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일본은 왜 국호 '한국'을 없애버렸나? 정지환(2009.06.24)
[역사탐험] 대한민국 국호의 비밀을 찾아서
[ 관련기사] 김진명 인터뷰 "대한민국 국호의 비밀, < 시경 > 속에 있다"
국호 대한민국의 기원과 유래를 추적한 베스트셀러 소설 < 천년의 금서 > 는 한 작가의 '상식적 의문'에서 출발했다. 그러니까 벌써 5~6년 전의 일이다. <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의 작가 김진명은 어느 날 문득 속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 봤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국호(國號)인 대한민국(大韓民國)에 들어 있는 한(韓)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상식적 의문에서 제기된 작가의 자문(自問)은 작품 속에서도 그대로 구현된 바 있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인 고대사 전공 역사학자 박기일 교수의 다음과 같은 자성(自省)으로 이어진 것이다.
"명색이 역사학자이자 국사편찬위원이고 대학에서 선생질을 하고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이 왜 대한민국인지, 한국인이 왜 한국인인지, 한반도가 왜 한반도인지, 도대체 그 한(韓)이라는 글자가 어디서 왔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 천년의 금서 > 77쪽)
국호 대한민국의 기원과 유래를 찾아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의 유래와 관련해 우리가 알고 있는 교과서 수준의 계통도(系統圖)는 이렇다.
대한민국(1948년, 제헌국회) ← 대한민국(1919년, 임시정부) ← 대한제국(1897년, 고종황제)
그러니까 대한제국(大韓帝國)에서 '제(帝)'를 '민(民)'으로 바꾼 것이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그렇다면 조선(朝鮮)의 26대 국왕 고종은 왜 국호를 한국(韓國)으로 바꿨을까? 물론 사료에는 "삼한(三韓)을 잇는다"(고종실록)는 대목이 등장한다고 한다. 하지만 김진명은 도리어 그 대목에서 커다란 모순을 발견했다.
"과거 역사를 보면 대다수 나라들은 새로운 국명을 지을 때마다 화려한 과거를 계승하려 했습니다. 실제로 왕건의 고려는 만주를 호령했던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지어졌고, 이성계의 조선은 단군이 통치하던 고조선(실제 명칭은 그냥 조선이지만 < 삼국유사 > 의 저자 일연이 그렇게 명명했다-기자 주)을 잇겠다는 뜻이었죠. 그런데 삼한은 마한, 진한, 변한을 가리킵니다. 우리 학생들이 지금 배우고 있는 국사 교과서에 따르면, 삼한은 한반도 남부에 위치해 있었던 작은 나라들이지요."
이 대목에서 김진명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시만 해도 두만강과 압록강을 국경으로 두고 있었던 조선이 고작 한반도 남단에 움츠리고 있었던 약소국인 삼한을 잇고자 국호를 바꿨을까요? 더욱이 고종은 당시 외세의 억압과 침략이라는 불온한 기운을 떨쳐버리고 조선의 기개를 펼치기 위해 칭제건원(稱帝建元)까지 했던 터였습니다. 어쩌면 삼한은 그 전에 이미 한(韓)이라는 웅혼한 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문득 들었던 그 '상식적 의문'이 나로 하여금 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김진명은 < 천년의 금서 > 를 통해서, 한반도 일대와 중국 대륙에 세워진 한민족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BC 3세기부터 중국 고서에 등장)이 아니라 기원전 9세기 무렵의 한(韓)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작가는 한후(韓候)가 다스렸던 이 한이라는 나라가 한신(韓信)의 조국인 한(韓)이라는 나라(BC 4세기 무렵 개국)와 전혀 별개의 나라라는 사실도 규명했다. 참고로 한신은 시(始)황제가 통치했던 진(秦)나라가 망한 뒤 초(楚)나라의 항우와 한(漢)나라의 유방이 천하 패권을 놓고 다툴 때 유방을 도왔던 인물이다.
한편 김진명은 < 천년의 금서 > 를 위해 천문학적 근거(천문학자 박창범 교수의 오성취루 재연 실험)라는 과학적 자료와 서지학적 근거( < 시경 > 한혁편, < 잠부론 > )라는 객관적 자료까지 제시했다.
-지금 얘기한 것들이 모두 사실인가?
"직접 확인해 보면 될 것 아닌가."
인터뷰 막바지에 기자와 작가가 나눴던 문답이다. 기자는 인터뷰 기사를 작성한 뒤 국회도서관을 찾았다. 지금부터 '국회도서관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자와 함께 역사의 타임머신을 타고 탐험을 떠나보자.
이승만 "대한민국은 '동양의 한 고대국'의 부활"
국회도서관을 찾은 기자는 우선 대한민국 국호의 유래부터 추적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韓)과 연관되거나 혹은 한을 연상시키는 대목을 찾아봤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국호 대한민국을 제정한 법률 주체는 제헌국회이다. 1948년 5월 10일 남한 전역에서 200명의 제헌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총선거가 실시됐다. 제헌국회가 임기 2년의 의원들을 대상으로 첫 회의를 소집한 것은 5월 31일. 이날 의장에 이승만, 부의장에 신익희·김동원이 선출됐다.
이날부터 거의 매일 회의가 열렸는데, 국호가 대한민국으로 결정된 것은 제헌국회 22차 회의가 열렸던 7월 1일이다. 신익희 부의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서상일 의원이 "국호 문제가 결정돼야 헌법 전문과 1조도 결정할 수 있다"면서 국호 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어서 "헌법기초위원회가 제안한 국호 대한민국을 원안대로 통과시키자"는 이승만 의원의 제안에 대한 거수 표결이 실시됐다. 재석의원 188명 중 찬성 163명, 반대 2명으로 가결됐다.
1948년 8월 15일. 옛 조선총독부 청사였던 중앙청 석조건물 앞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오전 11시 20분에 시작된 행사에는 맥아더 연합군 사령관을 비롯한 해외사절단, 정부 각료와 시민들이 대거 참석했다. 중앙청 건물 전면에 내걸린 현수막에는 큼직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축하식'
이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취임 선서를 마친 뒤 이렇게 연설을 시작했다.
"오늘에 거행하는 이 식은 우리의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민국(民國)이 새로 탄생한 것을 겸해 경축하는 것입니다. 이날에 동양의 한 고대국인 대한민국 정부가 회복되어서 40여 년을 두고 바라며 꿈꾸며 투쟁해 온 결실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국민에게 공식 선포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연설 내용 중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새로운 출발을 '동양의 한 고대국'의 부활로 규정한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더욱이 그는 제헌헌법 전문(前文)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이라는 대목을 포함시킬 것을 주장해 관철시키기도 했다.
"한(韓)이란 이름은 우리의 고유한 나라 이름"
이승만도 연설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제헌국회의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대한민국'을 계승하고 있다(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제정). 나아가 '임시정부의 대한민국'이 '고종황제의 대한제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고종황제의 대한제국'은 과연 무엇을 역사적 연원으로 삼았을까?
