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자료실

[스크랩] 「한국의 역사 인물」12.1천년 전의 Global CEO, 해상왕(海上王) 장보고(張保皐)

회기로 2010. 1. 26. 20:26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장보고(張保皐)를 흔히 9세기 신라 중기의 무장(武將)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군인이라기보다는 동아시아 최고의 무역상권을 쥐고 흔들었던 기업인에 더 가깝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결집력으로 모래알 같이 흩어져 있던 신라인들을 하나로 모으고, 청해진(淸海鎭)을 중심으로 거대한 해상무역기구(海上貿易機構)를 형성했던 그의 글로벌 마인드(Global Mind)는 국제화 되어가고 있는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8세기 말 노비의 신분으로 지금의 완도 부근에서 출생한 장보고(張保皐)는 9세기 초 동양 최고의 강대국인 당(唐)나라로 건너가 그곳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고 무령군(武寧軍) 군중소장(軍中少將)이라는 직책에 오르게 된다. 당시 군중소장은 1천여명의 병사를 인솔하는 권한이 주어지는 장수였다.

당시 당나라는 각지에 절도사(節度使)가 할거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장보고는 그러한 지방 군벌의 속성과 그들의 군사력 양성 방법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중국의 동해안 지역에는 남으로는 양자강 하구 주변에서 북으로는 산동성(山東省) 등주(登州)에 이르는 지역일대에 많은 신라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연안 운송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자들도 있었고, 양주(揚州)·소주(蘇州)·명주(明州) 등지에서 아라비아·페르시아 상인과 교역하는 한편, 중국과 신라·일본으로 내왕하며 국제무역에 종사하던 자들도 많았다. 해안지역 출신으로 바다에 익숙하였던 장보고는 이러한 해상무역에 대하여 깊은 인상과 이해를 얻었다.

외국인으로서 평온한 시기에 군에서 더 이상 출세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보고(張保皐)는 군(軍)을 떠난다. 827년부터 8년간 장보고는 재당 신라인(在唐 新羅人) 자치기구인 신라소(新羅所)와 신라방(新羅坊)의 행정 책임자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장보고는 신라소의 책임자로서 이국 땅에서 천시받는 재당 신라인의 권익과 복지를 위해 힘썼다. 그 한 예로 장보고는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을 설립하여 신라인의 구심점 확보에 주력했다. 또한 행정 조직 안에 통역관, 짐꾼, 연락책을 두었고, 전용 선박까지 구비하여 신라인들의 무역과 유통업에 편의를 제공했다.

823년에 장보고는 양민을 노예로 매매하는 해적들의 참상에 분노하여 이를 근절하기 위해 귀국한다. 당나라에서 혁혁한 무공(武功)을 세웠으며, 재당 신라인 사회를 결속시킨 장보고의 능력을 인정한 신라의 흥덕왕(興德王)은 흔쾌히 그에게 군사 1만명을 주어 대사(大使)로 임명한다. 그 결과 한반도에서 여섯번째로 큰 섬인 완도에 청해진(淸海鎭)이 설치되었다. 완도 앞바다는 다도해의 암초, 밀물과 썰물의 변화, 육지와 부딪쳐 소용돌이치는 해류, 계절에 따라 바뀌는 해풍 등으로 변화가 많은 천연의 요새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어시누스대학교의 클라크 교수는 완도의 항해사적, 전략적 중요성을 지적하며 장보고의 천재성을 찬탄하기도 했다.

청해진 대사에 임명된 장보고는 해적 소탕작전에 주력하면서 국가 간의 무역을 장려하여 동북아시아 해상권을 지배했다. 그는 신라, 당, 일본 항로의 요충인 청해진을 군사, 선단, 항만, 조선, 항해 전문가, 통역관, 종교 시설 등이 결집된 복합적 성격의 군진(軍陳)으로 위치시켰다. 또한 청해진은 신라 조정으로부터도 일정한 독립적 행정과 경영체제를 유지했다. 이러한 까닭에 청해진은 점차 동북아 교역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이곳에는 일본과 당나라의 상인들은 물론이고 멀리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상인까지 드나들었다고 한다.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청해진은 군(軍), 산(産) 상(商) 복합체적 종합상사라고 할 수 있다.

장보고는 조공무역이 퇴조하고 민간무역의 시대가 도래하리라고 판단했다. 장보고는 종래의 중앙집권적 질서가 와해되고 국가 간 긴장이 완화되면서 민간의 자발적 교역이 증대하리라는 혜안을 가졌다. 즉 민간인이 자유롭게 오가는 개방적인 세상의 도래를 정확히 예측한 것이다. 그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장보고는 중국의 양주(陽州)에서 일본의 하카다까지 섬과 대륙으로 둘러싸인 동북아를 하나의 세계로 바라보았다. 웅대한 스케일의 해양 지향적 사고를 가진 것이다.

