土羊 二月三日 太王崩 于上宮
토양(土羊=己未)년 (A.D. 479)
十一月 壬乞以疾卒 王遣阿飡阿珍宗 冊牟大爲扶余君 牟大者 文洲弟昆之子也 有膽力善射 與文洲妻宝留相通 媚事我國 至是得立 仍賜首器爲妻
牟大以盖鹵王女宝玉 妻阿珍宗 宝玉母眞氏 將種也 扶余有言 不借將種 其臣有不肯 牟大曰 “舅甥之國 何用浮言” 宝玉身長 而美靜 嚴有大度 國人嘉之
《견해》 우산국을 정벌한 분을 두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전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삼국사기에는 이사부(苔宗)라 하고, 삼국유사에는 박이종(朴伊宗)이라 한다.
내물(보반) - 보해(성명) - 습보(보량) - 아진종(보옥) - 태종
내물(방단) - 방석(이공주) - 이종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종과 태종에게는 공통점이 있으니 어머니가 모두 백제의 왕녀출신이라는 점이다.
木鼠 八月 南川民 獻大蘿畐狀 如小犢 命上仙点之 曰 “犢者得也 兆在小丑” 乃立蘿畐祠 禱之
목서(木鼠=甲子)년 (A.D. 484)
八月 南川民 獻大蘿畐狀 如小犢 命上仙点之 曰 “犢者得也 兆在小丑” 乃立蘿畐祠 禱之
蘭陵生 女妙蘭
以竹長宮爲玉芝宮 仙徒以玉芝獻之 故王命種竹長宮 仍賜是名
牟大使沙若思 欲通中國 不得
宝玉生 子苔宗
보옥(宝玉)이 아들 태종(苔宗)을 낳았다.
《견해》 태종(苔宗, 이사부)의 출생기사로, 아버지는 아진종임.
六年 土豕 十二月 碧花后生 比梁子仇梨知
6년(A.D. 519) 토시(土豕=己亥)
設眞經齋 于別洞
靑明伐靑巤 命苔宗止之
八年 金牛 正月 受朝 于海宮
8년(A.D. 521) 금우(金牛=辛丑)
六月 遣守知馬大沙忠等 五十六人 于梁 採其風俗文武制度 以來 幷換土物
6월 수지(守知), 마대(馬大), 사충(沙忠) 등 56인을 양(梁)나라로 보내어 그 풍속과 문무제도를 캐내어 돌아오도록 하였다. 아울러 토산물을 바꾸어 오도록 하였다.
七月 桂花生 鉗知子世宗
계화(桂花)가 겸지(鉗知)의 아들 세종(世宗)을 낳았다.
九月 以桂花妻仇衡 伊登爲金官將軍 大革金官仙骨 金紫之秩 多用我人
十月 宝玉公主薨 一品權妻禮葬之 宝玉以盖鹵女 事毗處智證及帝 皆有寵 有子苔宗 出將入相 爲國柱 故帝親臨其葬 脫衣納壙 而送之
十年 玄兎 正月 受朝 于海宮
10년(A.D. 523) 현토(玄兎=癸卯)
五月 扶余斯摩薨 明襛立
5월 부여 사마(斯摩)가 죽어 명농(明襛)이 섰다.
六月 宝果公主逃 歸于我 命洪器迎之
6월 보과(宝果)공주가 도망 와서 우리에게 귀의하였다. 홍기(洪器)에게 맞이하도록 명하였다.
十二月 苔宗肜山稟祖主
十一年 靑龍 正月 受朝 海宮
11년(A.D. 524) 청룡(靑龍=甲辰)
角干伊宗薨 翌日夫人白氏亦薨 葬以太公禮 伊宗南政北伐 勳功居一 而終身不矜 老歸南山之下 養魚爲樂 妙王深信其才 終始大任 聞喪而徹饍
七月 靑明遣使 入貢 訴 異腦不守約納地 請與苔宗伐之 玉珍勸 帝不許
八月 宝果生 帝女南毛 帝洗之 曰 “汝以四十 生吾女 亦天命也 可不樂乎” 宝果感泣 抱帝 禱子
十四年 火羊 正月 受朝 眞宮
14년(A.D. 527) 화양(火羊=丁未)
十二月 帝幸三蓮公主 于碧花宮
苔宗肜山稟祖主
十八年 白亥 正月 受朝 海宮
18년(A.D. 531) 백해(白亥=辛亥)
四月 帝與碧花后 幸南桃 召仙骨諸老 自責失政亂色 命各言 急務以匡國政 群臣乃請 伊飡哲夫爲上大等 摠知國事 山宗兵部令 守知執書令 阿時大調令 苔宗理方令 肜吹宮門令 白宗檢軍使 比梁船府令
二十三年 赤龍 正月 受朝 海宮
23년(A.D. 536) 적룡(赤龍=丙辰)
命宅舍創永興寺 以爲讀院子弟 別院禱地 地宮及只召宮柳眞宮福業
命苔宗肜吹比助夫等 爲三路將軍 以餮舟楫收 伐野國 守知諫之 不聽
태종(苔宗), 융취(肜吹), 비조부(比助夫) 등을 삼로(三路)장군으로 삼았다. 이로써 탐하여 주즙(舟楫, 배와 삿대, 배를 통칭하는 말)을 거두어들이고, 야국(野國, 왜)을 치고자하였다. 수지(守知)가 간하였으나 (왕이) 듣지 않았다.
群臣上帝號曰 神國金天大帝 始改元曰 建元 元年 大赦國中 賜八十以上衣酒 加耶福優 爵馬有次
군신들이 제호(帝號, 제왕의 칭호)를 높이어 신국금천대제(神國金天大帝)라고 하였다. 처음으로 연호를 고치어 건원(建元) 원년(元年)이라고 하였다. 나라 안에 대사면을 하였다. (나이) 80이상자에게는 옷과 술을 내리고, 가야(加耶)에서 복비를 냄이 넉넉하였으며, (가야제국에) 작위와 말을 내림에 차례가 있었다.
二十五年 黃馬 正月 受朝 海宮
25년(A.D. 538) 황마(黃馬=戊午)
阿尸良盡平 苔宗都督之
아시량(阿尸良)을 모두 평정하여, 태종(苔宗)을 도독(都督)으로 삼았다.
《견해》 아시량(阿尸良)을 아라(阿羅)가야와 동일한 곳으로 보는 것이 현재의 학계의 통설이다. 그러나 이미 지증왕 15년(A.D. 514) 정월에 신라에 통합되어 소경이 설치되었다.
二十六年 黃羊 正月 受朝 眞宮
26년(A.D. 539) 황양(黃羊=己未)
五月 帝不豫
六月 副君立宗薨 于海宮 帝疾尙未全療 帝召阿時守知等 與思明 立只召爲天宮皇后 行副君事 以彡慕珍爲太子 地宮聞之 自海宮還 責帝負約 帝怒廢地宮 出碧院 只召后與碧花后力諫 不聽 玉珍乃泣 而出 天大雨
英失俊貞稟祖主
苔宗兵部令
十二月 天宮與阿時守知苔宗眞宗英失 會盟于神宮 命太子及妃 賜酒五臣 帝與天宮醉舞
(법흥왕이 대신들에게 진흥왕(삼모진)을 부탁하는 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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