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자료

[스크랩] 이제현

회기로 2010. 1. 24. 19:01

李齊賢 이제현 1287~1367

충렬왕 13)~1367(공민왕 16)


고려 후기의 문신·시인.


이제현 영정/이제현 영정, 〈한국명인초상대감〉에서

성리학을 들여와 발전시켰으며 많은 시문을 남겼다.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지공(之公).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실재(實齋)·역옹(?翁). 아버지는 검교정승인 진(?)이다.

1301년(충렬왕 27) 15세에 성균시에 장원, 이어 대과에 합격했다. 그해 대학자인 권보(權溥)의 딸과 혼인했다. 1303년 권무봉선고판관과 연경궁녹사를 거쳐 1308년 예문춘추관 등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1314년(충숙왕 1) 백이정의 문하에서 정주학(程朱學)을 공부했고, 같은 해 원나라에 있던 충선왕이 만권당(萬卷堂)을 세워 그를 불러들이자 연경(燕京)에 가서 원나라 학자 요수·조맹부·원명선 등과 함께 고전을 연구했다. 1319년 원나라에 갔다가 충선왕이 모함을 받고 유배되자 그 부당함을 원나라에 밝혀 1323년 풀려나오게 했다. 1357년 문하시중에 올랐으나 사직하고 학문과 저술에 몰두했다.


그는 탁월한 유학자로 성리학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충목왕 때는 개혁안을 제시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의 도를 강조하기도 했다. 문학에 있어서는 도와 문을 본말(本末)의 관계로 파악하여 이들을 같은 선상에 두면서도 도의 전달에 상대적인 비중을 두는 문학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시는 형식과 내용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수기치인(修己治人)과 관계되는 충효사상·관풍기속(觀風記俗)·현실고발의 내용과 주제도 담고 있는데 영사시(詠史詩)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산문은 앞 시대의 형식 위주의 문학을 배격하고 내용을 위주로 한 재도적(載道的)인 문학을 추구했다. 〈익재난고〉의 〈소악부 小樂府〉에 고려의 민간가요를 7언절구로 번역한 17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오늘날 고려가요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의 저술로는 〈익재난고〉 10권과 〈역옹패설〉 2권이 전한다. 경주의 구강서원과 금천의 도산서원에 제향되었고, 공민왕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普德窟 보덕굴  


陰風生巖谷 음풍생암곡  찬바람 바위 골짜기에서 불어오고

溪水深更綠 계수심갱녹  계곡 물은 깊고도 푸르네

倚杖望層전 의장망층전  지팡이에 기대 겹친 산꼭대기 바라보니

飛?駕雲木 비첨가운목  구름은 나무를 감싸 안으며 날아가네





              山舍朝炊 산사조취  산사 아침 굴뚝연기 


山下誰家遠似村 산하수가원사촌  산 아래 외딴 집은 누구의 집일까

屋頭烟帶大平痕 옥두연대대평흔  굴뚝에선 가느다란 연기 피어오르고

時聞一犬吠籬落 시문일견폐리락  무너진 울타리 옆에서는 개 짖는 소리

乞火有人來구門 걸화유인래구문  불씨 꾸러 온 사람이 문이라도 두드리나  




          山中雪夜 산중설야 산 속 눈 내리는 밤에


紙被生寒佛燈暗 지피생한불등암  얇은 이불에선 한기가 일고 佛燈 어두운데

沙彌一夜不鳴鐘 사미일야불명종  어린 중은 밤새도록 종을 울리지 않는구나

應嗔宿客開門早 응진숙객개문조  자는 客 문을 일찍 연다고 화를 내겠지만

要看庵前雪壓松 요간암전설압송  암자 앞 눈 쌓인 소나무 꼭 보리라





         登峨眉山 등아미산 아미산에 올라


蒼雲浮地面  창운부지면  검푸른 구름 땅 위에 떠 있고

白日轉山腰  백일전산요  밝은 해는 산허리로 둘러간다

萬像歸無極  만상귀무극  萬像은 無極으로 돌아가니

長空自寂寥  장공자적요  허공은 스스로 고요하기만 하다





                 沙里花 사리화


黃雀何方來去飛  황작하방래거비  참새야 어디서 오가며 우느냐

一年農事不曾知  일년농사불증지  일 년 농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鰥翁獨自耕耘了  환옹독자경운료  늙은 홀아비 홀로 갈고 맸는데

耗盡田中禾黍爲  모진전중화서위  밭의 벼며 기장을 다 없애다니



참새들은 어디서 날아왔다가 가는지

 일년 농사야 어찌 되든 아랑곳 않네

 늙은 홀아비 홀로 밭 갈고 김맸는데

 밭의 벼며 기장을 다 먹어 버렸다네


              

        

               居士戀 거사연


鵲兒籬際塞花枝  작아이제새화지  울타리 꽃가지엔 새벽까치 짖어대고

희子床頭引網線  희자상두인망선  갈거미는 침상 머리에서 그물 실을 뽑아내네

余美歸來應未遠  여미귀래응미원  우리 님 머지않아 오시려나

精神早己報人和  정신조기보인화  어쩐지 내 마음이 미리 설레네


거사련 


울타리 밑 꽃가지에선 까치가 울고

침상 머리의 거미는 그물 같은 줄을 치고 있네

내 님이 돌아올 날도 멀지는 않았을레라.

정신이 미리 앞서 사람에게 알게 해주네.


小樂府.2


鵲兒籬際花枝,  작아리제새화지

喜子床頭引網絲. 희자상두인망사.

余美歸來應未遠, 여미귀래응미원

精神早已報人知. 정신조이보인지



<居士戀> : 부역을 나간 자의 아내가 이 노래를 지었다.

까치와 거미에게 의탁하여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바란 것이다.





              九曜堂 구요당 깊은 산 속 집                               

溪水潺潺石逕斜  계수잔잔석경사  시냇물 잔잔하고 돌길이 비탈진 곳

寂廖誰似道人家  적요수사도인가  적막하기 도인사는 거처와 비슷해라

庭前臥樹春無葉  정전와수춘무엽  뜰 앞 누운 나무 봄에도 잎은 없고

盡日山蜂咽草花  진일산봉인초화  진종일 산벌만 풀꽃에서 잉잉대네



           숙림안해회사 宿臨安海會寺


梵宮臺殿遠嵯峨  범궁대전원차아 법당의 전각이 아득히 웅장하네

沙步移舟夜始過  사보이주야시과 모래밭 배에서 내려 어두운 저녁에야 도착했네


峽月轉廊隨響? 협월전랑수향극 산위의 달, 낭하에 스며들다 발소리에                                 흩어지고

溪風入戶動鳴珂 계풍입호동명가  계곡의 바람 전각의 풍경을 울리네


山因蘇子知名久 산인소자지명구  산은 소동파로 인하여 유명한지

樹自錢王閱事多 수자전왕열사다  오래 고운 숲은 전왕시절부터 많은                                  일을 보아왔네


陌上春歸花寂寂 맥상춘귀화적적 밭두렁에 봄은 오지만 피는 꽃은                                    쓸쓸하며

唯聞谷鳥和村歌 유문곡조화촌가  촌락엔 오직 새들의 지저귐뿐..


          

          손끝에 남은 향기


浣紗溪上傍垂柳  완사계상방수류

수양버들 시냇가에 비단 빨래하노라니

執手論心白馬郞 집수논심백마랑

흰 말 탄 선비님이 손잡으며 정을 주네

縱有連蒼三月雨  종유연창삼월우

삼월비에 연일 푸르러오는데

指頭何忍洗餘香   지두하인세여향

손끝에 남은 향기야 차마 어이 씻으리?


?


浣紗溪上傍垂楊   執手論心白馬郞

완사계상방수양   집수논심백마랑

 

縱有連?三月雨   指頭何忍洗餘香

종유연첨삼월우   지두하인세여향


수양버들 냇가에서 빨래 하다가

백마 타신 도련님께 손목 잡혔지

아무리 석 달 열흘 비 내린대도

손끝에 밴 임의 내음 어이 지우랴


고등학교 《漢文Ⅱ》(동아출판사)에는 이를 다음과 같이 우리말로 옮겨 싣고 있다.


실버들 늘어진 시냇물 가에서

비단옷 빨래를 멈추고

백마(白馬) 타고 온 도련님과 마음을 속삭이며 잡았던 손목,

추녀에 퍼붓는 석 달 열흘의 장맛비라도

어찌 차마 손끝의 여향(餘香)을 씻으리오.


   연심옥경(?尋玉京)에는


翩翩隻燕訪空閨  應感佳人惜別詩

편편척연방공규  응감가인석별시


相對知心不知語  一庭風雨落花時

상대지심불지어  일정풍우락화시


훨훨 날아가는 한 쌍 제비가 빈 안방을 찾으니

아리따운 사람의 아쉬운 이별의 시에 감동되었음이어라

서로 대해 마음은 아나 말을 못 못했을 것이니

한 뜰의 비바람에 꽃 떨어질 시절이로다



제수권1(題手卷1) 

두루마리에 쓰다


豊干老去不參禪 풍간로거불참선  승려 풍간은 늙어가며 참선도 않고

寒拾從來只?顚 한습종래지체전  승려 한산과 습득은 이마만 잡고 있단다.

白額將軍亦何者 백액장군역하자  백액장군 호랑이는 무엇 하는 자인지

忍飢共打一場眠  인기공타일장면  굶주림 참고서 함께 낮잠만 잔단다.





제수권2(題手卷2) 

두루마리에 쓰다

 

顔色雖非滿鏡春  안색수비만경춘  안색에는 비록 봄빛 시들었으나

歌聲尙足動梁塵  가성상족동량진  노래 소리는 아직도 대들보를 울린다.

感君一贈同心結  감군일증동심결  그대가 동심결을 주니 감격하여

不爲千金更媚人  불위천금경미인  천금을 준다 해도 다른 사람 생각도 않으리라.