"우리나라는 곧 삼한(三韓)의 땅인데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고종황제가 1897년 10월 11일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하면서 신하들에게 했던 말이다. 고종황제는 이틀 후인 13일에는 반조문(頒詔文)을 발표하도록 명했다.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백성에게 널리 알리는 조서'를 뜻하는 반조문에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단군(檀君)과 기자(箕子) 이후로 강토가 분리되어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고는 서로 패권을 다투어 오다가 고려(高麗) 때에 이르러서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통합하였으니 이것이 삼한(三韓)을 통합한 것이다."
이 두 개의 구절이 역사학계에서도 이미 정설로 굳어진 것으로 알려진 '삼한정통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의 뿌리인 한(韓)이라는 명칭이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언급된 것은 삼한이기에 이론(異論)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김진명이 제기했던, "당시만 해도 두만강과 압록강을 국경으로 두고 있었던 조선이 고작 한반도 남단에 움츠리고 있었던 약소국인 삼한을 잇고자 국호를 바꿨을까"라는 '상식적 의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기자는 < 조선왕조실록 > 고종편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1897년 10월 11일자 기록에서 기존의 '삼한정통론'과 정면으로 배치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대목을 발견했다. 실제로 고종황제는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고 언급한 뒤 곧바로 이런 말을 했다.
"또한 매번 각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朝鮮)'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고종황제가 봤던 외국의 문헌에는 '삼한 이전에 존재했던' 조선을 한으로 불렀던 기록이 '많았다'는 말이다. 한편 고종은 이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大韓)'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한민족이 주도했던 고대국가를 외국에선 이미 한(韓)이라 불렀기에 널리 알리지 않아도 모두 다 알고 있을 것이란 말이다. 대신 중 특진관 조병세도 이렇게 화답했다.
"각 나라의 사람들이 조선(朝鮮)을 한(韓)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상서로운 조짐이 옛날부터 싹터서 바로 천명이 새로워진 오늘날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고종황제와 신하들의 19세기 말엽 역사인식에 따르면, 삼한 이전에도 한은 엄연히 존재했던 셈이다.
"우리나라는 지역으로 연(燕)나라에 가까웠다"
또한 한민족의 고대국가가 차지했던 강역이 요하와 중국 동북부에까지 미쳤다는 인식이 < 조선왕조실록 > 정조편에도 등장한다. 지중추부사 홍양호가 1799(정조 23년) 12월 21일 < 흥왕조승 > 4편을 정조에게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동방에 나라가 있게 된 것은 상고 시대로부터인데 단군이 맨 먼저 나오시고 기자께서 동쪽으로 건너오셨습니다. 그때 이후로 삼한(三韓)으로 나누어지고 구이(九夷)로 흩어져 있다가 신라와 고려 시대에 들어와 비로소 하나로 섞여 살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홍양호는 동방에 있던 한민족 국가의 강역이 "지역적으로는 연(燕)나라, 제(齊)나라와 가까웠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정조는 "조상의 공덕을 드러내고 선인의 아름다움을 드날린 것으로 < 시경(詩經) > 과 < 서경(書經) > 보다 더 자세한 것은 없다"고 답한다.
이러한 기록들은 공교롭게도 김진명이 < 천년의 금서 > 에서 서지학의 근거로 제시했던 내용이나 고서(古書)와 일맥상통한다.
먼저 소설의 도입부와 마지막 부분에서 대반전의 모티프로 활용된 < 시경 > 의 '한혁(韓奕)'편을 보자. 작가는 주나라에서 춘추시대 중기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서의 내용 중에서 2가지 대목을 소설 속에서 형상화했는데, 다음과 같다.
(1) "한후(韓侯)는 맥(貊)족을 복속시키고 그 땅의 제후가 되었다."
(2) "한후가 수도에 들자 선왕(宣王)은 경계를 논하였으며 조카딸을 시켜 밤 시중을 들게 하였다."
김진명은 < 천년의 금서 > 에서 주나라 선왕이 환대한 이 한후의 한(韓)나라가 대한민국 국호에 등장하는 한(韓)의 뿌리라고 주장했다.
국회도서관에서 기자는 모두 4종의 < 시경 > 번역본을 찾았다. 그 중의 하나인 < 신완역판 시경 > (명문당)의 역저자인 김학주는 한혁편에 등장하는 한나라가 "전국시대의 한나라와는 다르다"면서 한혁편의 성격을 이렇게 해설했다.
"한나라 제후가 즉위하고 바로 내조하여 천자의 명을 받고 돌아갈 때 시인이 이 시를 지어 전송하였다. < 모시서 > 에서는 윤길보가 선왕을 기린 작품이라 하였으나 근거가 없다. 선왕보다는 이 시의 내용은 거의 전편이 한후를 기린 것이라 봄이 좋을 것이다."
한편 < 시경 > 한혁편에는 '보피한성 연사소완(普彼韓城 燕師所完)'이라는 구절도 들어 있다. "커다란 한(韓)나라 성은 연(燕)나라 백성들이 완성시킨 것"이라는 뜻인데, "지역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연(燕)나라, 제(齊)나라와 가까웠다"는 정조 시대 관리 홍양호가 했던 증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잠부론 "위만에게 망하여 바다를 건너갔다"
작가가 두 번째 모티프로 삼은 < 잠부론(潛父論) > 은 후한의 대학자 왕부(AD 85~162)가 지은 문집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의 '씨성(氏姓)'편에 시경에서 위대한 제후로 묘사했던 한후가 다시 등장한다.
한후가 선왕을 방문한 지 거의 1천여 년이 흐른 뒤의 일이니, 왕부가 얼마나 방대한 고사와 지식을 섭렵했던 학자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후한의 3대 명저인 < 잠부론 > 에서 변방과 이민족의 침입에 대한 국방정책, 성씨(姓氏)의 분화에 대한 학술적 연구 등 아주 다양한 지식과 견해를 쏟아냈다.
국회도서관에서 기자는 1종의 < 잠부론 > 번역본을 구할 수 있었다. 건국대학교 출판부가 2004년 출판한 이 책의 번역자는 임동석이다. 이 책에서 한후와 관련한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주 선왕 때에 역시 한후라는 자가 있었으며, 그 땅은 연나라에 가까웠다. 그래서 < 시경 > 에 이렇게 노래하였다. '크고 큰 저 한성이여 연나라 백성이 쌓았도다' 그 뒤의 한서 역시 성이 한씨로 위만에 멸망하여 바다 쪽으로 옮겨 갔다."
< 잠부론 > 에 적혀 있는 한자 원문은 다음과 같다.
"昔周宣王亦有韓侯 其國也近燕, 故詩云 '普彼韓城 燕師所完' 其後韓西亦姓韓 爲魏滿所伐 遷居海中"
< 천년의 금서 > 에서 작가에 의해 형상화된 "한후는 연나라 부근에 있었다"거나 "차츰 한의 서쪽에서도 한씨 성을 갖게 되었는데 그 후에는 위만에게 망하여 바다를 건너갔다" 등의 내용이 역사적 근거를 분명히 가지고 기술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기후한서역성한(其後韓西亦姓韓)과 천거해중(遷居海中)에 대한 임동석과 김진명의 해석이 다를 뿐이다. 임동석은 각각 "그 뒤의 한서 역시 성이 한씨로"와 "바다 쪽으로 옮겨 갔다"고 풀이한 반면 김진명은 각각 "차츰 한의 서쪽에서도 한씨 성을 갖게 되었는데"와 "바다를 건너갔다"로 해석했다.
