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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4. 고성삼일포서(홍귀달)

회기로 2010. 1. 24. 19:53
 


4. 高城三日浦序(홍귀달)

 


  내가 삼일포에 관해 들은지는 오래다. 항상 마음에 품었으나 인연을 얻어 한 번 이르지를 못하였다. 해는 갑진년(1484) 겨울, 성은을 입어 절월(節鉞)1)을 가지고 관동 지방을 순행하며 고성에 이른 것이 두 번이었으나, 또한 놀며 완상할 겨를은 갖지를 못하였다. 이에 내년 가을로 다행히 임무가 끝나므로, 都事2)인 申公 아무개와 함께 歙谷(흡곡)으로부터 바닷가를 좇아서 남쪽으로 바야흐로 탐승할 마음을 철저히 하고, 이에 8월 16일 갑오일에 길을 고성을 가리키며, 이른바 삼일포의 사선정을 보려고 이르니, 고을 원(郡倅)인 趙公이 이미 삼일포에 배를 띄우고 정자에는 휘장과 장막을 치고 뭍에는 북을 대기하고 기다렸다. 정자는 호수 가운데 있는데, 옛날 영랑의 무리가 삼일간 노닌 적이 있어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에 서로 더불어 말 안장을 벗고는 배에 올라 배를 띄워 정자에 이르러 여섯 글자3)를 어루만지며 지나간 옛 일을 그리워하였다. 바람이 불어 물결이 용솟음 치니, 마치 날개 단 신선이 가볍게 걸어 오는 모양4)같다. 이미 또한 죽 늘어서 앉아 있는 바위 위엔 宴會가 흐드러지게 펼쳐졌다. 술을 다 마셔 나그네는 취했는데 해 지자 달 뜨고, 물은 맑고 물결도 없어 물고기가 뛰쳐 오르며 소리를 내니 대개 또한 잠잠히 느낌을 주며 태연하게 얻는 것이 있었다. 도사가 일어나서 잔을 잡고 말하기를 “이 놀이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사선이 단서5)를 남기지 않았던들 오늘 무엇으로 그 남긴 흔적을 알겠소이까” (우리도) 대개 한마디 말을 남겨서 그 뜻을 이읍시다.” 하기에, 내가 기롱하여 말하기를 “옛적부터 신선은 죽지 아니한다고 하며, 혹은 이름을 바꾸고 생김새를 바꾸어, 몇 천년이 흐른 뒤에 다시 찾아와 노닐기에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니, 영랑의 무리가 어찌 오늘 座中에 없다고 단언하겠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비록 능력이 없어 변하지 못하나, 그 英靈6)만은 진실로 죽지 아니하고 오래도록 살아 있는 것이니, 무슨 겨를에 기록하리오. 그러나 와서 세월을 노닌 것을 전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곧 앞서 간 현자들을 본받아 시[韻]를 지어서 바위 틈에 끼워 넣어, 뒷사람이 오늘을 보고, 마땅히 우리들처럼 상상하게 합시다.”고 운운하였다.

  나를 좇아 노닌 자는 佐郞 權仁孫, 相禮 盧吉蕃, 參奉 李苓으로 모두 風流人들이다.

  申公의 諱는 從沃이며, 趙公의 휘는 秀武이다.



<노규호, 금강산문학자료집Ⅰ, 국학자료원, 1996>


출처 : 금강산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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