 




작설차(雀舌茶) / 이제현(李齊賢)


어찌 외로운 처지 물어주길 뜻했으랴만

다른 길 간다고 싫어하질 않는구려

가을 숲의 규란을 먼저 보내고

봄에 불에 말린 작설 몇번이나 보내왔네

스님 비록 옛정 잊지 못하지만

공도 없는 이사람 많이 받기 부끄럽네

두어칸 낡은 집 뜰엔 풀이 돋았고

유월 장마에 온통 진흙길이네

홀연히 문두드려 대광주리 보내오니

신선한 향기가 옥과 보다 더 좋구려

한식 전에 따서 향기 맑고

숲 아래 이슬을 아직도 머금은 듯

돌솥엔 솨솨 솔바람 소리나고

자기 사발엔 어즈러이 유화토하네


이제현의 소상팔경


 이 시는 이름이 효수인 박석제와 이름이 혁인 윤저헌의 은대집銀臺集에 소상팔경을 운으로 지은 것에 화답한 칠언절구이다.


평사 낙안  平沙落雁


줄줄이 점점이 가지런했다 비꼈다

찬 허공에서 내려와 따뜻한 백사장에 자려다가

언덕으로 날아 옮겨감을 이상해 하였더니

뱃사람들 갈대꽃 우거진 속에 쑥덕이고 있어서네.

行行點點整還斜 欲下寒空宿暖沙 행행점점정환사 욕하한공숙난사

怪得翩?移別岸 ??人語隔蘆花 괴득편번이별안 축로인어격노화



  원포 귀범  遠浦歸帆



배 부리는 장사꾼들 아이들과 같아서,

사람마다 향불 사뤄 순풍을 기원하네.

호수의 신이 여러 사람 소원 다 이뤄주어,

돛 올린 모든 배들 제 각기 서로 동으로.

行舟賈客似兒童 香火人人乞順風 행주가객사아동 향화인인걸순풍

賴是湖神能泛應 衆帆齊擧各西東 뢰시호신능범응 중범제거각서동



소상 야우  瀟湘夜雨



단풍나무 잎과 갈대꽃 풍경 물나라 가을인데,

온 강의 비바람이 조각배에 뿌려서.

초나라 손의 삼경 꿈을 놀라 깨게 하고,

상비1)의 만고 시름을 나누어 적셔 준다.

楓葉蘆花水國秋 一江風雨灑扁舟 풍엽로화수국추 일강풍우쇄편주

驚廻楚客三更夢 分與湘妃萬古愁 경회초객삼경몽 분여상비만고수



      동정 추월   洞庭秋月



삼경의 밝은 달빛 은한이 밝은데,

만 이랑 가을빛이 흰 물결에 가득해라.

호수 위의 뉘 집에서 쇠 피리를 부는가,

푸른 하늘 끝없는데 기러기 떼는 높이 떴네.

三更月彩澄銀漢 萬頃秋光泛素濤 삼경월채징은한 만경추광범소도

湖上誰家吹鐵笛 碧天無際雁行高 호상수가취철적 벽천무제안행고



   산시 청람   山市晴嵐



아득하여라 펀펀한 숲에 푸른 안개가 찬데,

누대들은 은은히 비단을 격하였다.

어찌하면 바람이 불어 쓸어가서

우리 왕가의 착색한 산을 도로 나타낼고.

漠漠平林翠靄寒, 樓臺隱約隔羅紈 막막평림취애한, 누대은약격라환

何當捲地風吹去, 還我王家着色山 하당권지풍취거, 환아왕가착색산



        어촌 낙조  漁村落照



떨어지는 해는 차차 먼 산봉우리에 빠지고,

돌아오는 조수는 철썩철썩 찬물 가에 오른다.

고기 잡는 사람들은 흰 갈대꽃 속으로 들었는데,

두어 점 밥 짓는 연기 날 저물어 더욱 푸르다.

落日看看?遠岫 歸潮咽咽上寒汀 낙일간간함원수 귀조인인상한정

漁人去入蘆花雪 數點炊烟晩更靑 어인거입노화설 수점취연만갱청

어촌의 낙조


낙일간간함원수(落日看看含遠峀)

뉘엿뉘엿 먼 산의 해는 지는데


귀조열열상한정(歸潮咽咽上寒汀)

밀물이랑 어기여차 와 닿은 물가


어인거입로화설(漁人去入蘆花雪)

어부들 들어간 흰 갈대 숲엔


수점취연만경청(數點炊烟晩更靑)

두어 오리 밥 짓는 새파란 연기




   강천 모설   江天暮雪



버들개지가 허공을 날며 더디 내리려는 듯,

매화꽃이 땅에 떨어져 자태를 뽑내는 듯.

강루 위의 한 단지 술마저 비우며,

도롱이 입은 어옹의 낚싯줄 거둘 때를 지켜보네.

柳絮飛空欲下遲 梅花落地亦多姿 유서비공욕하지 매화낙지역다자

一樽且盡江樓酒 看到蓑翁捲釣時 일준차진강루주 간도사옹권조시



연사 만종煙寺晩鍾



한 폭의 단청을 펼쳐 놓으니,

두어 줄의 수묵이 묽은 듯 다시 짙다.

그림 그리는 붓으로 진정 할 수 없는 것은,

남과 북의 절에서 울리는 종소리의 은은함.

一幅丹靑展不封 數行水墨淡還濃 일폭단청전부봉 수행수묵담환농

不應畵筆眞能爾 南寺鍾殘北寺鍾 불응화필진능이 남사종잔북사종





         통헌 이제현의 학사연을 하례하며[賀李通憲齊賢學士宴]                                                     윤혁(尹奕)


  高門盛事復何言  고문성사부하언

  높은 문의 성사를 다시 말해 무엇하리

 靑?提衡且莫論 청빈제형차막론

젊어서 문형된 것 그뿐 아닐세

一宴共歡三座主  일연공환삼좌주

한 잔치에 세 좌주(과거에 합격시켜준 시관(試官))가 함께 기뻐하고

四觴齊壽兩家尊 사상제수량가존

네 술잔으로 두 댁 어른께 헌수하네

 讓前讓後蟬冠擁   양전양후선관옹

앞에 뒤에 자리를 사양, 선관들이 옹위하고

迎北迎南鳳蓋飜 영북영남봉개번

북으로 남으로 맞아들이는 봉의 일산들이 펄럭이네

賓從林林無可選  빈종림림무가선

자리에 찬 인재들 모두 아름다우니

   盡敎桃李間蘭蓀 진교도리간란손

   복숭아ㆍ오얏 사이에 난초ㆍ혜초가 섞였네


[주D-001]복숭아ㆍ오얏 …… 섞였네 : 당 나라 적인걸(狄仁傑)이 인물을 뽑아 벼슬에 오른 이가 많으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천하의 도리(桃李) 가 모두 공(公)의 문중에 있다.” 하였고, 난초는 집안의 자제(子弟)를 말한 것이다. 진(晉) 나라 사현(謝玄)이 그의 숙부 사안(謝安)에게 말하기를, “부형이 아름다운 자제를 원하는 것을 비유하면 지란(芝蘭) 과 옥수(玉樹)가 내 뜰 안에 나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하였다.





?위험에 처한 이항복을 구한 조상신 이제현

                               -과연 조상님은 계실까?

이항복이 태어난 지 1년이 되기 전 어느 날이었다.

유모가 우물 가까이 가서 그를 땅 위에 놓아두고는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때 어린 항복이가 엉금엉금 기어가더니 이내 우물로 들어가려 하였다.

이 때 유모의 꿈에 수염이 희고 얼굴이 긴 한 장부(丈夫)가 나타나, 지팡이로 유모의 정강이를 탁 치면서 꾸짖었다.

 


 “어찌해서 애를 보지 않느냐?”

 유모가 몹시 아파서 화들짝 꿈에서 깨어보니, 저만치에서 항복이 우물로

 막 들어가려는 게 아닌가

. 냅다 쫓아가서 항복이를 얼른 붙잡았다.

 이렇게 하여 간발의 차이로 항복이는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후 유모는 꿈에서 차인 정강이가 실제로 여러 날 아파서 이를 이상하게 여겼다.

 이 일이 있은 뒤 어느 날, 집안에 제사가 있어

방조(傍祖)1) 이제현의 영정을 대청에 걸어놓게 되었다.

 그런데 유모가 이를 보고 크게 놀라서 외쳤다.

 “앞전에 제 정강이를 때린 이가 바로 저분이옵니다!”

 이삼백년전 조상인 익재 이제현 선생이 한참 후손인

 이항복을 위험에서 구해주었던 것이다.


?鄭瓜亭(정과정)






憶君無日不霑衣 억군무일부점의  날마다 님 생각에 울며 옷깃을 적시니,

政似春山蜀子規 정사춘산촉자규  님 모습은 봄날 동산에서 우는 접동새 같아라.

爲是爲非人莫問 위시위비인막문  내가 옳은지 그른지 사람들아 묻지 마소,

只應殘月曉星知 지응잔월효성지  새벽달과 별만은 응당 알리이다.


요점 정리

 지은이 : 이제현

 시간적 배경 : 이른 아침, 새벽

 시형 : 소악부

 중국의 악부를 볼 때,  우리 나라의 민간 가요에서 제재를 취하여  이제현이 7언절구의 형식으로 지은 한시.

 주제 : 님을 그리워함.

내용 연구

 새벽달과 별이 알 것이로다 : 새벽달과 별을 절대자로 보고 있음,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주는 존재로 파악


이해와 감상

 이 노래는 충신 연주지사로 사람들에게 널리 애송되었으며,

궁중에서도 이를 전악(典樂)으로 보존하여

모두 익히도록 할 정도로 귀히 여긴 고려 가요이다.


고려 가요 중 향가의 잔영으로서 대표적인 작품인데,

작자가 유배 상황에서 임금을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향가계(鄕歌系) 여요(麗謠)로

향가계 여요는 신라의 향가에서 고려 가요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생긴 과도기적 형식의 노래를 총칭하는 개념이다.


고려 때 지어진 노래로 향가적 형식을 띤

'도이장가(悼二將歌), 정서의 '정과정' 등을 말한다.


고려 건국 초의

삼한공신(三韓功臣) 금서(金書)의 후예이지만,

아버지 진(山)이 과거를 통해 크게 출세함으로써

가문이 비로소 떨치기 시작했는데, 진은 검교시중(檢校侍中)에까지 올랐다.

[생애]

어려서부터 남달리 숙성해, 글을 짓는 데 이미 작자기(作者氣)를 지니고 있었다. 1301년(충렬왕 27) 성균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이어서 과거에 합격하였다.


이 해에 당시 대학자이자 권세가였던 권보(權溥)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1303년

권무봉선고판관(權務奉先庫判官)과 연경궁녹사(延慶宮錄事)를 거쳐


1308년

예문춘추관에 선발되고 다음해에 사헌규정(司憲糾正)에 발탁됨으로써 본격적인 관리생활을 시작하였다.