소설이 현실보다 더 진실에 가까울 때도 있다
소설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그것은 소설을 그대로 믿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로는 현실이 소설보다 더 극적일 때도 있다. 역으로 소설이 현실보다 더 진실에 가까울 때도 있다. < 조선왕조실록 > 에서 국호와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평소에는 별 의식 없이 그냥 지나쳐 버렸던,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을 때 들었던 생각도 이와 무관치 않다.
대일본국 즉 일본(日本)이 대한제국 즉 한국(韓國)의 국권을 강탈한 1910년 8월 29일. 일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칙령 제318호를 발동했다.
"한국(韓國)의 국호(國號)를 고쳐 지금부터 조선(朝鮮)이라 칭한다."
그렇다. 한일합병 당시 일제는 국호 한국을 조선으로 고쳤다. 일각에서 "일반 인민의 감정에 미치는 바 적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음에도 그대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일제는 일본 헌법의 국토 범위를 기존의 "혼슈, 큐슈, 시코쿠, 홋카이도 및 타이완과 그 부속도서"에서 "혼슈, 큐슈, 시코쿠, 홋카이도 및 조선(한국이 아니라-기자 주), 타이완과 그 부속도서"로 고쳤다.
한일합병을 계기로 한국이란 국호의 사용은 강제로 금지되고 말았다. 일제가 국권을 빼앗은 한국에 총독부를 설치하면서 '한국총독부'가 아니라 '조선총독부'라고 명명한 근거도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제는 왜 한국이란 국호를 없애버렸을까?
국호의 비밀을 찾아 떠난 역사탐험의 기로에서 새로운 의문의 이정표를 만난 셈이다. 기자는 국회도서관 서고를 오랫동안 떠날 수 없었다.
"대한민국 국호의 비밀, <시경> 속에 있다"
[인터뷰] <천년의 금서> 가지고 돌아온 김진명 / 정지환 (2009.06.08)
김진명이 돌아왔다.
오랜 침묵을 깨고 귀환한 작가 김진명의 손에는 묵직한 문제작 <천년의 금서>(새움출판사)가 들려 있었다. "꼬박 180분 동안 앉아서 끝까지 다 읽었다!" "다 읽을 때까지 결코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다수의 누리꾼과 블로거들이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쏟아낸 찬사였다.
그리고 단 일주일 만에 <천년의 금서>는 베스트셀러 4위(예스24 기준)로 뛰어올랐다. 불황으로 고전하는 최근 출판계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놀라운 기록이었다. "그동안 몇몇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용두사미식 결말은 더 이상 없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서술 때문에 술술 읽혔다"는 한 블로거의 평가는 빈말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천년의 금서>를 작가의 16년 전 첫 작품이자 출세작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연결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천년의 금서>의 주인공 이정서에게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주인공 이용후가 연상된다는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사회자의 평가도 있었다. 실제로 이정서의 직업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거느린 소설의 주인공' 이용후와 같은 핵물리학자로 설정돼 있다.
하지만 주인공 이정서가 소설 속에서 활약한 공간은 과학이나 정치가 아니라 '역사'의 영역이었다. 자살(타살로 위장된)한 물리학 교수 김미진과 실종된 역사학 교수 한은원의 친구인 이정서는 두 사람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명의 유래에 얽힌 비밀을 파헤친다.
그러니까 국호인 대한민국에 들어있는 '한(韓)'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라는 '상식적이지만 본질적인 질문'이 <천년의 금서>의 모티프이다.
"삼한은 한(韓)이라는 웅혼한 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닐까?"
"대한민국!"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전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어 목 놓아 외쳤던 구호였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는 일상 속에서 한국, 한국인, 한반도 등의 단어를 너무나 자주 그리고 쉽게 쓰고 있다.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의 기원과 유래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렇게 심각한 고민을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작가는 <천년의 금서>를 통해 아프게 따져 묻고 있다.
1948년 제헌의회에서 제정된 국호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유래를 추적하면 또 하나의 대한민국(1919년, 임시정부)과 대한제국(1897년, 고종황제)이 등장한다. 대한제국(大韓帝國)에서 '제(帝)'를 '민(民)'으로 바꾼 것이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고종은 왜 국명을 조선(朝鮮)에서 한국(韓國)으로 바꿨을까? 물론 사료에는 "삼한(三韓)을 잇는다"(고종실록)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김진명은 여기서 커다란 모순을 발견했다고 한다.
"과거 역사를 보면 대다수 나라들은 새로운 국명을 지을 때마다 화려한 과거를 계승하려 했다. 실제로 왕건의 고려는 만주를 호령했던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지어졌고, 이성계의 조선은 단군이 통치하던 고조선(실제 명칭은 그냥 조선)을 잇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삼한은 마한·진한·변한을 가리킨다. 우리 학생들이 지금 배우고 있는 국사 교과서에 따르면, 삼한은 한반도 남부에 위치해 있었던 작은 나라들이다."
이 대목에서 김진명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두만강과 압록강을 국경으로 두고 있었던 조선이 고작 한반도 남단에 움츠리고 있던 삼한을 잇고자 국호를 바꿨을까? 더욱이 고종은 당시 외세의 억압을 떨치고 조선의 기개를 펼치기 위해 칭제건원(稱帝建元)까지 했던 터였다. 어쩌면 삼한은 그전에 이미 한(韓)이라는 웅혼한 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문득 들었던 그 '상식적 의문'이 나로 하여금 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
하지만 김진명은 자신의 작품이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고 해서 '과거지향'이나 '복고주의'로 해석될 가능성을 경계했다. 선입견에 의해서 '국수주의'나 '국가주의'로 규정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도리어 그는 <천년의 금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민주주의적 가치의 후퇴, 북한의 핵실험과 극한 대결로 치닫는 남북관계 등 산적해 있는 현실적 과제들을 풀 수 있는 열쇠와 지렛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진명과의 인터뷰는 지난 3일 오후 2시부터 평창동에 위치한 출판사 사무실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됐다. 고대사를 다룬 작품 이야기를 하기 전에 현재의 사안에 대한 작가의 생각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가장 더티한 지도자의 정권에서 가장 깨끗한 지도자가 부패혐의... 아이러니"
- 봉하마을에 조문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알아보는 사람들은 없었나?
"일반 조문객들 사이에 섞여서 조용히 배례하고 돌아왔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 끝없이 이어지는 조문 행렬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역사에 대하여 생각해 봤다. 역사는 지배층의 위로부터의 규정과 민초의 아래로부터의 희망이 뒤섞이고 엮어지는 과정이다. 그날 민초들은 말없이 흐느꼈지만 거기서 과거 민주화 대항쟁과 맞먹는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 '인간 노무현'을 직접 만난 적은 있었나?
