은 이색선생 영당을 방문했을 때는 포은 정몽주선생의 후손문화해 설사가 상주를 하며 설명해 주었는데, 그와 완전히 비교가 되었다.
굳게 잠겨 있는 관리인의 집 대문을 두드리니 사람이 나왔다. 그에게 물어 보니 이곳에 대해 안내를 받으려면 용인시나 용인문화원에 미리 전화하여 안내를 받는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안타까웠다.
[찾아가는길]
용인 수지에서 대지고개, 성남 분당에서 태재고개를 넘어 능원리
로 진입하여 광주방면을 향해가다보면 이정표가 나온다.
동림리 "한국등잔박물관"간판 뒤쪽으로 작게 만들어 꼽아 놓은
포은 정몽주, 저헌 이석형 선생 묘소 및 신도비 안내 표지판을 따
라 400여 미터 들어가면 된다.
주변지도
'역사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한일풍류 바람난 부채 (한국측 옥전 진말숙) (0) | 2009.07.18 |
---|---|
[스크랩] 한일풍류 바람난 부채 (일본측 고바야시 후미꼬 작품) (0) | 2009.07.18 |
[스크랩] 저헌 이석형(樗軒 李石亨)의 묘 (0) | 2009.07.18 |
[스크랩] 良洞마을의 이색적인 亭子 心水亭 (0) | 2009.07.18 |
[스크랩] [서예가 열전](3) 고려초 삼필 -이환추·구족달·장단열 (0) | 2009.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