1311년(충선왕 3)에는 전교시승(典校寺丞)과 삼사판관(三司判官)에 나아가고, 다음 해에 서해도안렴사(西海道按廉使)에 선발되었다.


1314년(충숙왕 1)

상왕인 충선왕의 부름을 받아 원나라의 수도 연경(燕京)으로 가서

만권당(萬卷堂)에 머물게 됨으로써 그의 재원(在元) 생애가 시작되었다.


충선왕은 왕위에서 물러난 다음 원나라에 있으면서

만권당을 짓고 서사(書史)를 즐기며,

원나라의 유명한 학자·문인들을 드나들게 했는데,

그들과 상대할 고려측의 인물로서 이제현을 지명했던 것이다.


이로부터 그는 만권당에 출입한 요수(妖燧)·염복(閻復)·원명선(元明善)· 조맹부(趙孟琅) 등 한족(漢族) 출신 문인들과 접촉을 자주 갖고 학문과 식견을 넓힐 수 있었다.


그의 재원 생애와 관련해 특기할 것은

세 번에 걸쳐 중국 내륙까지 먼 여행을 했다는 사실이다.


1316년에는

충선왕을 대신해 서촉(西蜀)의 명산 아미산(峨眉山)에

치제(致祭)하기 위해 3개월 동안 그곳을 다녀왔다.


1319년에는

충선왕이 절강(浙江)의 보타사(寶陀寺)에

강향(降香)하기 위해 행차하는 데 시종하였다.

마지막으로 1323년(충숙왕 10)에는 유배된 충선왕을 만나 위로하기 위해 감숙성(甘肅省)의 타사마(朶思麻)에 다녀왔다.


이 세 번에 걸친 여행은 그의 견문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1320년(충숙왕 7)은

그의 생애를 통해 또 하나의 분기점을 이룬다.

주로 만권당에 머물며 활동하는 동안에도  때때로 고려에 와서 관리로 복무해, 성균제주(成均祭酒)·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선부전서(選部典書)를 역임하였다.


이 해에는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가 되면서 단성익찬공신(端誠翊贊功臣)의 호를 받았고,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주재하였다.


그런데,

겨울에 충선왕이 참소를 받아 유배됨으로써

자연히 그의 재원 생애도 6년 만에 끝나게 되었다.


충선왕의 유배로 인한 정세변화는

고려의 정치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뒤이어 고려의 국가적 독립성을 말살시키고 원나라의 내지와 같은 성(省)을 세울 것을 주장하는 입성책동(立省策動)이 강력하게 일어났다.


또한 충숙왕을 내몰고 왕위를 차지하려는

심왕 고(瀋王暠)와 그 일파의 준동이 격화되었다.


그는 1321년 아버지의 상을 치른 다음

1323년 원에 들어가 입성반대상서를 올렸는데,

그 내용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이어서

토번(吐蕃)으로 유배되어 있는 충선왕의 방환운동도 벌였다.

오래지 않아 입성책동이 저지되고 충선왕이 타사마로 이배된 데에는 그가 벌인 활동의 영향이 적지 않았으리라 여겨지고 있다.


1324년

밀직사를 거쳐

1325년

첨의평리(僉議評理)·정당문학(政堂文學)에

전임됨으로써 재상의 지위에 올랐다.


그 뒤 충숙왕과 충혜왕 부자가 중조(重祚)하는

어지러운 때를 당해 그의 활동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1339년

조적(曹使)의 난이 일어난 끝에 충혜왕이 원나라에 붙잡혀가자

그를 좇아 원나라에 가서 사태를 수습해

왕이 복위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수년간 조적의 여당(餘黨)에 눌려 두문불출했는데,

그 동안 ≪역옹패설 饑翁稗說≫을 저술하였다.


그가 다시 정치의 표면에 나타나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은


1344년

충목왕이 즉위한 직후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임명되면서부터이다.


이때 문란해진 정치기강을 바로잡고 새로운 시책을 펴는 데 참여해

여러 항목에 걸친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1348년

충목왕이 죽자 원에 가서 왕기(王祺 : 뒤의 공민왕)를

왕에 추대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으나 실패하였다.


1351년

공민왕이 즉위해 새로운 개혁정치를 추진하려 할 때

정승에 임명되어 국정을 총괄하였다.

이때부터 네 번에 걸쳐 수상이 되는 기록을 세웠다.


1353년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으로서 두 번째로 지공거가 되어 이색(李穡) 등

35인을 등과자(登科者)로 선발하였다.


1356년(공민왕 5)

기철(奇轍) 등을 죽이는 반원운동이 일어나자,

문하시중이 되어 사태의 수습에 나섰다가

다음해에 치사하고 관직에서 아주 물러났다.


그 뒤에도

국가의 중대사에 대해서는 자문에 응했으며,

홍건적이 침입해 개경이 함락되었을 때에는

남쪽으로 달려가 상주에서 왕을 배알하고 호종(扈從)하였다.



[활동]

 정치가로서의 그는 당시

고려가 원의 부마국(駙馬國)이라는 현실을 시인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국가의 존립과 사회모순의 광정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으면서 온건한 태도로 현실에 임하였다.

당시 복잡한 정치상황 아래에서 원과 고려를 넘나들면서 활약해

최고의 지위에 오르지만, 화를 당하거나 유배된 적이 없었다.


학자로서의 그는 뛰어난 유학자로

성리학의 수용·발전에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우선 그는 고려에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백이정(白蓬正)의 제자였고

≪사서집주 四書集註≫를 간행해 성리학의 보급에 크게 노력한

권보의 문생이요 사위였다.


또한 그의 제자가 이곡(李穀)·이색의 부자였다는

학통(學統)으로 보아 그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또한, 그가 만권당에서 교유한 중국의 문인·학자가

성리학에 깊은 조예를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점에 비추어

중국의 성리학에 직접 접하면서 그것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수 있었으리라고 여겨진다.


충목왕 때 개혁안을 제시하면서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의 도를 강조한 것은 성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성리학에만 경도되지는 않았고, 그 때문에 뒷날 성리학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문학부문에서 그는 대가를 이루었다.

많은 시문을 남겼는데, 시는 전아하고 웅혼하다는 평을 받았고,

많은 영사시(詠史詩)가 특징을 이룬다.


또한, 사(詞)의 장르에서 독보적 존재로 일컬어지고 있다.


고려의 한문학을 세련시키면서 한 단계 높게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한국문학사를 통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편, 빼어난 유학지식과 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사학(史學)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민지(閔漬)의 ≪본조편년강목 本朝編年綱目≫을 중수(重修)하는 일을 맡았고,


충렬왕·충선왕·충숙왕의 실록을 편찬하는 일에도 참여하였다.


특히, 만년에

≪국사 國史≫를 편찬했는데, 기년전지(紀年傳志)의 기전체를 계획해

백문보(白文寶)·이달충(李達衷)과 함께 일을 진행시켰으나 완성시키지 못하였다.


[저술]

그의 저술로 현존하는 것은

≪익재난고 益齋亂藁≫ 10권과 ≪역옹패설≫ 2권이다.

흔히 이것을 합해 ≪익재집≫이라 한다.


그는 이색이 그 묘지명에서 “도덕의 으뜸이요, 문학의 종장이다.

(道德之首 文章之宗)”라고 말한 바와 같이 후세에 커다란 추앙을 받았고,

경주의 구강서원(龜岡書院)과 금천(金川)의 도산서원(道山書院)에 제향되었다.


1376년

공민왕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소악부

고려 후기에 이제현(李齊賢)이 지은 악부시.

당시 유행하던 우리말 노래를 한시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익재난고 益齋亂藁≫ 권4에 수록되어 있다.

모두 칠언절구 11수로 이루어졌다.


내용은 11수 가운데에 국문사설이 현재까지 전하여지는 것이 3편이다.


여섯 번째 시 〈처용가〉,

여덟 번째 시 〈정석가〉 혹은 〈서경별곡〉,

아홉 번째 시 〈정과정곡〉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설은 전하지 않으나 제목과 내용이

고려사≫ 악지에 전하는 것이 5편이다.


첫번째 시 〈장암 長巖〉,

두번째 시 〈거사련 居士戀〉,

세번째 시 〈제위보 濟危寶〉,

네번째 시 〈사리화 沙里花〉,

일곱번째 시 〈오관산 五冠山〉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출처를

자세히 알 수 없는 것으로 다섯 번째 시가 있다.

옷을 벗어 어깨에 둘러메고 꽃밭에서 나비를 좇던

지난날의 추억을 그리는 내용으로 보나,


이 고을 사람들은 남녀가 봄을 만나

놀기 좋은 시절을 서로 즐기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는

양주〉와 일정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열번째와 열한번째 시는 제주도 민요를 옮긴 것이라고 밝혀 놓았다.


열번째 시는 젊은 여자가 재산 많은 사주(寺主)에게 시집감으로써

사주는 황모(黃帽)를 쓴 신랑이 되어상방으로 신부를 맞아들인다는 내용이다.


열한번째 시는

제주도 주민들이 종래 물산이 별로 없어 뭍에서,

특히 전라도 쪽에서 장수들이 옹기와 백미를 팔러 오면

크게 도움이 되었는데,

그나마 자주 올 수 없었으므로 북풍이 불어 보내는 이 배를

항상 고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몽고의 목장이 설치된 뒤로 관사(官私)의 우마가 전야를 덮어 현지 백성들은 경작할 땅조차 없게 되고,

드나드는 관리들은 북새를 이루어 더욱 백성들을 못살게 하고 있었으므로 그 동안 여러 차례 변고가 있었다는 내용이다.


한시도 표현이나 정서에 있어서는 우리 문학다운 면모를 갖추어야 하겠다는 자각에서 이런 작품의 출현을 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속악가사를 다른 측면에서 재검토하고,

속악가사로 전하지 않는 우리말 노래까지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소악부는 어느 것이나 칠언절구의 짧은 형식이어서

우리말 노래의 개요를 옮겨놓았거나 어느 한 대목을 번역하였을 따름이다.


우리말 노래의 묘미를 살리는 데에 충실할 수 없었던 것이 한계이다.


악부

중국의 시체(詩體)로 원래는 음악을 맡아보던 관청 이름이었으나,

거기서 채집 ·보존한 악장과 가사 및 그 모방 작품을 악부(樂府) 또는

악부시(樂府詩)라 하게 되었다.


