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일의 문파 ]
김성일의 학문은 주로 실천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수양과 실천이야말로 김성일이 가장 관심을 기울였던 공부처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학적성리학적 수양과 실천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예’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표명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이상은 교수는 “질문의 항목(퇴계에 대한)에 있어서나 언행록에 있어서나 학봉이 질문한 것은 대개 모두 ‘상제례’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고, “학봉은 퇴계의 지경공부 같은 일상수양면의 말을 많이 기록하였고, ‘이기론’의 말은 3개조에 그칠 뿐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통하여 볼 때, 김성일의 학문은 자기 수양과 일상적인 윤리 실천의 문제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김성일은 고도의 성리학적 이치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학문상의 특징은 항상 학자로 하여금 ‘평이하고 명백한 곳에 관한 공부를 힘쓰라’고 하였던 주희의 말 중 ‘평이하고 명백한 곳’을 ‘일상적인 일’로 이해하고, 반면 역학계몽 같은 글은 초학자에게 그리 긴요한 것이 되지 못한다고 기피하는 경향을 보였던 그의 태도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를 갖추고 있는 까닭에 김성일의 문집 속에서는 고도의 성리학적인 이론을 찾아보기는 어렵고, 다만 현실과 정치적 사무에 대한 태도 등이 여러 글 속에서 특히 많이 구체적으로 드러남을 확인하여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성리학적인 이치에 관하여 전혀 문외한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하겠다. 이를테면 ‘이기론’에 대한 그의 입장 같은 것이 그러하다.
앞의 이상은 교수의 인용문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이기론’ 같은 것에 대한 관심은 아주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기론’적인 견해를 전혀 갖추고 있지 않았다고 말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하겠다. 그는 이황의 ‘이기론’적 태도를 그대로 계승한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 예로 들었던 김황이 이황의 ‘마음’에 대한 설명 중 두 번째 태도, 즉 ‘이치와 기질을 함께 하여 설명하는 입장’을 김성일이 계승하여 그의 후인들에게 이어진다고 보았던 견해 같은 것이 이점을 증거하여 준다.
‘이치와 기질을 합하여 설명하는 태도’라면 이른바 이황의 ‘호발설’을 의미하여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황의 ‘이기설’에 대한 기본태도는 김황의 세 가지 구분 중 바로 이 두 번째 측면에 속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김황은 김성일이 이황의 성리설을 그대로 계승한다고 보고있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김성일이 이황의 성리학적 입장을 그대로 이어받는 사람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점은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다른 많은 이황의 문도들과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김성일에게 있어서는 그 이론적 성취의 제 측면보다는 실천과 행위의 일상윤리적 태도가 강조되는 것도 사실이다.
김성일의 문파는 상당히 번성하였던 것으로 말하여진다. 이병도 선생에 의하면 김성일의 학통은 최근까지 이어져 내려온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김성일의 문파를 ‘퇴계학파의 본간本幹이요, 중추’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김성일의 문파는 400여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파악은 특히 그 사제관계의 의미를 폭넓게 규정할 때에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김성일의 문파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범주 안에서 문파라는 개념을 말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단 우리는 이 개념을 (1) 사우관계의 범주 속에서 이해할 수 있고, 또
(2) 학문적 특징의 계승이라는 차원에서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범주를 충족시킬 때 우리가 여러 사상가들을 하나의 문파라는 범주 속에서 말하는 것이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김성일(1538~1593)로부터 김황(1896~1978)까지의 영남 학맥의 흐름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김성일 문파라는 범주 속에 넣어서 이해한다. 이 장에서는 먼저 첫 번째 조건, 즉 ‘사우관계’의 흐름부터 추적하여 보도록 하자. 두 번째 조건은 달리 장을 나누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김성일의 학통은 장흥효(1564~1633)를 거쳐서 그의 외손인 이현일(1627~1704) 에게로 이어진다.
장흥효는 자가 행원, 호가 경당으로 장팽수의 아들이다. 그는 12세 때 김성일의 문하에 들어 17년간 학문을
닦았으며, 김성일 사후에는 류성룡에게 배웠다.
