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遊金剛錄(李黿)1)
금강산은 강원도의 진산이다. 북쪽으로는 안변에 닿았고, 남쪽으로는 강릉에 이르며, 동쪽으로는 큰 바다에 임하고 서쪽으로는 춘천의 경계에 통한다. 흡곡·통천·고성·간성·회양·금성·양구·낭천의 여러 고을이 안팎의 산기슭에 분포한다. 길이는 삼백여 리나 되며 동서의 땅을 나눔에 고개로 경계를 삼으니, 안팎의 배들이 머무르는 곳이 되고, 서쪽으로는 내산(내금강)을 삼고, 동쪽으로 외산(외금강)을 삼으니, 신선인 듯 살기를 원하는 사람[仙翁]과 불자[釋子]들이 마침내 모이는 곳이요, 소인·묵객이 오가며 유람하며 완상하는 곳이다.
나의 먼 조상인 고려조 문충공 익재선생께서 또한 이곳을 읊고 기록하였으니, 길고 짧은 시편들이 종종 당신의 『익재난고』에 실려 전한다.
내가 생각하건대, 한 번 올라 유람하여 나의 뜻을 흔쾌히 하고, 장차 옛 사람의 발자취를 잇고자 하는 마음이 오래였다. 나랏일에 이끌리고, 집안 일에 얽매여 아직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였더니, 올해 봄 마침 太常의 일원으로 글을 지어 올렸다가 죄를 얻게 되어 개인적으로는 남몰래 잘되었다고 생각하며, 호탕하게 금강산을 유람할 뜻을 두고, 길일을 택해 계행하고, 바다를 좇아 동쪽으로 향하여 모월 모일 길을 떠나 고성군에 이르렀다.
태수 김지동은 이에 서울에 올라가고 없었는데, (이 사람은) 문정공 礩의 막내 아들이다. 그의 아들인 건이 나와는 어린 시절 사귐이 있었기에 나를 대접함이 매우 도타왔다.
다음날 훈도 김대용과 김건이 강을 따라 올라왔다. 강의 근원은 산의 배 닿는 곳[水站]에서 나와 유점사를 거쳐 동쪽으로 흘러 비스듬히 잇닿으며 남쪽으로 향하고, 또한 북쪽으로 꺾어지면서는 백번을 굽어 흘러 동쪽으로 바다에 쏟아질 듯 흘러내린다.
한낮이 되어 산의 골짜기 어귀[洞口]에 이르니, 강의 서쪽 언덕에 한 절이 있는데, 누관(樓觀)은 뾰족하고도 가지런하며, 창고는 넉넉하고도 높았다. 물어보니 곧 유점사의 숙고라고 하는데, 우리 세조께서 세운 것이다. 봄·가을로 출납하며, 아침·저녁으로 부처를 봉양하는 재원으로 삼는다. 숙고로부터 남쪽으로 향하여 점점 돌아 서쪽으로 들어 냇물이 흘러 용솟음친다. 초목이 우거진 것이 십리에 뻗어 햇볕도 거의 볼 수 없고, 다만 맑고 서늘함이 뼈를 찌를 뿐, 여름날의 뜨거운 햇볕도 두렵지를 않다. 길가에 돌을 쌓은 것이 탑이 되고, 돌을 세운 것이 臺가 되었는데, 평평한 틈서리땅이 있어 앉을 만하였다. 그것을 물어보았더니 ‘文殊坪’이라고 한다. 골짜기 서남쪽의 한 고개는 높이 솟고 굽으며 공중에 가로질렀는데, 높이는 팔만 자나 될 듯하며 ‘개잔령[犬嶺]이라고 이름하였다. 절벽 큰 바위는 (금방) 떨어질 듯 서 있는 듯 쏜 살같이 흐르는 물의 진동하는 돌소리는 지축[坤軸]을 흔들며, 또한 좁은 돌길은 고개 마루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어, 용이 분주히 날아 오르고, 말이 마구 날뛰는 듯하다. 반석(盤石)이 굽으며 백구비를 돌아 넓은 회수의 폭포와 한 짝을 이루는 폭포가 되니, 거의 차이가 없으며, 곧 구만리 높은 하늘에서 돌이 굴러 몸과 수석이 함께 갈리는 듯 싶었다. 중이 이르기를, “옛날 세조께서 관동 지방에 거둥하시다가 유점의 향내가 내려오자 수레를 버리고 말로 갈아 탄 곳입니다.”한다. 나는 놀랍고도 두려운 마음으로 그 말을 들었는데, 갑자기 슬픈 느낌이 들어 마침 절구시 한 수를 지었다.
太平眞主採民風 태평시대 임금님 백성들 풍속 보러 오시니
玉節金戈照海東 빛나는 의장은 동해를 비추네
輦前文武皆周召 수레 앞의 문무백관들은 모두가 어진 신하
不識何人斷靷忠 모를레라, 뉘라서 가슴속의 충성을 끊으리!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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