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자료실

[스크랩] 김유신 열전은 정말 순수한 의도에서 쓴걸까?

회기로 2011. 3. 1. 21:27

우선, 김유신의 현손인 장청이 김유신 열전을 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유추해 보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우선 김장청에 대한 네이트 한국학에 나와있는 그의 기록입니다.

 

김장청(金長淸)
생몰년 미상. 신라 김유신(金庾信)의 현손. 증조부는 이찬(伊飡) 삼광(三光), 할아버지는 성덕왕의 총신이었던 대아찬(大阿飡) 윤중(允中)이다. 둔갑입성법(遁甲立成法)으로 유명한 김암(金巖)과는 형제간이다.
그의 가문은 김유신의 증손 김융(金融)이 난을 일으킨 것을 계기로 몰락하여, 그는 집사부의 말단직 집사랑(執事郎)을 지냈을 뿐이다.
저서로는 김유신의 《행록 行錄》 10권이 있는데, 《삼국사기》의 김유신전 3권은 이를 바탕으로 쓴 것이다.

 

김유신 가문의 후손들은 김유신의 증손인 김융이 난을 일으킨 계기로 인하여 대거 몰락합니다. 그로 인하여 김장청은 고작

집사랑이라는 낮은 관직을 지냈을 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할수 있는 희망은 무엇일까요?

 

그가가진 유일한 희망은 자신의 조상인 김유신의 전공을 어떻게든 과장하고 부풀려서라도, 널리 알리려 했을 것입니다.

 

"우리 조상인 김유신이 이러이러한 전공을 세웠는대, 왜 당신네들 신라왕가는 우리를 몰라주고 나를 고작 집사랑이라는 말단

관직에 머무르게 하였는가??" 김장청은 이러한 강한 불만감을 김유신 열전을 통해 풀으려 한것은 아닐까요?

 

김장청이 집사랑이라는 하급관직에 머물렀고, 김유신 가문이 대거 몰락한 상황에서 김유신 열전이 지어졌다는 점은

분명, 무언가 김유신열전을 만드는데 있어 어떠한 목적이 개입되어 있다고 보는것이 타당합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김유신 열전의 사료적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하고 싶은말은, 김장청이라는

인물이 그냥 순수하게 역사적 사명감 만으로 김유신의 공적을 사심없이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기술하였을 가능성은

매우 낮고 어떠한 의도로 과장과 왜곡, 첨가가 되어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김유신을 찬양하던 김부식 조차도, 김유신 행록을 꾸며지고 거짓된 부분이 많다고 평하였을 정도니,

더이상 설명하지 않으셔도 이해가 되시리라 봅니다.

 

즉, 김유신 열전에 자세히 나와있으니 이는 무조건 사실이다라고 치부하여 사료비판 없이 곧이곧대로 믿어야만 한다는 논리는 역사학자로써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특히나, 본기와 김유신 열전 기록의 전투기록 대부분이 일치하고 있는대, 유독 누락된 악성과 진례성 전투가 김유신 열전에만 보이고 그 전과가 비정상적으로 3만명이나 되는 너무나 큰 숫자가 기록된 경우에 한해선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보입니다.

출처 :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글쓴이 : 백제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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