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김씨의 시조가 누구인지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역사추적을 보던 중
문무왕비문편을 보고 게시판의 글들을 살피다 보니 몇가지 의문점이 생겨 여쭤보려고 합니다.
1. 미주가효님은 반론의 예로 임진왜란의 포로들을 거론하셨습니다. 물론 그러한 포로들이 일본에서 살다보면 당연히 조선의
문화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당에 끌려갔던 고구려의 유민이나 반대로 고구려에서 살았던 수당의 포로들도 마찬가지겠죠.
심지어 자의로 고구려로 이주했던 중국 국가들의 백성들도 고구려문화에 동화되었겠죠.
하지만 김일제의 경우 본래 휴도성에 살던 흉노인 수만을 데리고 산동에서 투국을 세워 살았다고 하는데, 과연 이 경우도
마찬가지일까요? 김일제로부터 증손자 김당까지 100여년인데 정부의 의도적인 문화간섭 없이 수만명이 모여 살았다면, 그 기간동안
완전히 한의 문화에 동화되어 흉노의 문화적 특성을 유지할 가능성이 없다고만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 신농님은 김씨일가가 왕망 정권에 참여했고 왕망은 유교적 사상에 찌들었기 때문에 북방문화를 전달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습니다. 김씨가 왕망과 관련된 것은 단지 외척이었던것 뿐입니다. 김씨가 어떠한 정책에
관련되었다는 기록이 없는 상황에서는 추측일 뿐입니다. 만약 신농님이 이것을 부수적인 근거로 거론하셨다면 모를까
추측에 불과한 것을 주된 논거로 언급하셨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신라의 문화가 흉노의 문화와 관련이 있더라도 굳이 뚜렷한 문화적 습성이 남아있어야 하는 것인가 의문입니다.
의식주를 이어가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면 설사 김일제 후손이 신라에 건너왔어도 신라 고유 문화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목적이 있다면 다르게 볼 수도 있죠.
김일제 후손이 신라의 김씨가 되었다면 비록 신라의 주체세력중 일부이지만 후발주자에 불과합니다. 보통 이런 소수세력이
관심과 집중을 받고 성장하려면 독특하고 화려한 문화를 선보이는 것이 가장 적합하죠. 문화적 흔적만 가지고도 신라에서
북방계통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3. 신라의 문화는 고구려나 백제와는 다른 독특한 성격을 지녔으며 유물을 보더라도 북방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가야나 신라 모두 해양세력의 유입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되는 북방문화의 흔적은 대체로
해양문화의 유입이 원인이라는 것이 주류적인 입장인 것으로 압니다.
김일제의 후손이 산동에 자리를 잡았다면 신나라의 멸망 이후 바닷길을 통해 가야와 신라로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당시 김해를 통하는 무역을 위한 바닷길이 이용되었음을 본다면 김씨일가의 일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김해 등에 거점을 두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기서는 민족기원의 차원같은 딱딱한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설사 김일제의 후손이 신라김씨와 연관이
있다고 해도 신라가 흉노의 후예가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조상이 흉노가 되는 문제도 아니잖습니까.
문무왕비와 김인문묘지에서 명백히 김일제와의 연관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왕건의 시조문제와 같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함과
동시에 당시 사람들에 의해 반박, 논파된 바 없다면 결국 김일제시조설도 가능성일 뿐이고 그 반대인 관념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추측일 뿐입니다. 다만 문화의 특성과 해양세력의 유입 및 문화의 이동 경로등을 보아 가능성이 있는만큼 충분히 개방적으로
바라볼 문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참고로 재미있는 점은 동복에 대하여 역사스페셜에서는 부여의 영향이라고 하고 역사추적에서는 흉노의 영향이라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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