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자료

[스크랩] 문묘와 동방오현

회기로 2010. 1. 24. 19:07

[동방오현]

 

 선조때부터 수없이 간청되어져왔던 오현 종향은

조선조 광해2년(1610년)에 이르러서야

동방오현(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이 문묘에 종향되었다.

 

문묘는 유교를 집대성한 문성왕(文聖王)인 공자와 그의 제자 및 우리나라와

중국의 대유(大儒)의 위패를 모시고 봉향하는 사당 건물이다.

 

문묘는 정전인 대성전(大成殿)과 그 앞 마당 좌·우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그리고 삼문(三門, 神門)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문묘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사성(四聖)·십철(十哲)·육현(六賢)

그리고 우리나라의 십팔현(十八賢)을 봉향하고 있다.

성균관 대학교내에 소재한다.

 

 

 

 

 

아래의 내용들은 조선조 후학들이 임금에게 오현의 문묘 종향을 주청하면서

오현의 업적을 언급한 내용의 일부이다.

 

 

우리 동방의 도학이 정몽주ㆍ김굉필로부터 비로소 근원이 있게 되었는데,

조광조에 이르러 그의 걸출한 재주로 정자ㆍ주자의 학문을 드러내 밝히고,

규범을 따라 실천하여 예절에 맞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문정공 조광조는 도학(道學)을 창도(倡導)하여 밝히고 뒷사람들을 계도(啓導)하여 깨우쳤으며,

문순공 이황은 의리에 깊이 몰두하여 한 시대의 모범이 되었읍니다.

 

김굉필은 일찍이 도학을 부르짖어 옛 선현의 도를 이어 장래 후학의 길을 열어 놓은 업적이 있으며,

조광조는 그 뒤를 이어 더욱 성인의 도를 밝히어서 세상을 건지고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한 공적이 있고,

이언적은 도(道)를 본받음이 순수 독실하여 쓰러지려는 것을 붙들고

위태로운 것을 버티어 바로잡은 노력이 있습니다.

 

이황은 동방의 유학을 집대성(集大成)하여 주자(朱子)의 정통(正統)을 이었고

조정에 나아가서는 임금을 인도하여 도(道)에 맞게 하려는 정성이 상소에 간절히 어리고,

물러나오면 사람의 재능에 따라 교육을 베푸는 뜻이 강의(講義)와 토론에 절실히 드러나서,

착한 자는 그의 말을 듣고 우러러 사모하며, 악한 자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여도 스스로 계칙하였습니다.

 

 

 

출처 : Original Stone
글쓴이 : 관악자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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