관청으로서의 악부는 전한(前漢) 무제(武帝:재위 BC 140∼BC 88) 때에 비롯하며, 이연년(李延年)이 협률도위(協律都尉)가 되어 사마 상여(司馬相如) 등에게 시부(詩賦)를 짓게 하였다.


이는 100여 년 동안 존속하다가 애제(哀帝) 때 폐지되고

태악(太樂)에 통합되었으며, 악부시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여

본사(本辭)가 되는 것으로는 정사(正史)의 악지(樂志) 등에 실린 작품,

악지 등에 실리지 않은 민간 가요, 악부체(樂府體)로 문인이 창작한 작품 등이 있고,


본사 이외에 이를 모방한 작품과 이민족(異民族)의 가요 등이 포함된다.


문인이 창작한 것으로는 당나라 때에 이르러 종래의 악곡이 탈락된

두보(杜甫)의 <병거행(兵車行)> <삼리삼별(三吏三別)>, 원결(元結)의 <계악부(系樂府)> 등이 있고, 이민족의 유명한 가요로는 <칙륵가(勅勒歌)>가 있다.


?<고고산 高 (고) 高 (고) 山 (산) >

강위에 솟은 산은 미인의 눈썹 같은데

이 마을 저 마을 집집마다 무궁화 꽃 울타리

배 멈추고 송림 속의 절을 찾는데

대숲 밑에 연못이 눈에 뜨이네

해질녘엔 돛단배들 줄이어 돌아오고

동틀 무렵 은은한 종소리 흘러가는 흰 구름

정자에 앉아 멀리 삼오( 三 (삼) 吳 (오) )지방 바라보면

장군이 거기 주둔하던 일 새삼 생각나네


?역옹패설

고려 23대 고종 때 경상도 안찰부사 손변 (孫○)에게

남매간의 재산상속에 관한 소송이 들어왔다.


내용인즉 ,남매의 부친이 운명직전 유서를 남겨 전 재산을 결혼한 딸에게 물려주고 ,어린 아들에게는 검은색 옷 한벌 ,갓 하나 ,미투리 한 컬레 , 종이 한권만

물려준다고 쓰였는데 ,성장한 남동생이 아버지의 유서 내용이 매우 부당하다고 소송을 낸 것이다.


남동생이 재판관 손 변에게 "딸과 아들이 한 태생인데 어째서 누나만 부모 재산을 독차지하고 아들에게는 주지 않는단 말입니까 ?" 하고 부당함을 호소하자,

누나가 반박하길 "아버지가 운명하실 때 집안의 전 재산을 딸에게 준다고 쓴 증서가 있지 않느냐 ?"며 문서를 내밀어 정당함을 주장했다.


양쪽 주장이 팽팽하여 소송은 지지부진 시간을 끌었다.

남매간의 우애를 깨지 않는 판결을 위해 고심을 하던 손변이 하루는 남매에게 물었다.



"너희 부친이 죽을 때 어머니는 어디 있었느냐 ?"

"먼저 죽었습니다. "

"그때 너희 나이는 몇 살 이었느냐 ?"

"누님은 결혼했고 , 저는 일곱 살 이었습니다."

손변은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부모의 마음은 아들과 딸에게 모두 똑같다. 어찌 결혼한 딸에게는 후하고 부모도 없는 아들에게는 박하게 했겠느냐 ? 내가 판단하기에는 너희 아버지의 뜻은 아들이 의지할 곳이 오직 누나뿐이라 ,만일 유산을 똑같이 나눠준다면 혹 누나가 동생 양육을 소홀이 할까 염려한 것 같다. 그래서 아들이 장성한 후 이 종이에 소장을 써서 검은색 옷을 입고 ,갓을 쓰고 미투리를 신고 관에다 호소하면 이 일을 판단해 줄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아들에게 네 가지 물건을 남겨준 것이다. 나는 이 소송을 판결하겠노라.


너희 남매는 재산을 똑같이 나눠 우애를 지키고  부모의 깊은 뜻에 감사하라."

판결을 들은 남매는 얼싸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고려시대 재산을 상속할 때는 기혼과 미혼, 아들과 딸, 장남과 차남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나눠주는 이른바 균등상속이었다. 이 이야기에서도 보면 남녀가 평등하게 재산을 상속받음을 알 수 있다.


옛 글에 명판관이 많은 나라보다 소송이 없는 나라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 .소송은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손변이 남매의 아버지가 굳이 유서를 남긴 숨은 뜻을 꿰뚫어보고 내린 판결은 가히 명판결로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松廣和尙寄惠新茗順筆亂道寄呈丈下(송광화상기혜신명순필난도기정장하) / 이제현(송광화상이 차를 보내준 고마움에 대하여 붓가는 대로 적어 장하에 보냄)

술이 오름에 마른 창자 연기나려 하고 책을 보는 늙은 눈 안개서린 듯하네

뉘라서 이 두 가지 병 감쪽같이 낫게 하리 나는 참으로 좋은 약 얻어올 데 있다네

동암(東菴)은 옛 적에 녹야에 은거하였고 혜감(慧鑑)은 조계의 법주(法主)가 되어 갔네좋은 차 보내면서 안부를 물을 때면 긴 시로 보답하여 깊이 흠모함을 표했네

두 분 풍류는 유불(儒彿)에서 뛰어났건만 백년의 생사가 아침 저녁 같구

나의 발(衣 )을 받은 스님 이 산에 사니 사람들은 스님의 법도 뛰어났다고 하네내

평생 부족한 학문 후회하지 않지만 아버님의 일 계승함은 참으로 부끄럽네 향화(香火)의 연인은 대를 이어 전하지만 세속의 매인 몸 스님을 모실 수 없네

어찌 외로운 처지 물어 주기 뜻했으랴만 가는 길 다르다고 싫어하지 않네

서리 내린 수풀의 규모 일찌기 붙여주고 봄에 구운 작설차 여러번 보내왔네

스님은 비록 옛 생각 못잊는 걸 보이려 하지만 공도 없는 나는 많이 받기 부끄럽네

낡고 조그마한 집 마당엔 풀이 자라고 유월의 궂은 장마에 깊은 진흙투성이네

갑자기 문두드려 놀라 보니 대바구니 보내와 향기롭고 신선하기 옥과(玉 )보다 좋은 차 얻었네 향기 맑으니 한식 전에 딴 것이요 빛 고우니 아직도 숲 아래의 이슬 머금은 듯 돌솥에서 끓는 물 솔바람 소리 내고

자기 찻잔에 도는 무늬 꽃망울을 토한다산곡(山谷)이 운룡(雲龍)을 자랑 할 수 있으랴

설당(雪堂)의 월토(月 )차가 부끄러움 깨닫노라 서로의 교분에는 혜감의 풍류 남았지만 사례하려 해도

동암의 싯구가 없구료 붓 솜씨 노동을 본받기 어려운데 하물며,

육우를 좇아 다경(茶經)쓰기를 흉내내랴 원중(院中)의 화두(話頭)랑은 다시 찾지 마오 내 또한 이제부터 시에 전념해야겠소.



상백주승상서(上伯住丞相書)-이제현(李齊賢)

승상 백주에게 올리는 글-이제현(李齊賢)


月日(월일) : 모월, 모일에

熏沐齋戒(훈목재계) : 목욕 재계하고

百拜上書于丞相執事(백배상서우승상집사) : 백배하며 승상 집사께 글을 올리나이다.

禹思天下有溺者(우사천하유닉자) : 우는 천하의 물에 빠진 사람들을

如己溺之(여기닉지) : 자신이 빠뜨린 것처럼 여기고

稷思天下有飢者(직사천하유기자) : 직은 천하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如己飢之(여기기지) : 자신이 주리게 한 것처럼 여겼습니다.

天下之溺與飢者(천하지닉여기자) : 천하의 물에 빠진 사람들과 굶주리는 사람들을,

非禹手?之而稷?其?也(비우수제지이직알기포야) : 우가 자기 손으로 밀치거나 직이 먹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닌데도,

何其心斷然自以爲己責而不辭哉(하기심단연자이위기책이부사재) : 어찌하여 그들의 마음에 단연코 자신의 책임으로 여겨 사양하지 않았겠습니까?

天之降任於大人(천지강임어대인) : 이것은 하늘이 대인들에게 책임을 내린 것은

本欲使之濟斯民也(본욕사지제사민야) : 본래 이 백성들을 구제하게 하려고 한 것이기 때문이니,

苟視困窮無告者(구시곤궁무고자) : 진실로 곤궁하여 호소할 데 없는 사람들을 보고도

恬不爲救(념부위구) : 심상히 여겨 구제하지 않는다면,

豈天之降任意耶(기천지강임의야) : 어찌 하늘이 책임을 내린 본의이겠습니까?

此所以忘??之苦(차소이망?지지고) : 이 때문에 손발에 못이 박히는 고생을 잊었으며

躬稼穡之勤(궁가색지근) : 가색을 마련하는 부지런함을 몸소 보였서

宅九土粒烝民(택구토립증민) : 구주(九州)를 살 수 있게 만들었고

左右高舜(좌우고순) : 요(堯)ㆍ순(舜)을 도와서

而澤及萬世者也(이택급만세자야) : 혜택이 만세에 미치게 했던 것입니다.

設有一人焉(설유일인언) : 가령 어떤 사람이

不幸而轉溝壑(부행이전구학) : 불행히 구렁에 딩굴고

陷濤瀨(함도뢰) : 파도에 휘말리게 되었을 경우 .

禹稷而見之(우직이견지) : 우와 직이 보았다면

將圖其斯須之活而已耶(장도기사수지활이이야) : 장차 잠시만 살게 해주고 말겠습니까?

吾知其必爲之計(오지기필위지계) : 나는 반드시 계책을 세워

使之不復憂飢與溺(사지부부우기여닉) : 다시는 주리거나 빠지는 것을 근심하지 않도록 해준

然後其心安焉(연후기심안언) : 다음에야 그의 마음이 편안했으리라고 여깁니다


恭惟丞相執事(공유승상집사) : 삼가 생각건대, 승상 집사께서

光輔聖天子(광보성천자) : 성스러운 천자를 빛나게 보좌하되,

不動聲色(부동성색) : 성색을 움직일 것도 없이

措天下於泰山之安(조천하어태산지안) : 천하를 태산처럼 안정되게 조치하시어

戴白之老(대백지로) : 머리가 센 노인들이

以爲復見中統至元之理(이위부견중통지원지리) : 중통ㆍ지원시대의 훌륭한 정치를 다시 보게 되었다.' 하니,

人之生于此時(인지생우차시) : 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可謂大幸矣(가위대행의) : 큰 행복이라 하겠습니다.

