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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예가 열전]500여년 한글서예 역사와 과제

회기로 2011. 3. 1. 00:47

[서예가 열전]500여년 한글서예 역사와 과제



그림 4) 서희환(1934~1995), ‘훈민정음서’, 1988년, 개인 소장.
우리나라는 처음 말과 글이 달라 뜻글자인 한자(漢字)를 사용해왔다.

690년경 통일신라에서 이두(吏讀)를 만들어 우리말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1446년 세종대왕이 언문일치(言文一致)의 한글을 만들어 내면서 우리말을 완전하게 기록하게 되었다.

한자서예의 경우 15세기 조선은 조맹부의 송설체가 우리식으로 소화되어 절정을 구가할 때인데, 한글이나 송설체 주인공은 모두 문종이나 안평대군 등 왕실 인사를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이다. 이 사실은 바로 훈민정음(그림 1·2)에서 한글과 공존하고 있는 한자에서 증명된다.

자음 17개 모음 11개 등 총 28개의 한글 자모의 점획은 창제 당시는 고전체(古篆體)였다.

하지만 필사(筆寫) 속도와 시대 미감에 따라 16·17세기 과도기를 거쳐 후기에 들어 궁체로 바뀌었다.

이것은 한자가 신속한 정보전달의 필요성 때문에 전·예에서 초서 또는 남북조 시대 해서를 거쳐 당나라 해서로 완성되는 과정과 흡사하다.

한글 자모의 결구는 한자와 같이 근엄한 정방형(□) 구조가 기본인데 글자 중심도 창제 당시 조선 초기(15세기)에는 그 중심에 배열되었다. 그러나 후기(18·19세기)는 균제미가 뛰어난 궁체에서는 우측으로 이동되어 있다.

하지만 중기(16·17세기) 과도기의 한글의 짜임새는 글자의 중심이 한가운데 있을 뿐 아니라, 자유롭게 정방형 구조를 출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궁체와 다르고, 한자 한글의 필법 구분 또한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한글도 근현대(20세기)에 들어서면서 다양하게 분화되었다. 기존의 정자와 흘림 진흘림의 궁체가 계속되는가 하면 창제 당시의 고전체나 민간에서 유행했던 판본체들을 다양한 미감으로 재해석해낸 복고주의 경향이 그것이다.(그림4)

이러한 한글서예는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다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지필묵이 현실 문자생활에서 사라지고 한글 전용이 가속화되면서 도구나 문자 환경이 디지털로 급격하게 변화해가는 것이 그것이다.

요컨대 한글서예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기존의 한자나 새로운 서구미술과도 공존하면서 여하히 혼융되고 변신해 나갈 수 있는가가 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동국/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학예사〉
출처 : 나의 사랑 한국한문학
글쓴이 : 인간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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