"같은 부산 출신이라 공·사석에서 몇 차례 인사를 나눌 수 있었지만 깊은 대화를 한 적은 없다. 처음에는 그냥 편하고 가식 없는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영남 출신으로 호남색이 강한 정당에서 어렵게 정치 하는 것을 보면서 '외로운 늑대' 이미지가 연상되기도 했다."
- '대통령 노무현'의 죽음이 우리에게 던진 사회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나?
"그를 따르던 사람과 적대적으로 대하던 사람보다 중간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이 중요한데, 그들의 정신적 충격이 아주 컸을 것이다. 양비론과 냉소주의에 빠져 있던 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감동과 안타까움의 크기와 깊이가 이후 한국 사회 변화에 의미 있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 김동길·조갑제·지만원·변희재 등의 발언은 들었나?
"한마디로 미친 ×들이다. 논리도 편협하거니와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 논평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
- 이명박·검찰·언론의 합작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라는 일각의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측면이 있다. 특히 '피의사실공표죄'를 스스로 어겼던 검찰의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사실 나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 부동산 투기 의혹의 진상을 조사해 달라고 검찰에 진정을 한 바 있다. 지도자의 부동산 투기는 오히려 독재보다 더 더티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장 더티한 지도자의 정권에서 가장 깨끗한 지도자가 부패혐의로 조사받았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기자는 2007년 1월 28일, 2월 28일 두 차례에 걸쳐 김진명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나비야 청산가자>를 발표했던 당시 그는 "손학규 한나라당 탈당은 결코 '소설 같은 얘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얼마 후에 그의 예언(?)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한편, 그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예비 후보를 향해 다음과 같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정치지도자가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은 밀수보다 더 나쁘고, 살인보다 더 무서운 악랄한 짓이다. (이명박 비리의혹을 옹호하는 지지자들에게) 단순히 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다른 것은 보지 않겠다는 것은 독재를 부르는 행위이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략) 이명박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거나 진심으로 반성하려는 자세가 없다."
- 대중적인 정치소설을 써왔던 작가로서 앞으로의 정국을 전망한다면?
"전직 대통령의 서거라는 엄청난 사건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이고 혁명적인 변화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나라는 큰 문제 없이 굴러갈 것이다. 그래도 현직 대통령이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그는 참 정치를 모르고 알려 하지도 않는다.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도리어 내가 주목하는 것은 따로 있다."
- 그게 뭔가?
"힘(권력) 앞에서 나약했던 지식인들이 변화될 가능성이다. 사실 이번 사건이 그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부끄러움을 깨닫게 했다. 앞으로 손해와 위험을 무릅쓰고 실천과 행동에 나서고 싸우는, 안중근과 체 게바라 같은 지식인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체질을 서서히, 차츰차츰 하지만 거대하게 바꾸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 남북관계가 갈수록 대결국면으로 치닫고 있는데?
"그렇다. 하지만 이번 미사일 발사는 결과적으로 북한 정권이 남한 정권을 살려준 셈이 됐다. 진보 진영은 북한을 원망하는 기미를 보이는데, 북한 지도층은 남한의 사고틀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좌와 우를 떠나서 완전히 다른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라면 사재기 현상이 없어졌다. 거꾸로 안보 불감증을 탓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정국이 얼어붙고, 감정이 고조되고, 대결 구도로 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대책도 없이 무조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도리어 좋지 않다. 정치적 목적 하에 안보 불안을 조장했던 과거의 학습 효과 때문에 남한 시민은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제시했던, 남과 북이 종국에는 같이 가야 할 공동운명체라는 발상의 전환도 일정하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 정치권 일각의 핵 무장론, 어떻게 보나?
"가소롭다. 너무나 생각 없는, 철부지 같은 발상이다."
- 작가 자신이 소설에서 남북 합작 핵 무장을 제시했던 당사자인데, 그렇게 말할 수 있나?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독도 영유권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언제든지 독도를 빼앗으려 한다. 나는 일본의 독도 침공에 대비하기 위한 핵 무장을, 그것도 남북 합작으로 하자고 제시했다. 북핵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도 핵을 개발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정치인들은 북한을 겨냥한 핵무장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그것은 민족을 향해 핵을 쏘겠다는 반역사적 행위로 공멸을 재촉할 뿐이다. 민족에 대한 애정이 없는 반사적인 감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그렇다면 북한의 핵 개발은 어떤가?
"같은 논리의 연장으로 나는 북한의 핵 개발도 반대한다. 자국 주민의 기아와 아사에도 불구하고 정권 유지 차원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현대적 의미에서 국가가 더 이상 아니다. 따라서 남한 일각의 핵 무장론은 그런 북한과 같은 수준이 되자는, 아주 유치한 발상이다."
-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특수성이 있다. 그래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애를 먹은 것 아닌가. 대북관이 뚜렷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가 갈팡질팡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장 큰 문제는 민족적 시각과 철학의 깊이가 없다는 점이다. 동족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고, 그렇다고 날카로운 대북전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남북관계 교착화'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들 정도이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정부에 돌리는 것도 책임 있는 자세는 아니다."
- 그게 무슨 말인가?
"정부의 책임은 겉으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반북 세력에게 있다. 그들은 북한 정권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과 어떤 대화와 타협도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 정부가 그들과 코드를 맞추고 있다 보니, 두 세력이 갈라서지 않는 한 어떤 유연한 대북 정책도 기대할 수 없다."
-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없나?
"사실 더 무거운 책임은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통 국민에게 있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반북 세력의 대북 정책에 동조한다. 그들의 의식과 무의식의 기저에는 '나도 살기 어려운데 왜 가난한 북한에 퍼주느냐'는 생각이 깔려 있다.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마저 설문조사에서 '왜 가난한 북한과 통일해서 우리의 부담을 늘리려 하느냐'며 통일에 대해 노골적인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통 사람들의 저변에 깔려 있는 이러한 '근시안적 이기주의'의 잡초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민족과 국가에 대한 애국심'의 나무를 심지 못한다면 남북관계의 평화적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 민족과 국가, 혹은 역사와 민중 등의 단어를 사용하면 무조건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애국심이 약한 사회는 비겁한 사회가 된다. '나 혼자만 잘살면 되지 왜 나라에 충성하고, 타인에게까지 신경을 써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민족과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바로 그런 나라에서는 '부동산 투기꾼'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 국가나 애국심에 대한 거부 반응은 진보 진영에서 도리어 더 강한 측면이 있는데?
"과거에 독재정권이 이용해 먹었기 때문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보 진영의 이념과 철학에서 국가나 애국심의 개념을 아예 삭제하거나 나아가 적대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이다. 개인의 자유, 정의, 휴머니즘은 물론 소중한 가치이지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공간과 대상이 일차적으로는 국가와 민족이기 때문이다."
"국호의 유래조차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나?"