민군(民軍) 1만과 그 가족으로 이루어진 해상왕국이 질서를 유지하며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했던 것은 장보고의 탁월한 리더십에 기인한다. 상이한 문화와 국경을 망라하는 글로벌 네트워크(Global Network)의 지휘자로서 장보고는 포용력을 갖고 있었다. 즉 그는 국가별 문화적 차이를 인정할 줄 알았으며, 다양한 인재를 거느리는 도량을 지녔다. 일례로 장보고는 조선술, 항해술, 통역 등 청해진에서 요구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인적 자원을 대부분 해외에서 조달했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인적 자원을 아웃소싱했던 건 그의 국제적 감각의 리더십을 소유했음을 말해준다.

장보고(張保皐)는 막강한 군사력을 통해 해상교역을 주도했고, 뛰어난 조선술과 항해술을 통해 새로운 무역로를 개척했으며, 동북아시아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그는 조공무역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민간교역을 도입하여 활성화시킴으로써 새로운 교역형태를 창출했다. 즉 새로운 산업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선발자의 이점을 극대화시켜 나간 것이다. 그는 동북아시아의 정세 변화에 맞춰 조직화된 민간차원의 무역거래를 시도함으로써 무역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했다. 장보고의 선단은 무역업무뿐만 아니라 정부간 무역의 대행, 3국 정부의 공식사절 안내, 여객 운송, 선박 건조와 수리, 통역과 선원 제공, 종교와 문화 지원, 실크와 청자개발 무역 등 각종 상업 서비스와 문화사업까지도 수행했다. 청해진은 국제적 교역지 답게 다양한 품목을 취급했으며, 일부 신용거래 방식까지 도입했다.

청해진은 신라(新羅), 당(唐), 일본(日本) 항로의 중심이자 페르시아, 인도, 태국 등 동남아시아와 중국 동남부를 연결하는 남양 항로와 동북아시아 항로의 연결 고리였는데 이는 신라, 당, 일본에 거주하는 신라인들을 포괄하는 글로벌 네트워크(Global Network)를 통해 가능할 수 있었다. 청해진(淸海鎭)을 중심으로 3국에 거주하는 신라인들은 오늘날의 종합상사에 버금갈 정도의 강력한 정보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장보고는 개방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던 글로벌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청해진 중심의 해상체제의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청해진의 활동에 당과 일본을 참여시키기 위해 당시 세계에서 통용되던 글로벌스탠더드(Global Standard)를 적극 도입했다. 즉 당나라의 직제를 청해진의 조직에 차용했다. 또한 장보고는 불교를 당시 신라, 당, 일본을 포괄하는 보편적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3국을 잇는 가치체계로 삼았다. 즉 국적을 초월한 공감대 형성의 필요성을 이해한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중국 산동성에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 완도에 상왕봉(象王峰)이라는 법화사(法華寺)의 창건으로 발현되었다.

신라 민애왕(閔哀王)을 폐하고 신무왕(神武王)을 즉위시키는 정변에 개입하게 된 장보고는 이후 중앙정계의 권력 다툼에 휘말리게 된다. 신라 조정을 장악한 진골 귀족들이 장보고를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장보고를 제거하기로 결정한 신라 조정은 장보고의 옛 부하 염장(閻長)을 시켜 장보고를 암살하게 한다. 장보고가 암살된지 10년 동안 그의 아들과 부장 이창진(李昌珍)에 의하여 청해진 세력은 얼마간 유지되어, 일본에 무역선과 회역사를 보내어 교역을 계속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염장(閻長)이 이끄는 신라 중앙군의 토벌전(討伐戰)으로 청해진(淸海鎭)은 궤멸되었으며, 신라 조정은 851년 청해진의 주민을 벽골군(碧骨郡)에 이주시키고, 청해진을 팔폐시켜 버렸다. 장보고는 불의에 피살되었으나, 그는 8세기 후반 이래의 신라인의 해상활동의 한 정점이었으며, 신라 말기 각지에서 등장하는 호족세력의 선구적 존재이기도 하였다.

참고서적

김형광 '인물로 보는 조선사' 시아출판사 2002년
송은명 '인물로 보는 고려사' 시아출판사 2003년
김용만 '인물로 보는 고구려사' 창해 2001년
황원갑 '민족사를 바꾼 무인들' 인디북 2004년
이덕일 '고구려 700년의 수수께기' 대산출판사 2000년
이덕일 '살아있는 한국사' 휴머니스트 2003년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백제왕조실록' 들녘 2000년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들녘 2000년
김기홍 '천년의 왕국 신라' 창작과비평사 2000년
박선식 '한민족 대외 정벌기' 청년정신 2000년
이도학 '백제 장군 흑치상지 평전' 주류성 1996년
송기호 '발해를 찾아서' 솔출판사 1993년
윤병식 '의병항쟁과 항일 독립전쟁'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96년
한시준 '임시정부 활동과 의열투쟁의 전개' 단국대학교 출판부 1998년
장세윤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 솔출판사 2001년

 
{이상}
출처 : 한국사의 영웅과 열사들!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