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의 문파 기호남인
퇴계선생의 과학적 실용적 학문 전통은 한강 정구를 통하여 미수 허목,성호 이익,동사강목을 쓴 안정복,다산 정약용으로 이어지는 기호 남인의 경세치용학파 실학으로 이어진다.(『도산서원 혼천의』책자는 안동시 와룡면에 거주하는 향토사학자 정진호씨가 퇴계 선생의 학문분야 중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도하는 천문의기인 선기옥형과 혼천의 제조와 연구에 관련된 자료를 발굴하고 수집해서 편찬한 책으로 그 내용은 문헌에 나타난 천문의기(天文儀器)의 기록, 천문의기의 명칭과 제조 자해(字解)와 원(員) 구조와 기능, 북두칠성과 선기옥형, 북두칠성의 자해(字解)와 도(圖), 북두칠성과 천칭, 도산서원에서 제조된 의기명칭, 도산서원 혼천의 구조 등으로 편집 되었으며, 한국국학진흥원의 전문 연구원이 감수하여 천문학연구가 활성화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안산의 이익, 양주 마재의 정약용형제 등 경기도지역으로 퇴계학맥은 계승된다.
퇴계선생을 모시는 서원이 조선팔도에 건립되는데,경기도지역만 서인 노론세력이 워낙 강고하여 유일하게 퇴계선생을 제향하는 서원이 없어 아쉽다.
기호남인들은 중농학파로서 성리학 고전 유학 천문 지리지 역학 등 다방면에 걸쳐 실용적인 학문을 형성했다.
퇴계-한강-허목-이하진-성호 이익 右派 안정복-황덕길-허전-허훈,허유-장지연
안정복-신경준-정상기-최한기-김정호/지리지 편찬 전통/이익-이가환, 이중환
성호 이익 左派-권철신-정약용
영남지역에서는 양선정兩先正8名家[豊山 柳氏,順川 朴氏(달성 하빈 묘골妙洞,박팽년 혈손 사육신 후손중 유일하게 남은 혈손),仁同 張氏(여헌 장현광 후손,인동 남산 인의 오태)晉陽 鄭氏(상주 외서 우산리 우복 정경세(송재 이우公의 증손서) 후손) 義城 金氏(川前 지례 금계) 등]라 하여 대부분이 퇴계선생의 문인이자 인척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퇴계문하 6哲인 월천 조목 횡성조씨,서애 류성룡 풍산류씨,학봉 김성일 의성김씨,한강 정구 청주정씨,간재 이덕홍 영천이씨,지산 조호익(송재 이우公의 외증손/사위인 조효연의 손자) 창령曺씨가 대표적이다. 서애 류성룡의 장손인 졸재 류원지공의 처는 의성김씨로 학봉의 증손녀이자 장사랑공 이순도(퇴계 둘째 손자)공의 외손녀 즉 퇴계의 외현손녀다.졸재공의 아들인 의하,중하,만하에게서 퇴계 서애 학봉선생이 혈연과 학연으로 일체가 된다.의하 중하공이 후손이 없어 만하공에게서 양자하였으므로 서애파 중 찰방공파는 생가으로 모두 만하공 후손들이다. 졸재공과 소호리 음지마 한산이씨 중시조인 수은 이홍조(현손인 대산 이상정은 밀암 이재의 외손자)는 졸재공의 고종이다. 졸재의 외손자가 가일의 병곡 권구公이다.
이렇게 영남지역은 퇴계선생이라는 큰 호수로 모든 물이 모였다가 다시 흘러나가는 큰 바다와 같다. 혈연 지연 학연 가학 통혼이 중첩적으로 대추나무 연 걸리듯 이어진다.
여기에서 예외적인 가문이 몇 있는데,소산의 新/後안동김씨(경파京派는 선원 김상용,청음 김상헌 후손을 장동김씨로 통칭),소호리 양지마의 달성서씨(대구서씨 약봉 서성 후손),풍산 마애의 진성이씨 마애파(이돈 이회보 후손),예천 풍양 별실 우망의 동래정씨,봉화 법전의 진주강씨(노론 소론)가 서인 노론의 대표적 가문이다.