자연스럽게 화제를 <천년의 금서> 이야기로 돌렸다. 김진명은 학교의 역사 공부에서 나타나는 '이상한 현상'을 지적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 공부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고대사를 신화로 처리했기 때문에 나타난 불가피한 현상인데, 결과적으로 '통합'의 역사보다는 '분열'의 역사부터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말은 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신라와 백제에서 경상도와 전라도를, 고구려에서 북한을 연상한다. 우리처럼 민족적 수난을 겪었던 폴란드 같은 나라들을 그나마 끝까지 견디게 만들었던 것은 '역사'였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어리석게도 우리는 역사를 거꾸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고시 과목에서 국사가 제외되는 등 현실에서도 역사는 철저히 천대받고 있다."
- <천년의 금서>를 구상한 시점은?
"5~6년 전부터였다. 당시부터 왜 우리가 한국인이라 불리는지, 왜 우리나라 국호를 한국으로 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물어봤지만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정말 이건 문제라고 생각했고, 심층 추적을 시작했다."
- 주인공 이정서 박사와 한은원 교수가 잃어버린 고대사 3000년을 찾아내는 과정이 '소설'이 아니라 '진짜'였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일부 독자가 보이기도 했는데?
"나는 지금까지 상상력만 가지고 소설을 쓰지 않았다. 언제나 객관적 근거와 자료를 확보한 뒤에야 집필을 시작했다. 광개토대왕비의 보이지 않는 세 글자의 해석을 둘러싸고 수백편의 논문이 나오고 대다수 학자들이 '석회도말론'에 발목이 잡혀 있을 때 마지막 글자가 '동(東)' 자라는 것을 밝혀낸 것도 나였다. 명성황후의 비극적 최후를 밝혀낸 '에조보고서' 전문을 일본에서 발굴해 낸 것도 나였다.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은데, 이것들만 별도로 모아서 책이라도 한 권 내야 할 것 같다."
- 역사학자들의 반응이나 평가는 없었나?
"역사학자도 아닌 사람이 왜 나서느냐, 김진명이 내놓은 주장은 틀렸다, 사실 나는 이런 반응이라도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논쟁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역사학자, 특히 고대사 전공자들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본다. 국호의 유래조차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나 되나?"
- 천문학자 박창범 교수의 실험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는데?
"주류 사학계가 위서로 규정한 <단군세기>는 고려 말기 이암이 썼다. 그런데 이 책에 '13세 단군 흘달 재위 49년(서기로 하면 BC 1734년)에 오성취루(五星聚婁: 화성·수성·목성·금성·토성이 양 별자리에 한 줄로 모였다) 현상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박 교수가 천문학 실험을 해보니 BC 1733년에 실제로 그런 현상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장구한 역사에서 1년이라는 차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같은 고서에 등장하는 '남해조수퇴삼척'이라는 자연현상도 박 교수의 실험을 통해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 과학적 실험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규명했다는 것인데, 그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무언인가?
"중국 역사서에 최초로 고조선이 등장한 것이 BC 200년 무렵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BC 1734년은 가공할 만한 기록이다. 오성취루 등의 천문 현상을 기록할 정도로 당시 한반도에 문명국가가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주류 사학계가 <단군세기>, <환단고기> 등 우리 고서에 나타난 일부 오류를 들어서 무조건 위서로 몰아 왔는데, (과학실험에서 보았듯이) 앞으로는 일부 기록은 사실일 수도 있다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 천문학적 근거에 이어서 서지학적 근거도 제시했다. 작품에는 중국의 수많은 고서가 등장하는데,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천년의 금서로 묘사한 <씨성본결>은 가상의 저서이지만 <시경(詩經)>과 <잠부론(潛夫論)>의 기록은 사실 그대로이다. 실제로 <시경> '한혁(韓奕)'편에는 '한후(韓候)가 수도에 들자 선왕(宣王)은 경계를 논하였으며 조카딸을 시켜 밤 시중을 들게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한후가 바로 한국인의 조상이다."
- 한(韓)은 중국에도 존재했던 나라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시황제가 통치했던 진(秦)나라가 망하고 초(楚)나라의 항우와 한(漢)나라의 유방이 천하 패권을 놓고 다툴 때 유방을 도왔던 명장 한신(韓信)이 바로 진나라에 망한 한(韓)나라의 후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맞다. 한신의 조상 나라인 한(韓)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먼저 한을 국호로 쓴 나라이다. 실제로 이 나라는 춘추전국시대 전국칠웅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이 한나라의 건국 시점은 BC 403년이다. 하지만 한혁편에 나오는 선왕은 춘추전국시대보다 한참 앞선 시대인 주(周)나라의 왕인데, 재위 기간이 BC 827~782년이다. 그러니까 한후가 그보다 400년이나 앞선 시대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두 나라는 전혀 별개이다."
- <잠부론>에선 어떤 기록을 찾았나?
"이 책은 후한(後漢)의 대학자 왕부가 지은 문집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의 씨성(氏姓)편에 한후가 다시 등장한다. 실제로 '한후는 연나라 부근에 있었다'거나 '그 후에 위만에게 망하여 바다를 건너갔다' 등의 대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위만이라면 고조선과 관련 있는 인물이 아닌가?
"그렇다. 여기서 바다는 황해가 틀림없다고 본다."
-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공백으로 남아 있던 고대사 부분이 복원될 수 있다는 말이 되는데?
"그렇다. 우리 조상은 BC 1733년 오성취루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약 1천년 후인 BC 827~782년에 한후는 주나라 선왕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1천년의 시간이 흐른 뒤 후한의 왕부는 <잠부론> 씨성편에서 한후의 후손이 위만에게 망하여 바다를 건너갔다고 기록했다. 작품 속에서 천년의 금서로 묘사한 <씨성본결>은 바로 이 '씨성'편을 모델로 설정한 것이니,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 지금 얘기한 것들이 모두 사실인가?
"직접 확인해 보면 될 것 아닌가."
기자는 인터뷰 기사를 작성한 뒤 국회도서관을 찾았다. 국회도서관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지면 관계상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자.
천년의 금서 [양장본] 저자 김진명 | 출판사 새움
작가 김진명이 파헤친 대韓민국의 비밀!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인 김진명이 오랜 침묵 끝에 펴낸 소설『천년의 금서』. 고대사 문제를 새롭게 조명한 또 하나의 문제작이다. 대한민국 역사의 비밀이 한 권의 금서 속에서 펼쳐진다.
핵융합 발전의 획기적인 발전을 주도했던 ETER의 물리학자 이정서는 대통령의 초청으로 프랑스에서 귀국한다. 그는 대통령 초청만찬에서 공적을 치하 받지만 기쁨도 잠시, 며칠 후 친구의 충격적인 죽음을 접하게 된다. 경찰 수사에서 친구의 죽음은 자살로 판정되지만 정서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정서는 사건을 파고들다 다른 친구인 한은원 교수까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둘은 韓이라는 하나의 실마리로 연결되는데….