이현일의 학통은 그의 아들 이재(1657~1730)에게로 전하여진다.
이현일의 문인으로는 권두경, 권두기, 김성탁 등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재의 학통은 그의 외손인 이상정(1710~1781)에게로 전하여진다.
이재의 문하에서는 김익한, 권정택, 김낙행, 김익명 등이 두드러진다.
이상정의 학통은 남한조에게로 이어져 나가, 류치명(1777~1861)에게로 전해진다.
이상정의 문도로는 남한조 외에도 유도원, 남경의, 최주진 등이 말하여지며,
이종수, 김종덕, 유장원 등이 특히 ‘호문3로’라고 지칭되던 이상정의 큰제자들이라고 한다.
류치명의 호는 정재이며, 이상정의 외증손이다.
그는 이상정 문하의 유도원유장원을 종증조부로 하여 탄생한다.
그는 20세 까지는 유장원을 따라 배우고 있으며, 유장원 타계 이후로는 남한조를 스승으로 모신다.
류치명의 학통은 김흥락(1827~1899)과 김도화(1825~1912), 이진상(1818~1886)에게로 이어져 나간다.
김흥락은 김성일의 후손이며, 김도화는 이상정의 문하인 김굉의 증손자이다.
그는 김성일의 11대 종손이며, 19세 때 류치명의 문하에 든다. 김도화는 25세때 류치명의 문하에 든다.
김흥락의 학통은 권상익(1863~1934)김병종(1871~1931)에게로 이어지며,
권상익의 학통은 권명섭(1885~1949)에게로 전해진다.
김도화의 학통은 류인식(1865~1928)에게로 전해진다.
김흥락이나 김도화 계열과는 달리 이진상의 성격은 조금 분명하지 않다.
우선 무엇보다도 이진상을 류치명의 계열에 포함시켜 이해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병도 선생이나 윤사순 교수는 이진상을 류치명 계열의 인물로 간주한다.
그러나 금장태 교수는 이진상이 독립된 학통을 확립하였다고 본다.
이러한 입장은 아마도 이진상의 사상적 입장이 독창적인 자리에 놓여진다는 생각에 바탕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정상의 사상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독창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이상정-류치명 계열의 사상적 입장의 계승 발전으로 볼 수 있느냐, 아니면 전적으로 자설의 독자적 확립으로 보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또 따로 남는다고 생각되고, 이상정-류치명 계열의 사상적 입장을 발전 계승하였다고 한다면 동일한 학통의 흐름 속에 집어넣어 이해하여도 크게 그릇될 것이 없으리라고 믿어진다.
이진상의 학문이 가지고 있는 사상적 계승의 측면은 따로 장을 나누어 말하고자 한다. 여기서 결론만을 이야기 하여 보자면, 필자는 이병도 선생이나 윤사순 교수의 생각이 옳은 것이라고 인정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진상을 류치명의 학통을 잇는 사람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이진상의 학통은 이승희(1847~1916)와 곽종석(1846~1919)에게로 전하여진다.
곽종석의 학통은 하겸진(1870~1946), 이인재(1870~1929), 김황(1896~1978)에게로 이어진다.
이렇게 이황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김성일 계열의 학통은 방대한 규모를 갖는다.
위에서 거론된 인물들은 간단하게 형식적 관계 속에 집어넣은 것이다.
위에 거론된 인물들 외에도 물론 많은 인물들이 있다. 위에 거론된 인물들은 다만 이제까지 우리 학계가
문자를 통하여 이름을 밝힌 사람들만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이진상의 학통까지를 김성일 문파 속에 집어넣어 이해한다면, 김성일의 문파는 초기 얼마동안을
제외하면 그대로 영남학파의 학통을 대표한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김성일 문파 사람들은 몇몇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안동에 지역적 연고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점에서 김성일 문파는 안동지역 퇴계학 사상사의 주류를 장악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윤천근 : 안동대 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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