如是而有一人焉(여시이유일인언) : 이런데도 한 사람은

困窮之勢(곤궁지세) : 곤궁한 사세가

甚於飢溺(심어기닉) : 주림이나 물에 빠진 것보다도 심한데,

執事其何以處之哉(집사기하이처지재) : 집사께서는 어떻게 조처하여 주시렵니까?

往歲我老瀋王遭天震怒(왕세아로심왕조천진노) : 지난해에 우리 노심왕이 천자의 진노를 사서

措躬無所(조궁무소) : 몸 둘 곳이 없었는데,

執事哀而憐之(집사애이련지) : 집사께서 애처롭고 가엾게 여겨

生死肉骨於雷霆之(생사육골어뢰정지하) : 뇌정 앞에서 죽은 자가 살아나고 백골에 살이 생기게 하시어

得從輕典(득종경전) : 가벼운 법을 적응하여

流宥遠方(류유원방) : 먼 지방으로 유배하도록 하셨으니,

再造之恩(재조지은) : 다시 살린 은혜가

有踰父母(유유부모) : 부모보다도 더합니다.

然其地甚遠且僻(연기지심원차벽) : 그러나 지역이 너무 멀고 궁벽한데다

語音不同(어음부동) : 언어마저 같지 않고

風氣絶異(풍기절이) : 풍습이 아주 다르며,

盜賊之不虞(도적지부우) : 도적을 헤아릴 수 없고

飢渴之相逼(기갈지상핍) : 기갈이 서로 침해하므로,

支體羸瘠(지체리척) : 신체가 여위고

頭鬚盡白(두수진백) : 머리가 다 세었으니,

辛苦之狀(신고지장) : 고생하는 상항을

言之可爲流涕(언지가위류체) : 말하려면 눈물이 나오는데,

執事忍視之耶(집사인시지야) : 집사께서는 차마 보고만 계시렵니까?


語其親則世皇之親甥也(어기친칙세황지친생야) : 친속으로 말하면 세조황제(世祖皇帝)의 친 생질이요,

語其功則先帝之功臣也(어기공칙선제지공신야) : 공로로 말하면 선제의 공신이며,

又其祖考(우기조고) : 또한 그의 조상들이

爰自太祖聖武皇帝草創(원자태조성무황제초창지시) : 태조성무황제가 창업할 때부터

慕義先服(모의선복) : 의리를 사모하고 솔선하여 복종해서

世著勤王之效(세저근왕지효) : 대대로 근왕한 공로를 세웠으니,

其功不可忘也(기공부가망야) : 그 공을 잊을 수 없습니다.

雖執迷不悟(수집미부오) : 비록 집미하고 깨닫지 못해

罪至罔加(죄지망가) : 더할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原其本心(원기본심) : 그 본심을 따져 보면

固亦無他(고역무타) : 진실로 딴 마음이 없었는데,

竄謫以來(찬적이래) : 귀양간 이래

已及四年(이급사년) : 이미 4년이 되었으니,

革心改過(혁심개과) : 마음을 고치고 허물을 뉘우친 것이

亦已多矣(역이다의) : 또한 이미 많습니다.


伏望執事(복망집사) : 삼가 바라건대,

旣嘗力救於初(기상력구어초) : 집사께서 일찍이 당초에 극력 구출해 주셨으니,

無忘終惠於後(무망종혜어후) : 끝까지 은혜를 베풀 것을 잊지 마시고,

敷奏?聰(부주주총) : 천자께 진달하시어

導宣天澤(도선천택) : 천자의 은택을 베푸시도록 인도하여

?還故國以終餘年(비환고국이종여년) : 고국에 돌아와 여생을 마치게 해주신다면,

其爲感激(기위감격) : 그 감격됨이

豈止轉溝壑者?美食(기지전구학자어미식) : 어찌 구렁에 딩굴던 자가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고,

陷濤瀨者履坦途而已哉(함도뢰자리탄도이이재) : 파도에 휘말리던 자가 탄탄한 길을 걷게 될 뿐이겠습니까?

若謂時未可也(약위시미가야) : 만일, 시기가 합당치 못하니

姑徐爲之(고서위지) : 일부러 천천히 하겠다고 하여

日延月引(일연월인) : 날마다 연기하고 달마다 끌다가,

而爲賢且有力者所先(이위현차유력자소선) : 현명하고 유력한 사람이 먼저 구원하게 된다면,

天下之士(천하지사) : 천하의 선비들이

將謂執事見事獨遲(장위집사견사독지) : 장차 집사께서 일을 봄이 특히 더디다 할 것이고,

小國之人(소국지인) : 우리 소국 사람들은

將謂執事爲德不竟(장위집사위덕부경) : 장차 집사께서 덕을 행하다 마치지 못했다 할 것이니,

竊爲執事惜之(절위집사석지) : 그윽이 집사를 위해 애석해 합니다






상정동성서(上征東省書)-이제현(李齊賢)

정동성에 올리는 글-이제현(李齊賢)


高麗國耆老衆官(고려국기로중관) : 고려국 늙은 여러 관원은

謹齋沐上書于征東省諸相國執事(근재목상서우정동생제상국집사) : 삼가 목욕재계하고 정동성 여러 상국 집사께 글을 올립니다.

朝廷使臣朶赤等(조정사신타적등) : 조정 사신 두적(朶赤) 등이

欽奉郊天大赦德音(흠봉교천대사덕음) : 교천대사(郊天大赦)의 말씀을 받들고

前來王京(전래왕경) : 전에 왕경에 옴에 있어

我寶塔實憐王(아보탑실련왕) : 우리 보탑실린왕(寶塔實憐王)께서

引僚吏備儀仗(인료리비의장) : 관리를 이끌고 의장(儀仗)을 갖추어

出迎城外(출영성외) : 성 밖까지 출영하고

入于本省(입우본성) : 본 성으로 들어왔습니다.

聽詔訖(청조흘) : 조서를 다 듣고 나서

使臣等就執王上馬廻去(사신등취집왕상마회거) : 사신 등이 나아가 왕을 붙잡아 말에 태워서 돌아갔습니다.

事出倉卒(사출창졸) : 일이 창졸간에 일어나

凡在陪臣措躬無所(범재배신조궁무소) : 모든 배신(陪臣)들도 몸 둘 곳이 없었으니,

尙復奚言(상부해언) : 오히려 다시 어떻게 말씀드리겠습니까.

然念王年少不更事(연념왕년소부경사) : 그러나 생각하면, 왕은 연소해서 많을 일을 겪지 못해서

直情徑行(직정경행) :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대로 행했기 때문에

所以致此(소이치차) : 이에 이른 것이지,

原其本意(원기본의) : 원래 그 본 뜻은

蓋亦無他(개역무타) : 또한 다른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天日照臨(천일조림) : 하늘의 해가 위에서 내리 비치는데

胡可誣也(호가무야) : 어떻게 속일 수 있겠습니까.

又念小邦始祖王氏(우념소방시조왕씨) : 또 생각하면 저의 나라 시조 왕씨는

開國海隅四百二十六年(개국해우사백이십륙년) : 바다 구석에서 개국한 것이 426년이요

子孫相繼二十八世(자손상계이십팔세) : 자손이 28대를 대대로 계승하며,

歷宋遼金通使往來(력송료김통사왕래) : 역대로 송ㆍ요ㆍ금과 사신을 통하여 왕래하며

羈?而已(기미이이) : 견제할 뿐이다가

及我太祖聖武皇帝龍興(급아태조성무황제룡흥지제) : 우리 태조 성무(聖武) 황제의 왕업이 일어날 무렵에 이르러

有金山王子者驅掠中原之民(유김산왕자자구략중원지민) : 금산왕자(金山王子)란 자가 있어 중원의 백성을 몰아 약탈하며,

圖復亡遼之業(도부망료지업) : 망한 요의 왕업을 회복하려 꾀하다가

勢窮東走(세궁동주) : 세력이 다하자 동쪽으로 달아나

陸梁島嶼(륙량도서) : 도서에서 제멋대로 날치므로

太祖命哈眞?剌兩將帥討罪(태조명합진찰랄량장수토죄) : 태조께서 합진(哈眞)ㆍ찰랄(札剌) 두 장수를 보내어 죄를 다부지게 나무라게 되었는데

天寒雪深(천한설심) : 날씨는 차고 눈이 깊어

餉道不繼(향도부계) : 군량을 대지 못함에

我忠憲王(아충헌왕) : 우리 충헌왕(忠憲王)이

遣趙?金就礪等助兵與糧一擧破賊(견아충헌왕견조충김취려등조병여량일거파적) : 조충(趙沖)ㆍ김취려(金就礪) 등을 보내 군사를 돕고 군량을 주어 일거에 적을 깨쳤습니다.

於是兩國同盟(어시량국동맹) : 이에 두 나라가 동맹을 맺고

萬世子孫(만세자손) : 만세의 자손이

無忘今日(무망금일) : 오늘날까지 잊지 않고 있으며,

因分所虜生口爲信(인분소로생구위신) : 이로 인해 사로잡은 포로를 교환하는 것으로 믿음을 삼았으니,

今小邦有契丹場是也(금소방유계단장시야) : 지금 저의 나라에 거란장(契丹場)이 있는 것이 이것입니다.

世祖文武皇帝觀兵襄陽(세조문무황제관병양양) : 세조 문무 황제께서 양양(襄陽)에서 군대를 사역하는데,

阿里?哥扇變漠北(아리패가선변막북) : 아리패가(阿里?哥)가 막북(漠北)에서 모반을 선동하자

諸侯虞疑(제후우의) : 제후들은 두려워하고 의심하며

各懷去就(각회거취) : 각기 진퇴를 생각했습니다.