우리나라의 한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한국인으로 살면서 우리는 이 물음에 쉽게 답하지 못한다. 조금 배웠다는 사람은 삼한이라고 대답하는 게 고작이다. 그러나 이 삼한이 또 어디서 왔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한이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의문에 사로잡혔던 작가 김진명이 이 세상에 남아있는 모든 기록들을 필생 동안 추적한 끝에 찾아낸 ‘韓’의 실체.
그리고 미국의 NASA 프로그램에서 증명되는 천문학적 실체에 대한 진실.
서지학과 천문학, 작가 김진명의 결합이 밝혀낸 대한민국 국호의 비밀. 그가 오랜 침묵 끝에 또다시 한국인의 정신을 강타한다.
봉인된 <천년의 금서>를 펼치는 순간, 대한민국 비밀의 판도라 상자가 열린다.
김진명이 파헤친 국호 '한(韓)'의 비밀 [연합뉴스 | 2009.05.21]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한반도'의 소설가 김진명(52) 씨가 이번에는 대한민국 국호에 담긴 비밀을 소설 속에서 파헤쳤다.
김씨의 신작 '천년의 금서'(새움 펴냄,328쪽. 1만800원)는 고대사 문제를 조명한 추리소설이다.
소설은 사서삼경에 노끈을 묶어 목을 맨 상태로 숨진 여교수 김미진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핵융합 원자로 제작과 실험을 하는 국제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물리학자 이정서는 귀국 후 친구 미진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의문을 품는다.
그러던 중 미진의 컴퓨터에서 '역사 기록의 천문학적 진실'이라는 제목의 파일이 발견되고, 미진과 관련 연구를 함께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은원 교수는 행방이 묘연해진다.
소설은 이정서가 고대의 여러 기록들을 토대로 미진의 죽음과 우리 고대사에 얽힌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작가는 서문에서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국호인 한이 어디서 왔을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혀 갖가지 기록들을 찾아 헤매왔다"며 "기원전 7세기 무렵 편찬된 사서삼경 중의 한 권에서 우리 조상 한후라는 왕을 찾아낼 수 있었고 후한의 대학자 왕부가 이 한후를 분명 우리의 조상이라고 확인한 저작과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뻥 뚫린 상태로 있던 우리의 고대사에 고조선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한 나라의 확고부동한 실체가 드러난 것"이라며 "이 책이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는 데 이바지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中동북공정 비웃는 김진명式 역사복원 [헤럴드경제] 2009-05-21
천년의 금서/김진명/새움
대한민국의 근원은 어디인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보였던 작가 김진명의 애국 본능이 다시 살아났다.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 김진명이 내놓은 신작소설 ‘천년의 금서’(새움)는 철저하고 방대한 사료분석을 통한 현실감과 픽션을 넘나드는 밀도높은 긴장으로 단숨에 읽힌다. 속도감 있는 문체와 면밀한 구성 등 작가 특유의 이야기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국호인 한이 어디서 왔을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혀 한이라는 글자를 담고 있는 이 세상의 갖가지 오래된 기록들을 찾아 헤맸다”는 그는 특히 중국 문헌 하나에서 실마리를 찾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기원전 7세기 무렵 편찬된 사서삼경 중의 한 권에서 우리 조상 한후(韓侯)라는 왕을 찾아내고 후한의 대학자 왕부가 이 한후를 우리의 조상이라고 한 ‘씨성본결’을 찾아나선 것이다. 또 오행이 일직선상에 놓이는 기원전 18세기 천문학적 현상을 기록한 내용과 과학적 실험도 실체 규명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소설은 한 여교수가 책장의 사서삼경에 목매달아 죽은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타살인지 자살인지 의문을 파고드는 가운데 ETER의 물리학자 이정서를 만나면서 의문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특히 ‘초한고’에 등장하는 “한중(漢中)에 든 후 일부 유학자들은 특히 동이(東夷)를 동국(東國)이라 부르기도 했다”는 한 줄에서 시작한 한(韓)의 연원 찾아가기는 흥미롭고 짜릿하다.
‘천년의 금서’는 다름 아닌 왕부의 ‘씨성본결’을 말한다. 성씨의 유래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민족의 이주 역사를 담고 있는 이 책을 중국대륙에서는 통일제국이 일어설 때마다 탄압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슬쩍 끼어넣었다. 기껏해야 고조선에서 시작하는 우리의 역사를 복원하려는 작가의 깊은 애정이 소설 밑바닥을 적시고 있다.
김진명 신작 ‘천년의 금서’… 고대사 비밀 추적 한국 연원 밝힌다 [국민일보] 2009-05-22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한반도' '코리아닷컴' 등을 쓴 작가 김진명(52)이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연원을 파헤치는 추리소설을 펴냈다.
신작 '천년의 금서'(새움)는 한 물리학자가 친구의 사망사건을 추적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 고대사의 비밀과 대한민국 국호의 연원을 밝혀낸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소설은 여교수 김미진이 서울 명륜동 자신의 집 서재에서 사서삼경에 목을 매 숨진 상태로 발견되는 사건에서 출발한다. 국제단체에서 근무하다 귀국한 물리학자 이정서는 옛 친구인 미진의 괴이한 죽음에 의문을 품게 된다. 미진의 컴퓨터에서 '역사 기록의 천문학적 진실'이라는 제목의 파일을 발견하고 고대의 여러 기록을 토대로 미진의 죽음과 우리 고대사에 얽힌 비밀의 실마리를 찾아 나간다.
작가는 소설 서문에서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국호인 한(韓)이 어디서 왔을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혀 '한'이라는 글자를 담고 있는 이 세상의 갖가지 오래된 기록들을 찾아 헤매 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국호 대한민국이 유래한 한은 기원전 9세기 무렵 유력한 기록에 나오지만 우리는 우리 고대국가가 기원전 3세기 무렵 존재했던 고조선이라고만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일본인들이 그어놓은 금을 한 발짝도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연원을 고조선 이전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이 소설을 쓴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추적결과, 기원전 7세기 무렵 편찬된 사서삼경 중의 한 권에서 우리의 조상 한후(韓侯)라는 왕을 찾아낼 수 있었고 후한의 대학자 왕부가 한후를 분명 우리의 조상이라고 확인한 저작과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뻥 뚫린 상태로 있던 우리의 고대사에 고조선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한 나라의 확고부동한 실체가 등장한 것"이라며 "이 책이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는 데 이바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女교수 의문의 자살로 시작된 추적 [동아일보] 2009-05-23
◇천년의 금서/김진명 지음/328쪽·1만800원·새움
종로경찰서로 한 여교수가 목을 맨 채 죽었다는 신고가 들어온다. 목을 맸다면 자살일 확률이 높은데 이상한 점이 있다. 책장의 사서삼경에 목을 맨 채 앉아서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타살인지 자살인지 의문이다. 사건을 접한 물리학자 이정서는 동료 김미진 교수의 죽음과 비슷한 시기에 다른 동료인 한은원 교수가 행방불명 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소설가 김진명 씨가 발표한 신작 장편소설 ‘천년의 금서’는 대한민국(大韓民國)이란 국호에서 ‘한(韓)’이 과연 어디에서 유래됐을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핵융합 원자로 제작과 실험을 하는 국제단체에서 일하는 이정서는 미진의 컴퓨터에서 ‘역사 기록의 천문학적 진실’이란 파일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이 연구를 함께한 은원 역시 미진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에서 이 사건을 쫓아가게 된다.
