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열전]불교 글씨 보물 ‘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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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은 불(佛) 법(法) 승(僧) 삼보 중 법보인 불경을 쓴 것이다. 자구(字句)의 오류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정성을 다해 한자한자 엄정한 해서로 써야만 한다. ‘법화경’에서는 경전을 전신사리(全身舍利)와 동일시하여 불상·불탑과 같은 예배대상으로 간주하는데 사경 그 자체가 공양이자 수행이고 신앙행위인 것이다.
우리나라 사경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되는데 통일신라와 고려는 당시 증대되는 불경 수요로 인쇄문화의 발전을 촉진하였다. 특히 경덕왕 때에는 목판인쇄술 보급으로 초기 경전 연구와 독송용 사경 대신 수행과 서사공덕으로 바뀌게 되는데, ‘다라니경’과 ‘대방광불화엄경’이 그 각각의 예가 된다. 특히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탑다라니경’은 751년 불국사 중창 연대에 간행된 것으로 인정되는데, 본문 중 측천무후자나 신라 종이 ‘백추지’가 이를 증명한다. 이 유물이 나오기 전까지 세계 최고는 770년쯤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것은 ‘다라니경’을 발췌한 것이자 판각기술과 글씨도 ‘다라니경’의 정교함이나 힘에 미치지 못한다.
화엄사 각황전의 ‘화엄석경’ 또한 사경의 또 다른 보물이다. 정강왕이 사망한 헌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화엄경’을 돌에 새겨 장륙전 내벽을 장식했던 것으로 판단되는데 임진왜란 때 화재로 파손되어 1만4천여점의 파편으로 남아 있다. 글씨체는 해서의 전형인 구양순류의 엄정한 당대 사경 서풍으로 중국 희평석경과 비견되는 사경예술의 정화다.
고려 사경은 통일신라의 경전신앙에 의한 사경의식을 이었으나 필사의 근본정신은 ‘호국’과 ‘기복’이다. 현종의 ‘초조대장경’, 대각국사 의천의 ‘속장경’, 고종의 해인사 ‘팔만대장경’이나 귀족의 발원에 의한 각종 금자(金字)·은자(銀字) 사경이 그 대표적인 유물. 특히 경·율·논 삼장(三藏)의 불교경전 총서를 새긴 ‘팔만대장경’은 총 8만1천2백58매로 고종 24년(1237)부터 35년(1248)까지 만든 것으로 ‘초조대장경’이 몽고 침략으로 불타자 다시 제작한 것이다.
〈이동국|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학예사〉
출처 : 나의 사랑 한국한문학
글쓴이 : 인간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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