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이 20만대군을 과장이라고 생각하시더군요.
전에도 여러 분이 이 20만대군의 정체에 대해 추측성을 글을 올려주신적이 있으신데
확실한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역시 정치적인 목적에서 신라측에서 과장했다는 쪽으로
얘기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과장을 했다면 왜 하필 20만으로 과장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만이라는 숫자에 단순한 과장을 넘어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20만이라는 숫자를 현대 남한의 군인수와 인구의 비례관계와 비교해
봤습니다.
당시 신라는 계속된 전시 상황이었고 남한도 준전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라도 지금의 남한처럼 징집제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현재 남한의 인구대비 군인의 수는 5000만 : 60만입니다. 이 비례는 80 : 1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신라시대 인구와 군인의 비례관계도 이와 비슷하다는 가정하에 계산을 해 봤습니다.
신라의 군사수를 5만에서 7만정도로 본다면,
단순 비례식에서
5만 : x = 1 : 80이니까, 신라의 인구는 신라군 5만의 80배인 400만이 나옵니다.
그리고 징집가능한 17세부터 50세까지의 성인남성의 숫자를 전인구의 5%로 본다면
400만 * 0.05는 딱 20만이 나옵니다.
아마도 김인문전에 나온 신라군 20만이라는 숫자는 당시 동원된 병력수가 아니라
당시 신라의 총동원력을 의미했던 것은 아닐까요?
출처 :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글쓴이 : 新羅大將軍金庾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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