소설은 김미진 교수가 죽게 된 비밀을 추적하는 한편 우리나라 국호인 한(韓)이 통념적으로 알고 있던 ‘삼한’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기원전 7세기 무렵 한후(韓侯)라는 왕으로부터 유래됐다는 사실을 고서와 천문학 실험 등의 자료를 통해 밝혀 간다.
〈천년의 금서〉[한겨레] 2009.05.24
핵융합 원자로 제작과 실험을 하는 국제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물리학자 이정서가 옛 친구인 미진이 사서삼경에 노끈을 묶어 목을 맨 상태로 숨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정서는 미진의 컴퓨터에서 '역사 기록의 천문학적 진실'이라는 제목의 파일을 발견하고 미진의 죽음에 얽힌 우리 고대사의 비밀을 풀어나간다. 김진명 지음/새움·1만800원.
소설 ‘천년의 금서’(김진명 지음, 새움) [스포츠칸] 2009.05.28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반도’의 작가 김진명의 신작. 7세기께 편찬된 사서삼경의 기록을 토대로 대한민국 국호의 비밀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우리의 고대사에서 고조선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한 나라의 실체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미국의 NASA 프로그램에서 증명되는 천문학적 실체에 대한 진실도 파헤치고 있다. 328쪽, 1만800원.
대한민국의 `韓'은 어디서 왔을까? [강원일보] 2009-05-30
김진명 장편소설, 국호의 비밀을 그린 `천년의 금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반도'의 작가 김진명이 대한민국 국호의 비밀을 그린 `천년의 금서'를 최근 펴냈다. 대한민국의 한(韓)은 어디서 왔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김진명 작가의 이 책은 고대사 문제를 새롭게 조명한 또 하나의 문제작이다.
작가는 고조선보다 이전에 존재한 나라의 실체를 이야기하며 미국의 NASA 프로그램에서 증명되는 천문학적 실체에 대한 진실을 파헤친다.
핵융합 발전의 획기적인 발전을 주도했던 ETER의 물리학자 이정서는 대통령의 초청으로 프랑스에서 귀국한다. 그는 대통령 초청만찬에서 공적을 치하받지만 기쁨도 잠시, 며칠 후 친구의 충격적인 죽음을 접하게 된다. 경찰 수사에서 친구의 죽음은 자살로 판명되지만 정서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정서는 사건을 파고들다 다른 친구인 한은원 교수까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둘은 韓이라는 하나의 실마리로 연결된다.
천년의 금서(김진명 지음) [대전일보] 2009.05.30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반도’ 등의 작가 김진명 씨가 우리나라의 연원을 파헤치는 추리소설을 펴냈다. 한 물리학자가 친구의 사망사건을 추적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 고대사의 비밀과 대한민국 국호의 연원을 밝혀내는데….<새움, 1만800원>
천년의 금서(326쪽, 1만원) [매일신문] 2009-06-03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한(韓)은 어디에 기원할까? 한국인으로 살지만 이 물음에 쉽게 답하지 못한다. 조금 배웠다는 사람들도 고작 삼한이라고 대답하는 데 그친다. 그렇다면 삼한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현실과 픽션을 넘나들며 우리 사회의 첨예한 미스터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해온 작가 김진명이 이번에는 한(韓)의 실체를 추적했다.
조선이라는 이름이 기록상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기원전 3세기 무렵이다. 그러나 한(韓)이라는 국호는 기원전 9세기 무렵부터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중화사상과 일제 식민사관에 짓눌려온 우리는 기원전 3세기 이전을 거슬러 우리의 뿌리를 찾는 것을 스스로 부담스러워 한다.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고조선이 존재했었다고 두루뭉술하게 말할 뿐이다.
김진명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온갖 고서적을 뒤지던 그에게 역사학자 윤내현 교수는 중국 문헌을 뒤질 것을 조언한다. 추적의 결과는 놀라웠다. 기원전 7세기 무렵 편찬된 사서삼경 중의 한 권에서 우리의 조상 한후(韓侯)라는 왕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여기에다 최첨단의 천문학까지 동원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프로그램을 통해 한(韓)의 천문학적인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는데….
고대사에 숨겨진 '대한민국' 국호의 비밀은? [노컷뉴스 | 2009.06.05]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반도'의 작가 김진명이 이번에는 대한민국 국호의 비밀을 파헤친 신작 추리소설 ' 천년의 금서'를 내놓았다.
우리의 국호인 한(韓)의 기원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오랜시간 이 질문에 의문을 품어온 김진명이 소설 '천년의 금서'를 통해 대한민국 국호의 비밀을 밝혀냈다.
소설 첫 머리 사서삼경에 목을 매 숨진 한 여교수의 자살. 소설은 친구의 죽음에 의문을 품게 된, ETER의 물리학자인 이정서가 고대 문헌을 토대로 여교수의 죽음과 우리 고대사에 얽힌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김진명은 "기원전 7세기 무렵 편찬된 사서삼경 중의 한 권에서 우리의 조상 '한후'라는 왕을 찾아낼 수 있었다.
후한의 대학자 왕부가 이 한후를 분명 우리의 조상이라고 확인한 저작과도 만날 수 있었다"며 "뻥 뚫린 상태로 있던 우리 고대사에 고조선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한 나라의 확고부동한 실체가 등장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현실과 픽션을 넘나들며 시대의 미스터리를 통찰해 온 그이기에 이번 작품이 더욱 흥미롭다.
한국 고대사 비밀 다룬 `천년의 금서` 펴낸 소설가 김진명 [매일경제 | 2009.06.17]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국호인 한(韓)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했어요. 어떤 자료를 찾아봐도 그와 관련된 내용이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기원전 9세기 경에 쓰여진 시경(詩經)에서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했어요. 한후(韓侯)라는 왕이 중국 주나라를 방문했다는 기록이었습니다. 또 중국 후한의 대학자 왕부가 이 '한후'를 동쪽나라의 왕, 즉 우리 조상이라고 쓴 저작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한반도' 등의 작가 김진명 씨(51)가 이번에는 한국 고대사에 도전했다. 우리나라 국호의 연원을 파헤치는 소설 '천년의 금서'(새움 펴냄)를 펴낸 것.
