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유림의 4대 학파
19세기 유림들은 학문적 내용과 인적 구성을 바탕으로 기호 계열의 華西學派, 蘆沙學派, 艮齋學派와 영남 계열의 寒洲學派 4개 학파로 나뉘어 있었다.
이들 학파를 대표하는 이항로(1792∼1868), 기정진(1798∼1879), 전우(1848∼1922), 이진상(1818∼1885)은 각각 학설의 내용이나 외세의 압력에 대한 대처에서 차이를 보였다.
학설로 보면 화서, 노사, 한주는 성리설을 주장함으로써 주자학을 수정하는 쪽에 서 있었으며, 간재는 율곡의 성리설에 기초한 전통적 논의를 했다. 구한말 외세의 침입이 가속화되는 國亡의 상황 속에서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도 달랐다. 화서학파와 노사학파는 적극적으로 의병운동을 주도하였고, 간재학파는 서해의 부안 계화도로 망명하여 유학의 전통을 지키고자 했다. 한주학파는 산 속으로 들어가 은둔하거나 일부는 새로운 문물에 개방적 사고를 보였다. 이처럼 학파별로 각기 달리 행동한 것은 국권이 상실되는 상황 속에서 유학자가 취할 수 있는 태도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각 학파가 지녀온 철학적 배경과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
조선후기 유림의 4대 학파 - 1. 華西學派
華西 李恒老와 그의 문인들을 가리키는 말.
金平默 · 柳重敎 · 崔益鉉 · 柳麟錫 등.
이항로는 철저한 가치 관념에 기초하여 理의 動靜과 主宰까지도 인정하는 이기론을 주장하고 心의 주재성을 리의 측면에 연관시킨 심주리론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성리학적 이해는 척사위정이라고 현실인식의 기초가 되었는데, 한편으로는 기호학파의 정통적 입장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항로의 문인들 간에는 心說論爭이 일어나 心說에 대한 이해에서 차이를 보이게 되는데, 김평묵은 이항로의 심설을 고수하고자 한 반면 유중교는 수정을 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심설을 제외한 여타의 이론이나 척사위정의 부분에서는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화서학파는 의병활동을 통한 항일운동에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주었는데, 최익현과 유인석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조선후기 유림의 4대 학파 - 2. 蘆沙學派
蘆沙 奇正鎭과 그 문인들을 가리키는 말.
趙性家 · 鄭載圭 · 鄭義林 · 金錫龜 · 金漢燮 · 鄭時林 · 吳駿善 · 奇宇萬 등.
기정진은 理分圓融의 理一分殊說을 중심으로 理一元論的 성리설을 주장하고 위정척사의 기치를 높이 든 성리학자이다. 그의 성리설은 畿湖學派의 전통적 입장에 서 있던 학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는데, 그의 문인들은 스승의 성리설에 대한 비판에 맞서 스승의 성리설을 옹호하고 반비판을 가했으며, 대부분 항일의병 활동에 참가하여 호남 의병을 이끌었다. 이들은 華西學派나 寒洲學派와도 활발하게 교류하였으며, 지금도 호남 유림의 대표적 학파로 자리하고 있다.
<사이버 유교 박물관> 참고
조선후기 유림의 4대 학파 - 4. 寒洲學派
寒洲 李震相과 그 문인들을 가리키는 말.
郭鍾錫 · 李承熙 · 李寅梓 · 李炳憲 · 金昌淑 등.
이진상은 心卽理說을 제기하여 退溪學派의 정통적 입장과 길을 달리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정통 퇴계학파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 반면에 그의 문인들은 이진상의 심즉리설이 이황의 성리설과 크게 차이가 없음을 밝히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심즉리설과 아울러 心의 주재력, 敬에 의한 수양론 등을 강조하였다. 또한 이들은 항일운동에 앞장서 巴里長書를 주도하였으며, 특히 이승희와 이병헌이 벌였던 孔子敎운동은 근대 儒敎史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이버 유교 박물관> 참고
출처 :금계시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 수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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