我忠敬王時爲世子(아충경왕시위세자) : 우리 충경왕(忠敬王)은 그때 세자였는데,

蒙犯霜露(몽범상로) : 서리와 이슬을 무릅쓰고

直至?梁(직지변량) : 곧장 변량(?梁)에 이르러

以迎于道(이영우도) : 길에서 맞으니,

世祖望見驚喜曰(세조망견경희왈) : 세조께서 바라보시고 놀라 기뻐서 이르기를,

高麗荒遠之邦(고려황원지방) : “고려는 아득히 먼 나라인데도

今我北歸(금아북귀) : 이제 내가 북쪽으로 돌아가

將繼太統(장계태통) : 장차 대통을 이으려는데,

彼其世子(피기세자) : 저들은 그 세자가

自來歸我(자래귀아) : 스스로 와서 귀순하여 붙좇으니,

天贊我也(천찬아야) : 하늘이 나를 돕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忠敬王旣當國(충경왕기당국) : 충경왕이 이미 나라를 맡음에

陪臣林惟茂父子(배신림유무부자) : 배신 임유무(林惟茂) 부자는

不喜內屬(부희내속) : 항복하여 속국이 됨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擅廢立阻兵江華(천폐립조병강화) : 강화에서 군사를 믿고 임금의 폐립(廢立)을 제멋대로 하므로

世子忠烈王奔告朝廷(세자충렬왕분고조정) : 세자 충렬왕이 빨리 가서 조정에 알리자

世祖赫怒(세조혁노) : 세조께서는 격노하여

詔王復位(조왕부위) : 왕을 불러 복위(復位)하라 하며,

乘馹入覲(승일입근) : 역마를 잡아타고 궁중에 들어가 임금을 뵈옵고

王及世子引兵東還(왕급세자인병동환) : 왕과 세자가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돌아와

擒戮逆黨(금륙역당) : 역적들의 무리를 사로잡아 죽임으로써

去水而陸(거수이륙) : 물을 버리고 육지로 나와

一心供職(일심공직) : 일심으로 공직(供職)하였습니다.

忠烈王之世(충렬왕지세) : 충렬왕 때에

世祖兩征日本(세조량정일본) : 세조께서 두 번 일본을 정벌하였는데,

王遣金方慶等(왕견김방경등) : 왕이 김방경(金方慶) 등을 보내어

修其戰艦(수기전함) : 그 전함을 수리하고

每爲先鋒(매위선봉) : 매양 선봉이 되었으며,

又乃?之黨哈丹攻陷水達女眞之地(우내안지당합단공함수달녀진지지) : 또 내안(乃顔)의 무리 합단(哈丹)이 수달달(水達達) 여진의 땅을 쳐서 함락시키고

侵及我疆(침급아강) : 우리 국경을 침범하여

欲抗天威(욕항천위) : 천위(天威)를 거스르려 하자,

王出兵逆擊之(왕출병역격지) : 왕이 출병하여 그들을 맞이해 쳐서 패전시켜

隻輪無返者(척륜무반자) : 외 수레로 돌아가는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大德末(대덕말) : 대덕(大德) 말년에

益知禮不花王(익지례부화왕) : 익지예불화왕(益知禮不花王)이

左右仁宗皇帝(좌우인종황제) : 인종(仁宗) 황제를 도와

定亂淸宮(정란청궁) : 난을 평정하고 궁전을 청결히 하여

奉迎武宗皇帝(봉영무종황제) : 무종 황제를 봉영해서

爲一等功臣(위일등공신) : 일등 공신이 되었으니,

是則王氏忠於朝廷也久矣(시칙왕씨충어조정야구의) : 이는 왕씨가 조정에 충성함이 오래인 것입니다.

又令世祖皇帝釐降忽篤怯迷思公主(우령세조황제리강홀독겁미사공주) : 또 생각하면 세조 황제께서 홀독겁미사공주(忽篤?迷思公主)를 신하에게 시집보내어

是生益知禮不花王(시생익지례부화왕) : 이 분이 익지예불화왕을 낳았으며,

益知禮不花王生阿納?室利王(익지례부화왕생아납특실리왕) : 익지예불화왕은 아납특실리왕(阿納?室里王)을 낳았고,

阿納?室利王生寶塔實里王(아납특실리왕생보탑실리왕) : 아납특실리왕은 보탑실리왕(寶塔失里王)을 낳았고,

寶塔實里王雖疏且遠(보탑실리왕수소차원) : 보탑실리왕은 비록 소원했지만

其於世祖(기어세조) : 그 세조 때에는.

實有肺腑之親焉(실유폐부지친언) : 참으로 골육과 같은 친분이 있었습니다

又念皇后奇氏生自小邦(우념황후기씨생자소방) : 또 생각하면 황후 기씨(奇氏)는 저의 나라에서 탄생하여

上配至尊(상배지존) : 위로 지존의 배필이 되어

誕毓元良(탄육원량) : 태자를 낳아 길러

爲天下所慶賴(위천하소경뢰) : 천하께서 기뻐하고 의뢰하는 바 되었으니,

朝廷之視小邦(조정지시소방) : 조정이 저의 나라에 대한 대접이

不應與諸蕃同焉(부응여제번동언) : 마땅히 여러 야만과는 같지 않아야 합니다.

又念小邦與日本(우념소방여일본) : 또 생각하면 저의 나라는 일본과

隔海爲隣(격해위린) : 바다를 격해 이웃했으므로

我之蒙福(아지몽복) : 우리가 복을 받으면

彼則愧其歸化之遲(피칙괴기귀화지지) : 저들은 그 귀화의 더딤을 부끄러워하고,

我之獲戾(아지획려) : 우리가 죄를 얻으면

彼則甘其執迷之陋(피칙감기집미지루) : 저들은 그 고집하고 명민하지 못한 누태(陋態)를 달가워 했음은

勢之必然者也(세지필연자야) : 형세가 반드시 그러했던 것입니다.

昔周執衛侯?而卒令復位(석주집위후간이졸령부위 : 옛날에 주 나라가 위후(衛侯) 간(?)을 잡아 마침내 복위케 하고

漢徵梁王武而亦使歸梁(한징양왕무이역사귀양) : 한 나라가 양왕(梁王)무(武)를 불러 또한 양 나라로 귀부케 한 것은

有以見王者之大度也(유이견왕자지대도야) : 왕자의 큰 도량을 보이는 소이가 있어서입니다.

況我朝廷自列聖以來(황아조정자렬성이래) : 하물며 우리 조정은 열성(列聖) 이래로

好生之德(호생지덕) : 생명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이 있어

萬萬過於周漢(만만과어주한) : 주 나라. 한 나라보다도 더 나음에 있어서겠습니까.

而今則親享南郊(이금칙친향남교) : 그러나 이제 몸소 남쪽 교외에서

尊祖配天(존조배천) : 조상을 하늘과 함께 제사 지내고

大禮旣成(대례기성) : 대례가 이미 이루어지고 .

德音廣布外薄四海(덕음광포외박사해) : 덕음(德音)을 널리 사해에 펴

蹈舞歡呼(도무환호) : 춤추며 환호하는데

苟有一物不被其仁澤者(구유일물부피기인택자) : 진실로 하나의 물건이 그 어진 은택을 입지 못함이 있다는 것은

所宜痛心(소의통심) : 마음 아픈 일입니다

欽惟聖天子以宥過無大(흠유성천자이유과무대지인) : 오직 성천자께서 허물을 용서하는, 보다 큼이 없는 어진 마음으로써

?廻一念(당회일념) : 만약 생각을 한 번 돌려

使我寶塔實里王(사아보탑실리왕) : 우리 보탑실리왕으로 하여금

免離罪?(면리죄고) : 죄를 지어 잡힌 것을 사면하여 놓아 주시어

游泳恩波(유영은파) : 은혜의 물결에서 헤엄치게 하시고,

且使王氏君臣社稷(차사왕씨군신사직) : 또 왕씨의 군신과 사직으로 하여금

不替其名(부체기명) : 그 이름을 바꾸지 않아

衣冠風俗(의관풍속) : 의관 풍속을

?仍其制(병잉기제) : 아울러 그 제도를 따르고

山海愚民(산해우민) : 산해의 어리석은 백성이

獲安舊業(획안구업) : 옛 생업에 편안함을 얻을 수 있게 하신다면

則太祖世祖勤恤小邦之(칙태조세조근휼소방지의) : 태조와 세조께서 저의 나라를 도탑고 가엾게 여기신 뜻이

豈不益明(기부익명) : 어찌 더 밝아지지 않겠으며,

世祖釐降公主(세조리강공주) : 세조께서 공주를 신에게 시집보내어

生子若孫(생자약손) : 자손을 낳으므로써

以繫遠方之心(이계원방지심) : 먼 곳의 마음을 매어 두어

其規模豈不益遠(기규모기부익원) : 그 규모가 어찌 더욱 멀어지지 않겠으며,

皇后誕毓元良(황후탄육원량) : 황후가 태자를 낳아 기르며

天下之慶賴(천하지경뢰) : 천하가 기뻐하고 의뢰한 마음이

豈不益偉(기부익위) : 어찌 더 훌륭해지지 않겠으며,

小邦勤王敵愾之志(소방근왕적개지지) : 작은 저의 나라가 임금께 충성을 다하고 적과 싸우려는 뜻이

豈不益堅(기부익견) : 어찌 더욱 굳어지고지지 않겠으며,

日本未服之民(일본미복지민) : 굴복하지 않은 일본 백성이

革其執迷(혁기집미) : 그 고집하고 미혹됨을 고쳐

樂於歸化(악어귀화) : 귀화함에 즐거워하지 않겠습니까

其意豈不益篤(기의기부익독) : 그 뜻이 어찌 더욱 두터워지지 않겠으며,

四百二十六年二十八世血食之鬼(사백이십륙년이십팔세혈식지귀) : 4백 26년 28대를 자손이 이어 제사가 끊이지 않았던 귀신이

豈不益感(기부익감) : 어찌 더욱 감동하지 않겠으며,

朝廷宥過無大(조정유과무대) : 조정이 허물을 용서하고 한없이 큰 어진 마음이 있어

好生之德(호생지덕) :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성이

豈不益播於天下後世哉(기부익파어천하후세재) : 어찌 천하 후세에 더욱 퍼지지 않겠습니까.

