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열전]15C는 인쇄출판 절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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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5세기에 세종의 한글창제와 안평대군을 중심으로 강희안 정난종 등 조선화된 송설체의 명가들이 등장하면서 또 한번의 절정기를 맞이하였다. 이때 만들어진 대표적인 활자는 안평대군의 경오자, 강희안의 을해자, 정난종의 을유자 등이다. 요컨대 우리역사상 한글과 한자가 공존하면서 예술과 산업 두 측면에서 이렇게 문자문화가 활발하게 전개된 때도 드물었던 것이다.
세종을 시작으로 세조가 수많은 불경을 언해로 찍어낸 15세기 조선 초기는 사실 문예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조선의 기틀이 마련된 때이다. 인쇄분야만 보더라도 훈민정음 해례본이 세종26년(1446)에 반포된 이래 ‘용비어천가’가 세종27년에 활자화되었다. 그 후 동국정운자 병용 한글활자가 주조되어 ‘동국정운’이 인쇄되었고, 최초의 한글 금속활자본으로 ‘석보상절’이 세종29년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월인석보’(그림3)는 세조5년(1459)에 월인천강지곡을 본문으로 하고 석보상절을 주석글씨로 하였다.
뿐만 아니라 세조는 주자소와 교서관을 통합하여 활자본을 간행하는 국가차원의 인쇄출판기관을 발족시키는 한편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능엄경언해’를 세조7년(1461)에 간행하였다.
세조대에 와서 이렇게 불경언해 중심으로 인쇄문화가 발달하게 된 배경은 어려운 한자를 우리말로 풀어내는 본연의 목적과 함께 조선왕조가 국시가 유교지만 여전히 왕실에서는 개인적으로 불교에 심취했기 때문이다. 또 세조에 의해 안평대군과 김종서 등이 죽임을 당하고 단종 복위의 주역인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이 도륙당한 것도 관계가 깊다.
〈이동국|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학예사〉
출처 : 나의 사랑 한국한문학
글쓴이 : 인간사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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