한 물리학자가 친구의 사망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우리 고대사의 비밀과 대한민국 국호의 연원을 밝혀낸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김씨의 소설은 나올 때마다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음모론, 알려지지 않은 진실 등 꼭 우리 역사를 뒤흔들 수 있는 소재만 건드렸기 때문. 그런데 이번 작품도 심상치 않다. 한반도에 세워진 최초의 국가가 고조선이 아니라 기원전 9세기 무렵에 존재했던 '한(韓)'이라는 나라라고 주장한다. 역사학자들에게서 진위 여부를 놓고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지난 16일 만난 김씨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고, 오히려 논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후'가 우리의 조상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역사학계에서는 일부러 그랬는지 몰라도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죠. 어쩌면 뻥 뚫린 상태로 있던 우리 고대사의 비밀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인데도 말이에요. 이제 역사학자들이 이에 대해 거짓말이라고 비판하든, 진짜라고 인정하든 언급할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제 소설이 그 논란에 불을 댕기는 데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을 쓰는 작가이긴 하지만 김씨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주변에서도 알아줄 정도다. 우리나라의 고전 역사책은 물론 '사기' 등 중국 역사책까지, 그의 손을 거쳐가지 않은 책이 없다. 고대사를 다룬 '천년의 금서'부터 현대의 이야기를 다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까지 작품도 대부분 역사를 테마로 한 것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인간과 사회를 다룬 책에 관심이 많았어요. 관련 책을 거의 끼고 살다시피 했죠. 그런데 그 관심을 더 깊게 파고들어가 보니까 역사, 그것도 우리 역사가 나오더라고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잖아요."
김씨는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데뷔작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나올 때부터 밀리언셀러가 되더니 지금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모든 작품의 판매량을 합치면 1000만부가 족히 넘는다.
하지만 평단의 비난도 한 몸에 받는다. '대중에 영합하는 작가'라는 얘기도 있고 '극단적 민족주의자', 또 '과도하고 거친 상상력의 작가'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주변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평판에 신경 썼다면 아마 작품활동을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저는 그냥 제가 쓰고 싶은 것을 씁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독자들이 직접 내리는 것이라고 보고요."
고대사의 비밀 찾아나선 소설 ‘천년의 금서’ 펴낸 김진명씨[세계일보/2009.07.20]
그리하여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한'(韓)은 일본 사학자들이 한반도 남부의 작은 부족단위로 격하해버린 삼한(三韓)의 '한'이 아니라, 바로 시경에 나오는 한후(韓侯)의 나라, 찬란한 고대문명을 꽃피웠던 우리 민족의 '한'을 이어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1994년 첫선을 보여 지금까지 500만부 넘게 팔려나간 초대형 베스트셀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래 한반도의 역사와 운명에 대한 소설을 연달아 집필해온 그를 만나, '잃어버린 3000년'을 다시 찾았다고 소설에서 주장한 내용들이 어디까지 사실(史實)인지 들어보았다.
-주인공 여교수 한은원이 주장하는 내용들은 실제 자료에 근거한 역사적 사실인가?
"비록 소설이라는 틀을 빌리기는 했지만 우리 민족의 고대국가 '한'이 존재했다는 건 과학적 검증과 중요한 자료들을 통해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기원전 7세기 무렵 편찬된 사서삼경 중 한 권인 '시경'에서 우리의 조상 한후(韓侯)라는 왕을 찾아낼 수 있었고, 이 한후를 분명 우리의 조상이라고 확인한 후한시대 대표학자 왕부(王符)의 '잠부론'(潛夫論)과도 만날 수 있었다. 또 제도권 사학계에서 위작으로 치부하는 '단군세기'의 기록 중 별자리의 운행에 관한 '오성취루'(五星聚婁)와 조수의 움직임과 관련된 '남해조수퇴삼척'(南海潮水退三倜)의 내용을 전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가 과학적 실험을 통해 검증해본 결과 거의 오차가 없는 사실로 드러났다. 뻥 뚫린 상태로 있던 우리의 고대사에 고조선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한 나라의 확고부동한 실체가 등장한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사실에 접하게 됐는가?
"어릴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는데 신라 백제 고구려 이전의 3000년은 기록도 없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어 늘 갑갑했다. 3000년을 단군신화 한 조각으로 설명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화에서조차 환웅이 곰과 결혼해서 고조선을 만들었다는 거밖에는 건질 것도 없었다. 작가가 된 뒤 또 하나 의문이 생긴 건 우리를 왜 한국인이라 부르는지, 한(韓)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한을 먼저 추적하게 된 것이다. 한(韓)씨들에게 물어보곤 했는데 좀 배웠다는 한씨들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한나라 한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거기에서 출발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두 가지 의문점을 늘 품고 있다가 10여년 전부터 자료조사와 함께 소설 구상에 착수했다."
-국사학계에서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단국대 박물관장을 지낸 윤내현 교수가 이미 '시경'의 '한후'라는 인물이 한국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을 설파한 적이 있고, 서울대 신용하 교수는 한후와 왕부를 연결시켜서 '한씨조선'이라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 건 기원전 3세기 경이고, 한후는 기원전 9세기에 나오니 나라 이름은 그냥 '한'이라고 해야 한다. 한이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나중에 '조선'이라는 국명으로 바뀌었다고 본다. 지금까지 제도권 학계에서 이분들 말고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명성황후가 능욕을 당하고 시해됐다는 보고서를 찾아내 소설을 썼을 때도, 광개토대왕비의 안 보이는 세 글자를 찾아냈을 때도 반응이 없었다. 이번만큼은 내 주장이 맞는지 틀리는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이번마저 모른 척 지나간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의 차원을 넘어서는 엄중한 과오다."
-네티즌들 사이에는 지나친 민족주의 성향으로 우리 역사가 거대하고 찬란했다는 식의 자기만족을 풀어내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제대로 등단 절차도 밟지 않은 작가가 불쑥 나타나 쓴 첫 작품이 몇 백만 부가 팔리는 현상이 상당히 많은 비난과 저항을 불러왔다고 본다. 내 책을 잘 읽어보면 어느 것 하나도 과대망상적 민족주의는 없다. 나는 확실한 근거가 없으면 소설로 쓰지 않는다. 가장 저주스러운 일본에 대해 쓸 때도 선의의 일본인들과 함께 우익의 논리를 깨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야 된다고 썼다."
-소설 주인공은 결말부에 이르러 '잃어버린 한(韓)의 역사를 되찾고 고조선의 역사를 되찾을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한겨레가 되어 통일을 이루어낼 것'이라고 역설한다. 덧붙일 말은 없는가?
"경주박물관에 가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고대국가 탄생 시기를 기원전 40년 무렵으로 잡고 있다. 이 무렵 삼국이 신라, 고구려, 백제 순으로 생겨났다고 일본인 학자들이 철골을 세우고 국내 학자들이 콘크리트를 친 결과다. 나라의 힘이 경제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천년의 금서'가 잃어버린 고대사를 되찾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역사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문무왕릉비 사실상 다 찾은 셈 (0) | 2009.09.23 |
---|---|
[스크랩] 첨성대는 천문대 아닌 선덕여왕 상징물 (0) | 2009.09.23 |
[스크랩] 나주 본관 성씨 (羅州本貫姓氏) (0) | 2009.09.10 |
[스크랩] 박근혜는 웃고 정동영은 울다 (0) | 2009.08.13 |
[스크랩] 기억햐야 할 역사자료들 (0) | 2009.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