伏惟執事(복유집사) : 엎드려 생각건대 집사께서는

俯察?言(부찰추언) : 무식하고 비천한 사람의 말을 굽어살펴

達于天聰(달우천총) : 천자의 총명에 달하게 하소서





송신원외북상서(送辛員外北上序)-이제현(李齊賢)

원나라에 사신가은 신원외를 전송하는 글-이제현(李齊賢)


士之行斯世也(사지행사세야) : 선비가 이 세상을 살아감은

其猶舟乎(기유주호) : 마치 배 타기와 같아서

有其才爲之楫(유기재위지즙) : 재주로 노를 삼고

有其命爲之順風(유기명위지순풍) : 천명으로 순풍을 삼은

然後利有攸往矣(연후리유유왕의) : 연후에야 가기가 편리한 법이다.

有才與命(유재여명) : 재주와 천명을 받았더라도

其志之或卑(기지지혹비) : 의지가 혹 비열하면

猶之楫完風利(유지즙완풍리) : 마치 노가 완전하고 바람이 순하여도

而操舟者非其人(이조주자비기인) : 배를 조정하는 사람이 합당하지 못한 것과 같으니,

烏能任萬斛之重(오능임만곡지중) : 어찌 만곡의 무게를 싣고

致萬里之遠(치만리지원) : 만 리의 먼 곳에 이르러,

以濟其不通乎(이제기부통호) : 통하지 못하는 곳을 건널 수 있겠는가?

員外辛侯(원외신후) : 원의 신후는

束髮讀書(속발독서) : 어릴 때부터 글을 배우되

敏而好問(민이호문) : 민첩하고 묻기를 좋아하여

揚?翰墨之場(양표한묵지장) : 문장을 다루는 곳에서 이름을 날렸고,

游刃簿書之數(유인부서지수) : 문서를 취급하는 부서에서 솜씨를 보였으니

可謂有其才矣(가위유기재의) : 재주가 있다 하겠고,

筮仕不幾年(서사부기년) : 벼슬을 한 지 몇 해 안 되어

歷提學代言(력제학대언) : 제학ㆍ대언을 거쳐

遷密直僉議(천밀직첨의) : 밀직 첨의로 전임하였다가,

仍爲星郞東省(잉위성랑동생) : 이어 동성의 성랑으로 나갔으니

可謂有其命矣(가위유기명의) : 천명을 받았다 하겠으며,

引舊故同升諸公(인구고동승제공) : 벗들을 데려다가 함께 조정에 벼슬하고

咨耆艾以諧庶政(자기애이해서정) : 나이 많은 선배들에게 자문하여 서정(庶政)을 처리하고 .

正色匡君主(정색광군주) : 엄정한 안색으로 임금을 바로잡고,

推誠待賓旅(추성대빈려) : 성의를 다하여 빈려를 접대하니

可謂有其志矣(가위유기지의) : 의지가 있다 하겠다


今以朝官被召(금이조관피소) : 이번에 조관으로 소명을 받고

騰裝而西笑(등장이서소) : 행장을 꾸려 서쪽으로 웃으며 떠나게 되었으니

才之奇(재지기) : 재주의 기발함

命之達(명지달) : 천명의 장원함

志之大(지지대) : 의지의 웅대함이

將於是乎益見矣(장어시호익견의) : 장차 이로부터 더욱 드러나게 될 것이다.

權贊善而下二十有八家(권찬선이하이십유팔가) : 권찬선(權贊善) 이하 28명이

用鄭愚谷謝宴詩(용정우곡사연시) : 정우곡의 사연시를

分韻聯章(분운련장) : 분운해서 연장하여

以美其行(이미기행) : 장도를 찬미하고는

屬予爲序(속여위서) :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予執爵而前(여집작이전) : 나는 잔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

請畢舟之說(청필주지설) : 배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려고 한다.


夫江河之與溟渤(부강하지여명발) : 무릇 강하와 명발이

大小則殊舟於其中者同也(대소칙수주어기중자동야) : 대소는 다르나 그 속에서 배를 타기는 마찬가지다.

檣而帆之(장이범지) : 돛대에 돛을 다는 것은

所以進也(소이진야) : 전진하려는 것이요,

纜而碇之(람이정지) : 닻줄과 닻을 다는 것은

所以止也(소이지야) : 정박하려는 것이요,

又必有衣?焉(우필유의녀언) : 또한 반드시 의여를 지님은

所以備漏濡者也(소이비루유자야) : 물이 새는 것을 대비하려는 것이다.

王國(왕국) : 왕국(王國)은

江河也(강하야) : 강하와 같고

天子之邦(천자지방) : 천자의 나라는

溟渤也(명발야) : 명발과 같은데,

侯之舟由江河而溟(후지주유강하이명발지지야) : 신후의 배가 강하에서 명발로 가게 되었으니

苟能檣其義(구능장기의) : 진실로 능히 의(義)로 돛대를 삼고,

帆其信(범기신) : 신(信)으로 돛을 삼고,

纜其禮(람기례) : 예(禮)로 닻줄을 삼고,

碇其智(정기지) : 지(智)로 닻을 삼고,

衣?其敬愼廉勤(의녀기경신렴근) : 경신과 염근으로 의여를 삼는다면,

何重之不任(하중지부임) : 어느 무거운 짐인들 감당하지 못하겠으며,

何遠之不致(하원지부치) : 어느 먼 곳엔들 가지 못하겠으며,

何不通之不濟乎(하부통지부제호) : 통하지 못하는 어느 곳엔들 건너가지 못하겠는가?

昔(석) : 옛적에

田叔(전숙) : 전숙과

韓安國(한안국) : 한안국은

以梁趙之臣(이량조지신) : 양(梁)ㆍ조(趙)의 신하로서

立於漢廷(립어한정) : 한(漢) 나라 조정에 들어가,

揚名當時(양명당시) : 당시에 이름을 날리고

流譽後世(류예후세) : 후세에 명예를 남겼으니,

吾今侯焉是望矣(오금후언시망의) : 내가 이번에 신후에게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노라.







풍성한 도토리로 기쁨 선사

'장수' 의미…이제현 號로 사용

이 세상에 모든 것은 쓸모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론 편의에 따라 생명체마저 쓸모없는 것으로 평가한다. 참나무과의 상수리나무를 의미하는 역()은 가죽나무를 의미하는 저(樗)와 합쳐 쓸모없는 대명사이다. 상수리나무를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한 것은 장자(莊子) 내편(內篇)의 '인간세(人間世)'에 나오는 우화 때문이다. 장석(匠石)은 상수리나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깔보았다.


"그것으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을 것이요, 널을 만들면 쉬이 썩을 것이요, 그릇을 만들면 이내 깨질 것이요, 문을 만들면 나무진이 밸 것이요, 기둥을 만들면 좀이 먹을 것이다. 이처럼 이 나무는 아무데도 쓸모없기에 오래 사는 것이다."


장자에서도 나무 신이 장석의 꿈에 나타나 그를 야단치지만, 이 나무를 진정 아는 사람들은 결코 상수리나무를 쓸모없는 존재로 파악하지 않을 것이다. 잎 떨어지는 키 큰 상수리나무는 우리들에게 아주 큰 즐거움을 준다. 한자 즐길 락(樂)은 도토리가 달려 있는 모습을 본뜬 글자이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상수리나무의 열매인 도토리를 통해서 어려운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상수리나무의 '상수리'도 피란 온 임금에게 마을 사람들이 도토리로 만든 묵을 수라상에 올려 붙여진 이름이다. 참나무과 중에서 상수리나무가 열매를 가장 많이 생산한다.


고려시대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호 역옹(翁)은 바로 상수리나무에서 따왔다. 지금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신돈'에 등장하는 이제현은 81세까지 살면서 충선왕, 충혜왕, 충목왕, 공민왕까지 무려 네 임금을 모셨을 뿐 아니라 다섯 차례나 중국에 다녀왔다. 그가 상수리나무를 호로 삼은 것도 장자의 우화에 나오는 것처럼 오래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그의 작품 '역옹패설(翁稗說)' 서문에 나온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장수하였다. 그러나 그는 장자의 우화에 나오는 것처럼 쓸모 없어서 장수한 게 아니라 쓸모 있으면서도 오래 산 사람이다.


기둥으로 사용할 나무와 서까래로 쓸 나무가 따로 있다. 기둥으로 사용할 나무는 성숙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잘라버린다면 큰 나무를 만들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크게 쓸 사람은 성장하도록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마구 부린다면 그 사람은 결코 크게 성장할 수 없다. 이 세상에 큰 인물이 없는 것도 바로 큰 재목을 키우지 않고 마구 부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재(人材)는 나무처럼 길러야 한다.



회음의 표모 무덤(淮陰漂母墓)


重士憐窮義自深.중사련궁의자심

선비 돕는 의리가 중한 것이지,

豈將一飯望千金   기장일반망천김

밥 한 그릇으로 어찌 천금을 으랐으랴!

歸來却責南昌長,  귀래각책남창장

고향에 돌아와 남창 정장을 책하다니,

未必王孫識母心 미필왕손식모심

왕손도 표모의 뜻을 알지 못한 것인가.

婦人猶解識英雄. 부인유해식영웅

부녀자도 오히려 영웅을 알아차리어,

一見殷勤慰困窮 일견은근위곤궁

한 번 보고 곤궁함을 위로하였거늘!

自棄爪牙資敵國 자기조아자적국

스스로 발톱과 이빨을 적국에 주다니

項王無賴目重瞳 항왕무뢰목중동

항왕은 일없이 눈동자만 겹친 것인가.


 → 천하통일 후 초왕이 되어 금의환향한 한신은 과거 자신에게 밥을 줬던 표모(빨래하는 아낙)에게 천금으로 보답하고, 베풀다 만 남창 정장에겐 백전만 주며 소인이라고 꾸짖는다. 1장에서는 표모가 어찌 천금을 바라고 밥을 줬겠느냐, 그리고 베풀다 말았어도 베풀긴 베푼 건데 어찌 정장을 나무라느냐며 은혜 갚기에 차별을 둔 한신의 행위를 비판하고 있다.


2장에서는 한신이 장차 큰일을 할 인물임을 알아보고 도움을 준 표모와, 한신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고 유방에게로 달아나게 하여 훗날 멸망을 자초한 항우를 비교한다. 사기 항우본기에 따르면 항우는 겹눈동자였다는데, 하릴없이 눈동자만 겹쳤냐는 말은 요즘으로 치면 '눈은 장식이냐?', '안경은 폼으로 쓰고 다니냐?' 같은 뉘앙스다. 표모의 덕을 칭송함과 동시에 항우의 사람 보는 눈이 일개 부녀자만도 못함을 조롱한다.