소산(115가구,종택, 벼슬 과거/선원 청음 장동김씨)/ 망호리 소호헌 달성 대구서씨/ 마애파(이회보,우율 문묘종사 찬성) /봉화 법전 춘양 진주강씨 노론13 소론12/ 별실 우망 동래정씨(지보 정묘-정사孫 정광필孫 정유길外孫김상헌/정승만 12명/회동정씨)
반면 1623년 부터 300년동안 영남지역에서는 정2품 판서(대감)이상은 하회의 류상조(柳相祚1763-1838, 병조판서), 의성산운의 이희발(李羲發1768-1849, 형조판서), 이효순(李孝淳1789-1878, 형조판서) 성주한개의 응와 이원조(李源祚 1792-1871, 공조판서), 상주우천의 낙파 류후조(柳厚祚 1798-1876, 공조판서, 좌의정) 등 5명 뿐이다. 문묘배향 뿐 아니라 벼슬도 노론계가 독점하였다. 양반 유학 성리학의 공리공담? 당쟁 때문에 멸망한 것이 아니라 4색당쟁이 노론의 권력독점으로(1623년 인조반정,1694년 갑술환국이후)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면서 지배층이 급속히 부패되어 갔다. 기호지방의 양반 문벌들은 나라가 망했는데도 의병 독립투쟁한 사람은 열 손가락도 모자라고 대부분이 친일파로 변신하여 과거사캐기의 빌미가 되고 있다. 권력과 벼슬로 부터 300년동안 소외되어 있던 영남의 선비와 호남과 호서의 선비들이 의병 독립투쟁에 나서게 된다. 안동의 석주 이상룡,유인식 유림,향산 이만도 이육사 등 수없이 많은 선열들이 희생하여 나라를 되찾게 된다.
노론계서원은 영남의 외곽지대로 쉼없이 침투하고 영남 유림을 분열시켰다.경상감사나 안동부사는 노론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강성인 인물을 선정해서 파견했고,병호시비(서애와 학봉/호계서원 배향 위치 ) 한려시비(한강 정구와 여헌 장현광의 門人姪壻시비) 손이시비(경주 양동의 우재 손중돈과 생질인 회재 이언적 師承시비) 양강시비(동강 김우옹과 한강 정구/청천서원과 회연서원의 청회시비) 적서향전(서자들의 권리 요구) 신구향전(남인들과 노론 전향인사들의 향권 둘러싼 시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영남지역을 분열시켰다.
그러나 이런 분열정책에도 불구하고 영남 유림은 만인소로 자신들의 정치적 학문적 입장을 대변하며 버티어 왔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낙동강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하루종일 기다렸으나,미꾸라지(노론으로 전향한 사람들을 미꾸라지 노론鰍老추노라고 함)만 걸리고 川金錚錚 河柳靑靑(川前내앞의 의성김씨들은 쟁쟁하고,하회의 풍산류씨들은 청청하게 버팀)이라 탄식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노론계 서원
안동 서간서원;김상헌 서원(안동 유림에서 세운 것을 파괴하여 물의,1738년)
서산서원(상주 서문동/김상용 김상헌) 상주 흥암서원(연원리/동춘당 송준길)
춘산서원(김천 부항 파천/송시열) 병암서원(청송 부남 홍원/이이,김장생)
노강서원(고령 다사 송곡/송시열 권상하 한원진) 수덕서원(성주 가천 화죽/김창집 민진원)
덕림서원(포항 대송 남성/송시열) 인산서원(경주 인왕동/송시열)
신안서원(영덕 지품 신안/송시열) 인계서원(영덕 창수 인천/송시열)
노동서원(울진 기성 황보/오두인 이상진 송시열) 신계서원(울진 호월/김창흡 김수근)
옥계서원(울진 북면 고목/송시열 김상정 전선)
반곡서원(거제 동상/송시열 김창집 민진원 김수근) 성천서원(거창 북성 월성/송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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