      

     마하연(摩訶衍)

山中日亭午  산중일정오

草露濕芒?  초로습망구

古寺無居僧  고사무거승

白雲滿庭戶  백운만정호



산중의 해가 한낮이 되었는데

풀 이슬은 짚신에 촉촉이 젖었네.

옛 절이라 머무는 스님은 없어도

흰 구름은 뜨락에 가득하구나.





걸퇴전(乞退箋)1) - 이제현

바다의 자라가 머리를 들매 영산(靈山)1)을 받들기를 바라고, 마구의 말이 발굽을 상하였으니 어찌 청로(淸路)2)를 가지런히 달릴 수 있겠 습니까?3)

 이러므로 저의 포부를 진술하여 총명을 더럽힙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신은 문서나 다루는 용렬4)한 재능이요 도량이 좁은

천한 품성인데, 외람스럽게 병균(秉鈞)5) 책임을 맡았으니 몸이 가루가

되는 노고를 감히 잊을 수 있겠으며, 복속(復屬)6)의 근심7)을 항상

품으니 등에 가시를 진 것과 같습니다.

과연 원숭(元崇)8)의 발병을 이루었으니 수가(須賈)9)의 무릎으로 행함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10)

 방에서 신음하고 작은 거리도 기어다니니, 이는 대개 재주는 적은데

책임이 중하고 복이 과하여 재앙을 낳은 것입니다. 구문(口吻)11)

시비를 만났으니12) 형세가 함께 처하기 어렵고 말에서 떨어져 몸을

상하였으니 진실로 물러나는 것이 마땅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신이 일을 덜고 병을 보양코자 함을 불쌍히

여기고, 신이 거짓을 꾸며 총애를 사양하는 것이 아님을 아셔서,

신으로 하여금 늙은 나이에 벼슬의 영화를 사퇴하고 전야(田野)13)

한가로이 거처하여 약이(藥餌)14)의 공효15)를 거두게 하여 주시면,16)

강릉(岡陵)17)의 수를 오로지 빌면서 임금님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겠습니다.

신이 근래 발병으로 물러가기를 빌었는데 삼가 들으니 또 하비(下批)18)

하여 전대로 직임을 제수하고 열 자의 공신호를 더하였다 하니

송구스러움을 이기지 못하여 다시 사면하기를 빕니다.

재능을 헤아려 쓰고 버리는 것이니 어진 임금은 어찌 어려운 바를

맡기겠습니까? 분수를 헤아려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이니 어진 선비가

화에 걸리는 것을 면합니다. 총명을 돌리시어 우매한 자의 말을 받아

들여 주소서.

삼가 생각하건대 신은 썩은 선비로서 사정(事情)에 오활(?闊)19)

합니다. 지혜는 발을 보살피기에도 부족하여 이미 미끄러져 엎어

졌습니다. 걸해(乞骸)20)를 더욱 간절히 함은 스스로 굴 술잔에 임한

새가 놀라서 다시금석(金石)21)의 아룀을 듣고, 마판에 엎드린 노마

(駑馬)가 지쳐 있는데 도리어 비단 덮개를 얻었으니,22)굴칩(屈蟄)23)

을 달게 여김인데, 어찌 특별한 총애를 병든 이 몸에 다시 더하십니까?

사람들이 떼지어 일어나 다투어 조롱할 것이고, 신도 진실로 자신을

돌이켜보매 부끄러움을 더할 뿐입니다. 어찌 왕래하기도 어려운 몸

으로 감히 읍양(邑讓)24)을 옹용(雍容)25)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따뜻한 유음(兪音)26)을 내리시어 늙어 쇠잔한 목숨을 온전케

하여 주시면, 향 피워 깨끗이 목욕하고 공광(孔光)27)처럼 집으로 돌려

보내 준 은혜에 절하고, 전야(田野)에 살면서 홍경(弘景)28)처럼 관을 건

뜻을 올리겠습니다.

신모(臣某)는 병이 이미 오래 되어 두 번 전(箋)29)을 올려 퇴직하기를

빌었더니, 이 달 이십오일에 상의 자은(慈恩)30)을 입었습니다. 특별히

좌부대언(左副代言) 신(臣) 유숙(柳淑)과 응양군 상장군(鷹壤軍 上將軍)

신 김용취(金鏞就)를 보내어 신에게 교서를 하사하여 그 청을 불윤

(不允)31)하시니, 신은 감격하여 어쩔 줄 몰라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땅에 엎드려 오열(嗚咽)32)하면서 다시 어리석은 회포를 진술합니다.

벼슬하여 충성코자 하는 바는 임금이니, 진실로 적임자가 아니면

헛되이 은영(恩榮)33) 더럽히는 것인데, 늙어도 물러가지 않으면

선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병이 많으니 감히 녹위(祿位)34)

에 편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정성을 피력하여 아뢰오니 정리를

헤아려 윤허하소서.        

삼가 생각하건대 신의 재주는 눈먼 재상과 같고 병은 절름발이부도

(簿圖)35)와 같습니다. 경륜(經綸)의 책임이 중대하매 일찍이 붓을 잡고

정신이 흐릿하여짐을 부끄러워하였고, 검리(劍履)36)의 반열(班列)37)

이 높으매 도리어 규(圭)38)를 잡고 넘어질까 두려워하였습니다. 분수는

자라처럼 움츠림을 달게 여기니 조정의 반열에 나가고 싶은 바람이

끊어졌습니다.39)

 감히 당부하는 말을 생각하여 억지로 비틀거리는 걸음을 일으키니,

먼저 조아(爪牙)40)의 중신을 초령 보냈고 다시 후설(喉舌)41)의 명신

(名臣)을 보내어 지검(芝檢)42)을 전하였습니다. 영광은 저자에 넘치고

성문(聲聞)43)은 진신(縉神)44)을 경동시켰으니, 이미 전에 없는 돌봄을

입었는지라 어찌 죽음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공이 적은데

높은 지위에 거한 자는 반드시 횡의(橫議)45)를 만나게 되고, 지혜가

적은데 요직에 거한 자는 모함을 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비록 병이

나았다 할지라도 무슨 낯으로 다시 나아가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돌리기 어려운 간절함을 살피시고 죽음에 가까운

연령을 불쌍히 여기시어, 신으로 하여금 6척의 완구(頑驅)46)를 거두어

현자(賢者)를 위하여 길을 피하게 하고 일잠(一簪)47)의 백발을 흩날리며

집에서 노년을 보내게 하여 주소서.     

신은 두 번이나 글을 올려 물러가기를 빌었으나 윤허 받지 못한 지가

이제 이미 순월(旬月)48)이 되었는데, 병세가 증가하였으므로 다시

정성을 진술하여 천정49)을 더럽힙니다. 해바라기 같은 충심이 간절하매

비록 해를 향하여 홀로 기울어짐을 아오나, 포류(蒲柳)50) 같은 자질이

이미 미약하매 오직 가을을 바라보고 먼저 시들까 두려워합니다.

해골을 빌기 위하여 여러 번 폐장(肺腸)51)을 진술하였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덕릉(德陵)52)의 알아줌을 받았으나 척촌53)의 재능도

없었고, 숙녜54)를 섬겼으나 또한 털끝만한 도움도 없었습니다.55)

성제(盛除)를 인연하여 여러 번 위학(衛鶴)의 영화56)를 입었으니 힘써

여생(餘生)을 바쳐 수사(隋蛇)의 보답57)을 바치려 하오나, 돌아보건대

정신이 혼모함은 노병(老病)이 계속됨으로 인한 것이라 어찌 벼슬을

도둑질하여 수치를 잊고 있을 수 있겠으며, 급히 어진 자를 위하여

사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외척(外戚)의 홍총재 같은 분은 중년에

용퇴(勇退)하였고, 변공(邊功)이 있는 염원융(廉元戎) 같은 분은 하위

(下位)에 굴거(屈居)하였으니, 누가 칠순의 치한(癡漢)이 일국의 중신이

되는 것을 합당하다 이르겠습니까? 부질없이 예법의 명문(明文)58)

어겼으므로 조정의 뭇 비방을 자아내게 된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간절한 말을 너그러이 받아들이시어 초복(初服)59)

으로 돌아가게 하여 주시면, 신은 종적을 항상 연곡(輦穀)60)

머물러서 빛나는 자지(紫芝)61)를 노래 부르지 않을 것이며,62)

꿈 속에서도 임금님을 생각하여 무성한 녹죽63)64을 읊겠습니다.

 ♣ 핵심 정리 ♣

▣ 제재 : 걸퇴

▣ 주제 : 관직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함

? 감상의 길잡이 ?

이 글은 나이가 들고 몸에 병이 생긴 지은이가 자신을 총애하는

왕에게 퇴직의 마음을 완곡하게 쓴 글이다. 노 관료의 입을 통해

벼슬아치가 지녀야 할 요건과 나라에 도움이 되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각하게 하는 글이기도 하다. 지은이의 학식과 세련된 수사가 돋보인다.






산속 눈 내리는 밤山中雪夜


홑이불엔 찬 기운 나고 등불은 어둑한데

 사미승 한밤 내내 종 울리지 않는다

 나그네 일찍 문 연다 응당 성내겠지만

 암자 앞 눈에 눌린 소나무는 보아야겠지


 紙被生寒佛燈暗  지피생한불등암 

沙彌一夜不鳴鍾   사미일야불명종

 應嗔宿客開門早 응진숙객개문조

要看庵前雪壓松   요간암전설압송




손끝에 남은 향기


수양버들 시냇가에 비단 빨래 하노라니

흰 말 탄 선비님이 손잡으며 정을 주네

삼월비에 연일 푸르러오는데

손끝에 남은 향기야 차마 어이 씻으리?


浣紗溪上傍垂柳  완사계상방수류

執手論心白馬郞  집수논심백마랑

縱有連蒼三月雨  종유연창삼월우

指頭何忍洗餘香  지두하인세여향


*고려가사의 하나~ 이제현의 한시를 다시 현대어로 복원한 '시조시'입니다.

 縱有連蒼三月雨.....삼월비에 연일 푸르러오는데~를 생략해도

 詩로서 전하는 의미가 전혀 손색이 없군요.

 1연에서 <수양버들 시냇가에 빨래하노라니>로서 모두 다 함축되있으므로...^^* 20:40


*손종섭(90)선생님이 번역한 <시조시>입니다.




출처 : 산의품 보금자리
글쓴이 : 산의품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